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의 예상대로 날씨는 좋더라. 손을 잡아오시길래 튕길까 고민하다가 그냥 나도 따라 잡았어.
잡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하의 손은 정말 하얗고 부드러워. 밀가루 같아.
그러고 궐 내를 돌아다니면서 나와 함께 눈싸움을 했던 궁녀들과 신하들을 많이 마주쳤던 것 같아.
내가 계속 나에겐 그렇게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함에도, 언제나 인자하게 웃으시며 다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어.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나 가끔 그분들끼리 눈싸움 하시는 거 몇 번 봤다. 어찌나 순수하시던지.
근데 나에게 좋게 대해주시는 것도 일부긴 해.
조금 높은 직책이신 분들, 그러니까 내가 사극으로 숱하게 봐왔던 좀 무서우신 분들이라고 해야 하나.
전하와는 다른 분위기가 온몸에서 풍기는 그런 분들이 계시는데, 나를 그다지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
하긴, 내가 뭐 실수하면 이게 그대로 역사책에 기록될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항상 전하께 나에 대한 모든 것은 기록되지 않게 해달라고 누누이 말하고는 했지만, 역사책 어딘가에 내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러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하께서 조금 흥미로운 제안을 하셨어.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지 않겠느냐."
지금도 밖에 있지 않나. 내가 이해를 못 하고 쳐다보고 있자 전하께선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며 다시 말씀하셨어.
이 밖이 아니라, 궐 밖으로 나가자고.
내 대답은 당연히 예스. 정국 전하와 함께인데 어디인들 안가겠어. 다 나의 네버랜드인데.
사실 궐 내에만 있으니까 보는 것도 다 똑같고 해서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서도 여러 군데 자주 돌아다니는 성격이기도 했고.
확실히 여기서는 내가 활동한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이기는 했지.
날 옆에 계속 두려는 전하의 욕심도 한몫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나도 좋았으니까 일단 패스.
전하께선 오로지 석진만 불러내고, 우리 셋은 그렇게 밖으로 나왔어.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까 답답했던 속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어. 역시 난 사람 많은 곳이 체질에 맞나 봐.
내가 또 신 난다고 이리저리 구경하고 다니는 걸 전하께선 말없이 다 따라다녀 주셨어.
확실히 백성들이 전하의 얼굴을 모르는 게 편하긴 하더라.
그 귀한 용안 나는 실컷 보고 밤마다 설렘에 허덕이다가 심장을 부여잡고 잠들긴 하지만.
내가 웃으며 돌아볼 때마다 전하께서도 눈이 휘어지게 웃으시며 나를 마주했어.
그런 애 같은 우리 둘의 모습을 보며 석진도 따라 웃었지.
나랑 전하랑 편 먹고 석진을 따돌리기도 했는데, 금방 따라잡혀선 우리 둘 다 된통 혼났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어쩌고저쩌고. 마치 우리 아빠를 보는 줄.
배가 고플 때 즈음엔 국밥집에 들어가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다시 나와선 장터를 구경하길 반복했어.
겨울이라 그런지 날이 금방 어두컴컴해져서, 우리는 다음 날 날씨가 좋다면 다시 나오자고 약속하고 궐로 돌아왔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사람 구경이지. 내가 오늘 재밌었다고 옆에서 계속 했던 말을 반복하는데, 전하께서 돌아서셨어.
그러더니 나를 마주 보고 서는 거야. 석진은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해줬어.
딱 직감이 왔지. 아 이거 묘한 분위기이로구나.
전하께선 잡고 있던 손을 내 눈앞 높이까지 들어 올리셨어. 그러고 내 손을 몇 번 매만지시더라.
소매에서 뭐를 꺼내선 곧장 내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우시는데, 이건 정말 안 봐도 느낌이 오잖아. 반지라는 느낌.
내가 이게 갑자기 뭐냐고 물어보자 전하께선 그저 웃으면서 대답하셨어.
"고운 손가락이 허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그랬다."
"……헐."
"사실 오늘 산 것은 아니고, 어제 내가 사람을 시켜 친히 부탁했노라."
널 닮은 고운 가락지를 찾아오라고. 어여쁘지 않으냐. 내 마음에도 쏙 드는구나.
관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죠. 이번에도 제대로 내 심장을 강타하는 멘트에 진짜 쓰러질 뻔했어.
세상 그 어떤 프러포즈도 이것보단 멋있지 못할 거야.
"내 너의 곁에 온종일 머물러도 되겠느냐."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 그랬더니 나를 품에 안아주시더라.
한참 그렇게 안고 있다가, 내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시더니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셨어.
잠시만, 내 심장. 내 심장 괜찮니. 나대지 말고 일단 진정해 봐 심장아.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부끄러운 마음에 다짜고짜 전하께 다시 안겼어. 고개를 못 들겠더라.
고작 이마에 뽀뽀 한번 해주신 건데, 이렇게 심장이 미칠 듯이 뛰다니.
내가 품 안에 파고들자 전하께선 또 웃으셨어. 으앙. 웃지 마세요…….
"나를 보아라."
전하께선 다시 내 고개를 들어 올리시더니, 그대로 내 입술에 입맞춤하셨어.
첫 키스 할 때 종소리 들린다고 누가 그랬어, 내 심장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그렇게 입을 맞추고 있다가 전하께서 먼저 고개를 드셨어.
내가 너무 놀라서 입을 가리고 전하를 쳐다보자 이번엔 전하께서 나를 다시 안으시더라.
"참으로 불안하구나."
"……왜요?"
"너는 꽃과 같아서, 금방 시들어버릴 것만 같구나."
너무 어여쁜 것도 탈인 게야. 이번엔 웃으시는 게 조금 씁쓸해 보이셨어.
전하를 위해서라면 내내 시들지 않는 소나무가 될 터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어. 어디 한번 속 좀 타봐라.
그나저나 꽃과 같은 사람이라니. 이보다 더 사람을 설레게 하는 표현이 있을까.
정말 쉴 새 없이 심장 폭행을 하시는 정국 전하 덕에 오늘은 잠자기 그른 듯했어. 이 상태로 잠을 어떻게 자.
아 계속 안고 있고 싶다. 품 안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처음 하는 연애를 이렇게 할 줄 몰랐는데. 아무렴 무슨 상관이야.
나는 이제 그 누구도 부럽지 않게 연애를 하는 걸.
이거 연애 맞겠지. 아무튼, 달달해서 뇌가 흐물흐물해지는 기분.
정말 좋으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 나중엔 막 눈물까지 나올 뻔했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고.
좋지 못한 시선들도 있는데, 내가 너무 내 감정에만 급급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닌 건가 싶기도 했고.
좋은 일만 계속 가득하니까 괜스레 불안한거야.
혹시 전하께서도 이런 생각 조금이나마 하고 계신 거 아닐까 해서 한번 물어봤어.
"전하, 저와 전하를 달갑게 보지 않는 분들이 몇 계시는데, 혹시라도 그 마음……."
"너는 지금 나를 보며 마음을 접으라 하는 것이냐."
그런 건 딱히 아니지만. 굳어진 나를 보면서 전하께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어.
나 지금 말실수 한 건가. 눈치를 보는데 딱 눈을 마주쳐오시는 거야.
확고한 눈빛으로 흔들리지 않게.
"내가, 내가 왕이다. 내가 임금이다."
"……네."
"임금인 내가 너를 마음에 품겠다 하였는데 이 조선에 누가 감히 너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이냐."
권력 짱. 결론은 내 걱정은 금방 막을 내렸다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난 건 정말 다행이고, 큰 행운이야.
---
설날님, 눈설님, 장희빈님, 민슈가님, 이킴님, 권지용님, 꽃잎님, 꾹꾹이님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정국] 우연히 조선시대에 갔다온 썰 06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4120519/474dfda91cb8c454868f433c067cfd3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