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윤기. 너 나랑 할 얘기 있지 않나?”
“없는데.”
“난 있어. 앉아.”
점호가 끝난 새벽 슬리데린 공동거실. 점호 이후에 들어오는 인원을 체크한다는 명목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 또한 삼십 분 동안이었다. 경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를. 저를 보고도 유유히 지나가는 윤기에 헛웃음을 짓던 것도 잠시, 경리는 윤기를 불러 세웠다. 슬리데린이라는 기숙사 이름과 기숙사장이라는 위치는 그 아우라에 채광을 더해 말 한 마디에도 벌벌 떨고 눈초리 한 번에도 눈치 보게 했던 것을 떠올리면 경리의 앞에 앉은 윤기의 기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는 다만 동급생으로서, 짧은 학생회 활동을 함께 했던 간부로서 오래 봐 왔기에 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너, 대체 뒤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야?”
“뭔 소리야.”
“뭔진 몰라도 자꾸 이런 식이면 우리 슬리데린에서도 널 받아주기 힘들어.”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 경리는 마지막 말을 내뱉고 윤기의 눈을 살폈다. 저 심리를 알 수 없는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빛뿐이었는데, 요즘은 통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회장직을 내려놓은 뒤로는 수업에서나 기숙사에서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학사경고나 징계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 교장과도 합의된 바가 있을 터. 하지만 경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옛정을 생각해 매번 무단외박을 하거나 점호시간에 늦는 것을 눈감아주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할 말 끝났으면 간다.”
“민윤기.”
“퇴출.”
“…….”
“시키든가.”
“너…….”
“뭐, 그만한 명분이 없으니 어렵겠지만.”
그 말을 끝으로 윤기는 등을 보였다. 기숙사 퇴출은 기숙사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거니와 퇴학이면 퇴학이지 퇴출은 없었기에 경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 말인즉슨 신경 끄라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 떠보려고 한 말에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알아보는 수밖에.”
어둠의 마법으로 생긴 결계. 답을 알려주지 않는 민윤기.
호그와트에는 비밀이 너무 많다.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49.
점심시간마다 윤기 선배가 학생회실로 불려간다는 소식이 전교에 퍼졌다. 전 부회장이 학생회실에 제 발로 가는 게 아니라 불려간다는 것은 큰 이슈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관 10층에 있었던 결계 흔적이 어둠의 마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소식 또한 빠르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두 가지 소문이 동시에 퍼지면 사람들은 들은 것을 기반으로 추측을 하기 시작한다. 추측은 여러 말머리를 통해 내뱉어지고 퍼지며 그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 부푼 몸집의 주축은 민윤기가 범인이라는 것이었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본관 10층에 결계 흔적이 발견됐대. 민윤기 선배가 용의자로 지목돼서 불려갔다던데. 들었어?”
“아, 네. 다들 그 얘기 하더라고요.”
그날 내가 본 사람은 윤기 선배뿐만이 아니었기에.
“전정국은? 옆에 없네?”
“반대쪽에 책 찾으러 갔어요.”
“그래? 모범생들답게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도서관 오는 걸 좋아해서요.”
나는 뽑아들었던 책을 제자리에 꽂으며 말했다. 선배는 자기도 도서관을 좋아한다며 꽂힌 책등을 손으로 쓸었다. 이렇게 말간 얼굴을 하는 선배인데, 감히 그런 마법을 썼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됐다. 애써 고개를 저으며 책들을 마저 꽂는데 전정국이 옆에 섰다. 호석 선배를 본 전정국은 가볍게 목례했다. 둘 사이가 어색했던 걸 떠올린 나는 행동을 서둘렀으나 마지막 책을 꽂는 것보다 호석 선배의 말이 더 빨랐다.
“너는 위험하게 10층 같은 덴 가지 마.”
“네?”
“다들 이렇게 떠드는 이유에는 어둠의 흔적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게 9층과 10층 사이에 있던 결계여서도 있어. 10층은……”
일반 학생들은 출입금지구역이거든. 호석 선배는 내가 아니라 내 옆을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전정국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말간 얼굴을 한 선배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그런데.
“선배. 도서관 좋아하신댔죠?”
선배는 그날 10층에 있었으면서, 왜 거짓말 하세요.
“10층에 도서관이 하나 더 있다는데. 가 본 적 있으세요?”
위험하고, 출입금지구역이라는 그곳에. 점호시간을 훌쩍 넘어서.
“……없는데. 그런 곳이 있어?”
선배는 누구와 뭘 하고 계셨어요?
“선배가 저보다 더 모르면 어떡해요. 저도 주워들은 거라 잘은 몰라요.”
“아아.”
“그런데 10층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니. 아쉽게도 못 가보겠네요.”
“…….”
“전 먼저 가 볼게요.”
나는 속에서 맴도는 말을 삼키고 웃었다. 말간 얼굴을 하고 내뱉는 말은 온통 거짓이었기에. 10층 도서관을 이야기 했을 때 선배의 표정은 미묘했다. 나는 도서관을 빠져나와서도 그 얼굴을 생각했다. 그리고 위에 덮어지는 건 그날 테라스에서 본 모습.
“저 선배야.”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이동하던 중 문득 전정국이 입을 열었다.
“그날 도서관에서 본 사람이 저 선배야.”
“뭐?”
“도서관에 들어오려는 것 같진 않았어. 테라스 쪽에 서 있었거든.”
전정국과 함께 10층 도서관에 갔던 날. 밖에 인영을 보고 황급히 창문으로 빠져나갔을 때. 그렇다면 호석 선배는 10층에 그날만 갔던 게 아니다. 만약, 만약에 정말 그 선배가 결계를 친 장본인이라면. 왜 어둠의 마법을 써서 결계를 쳤을까. 그리고 결계를 쳐서 그곳에서 뭘 하려 했던 걸까. 나는 아직 갈지 못 한 거즈를 만지작거렸다. 거의 평생 동안 날 알고 있었다는 선배는 그날, 왜 그곳에 있었을까. 이 모든 게 한 날에 일어난 건 우연일까?
아니 어쩌면 한 날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난 나는 내 방 테라스에 앉아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낡은 종잇장이 파르르 넘어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일기를 읽든 안 읽든, 이 일기장의 주인의 기억을 꿈으로 꾸는 것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일기를 읽지 않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일기장을 준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나와 있었네.”
순간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그 붉은 머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타오를 듯했다. 그래. 지난번엔 걱정 끼칠까 자세히 말하지 못 했지만, 티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를지도 모른다.
“오랜만이에요.”
“……응.”
난간을 넘어오던 티는 순간 멈칫했다. 그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일기장에 있었다. 흔들리는 눈빛이 꼭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만 같아 나는 부러 크게 물었다.
“왜요?”
“아니. 익숙한 글씨체라서.”
“이 일기장의 주인이랑 아는 사이예요?”
“알지. 아주 잘 알지.”
난간에 기댄 티는 일기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의 것이거든.”
“사실 이 일기장을 우연히 얻은 후부터 자꾸 꿈을 꿔요. 어떤 때는 일기장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꾸기도 하고, 어떤 때는 꿈 꿨던 내용이 그대로 일기장에 적혀 있기도 해요.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제야 말하네요.”
“괜찮아. 그냥, 그 일기장을 소중히 여겨줘.”
“제가 계속 갖고 있어도 될까요? 주인한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네가 갖고 있어. 그 편이 더 안전해.”
“……왜요?”
왜 내가 갖고 있는 게 안전해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려 했으나 끝이 살짝 떨렸다. 티가 준 것은 분명 아니라고 했는데, 대화는 꼭 티가 이 일기장을 준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눈으로 티를 쳐다보자 티는 천천히 내게 눈을 맞춰왔다.
“그 일기장의 이유가 너니까, 로운.”
그는 내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나는 차마 내 이름은 로운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티의 얼굴이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슬퍼 보여서.
슬픈 얼굴과, 혼란스러운 눈빛이 맞닿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일기장의 주인은 로운이라는 것을. 그가 내게 투영하고 있는 인물이 로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는 꿈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결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기억. 로운과, 누군가의 기억. 어쩌면.
“당신의 기억이기도 하고요.”
그 기억에서 내 앞에 타고 있던 사람은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어휴 산 넘어 산이네요. 떡밥 좀 회수했나 싶었는데 떡밥회수의떡밥, 떡밥회수의떡밥의회수... 떡밥들의 연장선이네요. 떡밥슈탈트 붕괴 올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거 제가 봐도 뭔 말인지 몰겠어요.
항상 댓글 주시는 분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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