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오백] 박카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6/e/66ed99b7843dae98ecff4c4d881c6882.jpg)
[오백] 박카스
W. 리플(Riffle)
▶ 박카스 세 병 : 젊은 우리 사랑
(부제: 청춘 게이들의 탄생)
*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백현은 눈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어젯밤 뭘 잘못 먹었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콕콕 찌르기도 하다가 누군가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다가.
몸을 돌리려고 치면 밀려오는 통증에 배를 감싼 채 잔뜩 웅크렸다. 그런 와중에도 백현은 눈을 가늘게 치켜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가늠하려고 애썼다.
정신사납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찬열의 뒷모습에 백현은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약속 있다더니.
언제 일어나 나갈 준비를 다 한건지 찬열은 거울을 찾아들며 앞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야, 시끄러워…. 찬열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거울의 방향을 돌려 침대 위의 물체를 확인했다.
붕붕 뜬 머리를 하고선 시끄럽다며 저를 향해 칭얼거리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은 거울을 비춰보며 장난스레 씩 웃었다. 아침부터 예민하긴.
그리곤 성큼성큼 다가와 백현의 위에 올라타고선 긴 다리로 몸을 꽉 옭아맸다.
얼굴만 내놓았던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 끝까지 뒤집어 씌우곤 몸을 버둥버둥거리는 움직이는 바람에 백현은 죽을 맛이었다.
"우쭈쭈 우리 똥강아지 자다가 시끄러웠어?"
"미친놈! 꺼져!"
하여튼 귀여운 새끼. 키도 작은 게 바락바락 대들기나 하고.
찬열은 흐뭇하게 웃으며 백현의 머리로 추정되는 곳에 얼굴을 부비다가 자신의 배를 세게 때리는 손길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 존나 아파! 위에 올라탔던 움직임이 둔해지자 백현은 이불을 확 걷어내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추스릴 새도 없이 또 다시 찾아온 통증에 백현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으, 흐…."
"뭐야. 너 어디 아파?"
그래. 개새끼야.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키며 백현은 찬열의 다리를 힘없이 밀어냈다. 대답도 못하고 끙끙대는 모습에 당황했는지 찬열은 허겁지겁 백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어디, 어디가 아픈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에 백현은 눈을 꽉 감고 저의 배를 가리켰다. 여기가 너무 아파, 찬열아.
갈라진 앞머리를 쓸어넘기고 이마에 손을 짚었다가 백현의 볼에 저의 볼을 갔다댔다가. 식은땀을 흘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찬열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떡해. 내 새끼 아프면 안되는데. 찬열은 서랍을 뒤적거리며 급하게 약 봉지를 찾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약속했던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 좀 허둥대. 정신없어"
"아 어떡하지! 백현아 약속 취소할까? 응?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뭘 취소해. 그냥 약만 찾아놓고 얼른 나가…"
"아 진짜!"
백현아. 내 새끼. 우리 똥강아지. 아침부터 정신 놓고 장난 친 내가 죄인이지. 찬열은 중얼거리며 서랍 속에 있는 약을 몽땅 꺼내들었다. 뭐, 뭐부터 먹어야 되는거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좀"
찬열은 자신을 내보내려는 목소리에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옆에 두었던 가방을 찾아들곤 방황하는 백현의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
"형아가 얼른 갔다올게. 약 꼭 챙겨먹어!"
형은 무슨. 골 울리니까 얼른 나가. 귀찮은 얼굴을 하곤 등을 돌리는 백현을 애처롭게 쳐다보다가 찬열은 느릿하게 신발을 신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문고리를 잡으면서도 연신 백현을 돌아보았다.
뭐라 말을 하려다가 문을 닫히는 소리에 백현은 숨을 몰아쉬었다. 방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도 힘에 부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배는 여전히 아팠다.
오늘 공강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깜깜해진 머릿속을 헤집다가 아득해지는 정신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오늘 과모임이 있기는 했지만. 이 상태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면 술이나 먹을테니까.
눈앞에 별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대론 안되겠어, 좀 자다 일어나면 괜찮겠지.
백현은 다시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곧이어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잘게 들려왔다.
*
묘하게 달아오른 분위기에 다들 정신이 없었다. 금 같은 주말이 바로 내일일 뿐더러 오늘 막 중간고사가 끝난 터라 긴장이 풀린 지 오래였다.
과모임은 오래 전부터 정해졌던 것이었고 잡혀있던 약속은 저만치 밀어둔 채였다.
경수는 제 옆자리를 차지 하고 앉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동기를 조심스레 밀어내며 무릎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의 홀더를 켰다.
반짝이는 액정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까만 글자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경수야. 우리 멍뭉이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어? 오늘 과모임 있는 거 모른대?"
"아, 그게…. 오늘 백현이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못 올 것 같대요"
아 어쩌지. 동기들의 술잔을 채워주러 돌아다니던 과대 형의 말에 경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잠깐 조용해졌던 술자리가 금세 활기를 띄었다.
그래? 어쩔 수 없네. 진탕 술을 마시게 하려고 작정을 했던건지 연신 아쉬워하는 과대의 얼굴을 보며 경수는 슬쩍 눈을 치켜떴다.
하여튼,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자신에게서 등을 돌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을 불만스럽게 쳐다보았다.
차라리 백현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술자리에 함께했으면 헤벌쭉해져선 선배들에게 불려다닐 게 뻔했다.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제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털어넣었다.
뭘 넣어놓은 건지 불룩 튀어나온 주머니를 매만지다가 경수는 슬쩍 다리를 뻗었다. 고깃집 안의 공기는 뿌연 연기가 가득 차 답답했고 저의 속도 타들어가는 듯 했다.
"왜? 백현이 전화 안 받아?"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아진건지 실실 웃는 세훈을 쳐다보다가 말 없이 빈잔에 술을 채워넣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경수는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며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하루종일 잠잠하게 있을 애가 아닌데. 하다못해 전화 한 번이라도 문자 한 통이라도 넣어줄 줄 알았는데. 경수는 제 입에서 풍기는 알싸한 향에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다가 내가 취하게 생겼네. 아니, 차라리 취하는 게 나으려나. 경수는 주위의 눈치를 보다가 굼뜬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수야, 어디 가게?
"아 잠깐 화장실 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신발을 꿰어 신고선 경수는 문을 열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밤바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길게 내뱉었다.
꽉 다물려있는 바지주머니를 비집고 작은 케이스를 꺼낸 경수는 잠시 망설였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오늘은 경수의 디데이였다. 한 달 내내 손꼽아 기다리고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다리만 동동 굴렀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경수는 백현을 떠올렸다.
첫 만남의 백현은 자판기에서 갓 뽑아낸 사이다와 같은 느낌이었다.
입에서 톡 터지는 탄산처럼, 알알히 부서지는 느낌. 강의실 뒷문에서 삐죽 고개를 내민 모습에 경수는 제 눈을 의심했다.
하얀 강아지의 귀가 겹쳐 보이다가 살금살금 기어들어오던 백현의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뛰어왔는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어푸푸 숨을 내쉬는데 경수는 저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참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그 조막만한 손으로 글씨를 꾸물거리며 적어가던 동글동글한 뒷통수가 떠올랐다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지 퉁퉁 부르튼 입술을 쭉 내밀다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을 해놓고선 저가 밀어놨던 종이를 받아들고 감탄을 하던 모습이란. 경수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아마, 그 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백현과 다른 감정의 씨앗을 심게 되었던 것은.
지금까지 흘러온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 채 결국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꼴을 보이는 것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경수는 남아있던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 속 깊게 찔러 넣었던 핸드폰의 자판을 꾹꾹 눌렀다.
오늘만해도 몇 번째 들었는지 모를 연결음이 귓가에 타고 흘렀다.
-"여보세요"
"어, 백현아"
-"누구… 경수야?"
경수는 들고있던 상자를 꽉 쥐었다. 세차게 가슴이 뛰었다. 어어,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 걱정했잖아. 자고 있었어? … 아팠다고? 어디가? 아침부터 그랬으면 약은, 먹었어?
빠져 나왔던 가게를 등지고 걸음을 빨리했다. 어느새 경수의 발은 약국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눈으로 간판을 헤집다가 환한 불빛이 켜져있는 약국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배 아플 때 먹는 약 주세요. 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배가 아팠다고 그래서요.
"다른 곳은 좀 어때? 아픈 곳 있으면 얼른 말해"
-"지금은 괜찮아. 별로 안 아파. 근데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 핸드폰 완전 뜨겁다"
왜 전화를 많이 했긴. 오늘따라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적응이 안 되던데. 경수는 살풋 웃었다. 팔에는 하얀 비닐봉지가 묵직하게 들려있었다.
*
백현은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었다. 붕 뜬 머리를 가라앉히며 눈 밑에 늘어진 다크서클을 슬쩍 눌러보았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터라 경황도 없었지만 기숙사 앞이라는 경수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올라오긴 했지만 아침에 찬열이 꺼내둔 약을 먹어서인지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백현은 계단에 주저 앉아 층수를 나타내는 빨간 숫자만 바라보았다.
차라리 방으로 들어오지. 나 배 아픈데. 예민해진 신경 탓에 슬쩍 짜증이 올라왔지만 꾹 눌러담으며 엉거주춤 난간을 짚으며 걸음을 내딛였다.
밖으로 빠져나오자 눅눅한 바람이 밀어닥쳤다. 저를 향해 웃고 있는 경수를 보며 백현은 손을 흔들었다.
"이거 약이야.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그냥 다 사왔어. 이따 자기 전에 챙겨먹어"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텐데, 이건 건 왜. 백현은 툴툴거리며 약봉지를 받아들다가 경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어둑어둑해진 주변에도 발갛게 달아올라있는 얼굴이 확연히 느껴졌다. 입을 열 때마다 풍겨오는 술냄새에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 술 마셨어?"
"조금. 오늘 과모임있었잖아. 너 아픈 줄 알았으면 나도 안가는 거였는데"
연락 없어서 과모임에서는 볼 줄 알았지. 경수는 민망한 듯 웃었다. 실없긴. 백현은 작게 웃다가 찍찍 끌고나온 슬리퍼를 내려다보았다. 나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닐텐데.
"근데 나 약 사다주려고 빠지고 나온거야? 선배들한테 혼나면 어떡해"
"혼나긴. 나 없어도 잘만 놀더라. 너 얼굴봐서 다행이야"
경수는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프긴 했는지 하룻밤 사이에 홀쭉해진 얼굴에 비실거리는 모습까지. 백현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백현아. 나 너한테 말할 거 있는데"
"뭔데?"
갸우뚱거리는 얼굴을 보다가 경수는 슬쩍 주머니에 있는 반지 케이스를 잡았다가 놓았다. 긴장감에 바짝바짝 입술이 마르는 듯 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너 아픈데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오늘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경수는 백현의 손을 잡아끌어 제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을 넘겨주었다. 손바닥에 벅차게 들어차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길에서 당황함이 묻어났다.
"나 너 많이 좋아해.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간 두개의 눈동자가 얽혀들었다. 백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화가 난건지, 짜증이 난건지. 피곤해하는 눈이 반짝였다. 도경수.
"너 웃긴다"
"어?"
"내가 몰카했다고 너도 이런 식으로 받아치냐? 와 진짜… 오늘 애들이 하라고 그랬지?"
그래도 그렇지. 나 아픈데 이 상황에서 장난 치고 싶어? 예상치 못한 백현의 말에 오히려 경수는 할 말을 잃었다. 당혹감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야 변백현"
"장난인데 못 받아줘서 미안하긴 한데. 나 좀 짜증나려고 그래"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백현은 약 봉지를 경수의 가슴팍에 확 던져놓고서 지그시 노려봤다. 어디 해볼테면 해보라는 얼굴을 보며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해.
"몰카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야. 내가 술 취해서도 아니고 멀쩡한 정신에서 말하는 거야"
백현의 손에 들려있던 것을 빼들며 굳게 다물려있던 케이스를 열었다. 가로등의 빛에 반짝이는 반지를 보며 백현은 입을 떡 벌렸다. 뭐야, 얘 진심이야?
"그러니까. 내가 너 좋아한다고"
경수는 마른세수를 하다가 다시 봉지와 함께 반지 케이스를 손에 들려주며 백현의 볼을 톡톡 쳤다. 당장 답을 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내가 그렇다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진짜 오늘 아니면 평생 못 말할 것 같아서"
백현은 말 없이 반지를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집어들었다. 왼손을 쫙 펴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고선 이리저리 손을 돌려보았다.
가끔 경수가 손을 잡아올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사이즈를 알아놓은 건지 반지는 빈틈없이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
"도경수 진짜 웃기네"
백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경수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이따금씩 둘의 곁에 밀어닥치던 바람이 선선하게 머리칼을 흩트러놓았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완전 응큼해. 반지 하나 줘 놓고서 막 좋아한다 그러고. 많이 해 본 솜씨야"
백현은 뒷짐을 진 채 경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 씩 웃었다. 손에 걸려있는 하얀 봉투 속에서 무언가 짤랑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들어간다. 이따가 전화해"
한참이나 눈을 마주치다가 백현은 주먹을 쥔 손을 하고서 계단을 향해 뛰어올라갔다. 순식간에 사라진 뒷모습을 눈에 담다가 경수도 느리게 등을 돌렸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두 손에는 비어있는 반지 케이스가 들려있었다.
![[EXO/오백] 박카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f/8/6f8eac59e3746d20506edde9554f6d0c.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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