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2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3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4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5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6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스스로를 제육천마왕이라 칭하다. 전국 3대 영걸 "오다 노부나가"
본문은 국방tv 토크멘터리전쟁사의 내용을 요약정리한것임을 밝힙니다.
※실제 역사와 다른 각색이 있을수 있습니다
">
정면엔 아자이, 아사쿠라
후방에는 다케다 신겐
양면 협공을 받게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발생한 호재.
그것은 오다 노부나가를 향해 공격을 나서기로 한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무슨 이유인지, 폭설을 핑계로 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하는데에 많은 것들을 걸고
원정한 다케다 신겐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하여
몇 번이나 출정을 재촉하는 서신을 계속해서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보낸다.
최소한 공격하는 움직임이라도 취해야 오다 노부나가가 병력을 분산할것이 아닌가
하지만, 에치젠의 아사쿠라 군은 전혀 꿈쩍도 하지않았다.
폭설때문에 출정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한편, 적은 수의 병력이나마 이끌고
다케다의 뒤를 쫓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는 미카타카하라 라는 고원 어딘가에 진영을 짜고
다케다 신겐의 측면을 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쿠가와는 길이 좁으니 여기라면
병력이 적어도 싸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다케다 신겐의 측면을 공격할 요량으로 치고 내려간 도쿠가와의 눈 앞에는
미리 진영을 짜고 자신이 오는 방향으로 배치를 끝낸 뒤 기다리고 있는 다케다 신겐의 군대가 보였다.
이는 다케다 신겐은 이미 도쿠가와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군대라는 거대 집단은 많은 병력이 움직이기 때문에
급하게 방향전환을 할 수가 없다.
이는 현대군도 몇 일은 걸리는 일인데,
GPS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적이 오는 방향을 미리 알고 군대의 방향을 돌려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군대의 질 자체가 다르다는 소리였다.
미카타가와라 고원에서 벌어진 미카타가와라 전투.
여기서 다시 한번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이 처참히 쓸려나간다...
도쿠가와가 안죽고 살아난 것도 거의 기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처참한 패배였다.
이 전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미카와 가신단의 세력은 거의 완전 소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다케다 신겐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 전투 패배 후
도쿠가와는 추격하는 다케다 군대를 피해 도망가면서, 달리는 말 위에서 변을 지렸다는 설은
아주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처참한 패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든 것이 끝나자 도주 중 절에 숨어들어가 할복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본 주지승이 그 것을 말렸고
승병들이 돕게하여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도쿠가와를 탈출시켰다.
이제는 정말로, 오다 노부나가와 다케다 신겐의 싸움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천운은,,, 오다 노부나가의 편이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폭설을 핑계로 꾸물거려 싸움이 늦어지던 사이
겨울이 지나 해를 넘겼고, 그렇게 이듬해 1573년 공격해 들어가던 다케다 신겐은 급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한다.
만약에 아사쿠라가 다케다 신겐의 바람대로
공격행동을 취했더라면,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천하인이 될 수도 있었다.
다케다 신겐과 오다 노부나가 군을 치고나서 교토를 먹고나면 경쟁해야할
다케다 신겐이 병으로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그 반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들이 다케다 신겐과 힘을 합쳐 오다 노부나가를 치고 교토를 차지한다면,
자신들의 다음 상대는 다케다 신겐이 될 것이니,
차라리 저 강한 다케다 신겐을 도와주지 말고
오다 노부나가와 1:1로 싸우게 하여 다케다 신겐의 병력을 소모 시킨 뒤
다케다 신겐과 싸우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정황상 그래서 폭설을 핑계로 움직이지 않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다케다 신겐은 병사해버렸고
오다 노부나가와 1:1로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자이 & 아사쿠라는 기회가 왔음에도 행동하지 않고 계산만 했던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고 밥그릇에 숟가락올리려는 전략을 쓰는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가 으레 이런것 때문이다.
오다 노부나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그래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다케다 신겐의 병사로 다케다 군은 급히 철수를 시작했다.
덕분에, 노부나가는 맘편히 아사쿠라를 처단하러 출정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의 공격을 받게 된 아사쿠라는, 설상가상으로
다케다 신겐과의 협공 때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신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나자, 아사쿠라 군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속절없이 무너졌고
오다 노부나가에게 잡혀 가문 전원이 할복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할때는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굳이 후환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썰에 의하면 오다 노부나가가 할복명령을 내리며
" 할복하라 *가이샤쿠는 내가 직접해주겠다. " 라고 말했다고 한다.
* 할복한 사람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목을 베는 행위
이렇게 아사쿠라 가문은 끝이나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의 다음 타겟은 오우미의 아자이 였다.
오다 여동생과의 혼인동맹으로 이루어진 아자이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딱 한 가지 걸리는 오다의 근심은, 시집 간 여동생이었다.
(소문난 미인이었다고 한다.)
여동생만은 죽이고 싶지 않았던 오다는
아자이 측에 서신을 보내 여동생을 보내라고 압박한다.
의인이었던 아자이는 가문이 끝나게 될 위기에 처하자,
오다의 여동생인 부인에게 애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라며 보내준다.
오다의 여동생 오이치는 자신은 이제 이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며 떠나는 것을 거부했으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친정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를 본 아자이 군의 사기는 뚝 떨어졌다.
아자이가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이렇게 되면
주군이 이기는 것을 포기했다라고 비춰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동생을 보낸 뒤, 아자이는 아버지와 함께 할복을 하며 생을 마감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오우미& 에치젠 원정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아자이의 두개골에 금을 칠해 술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오다 노부나가와의 신뢰관계를 지킨 그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무한한 감사와 신뢰를 받기는 커녕 오다 노부나가의 견제를 받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인은 츠키야마 도노(님) 이라는 여자였다.
그 둘 사이에는 노부야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노부야스의 부인은(도쿠가와의 며느리)
오다 노부나가의 딸(도쿠히메)이었다.
문제는 도쿠가와의 부인
츠키야마 도노가 이마가와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의 원수.
당연히 고부관계는 최악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오다의 딸이자 도쿠가와의 며느리는 남편인 노부야스와도 사이가 틀어져 버린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오다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몰래 서신을 보냈다.
(내용은 도쿠가와 가문이 다케다 가문과 내통하는 것 같다 라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
이 서신을 받은 노부나가는 진상조사도 하지않은 채 덜컥
도쿠가와에게 명령을 내려 아들 노부야스를 할복시키게 한다.
이에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도쿠가와 가신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가신들의 반발에도 불구.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아들 노부야쓰에게 할복을 명령한다.
게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부인 또한 가신들에 의해 논밭에서 죽임을 당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는 자기 아들을 희생해서 자신의 가문을 보존했던 것이다.
이는 노부나가의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 다음편에 계속
댓글은 글 작성에 매우 큰 힘이 됩니다.
)

인스티즈앱
(충격주의) 현재 sns에서 난리난 초등 과외 결말..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