


















조선인 김충선, 일본인 사야가. 두 이름은 모두 일본 역사에서 지워졌다. 일본의 입장에서 사야가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이자 반역자, 매국노 였다. 일제 사학자들은 김충선이 조선이 만든 허구 인물이라고 했다. 지워진 이름이 복원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였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김충선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녹동서원을 방문해 책을 쓰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김충선 귀화 400주년이 되던 1992년에는 일본 NHK 방송이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한 무사의 의로운 결단,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거부한 인도주의자, 일본의 양심 등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은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 김충선은 특히 일본 쪽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있다.

대구 달성 우록리 마을
녹동서원, 한·일우호관, 신도비, 유적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안쪽으로 김충선을 시조로 한 '사성(賜姓) 김씨' 집성촌이 있다. 마을 입구에 황금색 복고양이 상(像)과 함께 '한일우호관'이 서있다. 문을 연 지 4년이 됐다.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해 일본 정계와 학계 인사들의 필수 방문코스다.
※녹동서원
1789년(정조 13) 지역 유림에서 유교적 문물과 예의를 중시하였던 김충선의 뜻을 기려 건립하였다. 이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885년 다시 지었고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사당인 녹동사(鹿洞祠)와 향양문, 유적비, 신도비 등이 있으며 해마다 3월에 제사를 지낸다.

인스티즈앱
은근 논란이라는 업보 여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