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네 머리카락이 되고 싶어.
그저 하릴 없이 네 등을 타고 흔들리다가 가끔씩 바람결에
네 입술이나 뺨에 닿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상수리나무 아래 / 김수지
"이딴 추억 그만 끌어안고 그냥 나를 안아."
그러고는 노을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속삭인다.
"그래도 된다잖아."
열감기 / 김영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돼?"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 계속 물어왔다.
"내가 무얼 하면 돼?"
"⋯⋯."
"내 두 다리를 잘라 너에게 주면, 그러면 옆에 있어도 돼?"
"⋯⋯."
"자라나면 다시 자를게.
사람의 살을 파먹는 이가 꼴 보기 싫어 빼내라면 빼낼게."
점점 더 잔혹해지는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다 녹아내리고 말았다.
저가 우는지도 모르고.
턱에 고인 눈물이 그의 손등으로 떨어진다.
요수는 빨갛고 말간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다.
"너를 연모해."
그는 무릎을 꿇을 듯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나한테 너무하지 않아?"
무엇이.
그렇게 말하려 했으나 내 발은 이미 그에게로 가고 있었다.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감싸 안고 말았다.
"나는 네가 죽고도 여러해를 살 텐데.
남은 네 세월이라도, 내게, 조금만⋯⋯."
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 디키탈리스
"난 너와 달리, 투기를 잘 참지 못해."
"저 조막만한 아이를 상대로 투기한다고."
"누군들 안 그럴까. 네 스승, 네 아비, 내게로 오는 걸음을 망설이게 하는 건 무엇이든."
여러 해를 사는 나무여 / 디키탈리스
"난 나한테 온 거 절대 안 놔.
네가 울며불며 꺼지라고 소리 질러도 안 끝나."
눈을 크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입술만 벙긋거리는 내게 서은오가 바싹 붙어왔다.
"내가 죽어야 끝난다고. 연애? 개소리야. 쉽게 생각하지 마.
네 망한 연애엔 끝이 있었지만 나하고 하는 건 없을 거니까."
겨울 문방구 / 박영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지헌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러곤 스스럼없이 입 속에 혀를 넣었다.
지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혀를 빨아 댔다.
진하게 혀를 섞다가 지헌의 다리가 침대 기둥에 걸려 둘 다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나쁜 놈아."
"응, 나도 사랑해."
미희 / 일루션
"남자가 옆에 앉는 거 싫어. 자리도 좁은데 덩치 커서 불편해. 냄새도 안 좋고."
"안 붙어 앉을게. 이렇게 떨어지면 괜찮지?
그리고 나 향수도 뿌렸어. 좀 봐줘. 책을 안 가져왔어."
"신경에 거슬리니까 작게 움직이고 조용히 숨 쉬어."
그러면 정지헌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틀어막고 숨을 멈추는 시늉을 했다.
미희 / 일루션
"이렇게 꽉꽉 물어 대면서 무슨 사생활이야.
사생활 같은 소리 한다. 너 진짜 내가 실수해 줘?"
어? 어! 일부러 되물으며 위에서 강하게 허리를 내리쳤다.
어지러울 정도로 흥분과 분노가 몰려왔다.
미희 / 일루션
나랑 만나 볼래? 난 솔직히 맨날 니 생각밖에 안 해. 잘해줄게.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 도개비
"키스한다고 다 사귀나."
"하."
"개방적인 거 같더니 보수적이네."
"어, 됐다. 그냥 영화나 마저 봐라, 진보."
여름의 캐럴 / 박영
이제 난 당신을 알아 버렸고, 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으니,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없군요.
이제 내게 남겨진 몰락이 눈앞에 선합니다.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 / 유폴히
그래. 당신은 우아한 명조의 준, 견고한 고딕의 일.
비문 없는 명료함.
나의 아름다운 선 / 조강은
"추우면 1층으로 내려가도 돼."
선이 고개를 흔들더니, 아마, 자신에겐 처음으로 눈꼬리까지 휘며 활짝 웃어 주었다. 그 미소에 준일의 귀에서 먼저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묵직하게 출렁거리며 배에 부딪히던 강물 소리가 지워졌다. 곧 자동차와 지하철이 사라졌다. 건물이 지워지고, 도시의 불빛이 저 멀리에서부터 차례로 꺼졌다.
강, 배 위에 오직 둘만 남았다.
나의 아름다운 선 / 조강은
그 애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마치 오래전에 묻어 놓은 시체를 들킨 기분이 든다.
퀸 / 로즈라인
-강아지♥(오후 12:03) : 주인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강아지♥(오후 6:37) : 주인님, 오늘도 야근하세요?
-강아지♥(오후 8:15) : 주인님, 저녁 맛있게 드셨어요?
-강아지♥(오후 8:49) : 실험 때문에 많이 바쁘시구나ㅠㅅㅠ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강아지♥(오후 9:11) : 기다리고 있을게요. 얼른 오세요♥ㅅ♥
우리 엄마가 물건은 함부로 줍는 게 아니랬어 / no one
"그럼 데려다줄게요."
"괘, 괜찮아요! 괜찮다고! 진짜 괜찮아요!"
사색이 되어 사양하자 지율이 씩 웃었다.
"난 누가 막 그렇게 싫다고 그러면 더 하고 싶어지던데."
"아니, 안 싫어요! 완전 좋아요! 진짜 너무 좋아요!"
다급하게 말을 바꿨으나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직후였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어쩌다가 전원일기 / 박하민
항상 이런 식이야.
입에 물면 독이고, 발을 대면 덫이고, 손에 쥐면 꿈이야.
낙원의 이론 / 정선우
네 헛것 같은 호의에 나는 목을 매고.
네 실낱같은 온기에 나는 열을 앓고.
절벽에 뜬 달 / 현민예
"나는 너만 있으면 되는데."
"⋯⋯."
"너는 정이 많아서 주변을 내버려 두지 못하잖아."
카미안이 담담한 고백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뒤통수에 부딪힐 때마다 목덜미에 묘한 소름이 돋았다.
"그걸 아는데도 가끔은 귀찮을 때가 있어."
"⋯⋯."
"네 주변 것들을 다 죽여 버리면 나만 봐 주지 않을까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해."
"⋯⋯."
"하지만 그랬다간, 너 울 거잖아."
내 죽음으로 흑화하지 마세요 / 르릅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나를 버리고,
괜찮아지면 가장 늦게 나를 주우니까."
"유을아."
"힘들면 자존심 때문에 나를 버리겠지.
괜찮아지면 미안하다는 이유로 가장 늦게 찾겠지.
그 사이에서 미쳐 가는 나는 안중에도 없이."
비겁한 너의 겨울은 / 디키탈리스
"저를 섹스 토이 대신으로 써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공과 사를 구분하자 / 희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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