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교실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예나, 지금이나 낮은 항상 쾌활하고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로 넘쳐나는데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저녁이 오면, 벽에 저장돼 있던 말소리가 슬슬 새어나와 웅얼웅얼 제각각의 목소리로 교실을 감싼다.
그리고,
'안녕.'
'...'
일분단 네 번째 창가쪽 자리.
'...'
'앉아.'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자리.
그날을 떠올리니 슬며시 입술이 올라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눈이 안 좋다거나 앞에 애가 키가 커서 칠판이 안 보이는 애들은 서로 상의해서 자리 바꾸도록 해. 너희들 마음대로 움직이지 말고.'
서로 친한애들끼리 붙어 앉으려 시끌벅적 소리를 쳐가며 타협을 하던 아이들 틈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너.
그런 네가 그냥 가만히 있어주길 바랬던 나.
그때의 커텐도, 높은 책상과 걸상도 아직 그대로다. 네가, 날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널 생각해.
'...팔 좀.'
말 한 마디 걸기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눈만 끔뻑거리며 조용히 내게 첫마디를 건넸던 너.
살짝 열린 창문틈으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조용히 검지를 뻗어 책상위를 쓱, 한 번 훑으니 딸려오는 새까만 먼지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응어리들.
드르륵-
"어머, 벌써 왔니?"
지금보니 저 구불거리는 파마머리도, 항상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밝은색감의 투피스도 정겹기만 했다.
예전에는 복도를 지나가다 혹시라도 마주쳐 꼬투리를 잡힐까 피하기 일쑤였는데.
"네, 선생님은 여전히 젊으시네요."
"얘~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진짜 나이 먹은 거 느껴진다. 그럼 너는 어쩜 멀쑥하게 잘 컸니? 옛날엔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콧소리를 내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는 담임선생님의 옆모습을 본 종인은 그저 작게 웃으며 그땐 참 철이 없어서, 죄송했어요. 라는 말을 속삭였다.
"근데 졸업하고, 아니. 졸업식때도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가던 놈이 이제 와서 웬일이야? 전화로 대충 듣기는 했는데."
"아, 그게. 제가 취직을 하려고 보니까 고등학교 생기부를 가져오라고 해서요. 오랜만에 학교 구경도 하고 싶고, 또... 좀 찾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론 앞에 이유는 핑계다.
"요즘은 나이스 서비스에 검색하면 다 나올 텐데. 찾고 싶은 거? 뭔데 그러니?"
"... 주소록 좀 보고 싶어서요. 졸업 직전에 전학 가버려서, 연락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흐음- 하며 작은 콧소리를 내는 것은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내가 네 고3 담임이었지 아마? 그 시기에 전학가는 애들은 없는데. 아, 기억 났다 얘. 그러니까 이름이..."
"도경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