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떻게 알았어?"
한심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하다 꺼낸 말이 겨우 어떻게 알았어- 같은 뻔한 말이라니.
" 둘이 들어가는 거 보고 대충 눈치."
찬열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보건실 안을 힐끔 들여다보더니 대뜸 백현의 손목을 잡아끌며 긴 다리를 이용해 휘적휘적 앞으로 나아갔다.
" 집에 가자."
큰 손에 휘어잡힌 가는 손목이 화끈거렸다. 더불어 얼굴에도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 세훈의 애무 때문에 그런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
" 야, 언제까지 짐 쌀래. 그냥 대충 처넣고 빨리 가지."
" 잠깐만. 아까 수업 빠져서 교과서 챙겨야 돼."
백현은 평범하게 지내길 원했다.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놀고, 입시로 스트레스도 받으며 별다를 거 없이 편히 지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해야 했으며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히 학교를 다니는 것이야말로 제가 말하는 '평범한 삶' 이라고 적어도 백현은 생각했다.
" 보기보다 범생이네. 창고에서 그 짓 하고 있길래 고삐 풀린 강아진 줄 알았는데."
' 그 짓' 이라는 발언에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정작 생각해보면 별로 걱정할 거리가 없었는데도.
다른 학생이 그 낯부끄러운 광경을 보기 전에 찬열이 먼저 발견했고, 덕분에 세훈도 바로 그 행위를 멈췄으니까. 적어도 학교에 소문이 퍼질 일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백현은 왠지 모르게 찬열의 입에서 나온 ' 그 짓' 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날아와 쏙쏙 박히는 기분이었다.
" ... 가자."
그 잘난 주둥이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까- 내심 두려웠던 백현은 재빨리 필요한 교과서를 챙기고 가방을 메며 뒤를 돌아 찬열을 봤다.
아니, 보려고 했는데 제 코앞에 서있는 거대한 인영 때문에 백현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 고개를 들어 찬열을 올려다봤다.
" 왜 뭐라고 안 해."
" 뭘."
찬열은 저보다 키가 작은 백현을 아무 말 없이 빤히 내려다보다 검지로 동글동글한 코를 아프지 않게 튕기곤 다시금 백현의 손목을 잡았다.
" 진짜 강아지 같네. 가자, 똥강아지."
잡힌 손목이 다시 화끈거렸다.
-
씨발, 이게 뭐야.
아예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허무했다.
" 내가 무슨."
찬열은 교문을 빠져나오자마자, 학교 밖으로 발을 디딛자마자 백현의 손목을 놓으며 잘 가라- 한 마디 남겨놓고 제 갈 길을 갔다.
" 계집애도 아니고."
정말 자신은 그저 세훈의 자존심이나 소유욕을 건드리기 위함일까. 그럼 그냥 갈 것이지 손목은 왜 잡아? 무슨 커플도 아니고.
" 씨발."
가슴 한 쪽에서 우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제는 정말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게 느껴졌다.
나도 집에나 가자- 백현은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으며 엠피쓰리에 연결해 노래를 재생시켰다.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
저벅저벅-
탁-
" 야."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백현은 항상 등교할 때나 하교할 때, 심지어 학교에서 자습을 할 때도 엠피쓰리로 몰래 노래를 들었다. 아까 오전에도 분명 제가 좋아하는 팝송을 들으며 필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들이닥친 세훈이 무작정 저를 끌고가는 바람에 전원을 끄지 못해 배터리가 다 닳아버려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 손은 주머니에 넣은 상태라 이어폰을 빼기가 귀찮아 그냥 계속 끼고 있었다.-
대신 그 소리를 채워주기라도 하듯 학교에서부터 제 뒤를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 왜 자꾸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