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의원의 판관으로 있던 송 주부를 불러 전하의 상태를 살피라고 명하였습니다."
총명하고 어진 신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왕후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앞에는 그녀의 둘째 아들인 한빈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래, 어떤 기별이 있다고 들었느냐?"
"예,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그다지 진척된 사항이 없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나마 기침이 멎었고, 현재는 거동조차 불편하시어 처소에서 날마다 약재를 바꿔 쓰고 있다고 하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마. 너무 염려는 마옵소서. 모든 힘을 다하여 꼭 전하의 병을 낫게 하겠사옵니다."
"송 주부에게 부탁한 제안은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들었사옵니다."
왕후는 기가 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왕은 벌써 백 일이 넘는 기한 동안 병을 앓고 있다. 내내 몸에서 열이 나고 기침이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 감기와 증상이 비슷했지만 감기에 효능이 있는 온갖 약재를 써 약을 달여 올려도 왕의 병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전의감과 내의원에서는 왕의 병이 전염병일 것을 우려하여 궁에서 지내는 모든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시킬 것을 권하였다. 왕은 점점 위독해졌다.
몇 년 전까지 내의원에서 판관을 맡고 있던 송 주부는 관직에서 내려와 현재는 혜민서에서 서민들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 그는 한양은 물론 조선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명의로 궁에서는 왕의 모든 수발을 도맡았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궁이 아닌 혜민서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궁에서는 그런 그의 뒤를 이을 수 있을 법한 인재가 없어, 왕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그가 꼭 필요하지만, 그는 다시 궁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다.
자색 정복을 입은 한빈이 잠시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어머니는 왕이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세자로 책봉된 진환이 왕이 될 것 또한 사무치게 염려하고 있다. 그는 너무 어리고, 사태 파악이 아연하고 강단이 없기 때문이다.
"세자의 혼례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전하께서 점점 위독해지고 있다고 하시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어머니, 대체 무엇을 염려하고 계신지요? 아버지는 꼭 빠른 시일 내에 병을 벗어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시면 안 됩니다."
"……이럴 때에 세자는 대체 어디를 가신 겁니까?"
감정이 실린 왕후의 말에 신하는 잠시 고개를 움찔했다.
"예, 그것이……. 의금부 지사 댁에 가셨다가 궁으로 돌아오시고 있다고 합니다."
"…세자빈을 만나러 갔습니까?"
"예."
왕후는 잠시 이마에 손을 대었다. 화가 치밀어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역시 진환이 아닌 그대를 세자로 책봉했어야 합니다."
"왜 그런 말씀을 입에 올리십니까? 저는 왕위에 단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건 오직 윤뿐입니다. 형님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제가 아닌 동혁을 그 곳으로 올려야 합니다."
"그 아이는 필요 없습니다. 너무 똑똑하여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의문일 정도이니."
신하는 그 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더 이상 전할 언질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행동이었다.
왕후는 언제부턴가 왕의 첩의 자식, 서자인 동혁을 조금 영악한 구석이 있는 사내로 인식하였다. 그는 왕의 성과 피를 물려받아 지혜롭고 사냥에 능했으며, 후궁인 어미의 용모를 닮아 상냥하고 학문에 눈이 높으며 어딘지 모르게 계집애 같은 면이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는 한 마디로, 총명한 대신에 용감함이 부족한 진환과, 용감이 존재하는 대신에 총명이 모자른 한빈보다 왕의 자리에 좀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왕후는 언제나 그를 경계하였다. 혹여나 자신의 아들의 신변에 위협이 갈 것을 두려워하여. 하지만 왕후의 아들인 진환과 한빈이 멀쩡하게 살아 숨을 내뱉는 한 동혁은 결단코 왕위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왕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후궁의 자식이며 서자의 신분이다.
신하가 절을 올리자 왕후와 한빈은 가볍게 묵례했다.
4
봄에 뜬 태양은 느리게 한양 위를 군림하며 작열했다. 눈이 부셔서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지원이 내 얼굴 위로 팔을 뻗어 소매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관두었다. 내가 그런다고 해서 잠자코 팔을 내릴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혜민서로 향하는 동안에 나는 세자의 손길이 닿았었던 약지 부근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나를 나비라고 칭하던 세자의 아름답던 미소가 생각나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얇은 쇠 모양 위로 옅은 분홍 빛깔의 꽃 모형이 달린 반지는 세련된 멋은 없지만 그래도 세자의 마음이 담겨 예쁘게만 보였다. 문득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씨, 반지가 마음에 드십니까?"
"으, 응?"
"그래도 걸음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계속 그것만 쳐다보시며 걸으시다간 다리가 엇갈려 넘어지십니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그런 거 아냐!"
"어허, 아니면 아닌 것이지, 어째 그렇게 분개하십니까? 세자빈께서는 항상 체통을 지키셔야 한다고 재차 강조 드렸거늘."
하여튼 입만 살았다. 도통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어쩔 때는 진지하고 어쩔 때는 꾸러기 같고 또 어쩔 때는 의미심장하게 사람을 가지고 놀아버린다. 원래 이런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나한테만 유독 이러는 걸까? 헤아릴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어느덧 오후가 시작되고 있었다.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마음이 가뿐해졌다.
윤형을 보면 어떻게 인사할까? 저번에 무심코 머릿속으로 들어왔던 생각 때문에 왠지 그를 보기가 조금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런 껄끄러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가 보고 싶다는 감정이 훨씬 간절해졌다. 모순된 감정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그의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이윽고 혜민서로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지원이 옆으로 몸을 비켰다. 먼저 들어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자 조금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내부 구조가 눈에 보였다. 하얀 복장을 한 사람 여럿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상태를 봐주고 있었다.
정신 없이 고개를 움직이다가 윤형과 눈이 마주쳤다. 윤형은 하얀 옷 위에 검은 테두리를 장식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조금 멍한 기색으로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깜짝 놀라 단숨에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전보다 더욱 예를 갖추고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워졌다.
"세자빈께서 이런 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아, 저……."
"죄송합니다. 저번에는 미처 귀인을 몰라뵙고 예를 갖추지 못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기를."
뜻 밖의 말에 심박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렇다는 건, 윤형은 그 무렵 내가 세자빈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경우의 수를 제외하고, 우선적으로 그를 신분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접하는 파렴치한으로 오해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쪽으로 혜민서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으나 곧 그들은 우리에게서 관심을 접었다.
"단지 의금부 어른의 따님 분이라는 것만 전해들어 그대가 정녕 세자빈인 줄을 몰라뵈었습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사죄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말씀을 드리지 못한 제가 더 죄송한데요."
"용모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름다우시군요. 그런데 혹시 상태가 나빠지셔서 이 곳에 오신 겁니까?"
그의 표정에 걱정스러움이 번졌다. 내가 되려 미안해질 정도였다.
"아닙니다. 시장을 잠시 걷다가 의원이 생각나 한 번 들렀습니다."
내 말에 그는 일순간 화색이 도는 얼굴을 하더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감사합니다. 그저 가볍게 드린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어 이렇게 들러주시다니."
윤형이 말을 마치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내 뒤에 서 있는 지원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감사를 표하고자 세자빈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허락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윤형의 시선이 내 뒤를 향했다. 그 사이에 나는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훔쳐보았다. 자연스럽게 감탄이 흐를 정도로 수려한 모습이었다. 적당한 키에 눈이 예쁘고 그 눈을 덮은 속눈썹은 길게 뻗어있어 더 예뻤다. 머리칼이 길다면 분명 여자로 쉽게 오해를 살 수 있는 외모였다. 하지만 많은 의약을 다뤘을 손은 곳곳에 굳은 살이 박혀 있을 정도로 상해 있어서 그것만 본다면 사람들은 그를 분명한 남자로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곱상한 얼굴에 대조되는 거친 손은 그의 모습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지원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윤형의 표정이 좀 더 밝아지는 걸로 보아 아마 그는 말로 건네는 대답 대신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윤형은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고작 몇 분을 기다릴 나의 입장을 고려하여 목재로 만든 의자를 내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 나름의 감사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서 굳이 거절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의자에 앉을 때도 지원은 미동도 하지 않으며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뒤에 윤형이 돌아왔다. 손에는 작고 동그란 통을 쥐고 있었다.
"감히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송진으로 만든 연고입니다. 직접 만들어 효능이 좋으니 생채기가 생겼을 때 소량만 바르시면 됩니다."
"이렇게 귀한 걸 그냥 받아도 될까요?"
"무슨 말씀을, 받아주시면 제가 감사하지요."
"소중하게 받겠습니다."
"부디, 쓰실 일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예?"
"제 선물을 써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이 연고를 바를 만큼 귀인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아아…."
"평생 건드리지 않으실 것을 바라겠습니다."
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조선에 어떻게 이런 낭만주의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더불어 대체 어떤 부모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아왔길래 이렇게 성실하고 모범적일 수 있단 말인가. 전에 윤형이 궁의 호출을 받았다는 아버지에 대해 고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울컥해졌다. 윤형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있다.
"궁에서 아버지를 필요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이미 알고 계시겠군요."
"…예, 예. 맞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꼭 아버지를 설득하여 혜민서에서 내의원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하의 치료를 도와야지요."
복잡한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일단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치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나마 정리되었던 머릿속에 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이만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깨어나신지 하루도 되질 않았습니다. 돌연 다시 감기에 드실 수도 있습니다. 지원의 말에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윤형이 아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예의가 갖춰진 인사를 했다. 나도 따라서 고개를 숙이자 지원도 곧 가볍게 묵례하였다. 윤형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혜민서 안에서의 윤형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뒤를 돌 때마다 윤형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혜민서를 빠져나오며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해가 전보다 아주 조금 더 기울어졌다. 시계가 없는 이 곳에서 나는 해가 저물어가는 각도로 시간을 짐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윤형이 건네준 연고가 담긴 통을 쳐다보았다. 통은 꼭 내 손바닥 크기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통의 뚜껑엔 꽃 위에 나비가 사뿐히 앉아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젠 반지에서 그 통입니까? 아씨, 제발 앞을 보고 걸으세요. 저는 온갖 위험한 변수로부터 아씨를 지켜야 해서 아씨의 걸음걸이까지 신경을 써드릴 수는 없습니다."
"누가 신경 써달라고 했나? 나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어."
조금 불만스럽게 중얼거리자 지원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내 앞에서만 웃음이 헤픈 사람인 것 같다. 아까 윤형에게는 대답을 하는 것조차 귀찮아하지 않았던가.
조금 눈에 익은 풍경들이 보였다. 집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나는 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윤형의 선물을 쥐고는 살짝 걸음을 늦췄다.
"아씨, 별궁에서 지내실 적의 준회의 호위는 어땠습니까?"
"…응? 그건 갑자기 왜?"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땀이 났다.
"그저 궁금하여 묻는 것입니다."
"……그냥……."
"……그냥?"
"…너보다는 괜찮았다!"
내 말에 지원은 약간 미묘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당황스러워서 손이 떨렸다.
"아씨가 별궁으로 가시고 간간이 준회로부터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씨가 마치 향수병처럼 친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소식 말입니다. 솔직히 그 때는 아씨가 조금 싫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어리광을 부리시고 계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단지 제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시,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아씨를 호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
"어차피, 이제 곧 그 곳으로 돌아가실 테지만요."
내가 아무 말을 하지 못할 때까지 지원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내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대문 앞에 멈춰설 때가 되어서야 그는 평소처럼 입을 다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자빈'은 어쩌면, 나와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조금 비슷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대문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뒤 향단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향단에게 세자에게 선물로 받은 반지에 대해 얘기해주자 그녀는 꼭 저가 그런 일을 당한 것 마냥 얼굴을 붉히며 뺨을 감싸 쥐었다. 그런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향단한테서는 그 또래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발랄함이 있다.
향단이 방에서 나간 뒤에는 내내 나 혼자 그 안을 관찰했다. 제대로 둘러본 적 없는 이 방은 잠시 집중해서 바라보자 꽤 크게 느껴졌다. 농에는 밤에 쓰는 이불과 몇 벌의 한복이 있고 빗접에는 각종 장신구가 정돈되어 있다. 구석에는 책이 쌓여 있었는데,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읽을 수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한자를 배울 걸 그랬다. 후회해도 늦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여러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을 당했다! ……이 저물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문에 바짝 붙어 귀를 가져다 대었을 때 가까이에서 다급한 걸음의 기척이 느껴졌다. 서둘러 몸을 바르게 세우자 이내 문이 열렸다. 향단이었다.
"……아씨! 찬우 도련님께서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향단은 얇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왜인지 그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 모습에 놀랄 틈도 없이, 똑똑히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나는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향단이 들어와 벌어진 문의 공간 사이로, 칼을 뽑아드는 지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세자가 살해 당했다! 조선의 태양이 저물었다!
고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밖에서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자가 누구냐! 목을 베기 전에 서둘러 자수해라! 의금부에 넘겨 죄를 물을 것이다!"
지원도 지지 않으며 소리쳤다. 덕분에 고함 소리는 그쳤지만, 나는 좀처럼 그 파장의 잔상을 지워낼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내게 따스하게 웃어주던 세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미소, 말투, 향기, 웃음 소리, 모든 것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내려 약지를 확인했다. 그의 마음이 깃든 반지는 아직도 예쁘게, 예쁘게만 보였다.
/
*내의원: 궁에서 쓰는 의약을 제조하는 관청.
*전의감: 궁에서 쓰는 의약의 약재 제조 및 의학 교육을 맡은 곳.
*혜민서: 궁 밖에서 서민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
*송진: 소나무와 잣나무에서 분비되는 액체.
어제 너무 짧게 올린 것 같아서 오늘은 좀 더 길게 써와봤는데... 읽히시는 데 괜찮았는지는 모르겠네요...!
이제 아이콘 일곱 명 모두가 밝혀졌네요!!
비록 동혁이는 간접적으로 소개되었지만... ㅎㅎ
정리하자면
진환-책봉된 세자
윤형-송 주부의 아들이자 혜민서의 의원
지원-세자빈의 호위무사
한빈-진환의 친동생
동혁-진환, 한빈과는 배가 다른 동생이자 후궁의 자식
준회-세자의 호위무사
찬우-세자빈의 절친이자 재력가의 아들
이렇게 되겠네요!
복잡하실 것 같아서 써드립니다... ㅎㅎ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바나나킥 님
빈블리 님
김빱 님
외에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답글을 달아드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