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나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 배우들, 그리고 내가 봤던 재밌는 영화 몇 개도 설명했어. 많이 즐거워하시더라. 신기하다고 연신 얘기하셨고.
확실히 뭔가 보여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조금 답답하긴 했어. 보여주면 금방인 걸 말로 전부 설명하려니까.
덕분에 온갖 손짓을 다 해가며, 뭐 특정 물체를 설명 할 때는 화선지에다가 붓으로 막 휘갈기기도 했던 것 같아.
물론 내 손이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 과연 제대로 이해하셨을련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처럼 많이 좋아하셨어. 그것만으로도 뿌듯해.
문화나 가치관 이런 게 많이 틀려서 조금 불편하시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내 모든 말에 웃어주셨어.
그래서인지 여기서 왠지 모르게 계속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 정말 다행이지.
몇 시간 정도를 계속 그렇게 열심히 말했던 것 같아. 그러고 내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눈을 떠보니까 내가 누워있더라.
상황 파악을 하려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전하께서 어제 앉아 계시던 곳에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불편하게 주무시고 계시는 거야.
물론 나는 두껍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아주 잘 잔 듯했고, 옷은 누가 갈아입혀 주셨는지 이불만큼 부드러운 비단 한복이었어.
평소에도 한복 입을 기회가 정말 없었는데 여기 와서 못해본 거 다 하는 기분이었지.
대충 상황 파악이 되니까 너무 죄송한 마음만 드는 거야. 어제 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엄청나게 하다가 잠든 것도 걸리고.
한나라의 왕이 일개 백성, 아니지 나는 백성도 아니고 이방인인데 이런 후 한 대우를 해준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
과연 나였더라면, 이런 이방인에게 어디까지의 호의만 베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전하, 일어나보세요."
내가 그분을 흔들어 깨웠더니 부스스한 상태로 일어나시더라고. 일어나자마자 날 보곤 또 막 그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시면서 웃는데 어우…. 막.
좋았어. 그래 난 정말 복 받은 게 틀림없어. 하나님이 죽기 전에 이런 행복이나 좀 누리라고 날 여기다 던져주신 게 분명해.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분이 졸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시면서 내 손을 잡으시더니 또 밝게 말씀하시는 거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이냐."
"……예?"
"과인은 계속 너의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어제 충분히 말한 것 같은데. 내가 뭐 빼먹은 얘기가 있나?
아침부터 이 호기심 많은 전하께 무슨 얘기를 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손을 더 꽉 힘주어 잡으시는 거야. 손이 진짜 따뜻했어.
근데 부끄러우니까 막 잡힌 손이 화끈거리고, 얼굴도 또 빨개지는 것 같고. 아니 이분은 왜 이렇게 스킨쉽이 자연스러워….
내 성격에 이러지 마세요, 하고 내숭을 떨 수도 없고. 그냥 눈만 크게 뜨고 멀뚱히 쳐다보는데 이번엔 머리를 막 헝클이시는 거야.
그때 딱 느낀 건데. 남자는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다 틀릴 거 없어. 다 능글거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 한 번도 남자한테 이런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세상에.
"목소리가 곱다."
어유 감사합니다. 우리 아부지도 나한테 한번 그런 말해 주신 적이 없는데. 전하께선 그냥 고우세요. 곱다 고와.
근데 이거 꿈인가. 막 꿈속의 꿈 이런 인셉션같은 그런 거. 너무 좋아서 온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어.
꿈이더라도, 평생 깨고 싶지 않은 꿈같은 느낌. 뭐 잡힌 손에서 힘이 느껴지는 것 보니까 꿈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최고 시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문이 드르륵 열렸어. 나도 전하도 놀라선 문 쪽을 쳐다봤더니, 석진이 서 있었어.
"밖에 눈이 내립니다. 두 분, 안에만 계시지 말고 좀 나가십시오. 그러다 병나겠습니다."
내가 쳐다보자 옅게 웃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는 석진이었어. 그 모습을 본 전하께선 약간 뚱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슬쩍 손을 빼려고 했는데 왜 계속 잡고 있는지. 부끄러워서 죽겠는데.
"내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명했거늘."
"글쎄……. 송구하오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너도 해당이다."
"예. 밖에서 들리는 두 분의 목소리가 너-무 크셔서 혹여 어인 일 있나 하고 뛰어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까."
지금… 저거 질투하는 거야? 목소리가 뭐가 커. 약간 뾰로통한 표정이 어찌나 웃기던지.
전하께서 나지막하게 다시는 엿듣지 말라고 석진에게 경고했지만, 그는 들은 척 만 척 했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얼른 짝을 찾아줘야지.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나도 따로 나와 궁녀들이 입혀주는 옷 두툼하게 입고 전하께서도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어. 의복이라고 해야 하나.
내껀 색감이 정말로 예쁜 한복이었어. 약간 연 노란색. 화사한 게 한복을 입은 나까지 화사해지는 느낌.
"정말 곱구나. 진작 입힐 것을."
정말 이분의 언어 구사 능력은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해. 어디서 따로 배우시는 건 아니겠지.
밖으로 나왔더니 정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니까 눈이 얼굴로 떨어졌지.
전하께선 이런 나를 계속 쳐다보시다가 눈을 털어주기를 반복했어.
정말 이것저것 사소하게 챙겨주는 거 하나 빠짐없이 심장 떨리게 하더라. 장난 없었어. 이러다간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몰라….
"전하, 온 세상이 하얀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리도 신이 나느냐."
당연하지. 손이 시린 것도 잊고 눈을 한주먹 쥐어서 전하께 냅다 던졌더니 뒤에서 헉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석진은 오른팔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 노력하고 있었지. 둘이 굉장히 친하다는 게 딱 느껴지더라.
뭐 그러다가 나중엔 전하께서 치사하게 따라 나온 신하들이랑 궁녀들을 시켜서 나를 집중 공격 한 바람에 항복하긴 했지만. 재밌었어.
근데, 내가 원래 있던 곳에도 지금 눈이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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