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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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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다시는 R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없을거야.

난 죽을 수 있어. 줄리안,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지?

 

2.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아무도 날 못막아, 다 죽어버려!!

 

 

 

 

 

 

 

*

 

 

 

 

 

 

탕-

 


"멈춰."


린데만은 차갑게 로빈을 노려보았다. 탕-. 로빈의 발 앞에서 쏘아진 총알은, 깊은 구멍을 남긴채 흙에 처박혔다. 로빈은 달려들다가 우뚝 멈춰섰다.


"더 이상의 저항은 용서하지 않는다. 다음 총알은, 네 심장을 향해 쏠거니까."


로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웃었다. 하하하. 로빈은 조소를 날리며 고개를 들었다.


"쏠 자신은 있는 거에요?"


"넌 10명을 넘게 죽였어. 쏴도 무방하지."


린데만은 지지않고 로빈의 조소에 답했다. 로빈을 향한 총구는 흔들림이 없었다. 린데만은, 한다면 할 사람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로빈은 더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번뜩이던 칼날은 가라앉아 주위의 반사된 풍경을 담았다. 로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요."

그 말과 끝남과 동시에 로빈은 칼을 떨어뜨렸고, 경찰들이 달려들어 로빈을 무릎꿇리고 수갑을 채웠다. 로빈은 수갑이 채워지는 동안에도 린데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에 린데만은 차가운 미소로 답하고 있을뿐, 린데만은 긴장을 풀지않은채 로빈의 심장을 겨눈 총을 거두지 않았다. 로빈은 순순히 잡혔다. 로빈의 마지막 저항은 끝이 났고, 린데만은 로빈을 재판으로 넘기는 일만 남았다. 린데만은 남은 경찰들에게 수색을 지시했다. 많은 증거가 확보될수록, 로빈의 실형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경찰들은 버려진 회색차부터 수색하면서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로빈을 붙잡은 경찰은 로빈을 이송하기 위해 로빈을 차에 태우고 린데만의 지시를 기다렸다.

 

 

띠리리-띠리리-


"샘?"


[경장님. 줄리안을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상태는 어때?"


[괜찮습니다. 발목이 좀 붓고, 곳곳에 상처가 있긴해도 치명적인 부상은 없습니다. 약간의 저체온증 증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수고많았다, 샘. 우리도 로빈을 잡는데 성공했어."


[정말입니까? 다행입니다! 이제 푹 쉴 수 있겠네요.]


"이제 잡아넣는 것만 남았지. 좋은 검사를 붙여야겠어."


[수고많으셨어요. 곧 병원에 도착하니 경장님도 오세요.]


"알겠어, 샘."


린데만은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도 일이 잘 풀려가는 듯 했다. 린데만은 대기하고 있는 차에 가라는 손짓을 했다. 로빈을 태운 차는 곧바로 출발했고, 저멀리 사라져갔다. 이제 이곳에는 린데만과 자신의 차만 있었다. 놀라우리만큼 조용해진 이곳. 린데만은 자신이 쏜 총알에 패인 땅을 바라보았다. 다리에 쏠까, 생각했었다. 로빈은 일부러 달려드는 것 같기도했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했다. 그 마지막 저항에서 로빈이 죽음을 원했는지, 아니면 우리의 죽음을 원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 저항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도발에 응했다면 어떻게 됬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물론, 이성적인 린데만은 총구를 아래로 내리는데 그쳤지만.

린데만은 허리를 펴고 공기를 들이쉬었다. 하아-. 강원도의 맑고 깨끗한, 겨울이라 더욱 시린, 눈이 와서 촉촉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옆에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린데만은 눈꺼풀이 무거워져옴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여태껏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린데만은 차의 보닛에 걸터앉아 마을을 구경했다. 진돗개와 함께 뛰어다니는 마을꼬맹이, 무엇을 끓이는 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궁이, 눈뭉치를 굴려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린데만은 지금 커피가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이 풍경은, 정말로 평화로웠다. 


린데만은 이제서야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짐이 없어진 듯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이제는 유족들의 얼굴을 보면,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어지지않을까…? 아니,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로빈을 잡는데 만족하자고 했던 자신이었는데, 생각보다 압박은 더했다. 이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은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참, 오래도 해먹었군. 린데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줄리안의 증언을 듣는 것이었다. 샘이 말해준 병원을 목적지로 입력하고, 린데만은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쉬이익-

 

 


줄리안은 따뜻한 병실에 누워있었다. 병실에는 줄리안 혼자였고, 가습기만이 소리를 내고있었다. 샘은 휴식을 주기위해 자리를 비켜주었고, 간호사들은 줄리안의 옷을 병원복으로 갈아입히고 팔에 링거주사를 꽂았다. 줄리안의 몸 곳곳에 난 상처를 간단히 소독하고, 더러워진 발목의 붕대를 갈았다. 줄리안의 상태는 검사를 받으면서 꼼꼼히 기록되었고 간호사는 차트를 들고 멀어졌다.

줄리안은 잠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피곤한건지, 줄리안은 의사에게 진찰받는 도중에도 내려오는 눈꺼풀에 진찰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인간의 몸은, 곧이 곧대로 반응했다. 극한 상황에서는 힘든지도 모르고 달리다가 끝나버리면 한없이 지쳐버린다. 로빈과 있는 동안 알게모르게 받은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리면서 줄리안은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일주일 넘게, 푹 자버리면 좋겠다. 줄리안은 중얼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로빈이 잡혔을까, R이 잡혔을까? 줄리안은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졸음이 다시 몰려왔다.

 

 

 

 

 

 

"줄리안, 일어나세요."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왔다. 줄리안은 잠을 자서 한껏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눈 앞에는 녹안의 남자가 팔자주름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그 뒤로는 샘이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니엘 린데만 경장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린데만이 건네는 악수에 줄리안은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린데만은 의자에 앉았고, 샘은 침대 옆에 있는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줄리안은 살짝 일어나 앉기 쉽게 침대를 들어올렸고, 린데만은 그런 줄리안을 도와주었다. 줄리안은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고 린데만은 어깨를 으쓱였다.


"몸 상태는 어때요? 힘든가요?"

 

"조금 졸린것 빼고는 괜찮아요."

 

"그럼 이제부터 사건에 대해서 물어볼건데, 괜찮으세요?"

 

"…음, 네. 물어보세요. 근데 이거 기록되는 건가요?"

 

"네, 샘 형사가 기록할겁니다."

 

"그렇군요."


샘은 줄리안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고, 린데만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줄리안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 우선 로빈과 알던 사이, 맞으신가요?"


"네. 고등학교때 프랑스에서 처음 만났고 그때 친구가 됬어요."


"로빈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에 큰 사고를 당하셨다고…."


"좋지는 않은 관계죠. 저는 며칠 전만해도 로빈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어요. 몇 년전 사고로 기억을 잃었거든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기억 모두. 지금은 모두 기억하지만…. 음…우선 로빈은 정신적으로 정상은 아니에요. 저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 심해지더니 대학교때 결국 일을 내버렸죠. 제가 여자친구가 생겼거든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그래서 로빈이…."


줄리안은 그 사건을 생각하다가 끔찍했던 여자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말을 멈췄다. 자신의 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찌르던 로빈의 모습이 떠올라서, 줄리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포는 몸에 한 번 각인되어버리면 떨쳐내기가 힘든 것 같았다. 그것이 R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완전히 지워내버리기에는 힘들었다. 로빈의 웃는 모습은…,

린데만은 줄리안이 말을 멈춰도, 보채거나 하지않았다. 힘들어하면 줄리안의 손을 잡아주면서 안정시켰다. 천천히 해요, 줄리안. 그덕에 줄리안은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할 수 있었다.

 

"…제 눈앞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했죠. 저는 너무 충격에 빠져서 로빈이 차에 태우는 지도 몰랐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로빈이 거의 다 도착했을 때였죠. 눈 앞에 보이는 건 창고였어요, 저를 명백히 가두려는 의도가 분명한. 그래서, 로빈의 손을 물고 도망쳤어요. 그리고 도망가다 차에 치였고…. 그게 몇 년전의 사건이죠. 저와 로빈의 관계가 어떻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로빈을 증오했었다고 말해두죠."


린데만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샘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기록했다.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린데만은 의아한 듯 물었다.


"증오'했었다' 라구요?"


"네. 증오했었어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얘긴가요?"


"…로빈과 있으면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될 차례인것 같네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증오까지는 아니에요. 저도 혼란스럽긴 한데…."


줄리안은 살짝 머뭇거리는 듯 했다. 린데만은 그런 줄리안이 말할 준비가 될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줄리안은 결심한듯 말했다. 그 이야기는 R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빈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이중인격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것 같아요. 사실…로빈의 모습이 달랐거든요. 낮에는 제가 증오하는 로빈이고, 밤에는 예전 로빈의 모습이에요. 어젯밤, 산장에서 로빈이 고백하더라구요. R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도 통제하기 힘들다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아시는 지 모르겠지만, 로빈은 어렸을때 학대를 받았어요. 부모님의 사랑도 못받았고, 하나뿐인 형제라는 사람들은 로빈을 보듬어주기는 커녕 괴롭혔구요. 그래서, 자기방어적인 기제로 R이라는 인격이 생겨난것 같아요. 그 인격은 싸이코패스에 가깝다고 해야할까요? 그렇지만 주도권은 로빈이 갖고있었을 거에요. 저를 만났을때는, R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점점 로빈이 변해갔죠. 저를 감시하고, 집착하고,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린데만은 일리야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중인격을 앓고있었던 로빈에 관한 기록. 마지막 진료기록에는 R이 거의 소멸되었다고 쓰여있었지만 그것은 오류였다.


"어쨌거나 그런 일을 벌일때는 저는 R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못했고, 로빈을 증오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확히 이야기하기 힘드네요. 그게 로빈이 아니었지만…또 로빈이었죠. 로빈이 웃는 건, R이 웃는 것과 다르지않아요. 제 기억속에서의 로빈은 무서움, 그 자체에요. 물론 지금은 좀 덜하더라도."

 

"그렇군요…. 음. 이제 좀 힘든질문이 될 수 있겠어요."


린데만은 수첩을 다음장으로 넘기고 말했다.


"로빈에게 납치되고나서, 로빈이 당신에게 했던 일들을 말해줘야해요."


린데만은 손목에 보이는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상처들이 생긴 이유말이죠. 아 그리고…혹시 로빈이 당신을 성폭행했나요?"


간호사는 줄리안에게서 성폭행의 흔적이 보인다는 말을 했었고, 린데만은 그것을 힘들지만 확인해야했다.


"아, 그건…."


줄리안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혔다. 린데만은 그런 줄리안을 보고 재촉하지 않았다. 얘기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요. 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냥 넘어가도록 할게요. 로빈이 당신을 강금한 동안,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고통을 가했나요?"


"아뇨, 그렇진않았어요. 굶지도 않았고…, 발목이 묶여서 도망갈 수 없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린데만은 줄리안의 상처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이 상처들은, 크흠, 그 과정에서 생긴거에요…."


"그 과정이라면…,"

린데만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 네, 그렇군요. 급하게 말을 맺었다. 샘은 노트북에 모두 기록을 한 뒤, 마지막으로 더 하고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저는 로빈은 용서해요. 이해하고요. R만 처벌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겠죠…. 그냥 그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로빈을 용서했다는 것."

 

 

 

 

 

 

 

 

 

 

 

 

 

 

 

 

 

 


"지금의 대화내용은 모두 기록되고있습니다.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수도 있구요.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심문관은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R인가요?"


"…"


"대답하셔야 합니다."


"아니요."


"그럼 로빈, 당신에 대해서 몇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로빈은 심문실에 있었다. 일리야는 로빈은 건너다 볼 수 없는 유리창 밖에서 로빈을 관찰하고있었다. 프로파일러는 대게 심리학을 전공하는데, 일리야는 좀 더 깊게 공부한 경우로 정신과의사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일리야의 역할은, 로빈의 정신적인 상태를 규명하고 R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10명을 살해, 11명을 납치, 감금하였습니다. 맞습니까?"


"…네."


"살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잘 몰라요…."


"당신이 살해하였는데 이유를 모른다, 라. 그럼 R이 그랬다는 건가요?"


"…네."

 

심문관은 로빈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어때요?


"…아마도 줄리안 때문일거에요."


"마지막 피해자인 줄리안 퀸타르트, 말이죠? 당신은 시체를 보존하고자하는 기괴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 이유가 줄리안 때문이라는 건가요? 어째서요?"


"…R은 완벽하게 보존하고자 했거든요. 그 세상 누구도 줄리안을 건드리지 못하게."


"그럼 10명의 피해자는 줄리안을 위해 희생된 것, 맞습니까?"


"…네."


"당신은 R에게 협력적이었습니까?"


"…네?"


"당신의 다른 인격말입니다. 당신은 도와주었습니까?"


"……저는 방관했습니다."


"R이 사람들을 죽일때, 말리지 않았습니까?"


"…시도는 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하셨죠?"

 

"제 몸의 통제권을 찾으려고 했어요. 물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R이 그런 짓을 할 때, 깨어있었습니까?"

 

"…잠든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죄책감은 느꼈습니까?"

 

"네."

 

 

 

 

 

 

 

심문은 계속됬다. 심문내내 R은 모습을 드러내지않았다. R을 자극할만한 말을 해도 R은 나타나지않았다. 만약 로빈이 형벌을 받게되면, R이 받아야 했다. 로빈은 죄가 없었다. 일리야는 로빈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옳은지, 교도소로 보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사형을 받는 것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었다. 로빈이 사형을 받게되면, 죽을때는 R이어야 했다. 죄를 저지른건 R이지, 로빈이 아니었으므로. 만약 로빈이 죄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로빈의 형벌이 줄어들지도 몰랐다. 물론 로빈의 인격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로빈의 심문을 지켜보면서 일리야는 보고서를 완성시켜나갔다. 보고서는 어느새 마지막 칸, 한 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마지막 한 칸은,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소견과 처분'란에 일리야는 섣불리 펜을 들 수 없었다. 일리야는 로빈을 쳐다봤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심문에 로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일리야는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고, 눈을 꾹 눌렀다. 인격장애….

2시간이 넘게 이루어진 심문이 끝나고, 일리야는 보고서의 마지막란에 정신병원 수용소에 수감하는 것을 권장하는 식으로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정신병동 수감소는 죄를 저지른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 수감되는 곳이었다. 일리야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줄리안이 그를 용서했으며 로빈이 R처럼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님을 알기때문이었다.

 

 

 

 

 

 

 

 

 

 

 

 

 

<충격! 1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이중인격으로 밝혀져…>
-최근 일어난 이태원 실종사건이 연쇄 살인사건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판 지킬 앤 하이드, 10명 살해 후 시체 보존 위한 작업 해…>
-검사, 무기징역 구형… 법원의 결정 기다려…


<이중인격 살인마, 그는 처벌받아야 하는가?>
-인터넷 네티즌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고있다. 몇 주전 일어난 연쇄살인마 'ㄹ'씨의 처분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있다. 일부는 그의 다른 인격이 저지른 일이므로 'ㄹ'씨에게 완전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봤으며, 일부는 그것은 벌을 피하기위한 '쇼'라며 격렬하게 대립하고있다…


<이중인격 연쇄살인마, 정신병동 수용소에 보내져 논란…>
-권위있는 정신과의사가 해리성 인격장애라고 명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네티즌들은 '거짓말'이라며 반발했다. 10명을 살해한 살인마가 정신병동 수감소에 보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임은 맞는 듯 하다. 검사는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형!!"


"타쿠야, 오랜만이야."


"오랜만이고 뭐고, 형! 으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타쿠야는 줄리안을 보자마자 껴안고 울었다. 기사보고 놀랐다구요, 형이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타쿠야는 울었다. 줄리안은 큰 키의 타쿠야가 살짝 버거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줄리안은 타쿠야의 등을 토닥였다. 형은 괜찮아.


"아직 상처도 다 안나았네…. 아 진짜,"

타쿠야는 줄리안의 목덜미에 난 상처를 보고 울상을 지었다. 줄리안은 멋쩍은듯 손으로 상처를 가리며 자리에 앉았다. 맥주나 한잔 줘. 타쿠야는 대충 얼버무리는 줄리안에게 더 묻고싶었지만 참았다. 바 아래에는 벨기에 맥주가 있었다. 줄리안이 자주 앉는 자리쪽에 배치된 그 술은 그새 먼지가 살짝 올라와있었다. 타쿠야는 먼지를 털어내고 기계에 넣은 뒤 한잔을 쭉 따라냈다. 맥주를 내밀자 줄리안은 시원하게 한잔을 들이켰다.


"이제 괜찮은 거에요? 그 이중인격 어쩌고인 사람은요?"

"아…아직 재판 받고있어. 난 괜찮아."

"하아…"

타쿠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바보같은 웃음을 흘리는 걸로 봐서는 또 괜찮지않음에도 웃는 것임에 분명했다. 왜 맨날, 웃기만 해요, 형은!

"내 걱정 많이 했나보네?"

줄리안은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있을 때 실종됬잖아요. 얼마나…제가 얼마나…, 아 알았어. 네 맘 다 알겠다고. 와…. 줄리안은 피식 웃었다. 아직 어리긴 어린지, 타쿠야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줄을 몰랐다. 줄리안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물고 천천히 음미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타쿠야가 줄리안 뒤쪽을 힐끔거렸다. 줄리안이 뒤를 돌자, 한 남자가 술은 시키지도 않고 멀뚱히 앉아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뭐야?"

줄리안은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얼굴이 뭔가 익숙해서 잘보니 타쿠야에게 추태를 부리던 그 남자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술잔이 테이블에 없다는 것 정도?


"아. 저 쫓아다니는 사람이요."


테이블의 남자는 둘의 대화가 신경쓰이는지 연신 힐끗거리고 있었다. 순간 마주친 눈에 남자는 멋쩍은듯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네, 그때 취객 맞죠? 안녕하세요."

 

그 남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그, 그때는….

 

"하하하…장위안입니다. 그쪽은 줄리안, 맞죠?"

"제 이름을 아네요?"

"아. 그게."


장위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더니 은근슬쩍 자리를 옮겨 줄리안 옆에 앉았다.


"타쿠야 씨가 하도 얘기해서…."

타쿠야는 장위안을 슬쩍 째려봤다. 장위안은 애써 타쿠야의 시선을 무시하려했고, 줄리안은 둘의 신경전에 픽- 웃어버렸다. 뭐야, 둘이 좋아하는 거야?

 

"아니요-!!"

"네-니요!!"

 

둘은 동시에 외쳤고, 장위안은 네-니요라는 말을 내뱉고 먼산을 쳐다봤다. 그러구나- 나는 안되겠구나-.


"둘이 좋아하면 사귀면 되잖아?"

뭘 그렇게…. 줄리안은 맥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타쿠야는 잔을 닦으며 애써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하하, 줄리안 형. 아니라니깐요."

"네, 저희 안좋아합니다."

 

장위안은 살짝 울먹거렸고, 타쿠야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잔을 닦았다. 뽀드득-뽀드득-. 줄리안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맥주를 마셨다. 둘이 좋아하면서….


"그 얘기는 그만하고요, 형 얘기를 좀 해줘요."

"아…나는 뭐 할 얘기가 있나?"

"주변 사람들 다 걱정시켜놓고는 할 말이 없다구요? 얀이랑 솔 형도 여기와서 한참 울다갔어요."

"…그랬어?"

 

줄리안은 맥주 한 잔을 더 달라며 요청했고 타쿠야는 한 잔을 다시 따라주었다. 장위안도 옆에서 한 잔을 주문했지만 타쿠야가 무시했다는 건 비밀로 하자.


"나는 뭐, 지금은 괜찮아. 아직 정신적인 부분은 치료를 더 받아야하고. 일상생활은 가능해. 곧 있으면 DJ일도 다시 할거고……. 그런데 내 룸메들이 와서 울었단 말야?"

"얀이랑 솔 형이요? 그 형들뿐만이 아니라 형 친구들은 다 왔다갔을걸요. 저도 힘들었는데, 제 멱살잡는 사람도 있었고요. 아무튼 같이, 엄청 울었죠, 형때문에."

"……내가 못난이는 아니었나보네."

 

줄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줄리안은 힘이 났다. 친구들의 얼굴을 빨리 보고싶어졌다. 다니엘도 DJ일 배우고싶어서 난리였는데! 줄리안은 떠오르는 친구들의 모습에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왔다. 어느새 자신의 곁에는, 자신을 소중하게 아껴주는 인연들이 많이 늘어나있었다. 있을땐 모르다가, 없으면 깨닫게 되는 법이다. 그때 장위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큼큼, 저기 타쿠야 씨. 우리 다시 시작해보면 안될까요?"

"예?"

"아니…이렇게 애매한 관계 싫은데…"

 

타쿠야는 장위안을 노려봤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데요? 장위안은 또다시 시선을 피하려다가, 줄리안의 눈빛을 보고 결심한 듯 타쿠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식으로, 다시 고백하고싶어요."

 

줄리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슬슬 피해줘야할 것 같은데-는 타쿠야의 눈빛을 보고 고쳐먹었다. 응, 여기 있을게.

 

"……타쿠야 씨. 저랑 만나주세요!!"

 

!!!, 단도직입적인 말에 줄리안은 마시던 맥주를 뱉어낼 뻔 했다. 대륙의 기상이란 이런것이었던가…, 이렇게 뜬끔없이 고백했어야하는 것이었던가…. 그러나 놀란 줄리안과는 다르게 타쿠야는 놀라우리만큼 평정심을 유지한채 다음 잔을 닦았다. 뽀드-득. 장위안은 그말을 마치고 눈을 질끈 감은채 엎드려버렸고, 타쿠야는 그런 장위안을 도도하게 내려다보고있었다.  


"…"

"…"

"…"


"어, 타쿠-"

"…생각해보고요."

"…타쿠야 씨-"

 

세 사람은 말을 멈췄다. 한 사람은 자기 할말을 다해서 멈췄고, 한 사람은 이상한 기류에 말을 멈췄고, 한 사람은 볼이 빨개져서 말을 멈췄다. 이걸 이제 어떻게 수습하지?

줄리안은 친구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며 자리를 떴다. 장위안의 애처로운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줄리안은 안녕, 타쿠야. 오늘도 잘 마셨어! 라며 바를 떠났다.장위안 씨, 제가 볼때는 타쿠야도 관심이 있어요, 힘내요. 줄리안은 마지막에 장위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나올걸, 후회했다.

뭐, 어떻게든 잘 되겠지! 줄리안은 집으로 향했다. 오늘 솔이 고기사준댔는데….

 

 

 

 

 

 

 

 

 

 

 

 

 

 

 

 

 

 


1.


 

 

 

 


"로빈!"


"안녕, 줄리안!"


로빈은 줄리안을 보고 옅게 미소지었다. 오늘이 벌써 월요일인가? 줄리안은 항상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에 찾아왔다. 그런 줄리안에게, 왜 나를 찾아왔냐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냐고, 무섭지 않냐고…, 묻고싶었다. 줄리안은 처음 면회를 온 날, 놀란 로빈을 웃으며 맞아줬고, 로빈은 그 모습에 울음을 터트렸다. 넌 여전히…날 친구로 생각해주는 구나…. 줄리안은 아마도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찾아왔을 터였다. 한때 자신과 추억을 같이 쌓은 친구인 '로빈'을 없던 사람처럼 애매하게 내버려두기 싫어서. 줄리안은,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 기운이 전해지는 듯해서 로빈은 밝게 웃었다.

 


"아,"

"…아,"


그래도 여전히 스킨십은 꺼린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았다가 로빈은 멋쩍은듯 손을 다시 뗐다. 으, 바보같이 그걸 까먹다니…. 줄리안은 애써 괜찮은 듯 웃으며 봉투에 담긴 물건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프랑스에서 파는 비스킷이었다.


"와! 이건 어떻게 구한거야?"

"요새 수입과자점 많아."

 

줄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였다. 고등학교때 흘리듯이 말했던거 같은데 줄리안이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로빈은 고맙다고 말하며, 소중히 품에 안아들었다. 요새 치료는 잘 되가? 줄리안은 만날때마다, 이 질문을 빼먹지않고 했다. 로빈은 그럼에도 항상 성실히 답했다. 응, R은 거의 없어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 다행이다,라는 답이 날아왔다. 로빈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거의 R이 안나타나. 이젠, 대부분을 나로 지내고있어."

"아, 진짜?"

줄리안은 기쁜듯 웃었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치료받어.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 지 몇 분이나 되었을까, 줄리안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은 오늘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좀 일찍 갈게, 미안해. 로빈은 아쉬웠지만 티내지않고, 알겠다고 답했다. 줄리안은 로빈의 어깨를 두어번 치더니 힘내, 로빈. 이라는 말을 남기고 면회장을 빠져나갔다. 로빈은 과자를 소중히 품에 안고 면회장을 나섰다. 아껴서 먹어야지!

 

 

 

 

 

 

 

 

 

 

"로빈. 이제는 R이 없어졌군요?"


"네. 조금씩 느껴지던 R의 존재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어요."


"1년 동안 수고많았어요, 로빈."


"교수님도 수고 많았어요. 제 병을 고쳐주셔서 감사해요!"

 

로빈은 활짝 웃었다. 교수는 웃으며 미소로 답했고, 로빈은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이제 3일 후면 병동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보호관찰은 계속되고 발찌를 차야 하지만. 그럼에도 로빈은 행복했다. 이제 줄리안을 만날 수 있어!! 요 며칠은 줄리안이 바빠서 면회를 오지 못했고, 이 사실은 줄리안에게 서프라이즈가 될 거였다. 로빈은 병실에 늘어진 짐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줄리안에게서 가끔씩 받았던 편지, 프랑스 과자, 자신이 수집한 기타 등등 물건들이 뒤죽박죽으로 늘어져있었다. 독실을 쓰다보니 로빈은 마치 자신의 방 마냥 짐을 잔뜩 풀어 헤쳐놓았었다. 하나 둘씩 정리를 하다보니, 로빈은 조금은 씁쓸해져 왔다. 꽤 정들었는데….

로빈은 줄리안에게 받았던 편지를 정리하다가 엽서를 빼들었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볼까?

 

'To. Robin
오늘도 열심히 치료받고 있어? 난 지금 고향, 벨기에에 왔어.

내가 힘든 것처럼 너도 힘들거란 걸 알아. R을 꼭 머릿속에서 없애길 바랄게.

아, 처음부터 이런얘기해서 미안! 우리 가족은 내가 너랑 연락을 한다고 하면 방방 뛰어서…

지금 방에서 몰래 쓰고있어. ㅇㅏ...

아. 갑자기 누나가 들어와서 편지를 구겨서 버릴 뻔 했어.

아직은 너를 용서하지 못했나봐. 시간이 필요하겠지. 네가 나중에 치료 다끝내고 나오면, 술 한잔 하자.

너랑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From. Julian'


로빈은 살짝 웃었다. 엽서를 뒤집자 벨기에의 거리가 찍힌 사진이 인쇄되어있었다. 예쁘네. 나중에 한번 (같이) 놀러가야지. 로빈은 엽서를 주섬주섬 편지통에 넣었다. 로빈은 서둘러 다른 짐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줄리안에게 술한잔 사야지, 생각하면서.

 

 

 

 

 

 

 

 

 

 

 

 

 

 

 

 

 


"응? 로빈?"


"줄리안!"


줄리안은 디제잉을 마치고 클럽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남자는 로빈이었다. 줄리안은 놀란듯 우뚝 섰고, 로빈은 줄리안에게 달려갔다. 줄리안의 바로 앞에 도착한 로빈은 허리를 숙여서 숨을 잠깐 고르더니, 고개를 들고 줄리안에게 포옹했다. 줄리안은 얼떨결에 로빈의 포옹을 받아들였고, 로빈은 줄리안을 꽉 안았다. 보고싶었어!


"로빈, 어떻게 된거야? 탈출이라도 한건 아니지?"

"줄리안, 나 이제 다 나았어. 오늘 나오는 날이야."

"아? 진짜? 축하해, 로빈!"


로빈은 싱글벙글 웃으며 줄리안에게 술 한잔 하자며 권했고 줄리안은 조금 피곤하지만 로빈의 권유에 응했다. 비담 바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려던 줄리안은, 타쿠야를 떠올리곤 문을 다시 닫았다. 로빈 역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우리, 여긴 가면 안되겠다. 로빈은 그러게, 짧게 답했고, 줄리안은 가까운 술집이 어딘지 생각했다. 그때 로빈이 곱창집을 발견하고 줄리안을 이끌었다.

"우리 곱창먹자!"

"어? 어, 그래."

줄리안은 손을 잡아끄는 로빈에게 끌려 곱창집으로 들어섰고 둘은 돼지곱창 2인분과 소주 2병을 주문했다. 로빈이 곱창을 먹을 줄 아나?

"너 곱창 먹어본 적 있어?"

"아니!"

로빈은 놀랍게도… 해맑게 웃고있었다. 뭐? 줄리안은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렸고, 로빈은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소주 한 병을 따고 술잔에 따랐다.

"근데 지금 먹자고 한거야?"

"응. 뭐…, 맛있으니까 사람들이 먹는 거 아니겠어?"

줄리안은 로빈이 건네는 술잔을 받아들고 쭉 들이켰다. 으으, 쓰다. 곧이어 곱창이 나오고 노릇노릇 구워지기 시작했다. 로빈은 술잔을 기울였다.

"…줄리안."

"왜?"

"Merci(고마워)."

"응? 뭐가?"

"그냥…이것저것."

줄리안은 캐묻지 않았다. 로빈은 그런 줄리안을 고맙게 생각했다. 내가 고마운 건, 네가 나를 찾아와줘서야. 막막할때 힘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한 짓을 알면서도 용서해주는 네가 정말 고마워. 로빈은 술잔을 들이켰다. 쓴맛에 로빈은 얼굴을 찡그렸다. 줄리안은 익어가는 곱창을 뒤집었고, 익은 곱창을 잘게 잘랐다. 로빈은 한 입 먹어보더니 꽤 괜찮은 듯 더 집어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네."

"의외네. 싫어할 줄 알았어."

줄리안도 곱창을 한 입 먹어보더니 맛있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소주는 어느새 두 병이 후딱 비워졌고,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술은 사람사이를 친하게 만드는 좋은 음료였다. 술은 줄리안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경계심과 긴장을 풀어주었고, 둘은 오랜만에 아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 그래서 네가 그랬었자나…"

"응, 재수없어라고."

"마저…그래, 그랬어! 나 그때 쬐끔 상처받았다아아?"

 

줄리안은 이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줄리안은 술에 취하면 술을 더 들이켰다. 주량도 약하면서, 술은 왜 그렇게 마시는지. 이제 줄리안은 울기 시작했다. 줄리안의 주사는 우는 것과 또…. 줄리안이 로빈에게 안겨왔다. Je t'aime-.

줄리안의 주사는 애정표현이 많아지고 운다는 거였다. 줄리안은 술만 마시면 여성스러워졌다. 로빈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주사가 신기했고, 줄리안은 또 다시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로빈은 줄리안의 손에 쥐어진 맥주잔을 빼앗았다. 줄리안은 야아, 내놔아, 뭉개지는 발음으로 로빈에게 손을 뻗었지만 로빈이 잔을 들이키자 줄리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풀썩 엎어져버렸다. 로빈은 쓰러진 줄리안을 일으켜세웠다.

"이제 가야겠다."

"우웅…벌써어?"

로빈은 줄리안을 의자에 똑바로 앉히고 계산한 뒤 줄리안을 업었다. 여기서 줄리안의 집은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떨어져있었고, 로빈은 줄리안의 집으로 가는 길을 겨우겨우 떠올려냈다. 서울의 밤은 낮보다 화려했고, 곳곳에서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거렸다. 모퉁이를 돌때마다 클럽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을 뿌리치고, 줄리안의 집 앞 골목에 도착한 로빈은 한숨을 돌렸다. 후우-. 안본사이에 살이 쪘나, 무거워. 로빈이 줄리안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줄리안이,

 

"실~버벨이 반짝반짝~랄라랄라라~"

"…뭐여?!"

 

줄리안이 갑자기 노래를 크게 불렀다. 얘, 얘가 왜이래;; 당황한 로빈은 줄리안을 떨어뜨릴뻔 했고, 줄리안은 신경쓰지 않는 듯 노래를 크게 불렀다. 실버베에엘-. 아니 얘가, 못보던 사이에 주사가 하나 늘은 모양이었다. 어디서 배워온 노래야, 이건! 로빈은 듣도보도 못한 줄리안의 캐롤에 당황했고 주민들이 보기전에 후닥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계단이라 목소리가 크게 울리자 줄리안은 더 신나서 노래를 불렀다.

"랄라라랄라라~"

 

"아쫌, 그만해!!"

로빈은 절규했고, 줄리안은 전혀 신경쓰지않는 듯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다 갑자기 노래를 뚝 멈추더니 이젠 흐느끼기 시작했다. 와나, 얘 무서워-. 로빈은 재빨리 줄리안을 업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로빈은 서둘러 줄리안의 집 문앞에서 노크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로빈은 초조해졌다. 설마, 아무도 없나? 큰일이었다. 줄리안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고 아래층에서는 주민이 누구야, 이 시간에! 짜증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떡하지? 어떻게 해! 로빈은 다급함에 줄리안의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도 오리모양 캐릭터가 달린 열쇠고리가 나왔고 로빈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줄리안은 이제 울다가 지친 듯 자고있었다. 어이가 없는 로빈은 줄리안의 침대에 줄리안을 던지듯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 내 인생 최대의 고비였어.

줄리안은 말썽을 부릴 때는 언제고 이젠 곤히 자고있었다. 자는 모습은 또 참 예뻐서, 로빈은 줄리안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자면서 입을 주억거리는게, 오리같아서 로빈은 웃었다. 로빈은 대충 줄리안의 양말을 벗기고 제대로 눕힌 뒤 이불을 덮어줬다. 잘자-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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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기벨입니담.

글의 개연성따위는..흑흑.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려야겠네여

하....... 제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부분이 좀 있지만 이건 소설(읭?)이니까 무시하세여 ㅠㅠㅠ저의 곰손을 탓하세여ㅠㅠㅠㅠㅠ

 

으아.. 정말 새벽까지 붙들고 있느라 죽을것ㄱㅋㅋㅋㅋ

 

검토도 해야되는데 ㅠㅠ ..

ㅇ ㅏ 드디어 검토를 끝냈어요. 네. 저는 곶아손임이 분명합니다.

에휴.

 

그래요. 곰손이지만 꿋꿋히 연재하고있어요.(뻔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 지금 자아분열이 왔어요

.음

ㅋㅋㅋㅋㅋ

네. 자아분열요 맞아요

 

 

네 로빈ㅇ처럼 자아분여리오고있어여그러니까여러분은새벽까지있으면안되는거에요저처럼 미쳐버리는거여영..

 

 

아. 이제 분량조절실패한 글이 올라올거에요. 수위글이구요

점검하고 바로 올릴게여.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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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로빈이아니라 r이 처벌받아야하낟고 생각해서 다행이네요ㅜㅜㅜㅜ이제 로빈도 완전히 되돌아와서 둘이 ㅎㅎㅎㅎㅎ 다음편보러갑니다 ㅎㅎ
9년 전
에기벨
첫댓감사해옄ㅋㅋㅋㅋㅋ저 으아..멘탈이 나가서 글이 개연ㅇ성 완전 떨어지지만ㅋㅋㅋㅋ재밌게읽어주셔서 감사해욥ㅋㅋㅋ;
9년 전
독자2
연줄이에요! 다행이에요 로빈이 돌아와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로빈 수고해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자까님도 항상 수고하십니당!!!
9년 전
에기벨
ㅠㅠㅠ네 연줄님 감사해엽 ㅠㅠㅠ.. 이런 곰손글에돜ㅋㅋㅋㅋ핫.. 로빈도 참 힘든 삶을 살고있어엽 ☆(저때문에 말이죠..!!)ㅋㅋㅋㅋ 댓감사해옄ㅋㅋㅋ
9년 전
독자3
진짜 다행이네욬ㅋㅋㅋㅋ그나저나ㅋㅋㅋ줄리안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실버벨ㅋㅋㅋㅋㅋ중독되네욬ㅋ
9년 전
에기벨
앜ㅋㅋㅋ실버벨부분은ㅋㅋㅋㅋ즉흥적으로 첨가했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최근에 본 영화에서 너무 인상깊어섴..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닼ㅋㅋ
9년 전
독자4
허... R이 소멸돼서 진짜 다행이네요ㅎㅎ 이제 행복해질일만 남은건가요ㅎ
9년 전
에기벨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를 고민하다가 나온 결과..!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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