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어제는 1600년대까지 이야기했다. 어제 썼듯이 17세기 이전까지, 중세 향수의 역사는 의약기술의 역사이기도 했다. 20세기 이전까지, 근세 향수의 역사는 아로마테라피의 역사이기도 했다. 이후 향수 역사는 쭉 프랑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같은 시기 영국, 독일, 스페인 등에서도 향수 비슷한 것을 만들어 썼지만 프랑스에서 만들던 증류향수, 침출향수 같은 고도의 기술은 없었다. 32. 다른 유럽국가에서 쓰던 향수 비슷한 것을 센티드 워터(향기나는 물)라고 한다. 센티드 워터는 향재료를 그대로 물에 넣고 팔팔 끓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장미수는 장미 꽃잎을 띄우고 그냥 끓여서 만들었다. 센티드 워터는 오직 위생 용도로, 목욕, 세수, 입 안을 헹굴 때 썼다. 가장 중요한 용도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용도. 프랑스와 다른 나라들은 같은 유럽이면서도 문명 수준에 큰 차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다른 유럽나라 사람들은 식기 없이 손으로 식사했다. 33. 그랬던 유럽국가들이 프랑스식 식사예절과 프랑스식 향수 기술을 배운 것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망한 다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1700년대, 즉 18세기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한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퐁파두르라는 평민 여자와 떡을 쳤다. 겁나 쳤다. 궁전에서도 치고 방에서도 치고 정원에서도 치고 호숫가에서도 쳤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왕은 정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정사에만 빠져있었다. 34. 루이 15세 이전에는 왕실이 향수 원료생산부터 제조까지 전부 관리 감독했다. 그런데 루이 15세는 향수 생산을 민간에 위탁했다.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 왕의 허가를 받은 민간 위탁업자만 향수를 만들 수 있었다. 대신에 민간업자는 왕실에 많은 돈을 바쳐야 했다. 향수 생산량을 끌어올리고 세금수입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그러니 어떤 향수하우스든 루이 15세 이전부터 향수를 만들었다고 하면 완전 거짓말이다. 그 이전엔 왕실이 직접 만들었는데 무슨 왕실에 납품을 했다고 하냐. 35. 루이 15세의 조치로 가족기업 형태의 향수 하우스들이 생겼다. 왕실허가서는 비쌌고 허가 받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허가를 받으면 대를 이어 향수를 만들었다. 우비강도 이때 생긴 회사다. 한편으로는 왕실허가서 자체가 거래 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대귀족 투자자들이 향수 제조업자에게 제조비법과 왕실허가서를 샀다. 그리고 되팔렘질을 했다. 완전히 이중착취였지만 제향기술이 더 많은 분야에 퍼진 계기이기도 했다. 장갑, 모자, 머리빗에서부터 가구와 커텐, 벽지에 이르기까지 귀족들의 삶은 호화로운 향으로 가득했다. 그 귀족들은 그래서 조만간 목이 썰리게 된다. 36. 루이 15세의 향수위탁 법령이 퐁파두르 부인의 꼬드김 때문이라는 썰이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법령이 발표되자마자 사재를 털어 장 마리 파리나라는 사람을 시켜 향수 사업에 나섰다. 파리나라는 이름은 향덕후라면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독일식 이름은 조안 마리아 파리나. 그렇다, 이 사람이 최초의 쾰른수(오 드 콜로뉴:EDC)를 만든 사람이다. 독일 쾰른에서 만들어서 이름이 오 드 콜로뉴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프랑스에서 만든 거다. 37. 오 드 콜로뉴(EDC)를 단순히 EDT, EDP보다 부향률이 적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틀렸다. 원래 EDC는 지금의 EDT보다 부향률이 높았다. 지금도 EDC가 EDT보다 농도가 진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EDC란 무엇인가. 기름이 아닌 알코올에 녹인 향수라는 뜻이다. 파리나의 오 드 콜로뉴는 최초의 알코올 향수였다. 알코올 향수는 산패 없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더 빨리 만들 수 있으며, 상큼했다. 기존의 식초향수나 유성향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큼한 시트러스향이 터졌다. 무엇보다 멀리까지 향기를 풍겼다. 기름에 녹인 향수에 비해 지속시간은 훨씬 짧았지만. 38. 오 드 콜로뉴의 등장은 비로소 남에게 돋보이기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향수가 등장했다는 말과 같다. 멀리까지 향기를 풍기는 향수. 다시 말하지만 부향률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알코올을 썼다는 게 중요한 거다. 당시 고순도 알코올은 매우 비쌌다. 그래서 오 드 콜로뉴도 비쌌다. 지속시간은 짧았으니 주기적으로 계속 뿌려주어야 했다. 비싼데다 빨리 없어지는 물품. 엄청난 사치였다. 귀족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39. 그래서 선량한 양민들이 겁나 빡쳤다. 왕의 목도 썰고 왕비의 목도 썰고 귀족의 목도 썰고 그냥 지나가던 죄 없는 사람의 목도 썰었다. 그걸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한다. 170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대혁명 와중에 파리나도 폭망했다. 제조비법과 왕실허가서를 콜로뉴에 사는 상인에게 팔고 튀었다. 그래서 오 드 콜로뉴가 된 거다. 영어로는 콜론 워터, 이탈리아어로는 아쿠아 디 콜로니아. 일본어로는 오 데 코롱. 우리가 쓰는 코롱이란 말은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40. 그때 나온 최초의 오 드 콜로뉴는 지금도 시판 중이다. 프랑스 땅이었던 콜로뉴는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폭망하면서 독일에 넘어갔다. 도시 이름이 쾰른으로 바뀌었다. 거기서 오 드 콜로뉴를 생산하던 공장의 주소가 4711번가였다. 그래서 향수 이름이 4711이다. 현존하는 향수 중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향수다. 25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재료가 약간 더 추가됐다. 하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다. 오늘날 4711은 대단히 저렴하지만 여전히 괜찮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계속... 1줄 요약: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향수는 4711이다. 4711은 루이 15세의 떡, 나폴레옹의 폭망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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