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 사내였다
남들에 비해 큰 키와 다부진 몸 그리고 짙은 눈을 가진 사내였다
"어찌하여 나는.."
"무슨 일 있으시옵니까?"
"아니다"
제를 걱정하는 눈빛을 한 가득 보내는 남자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로 돌아 별당으로 쑥 들어갔다
"어찌 저리 근심이 많으신 것인지.."
큰 눈으로 제 주인을 쳐다보는 체구가 외소한 사내였다
그러고는 곧 행랑채로 들어갔다
*
"어쩐 일로 부르십니까"
사랑으로 들어 온 종인이 제 아비를 보며 물었다
"네 나이가 올해로 몇이더냐"
"방년 열 여덟이 되었습니다"
"곧 혼인을 치뤄야겠구나"
"..."
종인은 혼례를 올리기 싫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당시에는 당연했지만, 여인과 백년의 연을 맺는 다는 것에 납득 할 수 없었다
다시 제가 묵는 별채로 돌아 와 담 너머로 조금씩 피어나는 생명의 싹들을 보며 더욱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무슨 일이 있으시길래 하루종일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다"
제가 기분이 좋지 못한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조르르 달려와 자신을 위로해주는 종이었다
어린시절 마치 벗 같은 존재였는데 그 신분이 뭐라고 이제는 이렇게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경수 - 어린시절 종인이 붙여 준 이름 - 를 보고 오히려 더 울적해졌다
"혼례를 치루라 하는구나"
"예? 아.."
"너는 치루지 않느냐?"
"저 같은 종 놈이 무슨.."
"왜 그렇게 말하느냐"
하며 경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종인이다
"어찌하여 나는 이런 가문에 태어난 것이냐"
.
"왜 신분의 벽이 두텁고 왜 혼례가 연정이 아닌 권력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냔 말이다"
경수는 묵묵히 제 말을 듣고있다가 말을 뱉었다
"불행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저 같은 종 놈은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오늘이 될까 내일이 될까 언제 팔려 갈 지도 모르는 인생입니다. 아, 인생도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누가 이런 미천한 것을 사람으로 쳐 준답니까. 이름도 없이 남기는 것도 없이 마치 가축처럼 한 생애 살다 갈 뿐 입니다. 저 보다도 불행하십니까"
경수의 말을 듣고 잠시 뜸을 들이던 종인이 말했다
"니가 나보다 더 불행하다고 하여 내가 불행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송구하옵니다. 소인이 생각이 짧아.."
"아니구나. 너도 올해 열 여덟이 되었느냐"
"그러하옵니다"
*
앉아서 책장을 넘기다 문득 이 곳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책들만 가지고 떠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좋을테지
또 무엇이 좋을까 하다가 문득 경수가 떠올랐다
고자다 고자손이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