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쟤 13살 차이나는 아저씨랑 연애한대
비가 더욱 더 쏟아졌고, 저 멀리 길도 모르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석류를 본 재욱이 차에서 내린다.
위험하게 도로 위를 걷자, 클락션 소리가 들려오고 재욱은 죄송하다는듯 고개를 꾸벅이고선 석류에게 다가가 석류의 손목을 잡는다.
"뭐하는 거야."
"뭐가요."
"길도 모르고 돈도 없으면서 어딜 가겠다고 그러는데."
"돈 있어요."
"김석류."
"야."
"예전엔."
"……."
"나한테 야라고 부르지 않았던 거 알아요? 매일 화나도 김석류, 석류야 이랬는데.
이젠 그냥 야."
"……."
"확실히 우리도 이제 좀 만났으니까 서로한테 흥미가 떨어졌겠죠, 그쵸"
"나한테 흥미라도 떨어나보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저 원래 전 남친들이랑도 싸울 때마다 마음 안 가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한테도 마음이 안 가 이제?"
"그렇단 건 아니고.. 싸우는 상황이 싫다구요."
"나도 싸우는 거 싫어. 그러려면 서로 대화를 좀 해야 하는ㄷ.."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가요. 알겠어."
"이렇게 말 계속 끊어 먹으면서 대화조차 안 하려고 하면 우리 사이 발전 못 한다고."
"그만 화내요. 미안하다구요."
"하… 말이 안 통한다."
"…뭐가요. 미안하다 했잖아요."
"미안하다 해서 빨리 상황 넘기려고 하는 거잖아."
"아니에요 그런 거."
"그래, 네 말대로 그냥 집에 가자."
"……."
재욱이 먼저 앞장서 걷자, 석류가 눈물을 흘리며 재욱을 따라섰다.
차에 타서도 석류가 우는데도 불구하고 재욱은 아무 말도 않고 운전을 한다.
창밖을 보며 우는 석류는 어떻게던 참아보려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석류 집 앞에 도착한다.
석류의 집 앞에 차를 세운 재욱이 잠궈진 문을 열어주자 석류는 한마디 없이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아직도 화가난듯 인사도 않는 석류에 재욱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차를 돌린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예주는 버릇처럼 핸드폰 확인하더니 곧 아으으으으!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핀다.
"진짜 어제 그렇게 헤어졌다고 연락 한통 안 하네.. 이 양반이 정말."
안 되겠다.. 중얼거리던 예주가 당장 욕실로 들어가 씻자, 거실에서 TV를 보던 엄마가 말한다.
"나가나보네 씻는 거 보니."
"뭐 내가 나갈 때만 씻냐?"
점심시간에 맞춰 남길의 병원 앞에 있는 벤치에 앉은 예주가 남길에게 전화를 건다.
"어디예요?"
- 점심 먹으려고 막 나왔어.
"그럼 병원 뒷쪽에 매점 있는 곳 있죠? 그쪽으로 나와요."
- 뭐?
"끊는다요."
전화를 끊은 예주가 다리를 꼰채 담배를 피고 있었을까, 저 멀리서 예주를 보고 천천히 다가 온 남길이
예주의 앞에 서서 예주에게 말을 건다.
"담배 끄지?"
"첫마디가 인사가 아니라 담배 끄지."
"저 옆에 애들 있잖아."
"아. 오케."
옆에 어린 환자가 보이자 예주가 급히 담배를 끄고선 남길을 올려다본다.
남길이 아무 표정도 없이 예주를 내려다보자, 예주가 괜히 발로 남길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아잉."
"뭔 아잉."
"아 왜 그래요? 쿨하게 어제 일 잊고 평소처럼 지냅시다 예?"
"그 소리 하기 전에 더 할말 없냐?"
"내가 잘못했습니다요."
"……"
"오빠 직업이 좋은 게 아니라, 오빠가 좋죠. 내가 그럼 오빠 직업 알기도 전에 만났겠나?"
"……"
"미안해요. 응?"
"……."
"앙 자기."
"미쳤구나?"
"내 애교가 미친 거야, 아니면 자기가 미친 거야."
"애교."
"안 함."
"하지 마."
"오케."
"밥 먹었어?"
"안 먹었죠."
"밥 먹으러 가자."
"오예! 뭐 먹으러 가나?"
"백반집."
"응 안 먹어."
"응 먹어."
"아 진짜 싫은데. 햄버거 먹으면 안 되나."
"햄버거 패티를 뭐로 만드는지 알려줘?"
"아니요?"
누구한테 고민 하나 못 털어놓고 혼자 멀뚱히 앉아서 또 엉엉 울었다.
뭐가 이리 서러워? 처음으로 이렇게 싸운 게 그렇게도 서럽냐 김석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싸울 일이야? 그냥 말이라도 결혼하고 싶단 얘기 하면 되는 거잖아.
"짜증나.."
평소에 연락 잘 안하던 아저씨인 걸 알면서도 이럴 땐 미워할 수도 없다.
연락이 올 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
솔직히 좀 많이 걱정은 됐다. 다들 이러다가.. 이게 반복이 되어서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도 남들처럼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가 헤어지게 될까봐.
무서워서 그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근데 이깟 자존심이 뭐라고.. 평소엔 자존심 신경도 안 쓰던 내가 이제와서 자존심 챙기는 거 보니
나도 참 달라졌단 생각이 들었다.
"……"
친구에게 서 온 카톡 내용을 보던 재욱은 한참 고민을 하는듯 했다.
[나 담달에 결혼한다 ㅋㅋ 결혼하면 술도 못 마실텐데 오늘 술 마시자.]
한참 고민하던 재욱이 답장을 보낸다.
[그래. 몇시가 편해]
"정예주우우."
"김석류~ 어이어이~"
"왜 이렇게 행복해보이냐 재수없게."
"행복하다 이 언니."
"에바야."
"응 아니야."
"에휴.. 카페나 가자."
예주와 카페에 온 석류는 괜한 커피를 빨대로 휘저었고, 예주가 화장을 고치다가
석류의 표정을 확인하고선 입을 열었다.
"왜 저래? 헤어졌냐?"
"뭐래."
"그럼 표정 왜 이렇게 띠껍냐."
"그냥 싸웠어."
"헤헤이~ 싸우는 거 뭐 다들 그러는 건데. 표정 좀 풀지."
"평소랑 되게 달랐어."
"뭐가 어떻게 달랐는데."
"평소엔 한 번 크게 싸우고 누군가 사과하고 끝이었는데.
이번엔 좀 달라..분위기도 무서웠고.."
"……"
"사소한 걸로 싸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
"아아..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평소에는 큰 문제로 가끔 한 번 싸우다가~ 이젠 사소한 걸로 자주 싸운다. 이건가?"
"자주 싸우지는 않았는데.. 그런 느낌이 든다고오."
"거의 오래사귄 커플들이 그러잖아? 나도 1년 사귄 애랑 매일매일 별 거 아닌 걸로 싸우고 그랬는데."
"어떤 걸로 싸웠는데?"
"예를 들면.. 음... 옷 입는 걸로 뭐라해서 싸운 적도 있고, 밥 먹는 거로도! 그리고 핸드폰 본다고.
아, 그때는 걸음 빠르다고 욕 먹어서 싸운 적도 있어."
"엥."
"이래서 내가 오래 만나는 거 극혐해 한다니까. 오래 만나면 소중한 거 모르고 사소한 걸로 트집 잡고 그래."
"……"
"그러다가 권태기 오고, 헤어지고."
"엥 아닌데."
"너 말고 나 말이야 새캬."
"개빡치네."
"대부분 그런 커플들이 많다 ~ 이거지."
"…난 절대 아니거든."
"왜 싸웠는데."
"그냥 내 친구 결혼했다길래 나도 아저씨랑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하자는 얘기 했다가.. 뭐 이렇게 됐지.
아저씨가 나랑 결혼하기 싫은가봐. 절대 한다는 소리 빈말으로도 안 해."
"네 애인분도 너무했네. 너도 그냥 하는 소리일 텐데 그냥 알겠다고 한 번 대답해주는 게 어렵나."
"그냥 하는 소리 아닌데."
"아.. 너 진지하게 그분이랑 결혼하고싶어????????"
"응."
"홀리~"
"왜."
"야 결혼이.. 그 간단한 것도 아닌데 좀 더 텀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너 그분이랑 1년을 만났냐 5년을 만났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데.."
"알아. 아는데 나는 아저씨랑 빨리 결혼하고 싶고, 아저씨 생각하면 아저씨 나이도 있고 마음이 급할 거 아니야.
근데 이거 잘 생각해보면 일석이조 아니야?"
"그렇긴 한데."
"한데?"
"네 애인분도 생각할 시간이 있는 거 아닐깝숑."
"…생각할 게 뭐가있어. 그냥 네 말대로 그냥 해본 소리로 알고 대답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
나랑 결혼하기 싫다해도 대답 한 번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난 그게 너무 속상하다니까."
"……"
"너무 자존심 상하고, 날 사랑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남들은 장난으로도 결혼하자는 소리 많이 하는데.
나는 한 번을 들어본 적이 없다니까."
"오 너도 빡칠만 하네."
"그치 짜증나지!! 진짜 왜 그러나 몰라. 결혼 얘기만 하면 또 진지해져서는! 어우!"
"와 너 지금 나한테 애인분 뒷담까는 거냐. 웬일 ㅋ."
"짜증나잖아.... "
막상 재욱의 흉을 봤다가도 생각해보면 미안하고 신경쓰이는지 석류가 테이블에 이마를 콩- 박고선 한숨을 쉰다.
"뭐냐 김재욱 너 안 본 사이에 더 핸섬해졌다?"
"ㅋㅋㅋ살 조금 쪘어."
"훨 보기 좋네."
"계속 만나던 분이랑 결혼하는 거야?"
"어."
자리에 앉아 술을 시킨 재욱은 메뉴판을 보았다.
석류가 좋아하는 음식 되게 많네.. 생각을 하던 재욱이 친구의 물음에 친구를 바라본다.
"나 얼마 전에 너희 아버지 본 것 같은데? 시내에서."
"아, 아버지가 볼 일 있으셔서 며칠동안 와계셨어."
"오 그러냐?"
"결혼식은 어디서 해."
"강원도에서.. 와이프가 강원도 사람이잖아 또. 아 근데 벌써부터 완전 난리인 게..
신혼집 장만해놨더니 또 거기 하자 많다고 얼마나 나를 들볶는지 몰라. 벌써부터 결혼 하지 말아야하나 생각도 든다니까."
"원래 다들 결혼 직전에 많이 싸운다고 하더라.
그래도 결혼식 날에는 예쁜 와이프 얼굴 보고 풀린다던데."
"와이프가 변해봤자 얼마나 변하겠냐.."
"드레스 입으면 누구던 다 예쁘지. 그리고 네 와이프 예쁜데 왜."
"같이 몇달 살다보니까 그건 또 아니더라."
"ㅋㅋㅋ참나."
술을 몇잔 마신 재욱이 핸드폰을 몇 번 확인하자, 친구는 재욱의 술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근데 너도 애인 있는 거 아니야? 카톡 프사."
"아, 어."
"몇살이냐? 되게 어려보이던데."
"스물넷."
"이 새끼 쓰레기새끼!"
"그러게 나 쓰레기 새끼다 진짜."
"왜 또 인정하냐.. 사람 무안하게?"
"그냥 요즘들어 많이 생각해."
"누군 부러워서 배 아픈데.. 누구는 쓰레기라면서 자책하고 있네.. 이 새끼 진짜 안 되겠네."
"뭘 안 되겠네야 ㅋㅋㅋㅋ."
"근데 넌 결혼은 언제 하려고? 주변 애들 다 결혼했는데 남은 거 이제 너랑.. 동욱이 아니냐?"
"그렇지 뭐."
"난 네가 제일 먼저 결혼할 줄 알았는데 ㅋㅋㅋ 하도 너 좋다는 애들이 많아서.
그중에 하나 골라서 바로 결혼할 줄."
"그러게 결혼 해야 되는데."
"내 친구들 애들 나이가 벌써 일곱살 막 네살 이렇다니까? 그거 보니까 나도 빨리 결혼해야하나 싶어서.
결혼을 서두른 것도 없지않아 있었던 것 같기도. 늙어서 애 키우고 직장 다니다 보면 힘 다 빠질 것 같아서 걱정이잖냐."
"……."
"네 애인이랑 결혼할 거냐?"
"아니."
"왜? 어리고 좋잖아."
"어리고 좋다고 해서 다 결혼하냐.."
"그럼?"
아무 말도 않고 술을 마신 재욱이 한숨을 내쉬자, 친구는 눈치를 보며 재욱의 잔을 다시 채워준다.
한참 있던 재욱이 친구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아직 걔는 스물넷인데 벌써부터 결혼에 대한 부담감 주기도 싫고, 걔 인생의 앞길을 막고싶지도 않아.
나 같은 나이 많은 사람 말고 더 젊은 남자애들 몇명을 더 만나서 신중하게 더 좋은 사람 만나면 좋겠어.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장담도 못 하고, 결혼해서 걔한테만 올인 할 수 있다고 약속도 못 해."
"……"
"그래, 나한테 결혼하자는 말들이 그냥 한 번 해본 말일 수도 있는데.
알면서도 나는 그걸 장난으로도 못 받아치겠어. 그만큼 난 자신이 없다고."
"……"
"걔 인생에서 소중한 역할이 되기엔 준비도 안 됐고, 준비 하고싶지도 않아."
"에휴.. 진짜 사랑이란 게 드럽게 어렵지?"
"……."
"연애는 장난이라고만 알고있던 김재욱도 나이 드니까 달라지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도 해 보고.. 네 마음 이해는 좀 간다.
걔가 뭐 네다섯살 차이 나는 애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열세살 차이나는 애랑 만나는 거면.
걔 앞 길 막는 거라고 생각도 들 거고, 남들이 보기엔 되게 이상하게 보이니까."
"……."
"그 친구는 너랑 결혼할 생각이 가득하고, 너는 계속 이런 맘이라면 이렇게 질질 끌 필요가 있냐?
너도 얼른 네 사랑 만나서 결혼 해야지? 너 곧 있으면 마흔이야 인마."
"알아."
"……."
"질질 끌고 있다는 건.. 내가 더 잘 알고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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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함니다 킬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