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너를 자주 만났다. 너는 웃고 있을 때도 있었고, 나른한 얼굴을 할 때도 있었으며
때로는 토라진 얼굴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너는 울고 있을 때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잠에서 깰 때면, 내 눈가는 늘 젖어있었다.
너에게 가장 묻고싶었던 게 있었다.
지원아, 이건 네 눈물이니 아니면
내 눈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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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간의 우리는.
미성년(未成年)
나는 아침잠이 많이 없는 편이다. 잠 자체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조금 더 잔다고 졸립지 않은 것도 아니고, 덜 잔다고 졸린 것도 아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안방을 향해 고개를 한번 숙인 후 현관문을 열었다. 이른 새벽의 바깥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가디건을 여민 후, 푸르스름한 길을 걸었다.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흐린 하늘은 마치, 비가 내리는 날의 그것 같았다. 십 분정도 걸었을까. 학교 정문이 보였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시계가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등교시간까지는 아직 한시간 가량 남았다. 학교는 적막이 가득했는데,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에 조금은 들뜨기도 했다. 일반적인 등교시간대였으면 혼났을 중앙현관을 통한 통행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한 손에 운동화를 쥐고 계단을 올랐다. 고요한 복도 가득 나무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교실 앞에 도착해서 실내화로 갈아신었다. 이름표에 맞추어 운동화를 집어넣은 후 손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뒷문을 열어젖혔다.
" ........ "
기대는 조각나 바스라졌다. 일 분단 맨 뒷자리 창가 쪽. 익숙한 이제는 눈에 익은 자리구조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누군가가, 반장이. 김지원이. 나는 입술을 꾸욱 깨물고는 천천히 걸었다.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였다. 김지원은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 내 가방을 걸고, 지원을 흘긋 보았다. 이제는 적응 될 때도 되었는데, 김지원의 저 무미건조한 얼굴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안녕. 먼저 인사를 건넨 쪽은 나였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김지원이 책장을 넘김과 동시에 말했다.
" 안녕. "
불편하다. 딱 그정도의 감정이 우리사이의 공기속에 부유하고 있었다. 김지원과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를 신경 쓸 필요도 없었으며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묻고싶었다. 어떤 게 네 진짜 모습이니. 그 날, 내게 우산을 건네주던 사람이 너야, 아님 몇일 전 말로써 나를 뭉개놓은 사람이 너야. 김지원은 말했다. 다시 나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두번 다시 볼 사람이 아니니까, 내게 친절을 베풀었던 거야? 잠깐의 순간을 스친 지원이 내밀었던 우산이 막아준 것은 비가 전부가 아니였다. 비와 함께 내린 엄마의 눈물. 엄마에 대한 내 죄책감의 눈물. 나는 아주 잠시나마 세상을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기도 했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고 있던 지원의 손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책상에 놓여진 것은 하얀색의 MP3와 이어폰. MP3를 킨 지원이 이어폰 한 쪽을 귀에 꽂았다.
" 지원아. "
다른 귀에 마저 이어폰을 꽂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 내가, 신경 쓰이는거구나. "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지만 지원의 얼굴은 여전히 정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의 옆 얼굴이 다였다. 그럼에도 볼 수 있었다. 내뱉어진 내 말에 묘하게 찌푸려진 그의 미간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의 지원에게선 소년 내음이 났다면, 옆모습은 도드라진 턱선 때문인지 조금 더 남자다웠다. 입을 꾸욱 다물고 있던 지원이 입을 달싹였다.
" 너를 보면, "
" ......... "
" 네 목소리를 들으면. "
" ........... "
" 마음이 불편해. "
" ......... "
너도 그렇잖아. 지원이 말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네가 불편한 걸까. 단지, 나로썬 알 수 없는 네가 궁금했을 뿐이다. 이걸 불편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지. "
" ........... "
" 그래서, 들으려고 했는데. "
" ........... "
" 안들리는 쪽이 더 신경 쓰일지도. "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은 나머지 한 쪽의 이어폰을 내 귀에다 꽂았다. 잔잔한, 아주 잔잔한 뉴에이지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했다.
평소보다 20분 늦게 일어났다. 늦잠을 자는 편은 아닌데 어쩐지 그렇게 되버렸다. 그래봤자 여전히 이른 아침이지만 걸음을 서둘렀다. 몇일 동안의 등교로 나는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김지원은 나보다 등교시간이 빠른 편이며, 이틀에 한번 씩 읽는 책이 바뀐다는 것. 그리고 MP3에 들어있는 곡은 그 뉴에이지 곡 딱 한 곡 뿐이라는 것. 정문이 보였다. 내 앞에는 이미 남자아이 한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던 남자아이가 멈칫했다. 남자아이를 지나쳐 가려는데, 내 귓가를 사로잡은 이름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 아 씨발, 학주. 김지원이 학주 없댔는데. 미친새끼가 뭐든 지 위주라니까. 당연히 지 등교할 때는 없지. "
넥타이 없는데. 중얼거리던 남자 아이가 휙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남자아이의 얼굴은 상처가 조금 많이 있었다. 밝은 대낮이 아니라도 눈에 띄는 푸른 멍과 볼품없이 터진 입가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 그 애가 말했다.
" 넥타이 한 개 더 있냐? "
가방을 뒤적여서 여분의 넥타이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거 여자건데...망설이듯 말하니, 괜찮아, 어차피 니트에 가려져서 티 안나. 개구지게 웃어보인다. 나란히 교문을 들어서는데 뒷짐을 지고 서 있던 학생주임이 험상궂게 인상을 썼다.
" 구준회. 학교는 왜 안나왔나. 그리고, 어디서 또 패싸움을 하고 돌아다녀! "
" 싸운 거 아니고 맞은거요. "
" 뭐? "
" 그리고 학교 안온게 아니라 못온거거든요. 쌤, 저 죽을 뻔 했다니까요. 우리 회장님께서, 아주 가둬놓고 골프채로 패는데..."
" ....... "
" 내가 학교에 안나오는게 마음에 안들면 쌤이 회장님한테 전화 하면 되겠네. "
부탁드려요? 남자아이, 아니 구준회가 학주를 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는 안녕하세요. 벙 찐 얼굴을 한 학주에게 인사하곤 휘적휘적 걸어가는 구준회를 뒤따랐다.
" 고맙다. "
준회가 건넨 넥타이를 받아들었다. 나를 쳐다보며 웃으려다가 터진 입가가 쓰라렸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오지랖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많이 아프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호실, 갈래? "
내가 건넨 말에 준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걱정해주는 거? 보아하니 상처에 연고도 안발랐겠지 싶어서 그의 교복 소매를 잡아 이끌었다. 나에 의해 양호실로 끌려온 준회를 보조의자에 앉히고 약통을 뒤적거렸다. 소독약, 어디있지 소독약. 그리고 후시딘.. 눈에 보이는 몇가지를 대충 집어들었다. 먼저, 소독약 뚜껑을 열어 탈지면에 조금 묻힌 후 준회의 입가로 갖다대었다. 아,따,따가워! 뒤로 몸을 빼려는 준회의 어깨를 힘주어 잡고는 입가를 몇 번 두드리니 인상을 팍 썼다. 참아. 그 말과 함께 후시딘을 묻힌 면봉을 갖다대었다. 사,살살해. 떨리는 목소리가 조금 웃겨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지금, 웃어? 발끈하는 모습도 조금 우스웠다. 다 됐다. 다 쓴 면봉과 탈지면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하자 준회가 머쓱한 얼굴을 했다. 고,고맙다. 고맙다는 인사는 기대도 않았지만, 그래도 들으니 기분은 좋았다.
" 너, 못 보던 얼굴인데.."
" ..아, 전학왔어. 몇일 전에. "
" 어쩐지. 몇 반인데? "
" 1학년 5반. "
" 어? "
" .......? "
" 나돈데, 1학년 5반. "
그 말 끝에 개구지게 웃는 준회의 목소리가 조금 들 떠 있었다.
어쩌면, 여전히도 우리는.
미성년(未成年)
식탁을 사이에 둔 우리 사이에는 약한 칼질 소리만이 반복해서 울렸다. 저녁에 시간 비워.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한 문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저녁을 함께한다. 한 쪽이 스케줄이 있지 않은 이상 정해진 요일은 월 수 목이였고 메뉴는 그 때마다 달랐다. 지원은 항상 내가 먹고싶다고 하는 음식을 먹었는데 나는 교묘하게 지원이 싫어하거나, 알러지가 있어 먹지 못하는 재료가 들어간 음식만을 골라서 말했다. 지원은 그럼에도 아무런 말 없이 식당에 갔고, 음식을 먹었다. 나는 묵묵히 음식을 먹는 지원 앞에서 행복한 얼굴로 먹었고 최선을 다해 웃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조금도 남기지 않고 게워냈다. 이것은 분명히 내 의도가 아니였지만, 지원과 저녁을 먹은 날에는 빠짐없이 토악질이 밀려들었다. 나는 내 칼질에 조각나는 스테이크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조금만 먹어야지. 많이 먹으면 게워낼 때 더 힘이드니까.
" 주말에 본가에 들려. "
내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지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였다. 지원의 말에 나는 탁 소리나게 포크와 나이프를 놓았다. 그리고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냈다.
" 왜? "
지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 아버지께서 널 많이 보고싶어 하신다. "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방이 막힌 실내의 벽 곳곳으로 내 웃음소리가 부딪혀 울렸다. 나는 너무 우습다는 것을 표현하듯 눈가를 훔쳐내는 시늉을 했다.
" 누구 아버지 말하는거야, 나? "
" ........ "
" 아님, 너? "
000. 지원이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아랑곳않고 그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 도대체 내가 왜 보고싶으신 거래? 나 만나고 나면 매번 뒷목잡고 쓰러지시잖아. "
정말, 재미없단 말이지. 팔을 올려 기지개를 폈다.
" 이번에도 회장님 쓰러트리면 되는 건가? 회장님 혈압은 내가 하는 어떤 말에서 오르는걸까? 지원아, 나 정말 궁금해. 회장님 혈압은 왜 오르는거지? 분노,놀람 뭐 이런거? "
" ........ "
" 아님, 미안함? "
" ........ "
" 설마, 죄책감이겠니. "
죄책감이겠니. 씹어뱉으며 지원의 눈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그런 지원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얼마전에, 준회를 만났어. "
" .......... "
" 한국에 아주 돌아왔대. 너, 알고 있었어? "
지원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았다. 그런데, 준회가 나보구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는 조금은 여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 결혼하제. "
지원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조소가 나왔다. 지금도 수십번이고 흔들리고 있는 네가 우습다.
" 지원아. "
나는 와인잔을 한 손에 들고 약하게 흔들어보였다. 나, 지금 너한테 아주 매력적인 제안 하나 할까해.
" 도망갈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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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l 입니당. 휴, 이놈의 미성년들 기빨려요 !!!
독자님들 댓글 하나하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음편에서 만나요.
미성년은 흐름상 느리게 흘러갑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지루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참, 댓글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라는 댓글이 정말 많았는데요, 되게 벅차고 감동이였어요.
글을 쓰는 저와 함께 흘러가신 것 같아요. 제가 영화보는 걸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글을 쓸 때, 지금 쓰는 이 장면이 영화로 나타낸다면 어떻게 표현될까?
이런생각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아마도 그렇게 느끼셨을거예요. 아무쪼록 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