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있잖아요, 우유는 소한테 나오는거 잖아요. 근데도 먹나요?"
"너 지금 녹차라떼까지 네가 샀다고 비꼬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면서 상혁은 씩 웃었다. 아 기분좋아. 말 없이 음료를 먹으며 학교 길을 걷는 시간이 참 사소하고 좋았다. 다가가기만 해도 으르렁 거리던 홍빈이 이렇게 사소한 시간을 저에게 내주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께가 간질간질 해왔다. 김칫국이다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 역시 모든 일은 그 사소함의 틈에서 시작된다는 걸 상혁은 알고 있었다.
상혁이 벤치에 먼저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동글동글한 코와는 다르게 꽤 남자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이렇게 보면 그냥 남자앤데... 홍빈은 생각했다. 인기도 많다고 들었다. 싹싹한 성격에 생긴것도 훤칠하니 어느새 동아리에서 '우이효기'로 불린다는 말을 간간히 들곤 했다. 이런 애가 뭐가 모자라서 선배하나랑 밥먹자고 몇주를 쫒아다닐까. 그러고 보니 이렇게 후배와 제대로 밥먹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아니, 굳이 후배가 아니더라도 일학년 때 이후로 원식 이외에는 딱히 학교에서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처음 입학했을 때야 곱상하게 생긴 외모가 다른 과까지 소문이 날 정도라서 밥을 사주겠다는 선배들이 득실득실 했지만, 뭘 사주든 홍빈이 먹을 수 있는 건 뻔했다. 기본찬으로 나오는 나물 몇 가지, 싸먹으라고 주는 상추나 깻잎, 오이 정도.
'잉? 채식주의자야?'
하고 묻는 그 악의없는 질문에 담긴 신기함과 호기심이 다시 제게는 악의로 돌아왔던 그 시간들.
'야, 이리와봐. 얘 야채밖에 못먹어.'
'헐 진짜? 대박. 왜 못 먹어?'
'야- 사내새끼가 뭐 하는 거냐? 선배가 가르쳐 줄게- 이거 먹어봐. 소주엔 삽겹살이지!'
자신을 신기한 동물 보듯 보는 사람들의 그 시선이 홍빈은 싫었다. 선배니까, 또 후배니까 웃으면서 술잔을 받고, 억지로 고기를 받고 몰래 뛰어나가 토하는 일보다도 그 시선을 받아 내는 일이 더 고역이었다. 끈질기게 이유를 물으며 옆에 앉는 여후배들을 원식이 잘 쳐내주긴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선배- 왜 야채만 먹는 거에요?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저 의례처럼 사주던 식사자리에서도 마치 몇 년은 본 것 처럼 친하게 굴며 질문을 던져내는 것도 싫었다. 그 앞에서 웃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함께 먹지 않기 시작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자신을 동물원 속 동물처럼 구경할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악의없는 질문이 저를 찌를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였다. 동아리 회식과도 같이 어쩔 수 없는 자리가 있으면 있으면 그 날 하루 정도는 구경거리가 되고 말면 되는거라고.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정말 몰랐어요- '
그러고 보니 사과를 한 건 또 쟤가 처음이네. 홍빈은 처음 상혁이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날을 떠올렸다. 반듯하게 서 있던 키큰 인영. 성큼성큼 다가와 진심어린 목소리로 건냈던 사과. 그 눈에 악의는 없었고, 또 악의가 담긴 질문도 없었다. 같이 밥먹으러 가자고 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딱딱하게 굳은 것 같기도 하고, 근데도 눈은 초롱초롱하던 그 긴장된 표정은 어떻고. 그때의 상혁을 생각하니 킥킥 웃음이 났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무 생각도 안해."
"근데 왜 혼자 웃어요?"
실없네요. 상혁이 젖혔던 몸을 일으키고 홍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선배 수업 시간 얼마나 남았어요?"
"한시간 정도?"
"여유 있네요? 그럼...저 궁금한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뭔데?"
"왜 야채만 먹어요? 어릴 때부터 채식만 했어요?"
"그게 왜 궁금한데?"
악의 없는 마음이 실현되는 악의. 결국은 너도 마찬가지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맘이 편하기도 하다. 얼기설기 그동안 받은 상처들로 쌓고 묶어놓은 제 마음은 여전히 허술하기 마련이라서 담을 넘으려는 자가 맘만 먹으면 훌쩍 뛰어넘기 쉬웠다. 어쩌면 제 눈앞의 상혁은 이미 담에 한발을 올리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모른체하고 있었던 자기를 홍빈은 알고 있었다.
"그냥- "
상혁이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뻗더니 큰 손도 앞으로 쭉 뻗는다. 학교 건물 위로 떠있는 구름에 손이라도 닿을 수 있는 것 처럼.
"궁금해서요."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뻗었던 손을 내리고 홍빈을 향해 상혁이 고개를 돌린다.
"더 알고 싶어지는건 당연하잖아요?"
너, 지금 뭐라고? 들려온 이야기의 무게가 당장 느껴지지가 않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기처럼 축 처지는 눈빛이 보인다. 아, 그래. 순수한 눈빛에 담겨있는 건 순수한 진심. 확실한건 이거 하나 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아니 좋아해요."
둘 다 남자지만- 하면서 씩 하고 웃는 상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얼기설기, 이리저리 뒤섞이고 얽혀있던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제 맘 한구석에서 들려왔다.
*
초록글의 기준이 뭔지 알려주실분...?
금따는 콩밭 ep2와 ep3가 초록글에 올랐네요ㅇ푯ㅇ
어느순간부터 누군가가 읽어준다기 보단 스스로 글을 올리는데 의의를 두는 글잡이라
초록글이 된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기분은 좋네용
훨씬 많은 이야기를 구상했지만 일단 꾸준히 올리던 금콩에피는 여기까지ㅡwㅡ
번외나 짬짬히 들고오려해용
빈이가 왜 야채만 먹게 됐는지
둘의 데이트는 어떤 스타일인지
그 사이에 낀 식이는 어떤 모습일지
부족한 글이나마 맘에 들게 나올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