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가! 전진! 전진!”
또다시 적과 맞붙게 된 접전지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시끄러운 총성과 폭발음, 지독한 화약 내음으로 가득 물들고 있었다. 예비군으로 편입된 지 약 일 년하고도 반, 이제는 총 다루는 것에 익숙해진 경수가 아군과의 무전을 통해 적군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숲에 들어온 터라 적군의 모양새는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우거진 푸른 나무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최대한 사고를 막기 위해 나무에 붙어 전방을 살피며 몸을 숙이고선 빠르게 움직이다 발을 헛디딤과 동시에 숲 옆으로 경사져 있던 밑바닥으로 빠르게 굴러떨어졌다.
“아, 아악!”
“도경수!”
저를 부르는 아군의 목소리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총성,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단말마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큰 나무에 세차게 부딪히며 움직임을 겨우 멈춘 경수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 이곳저곳 긁혀 생겨버린 작은 생채기들을 꾹꾹 누르며 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근육이 수축해 뻣뻣해진 고개를 억지로 일으키니 간간이 총성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낙오된 건가.”
진짜, 도움 안 되는 새끼. 스스로 저를 타박하며 나무라던 경수가 지친 듯 힘없이 주저앉아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전쟁 중이라는 상황과는 다르게 접전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숲에서는 옅은 화약 내음과 우거진 나무 사이로 우러나오는 피톤치드 향이 뒤섞여 안정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편안함에 전쟁 중인 것도 까맣게 잊고선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제 머리에 누군가 총구를 갖다 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 방심했다.”
혼자 중얼거리며 입술을 꾹 짓누르던 경수가 양손을 들기는커녕, 제 손에 들려있는 총을 꽉 끌어안고선 소음기를 매만졌다. 저의 머리에 총구를 겨냥한 남자가 총구를 더욱더 가까이 들이밀며 경수의 이마를 쿡, 찌르자 경수가 벌떡 일어나 제 총구를 남자에게 겨눴다. 그리고…
“……….”
“……….”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랜만이네. 씨익 미소 짓는 남자의 웃음이 익숙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변백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경수는 또다시 터지려는 눈물에 퉁퉁 불어버린 입술을 또다시 꽈악 깨물었다. 점점 희뿌예지는 시야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드니 백현의 옷차림이 흐릿하게 눈에 보였다.
“…어째서……”
“살아 돌아가서 너 만나려면, 어쩔 수 없었거든.”
인질로 잡혔다가 편입돼 버렸어. 한심하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백현에 경수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분명 비슷한 옷색깔임에도 상반되는 군복 무늬는 둘의 관계가 대립 중인, 서로에게 적군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둘은 적군을 마주하면서도 총구를 당기지 않았다. 경수를 여유로이 쳐다보던 백현이 입을 열었다.
“경수야.”
“……….”
“나중에 이런 꼴 말고, 우리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났을 때 제대로 불러 주겠다고 다짐했는데.”
“……….”
“…그리고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백현이 경수에게 말했다. 쏴. 백현의 말에 경수가 기어코 눈물을 터뜨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경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쳐다보던 백현이 갑작스레 눈빛을 바꾸고선 경수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상황파악 안 돼?”
“……….”
“지금 우리 아군 아니야, 적군이야.”
네가 안 쏘면, 내가 쏠지도 몰라. 백현의 냉랭한 어조에 경수의 눈빛이 크게 일렁였다. 이내 놓쳤던 총을 주운 경수가 애써 떨리는 손을 무시하며 백현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제야 차갑게 굳어있던 백현의 표정이 풀리며 미소를 띠었다. 그래 도경수, 그거야. 사방으로 떨리며 백현을 향해 겨눠진 총은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
“장소가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너.”
“단 한 번이어도 좋아. 그러니까… 내 이름, 예쁘게 불러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백현에 경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총으로 경수를 쿡쿡 찌른 백현이 말했다. 그래도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순간인데, 표정이 너무한 거 아니야? 백현의 말에 저릿하게 울리는 가슴을 느끼던 경수가 물기 섞인 목소리를 조그맣게 쥐어짜 냈다.
“…변…백현.”
“……….”
“…백, 백현…백현아. 백현아… 흐윽, 변백현……….”
백현의 이름을 부르며 조금씩 눈물을 흘리던 경수가 결국 또다시 주저앉으며 백현의 옷깃을 세게 쥐었다. 백현아, 변백현, 가지 마, 너 없으면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백현의 이름을 계속해서 발음하며 끅끅 울어대는 경수에 가만히 경수를 내려다보던 백현이 나지막이 경수의 이름을 속삭였다. 경수야. 백현의 음성에 경수가 고개를 듦과 동시에 날카로운 총성이 고요한 숲 속에 크게 울려 퍼졌다.
‘탕ㅡ!!’
아, 아… 고개를 들었던 경수의 낯빛이 점차 파리하게 물들어갔다.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서 경수를 바라보던 백현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된 경수의 눈빛이 초점을 잃은 채 빨갛게 물들어가는 백현의 몸을 세차게 뒤흔들고 있었다. 이, 일어나 변백현… 일어나, 일어나라고! 생명의 불이 조금씩 사그라져가는 백현의 몸을 계속해서 뒤흔들던 경수가 힘겹게 저를 향해 뻗어지는 백현의 가느다란 손에 움직임을 멈췄다. 변백현은 말이 없었다. 그저 축축이 젖은 경수의 얼굴을 작게 쓸어줄 뿐이었다. 끊임없이 흩어지는 경수의 눈물이 백현의 손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백현의 눈이 서서히 감길 무렵, 경수의 허리춤에 끼워진 무전기에서는 기쁨이 담긴 아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The war is over’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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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