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계시죠?
객석이 지금 반도 안찼습니다
지금 공연 20분 전.
그나마 좀 미뤄놔서 한시간정도 남았는데
리허설은 커녕 합창단도 없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이 곡 쓰느라 고생했다는거 잘 압니다. 10년 넘게.
그것도 귀 먹은 상태에서 작곡했죠?
그래서 지금 너도 한번 당해봐라 이겁니까?
이 정도 시련쯤은 겪어야 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시험하는거에요?
징크스네 뭐네 무시하려고 해도 이건 좀 심하잖아!!!!!
그것도 이번엔 아주 별에 별 일들이 다 뻥뻥!!!!!!!
뭐지? 분명히 욕실쪽에서 소리가 났는데..!
샌드위치 훔치고 도망가려다 잡힘
그거 내껀데?
파티하러 온 사람들이죠?
우리 아빠가요, 아저씨들 때문에 우리 먹을거 안온다고
아저씨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 그랬어요
니 아빠가 누군데?
주현철이요. 이재민 대표에요.
그래서 나쁜 사람들이니까 다 뺏어와라 도둑질해와라 그러든? 니 아빠가?
결국 아버지 소환
아빠..
난 그냥 빵이 있길래..
빵도 훔쳤어?
훔친게 아닙니다 제가 줬습니다
누가 그딴걸 얻어먹으래!!!!!!!! 니가 그지야?
하늘이 무너져도 고개 빳빳이 들라고 아빠가 말했어 안했어!!!
사내놈이 자존심을 지켜야지 어디서!!!!!
뚝 못그쳐?
.........
빵값 얼마면 되요?
빵값 대신 공연을 와서 보시죠.
빵값이나 말해
누구보고 당신네 공연 쪽수까지 채우라고?
머릿수나 채우려면 이런 말 안합니다.
그러려면 잘 차려입은 엑스트라를 갖다 앉히지 뭣하러 당신들을 초대하겠습니까?
중간에 난동을 부릴지도 모르고 소리를..
당신 말 잘했어
난동 부려줘? 휘파람 불고 소리 지르고 한번 해봐?
편한걸로 따지면 나도 공연 수입 몇 할 떼다가 수재위원금 내면 그만입니다
근데 그렇게 배 채우면 허기진게 가십니까?
자존심 상처받은건 복구가 되요?
날 지금 긁고 있는게 누군데!!!!!!!!
당신이잖아
난 지금 아드님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꼬마야 잠깐 자리 좀 비켜주면 좋겠는데.
가있어.
잠깐만.
보셨죠? 이게 열살짜리 남자애의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집은 없어졌지 배는 고프지 애들은 놀리지
죽고싶을만큼 비참한데 아빠는 고개 빳빳이 들라고 하고 있어요.
애한테 이건 모순입니다 혼란이에요
............
아드님은 지금 집이 무너진게 아닙니다.
-아따 태어나서 못질 한번 안해본거같은 분한테 이런 말 듣고 있을라니까 난 좀 가소롭네 지휘자 양반?
못질 해봤습니다.
벽에다가 수천만원짜리 그림 걸라고 못질한거 말고 이 사람아
벽돌도 날라봤고 흙더미가 된 집터에서 교과서도 꺼내봤습니다
결국 집은 못 살렸죠. 그래서 콘테이너에서 살았습니다.
아드님 얘기만 하는게 아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뭡니까 지금? 나도 당신들처럼 수재민이였다 이해한다 뭐 이딴 소리 그런거요?
천만에요.
난 수재민 따위는 아니였습니다.
집이 좀 가난했지만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아주 똑똑한 학생이였죠
반장도 여러 번 했었습니다
근데 똑똑하면 한가지 안좋은 점이 있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남보다 빨리,일찍 깨닫게 됩니다.
어느날 딱 감이 오더군요.
아,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 대접받는게 아니구나
부자는 계속 부자고 가난뱅이는 계속 가난한거구나
고로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모양 이 꼴이겠구나.
(강마에 나레이션)
그래서 대신 키운게 자존심이였습니다.
대통령 아들보다 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죠.
아마 난 그때 세상에 광고를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내가 원해서 가난해진게 아니라고
이건 원래 내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저 아저씨가 지휘자였어?
-어. 왜? 가서 보고싶어?
-어..?아니..
그렇게 버텼는데 그것도 물난리가 나자 다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오만한 아이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냥 컨테이너에 사는 지지리도 가난한,
그러면서도 꼴에 수재위원금도 안 받겠다고 튕기는 주제파악도 못하는 거지새끼일 뿐이였죠.
그때 저는...
그래요,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드러운 세상에 날 던져놓은 엄마도 참 원망스러웠죠.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이 구질구질한 세상을 떠나버리는거죠.
그때 제 어머니는 전신마비였습니다.
숨이 막히지 않게 3분마다 목에 가래를 빼줘야 했어요.
아무것도 할 건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10분정도 견디면 되는거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옆방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음악이였죠.
정말입니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겠는데
난 그때 거기서 오케스트라를 봤습니다.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먼 훗날의 나도 봤습니다.
구원이였죠
위로였고 힘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박수 쳐도 돼
-싫어 안 쳐.
-공연 보고 나서는 박수치는게 예의야
감동 받은거에 대한 답례기도 하고.
아빠는 감동 받았다!
그때 제가 받았던 위로가, 그 힘을 여러분들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