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찬열이 나타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 가디언을 만나게 되었다.
내 가디언은, 나보다 한 뼘 이상 작았으며
피부는 어떤 훈련도 받아본 적 없는 것처럼 투명하게 보얗고,
눈매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그스름한 선이고
유일하게 도톰한 입술은 건조해 갈라진 선들이 뚜렸했으며
불안한 듯 동그란 손톱을 뜯는 모습하며, 눈을 내리깔고 도륵도륵 굴리는 모습하며,
그 같았다.
아니, 그였다.
어떻게 여덟살, 무려 10년 전에 한 번 본 사람을 이렇게 한순간에 맞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묻는다면, 나도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옛날에 내가, 머릿속에는 선명한듯 부옇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모습을 모르겠다고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그는 그였고-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눈 앞이 캄캄해졌다.
"서로 초면이겠지?"
"....."
"....."
그와 나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날 기억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난, 적어도 그날의 기억이 유화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나는, 그의 어수룩하게 돌아다니는 눈동자를 진득하게 좇았다. 적어도, 그가 내 눈빛이 가진 기운을 기억해주었으면 했어서다. 하지만 그는 뭐가 그렇게 무섭고 견디기 힘든지, 손가락을 뒤틀고 손톱을 짓이기며 내 시선, 굳이 말하자면 나의 존재 자체를 피하려고 애썼다.
"이쪽은-김종인. 경수 너도 이름쯤은 들어 봤겠지."
"...."
그는 자그마한 침묵 끝에 말과 비슷한 소리를 작게 짜내기는 했다.
"지금 SAG의 유망주인거 알지? 유망주도 아니다, 몇 세기만에 나온 우성 센티넬이야. 네가 책임감을 갖고, 잘 보살펴 주어야겠지? 네가 비록 신체적으로...미성숙하긴 하지만, 나이로 보면 네가 종인이보다 한 살이 많으니까,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어주고..."
하필 나, 그러니까 우리가 살 아파트의 관리 담당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SAG의 회계 담당 인사였다. 그 길고 영양가없는 말을 꾸역꾸역 들으며 그는 조근조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지도 않고, 그를 주시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쪽은-경수, 도경수 군이네."
그는 내 쪽으로 돌아서며 짐짓 위엄있는 말투로 말했다. 허리를 쭉 펴고, 무거운 악수를 건네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대충 손을 붙잡고 허리를 까딱였다.
"아까 들었겠지만, 자네보다 한 살 많고, 그러니까 열 아홉이지, 올해. 그래도 많이 작아..아니, 어려 보일거야. 처음 들어올 때부터 몸이 약했네. 그래도 공부를 굉장히 잘해서, 필기성적으로는 수석이지. 훈련 평가가 좀, 그래서 그렇긴 하지만...자네가 잘 보호해주고, 그러면 될 거야. 그럼, 그럼."
그는 답지 않게 말을 자주 끊어가며 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몸이 약한 것도,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귀신도, 환영도 아니었다.
반갑다고, 인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튀어나오려는 내 목소리가, 먼저 알고 있었다.
"널 잡는 게 빠를까, 아니면 네 가디언을 잡아 족치는게 빠를까?"
그의 소름끼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가 자각하지 못한 시간동안 사막에 올라앉은 모래폭풍의 잔해같은 커다란 흉터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 호실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배정된 호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 제일 높았다. 62층의 상공을 유리로 된 한쪽 벽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그마저도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그처럼 하앟기만 한데.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밟았다. 마침내 그는 유리창에 바싹 붙었고, 다시 조용한 움직임으로 팔을, 손목을,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을 곧게 펴고 가만히 창으로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발끝을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려는 듯, 이마를 창으로 갖다대었다.
순간, 아찔.
그의 걸음이 바닥을 모르고 허공에서 더듬거렸다. 길게 내려온 검은 앞머리가 찰랑, 거리는 것을 끝으로 나는 그를 잽싸게 돌려세웠다.
빙글 돌아서, 내 앞에 멈춰선 그는,
그는,
눈물겹도록 똑같았다.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하얗고, 동그랗고,....천사 같았다고.
그리고 살짝 젖어있는 동그란 두 눈동자와 마주한 최초의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도망쳐야 했다.
내 감정으로부터, 따뜻하고 말랑하고 촉촉한, 내 추억의 한 귀퉁이에 묻어있던, 그 감정으로부터.
하얗고, 동그랗고, 천사같던,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런,
그에게로부터.
종인이과거를 저번 편에서 끝낼까 하다가 덧붙여야할 내용도 좀 있고, 뭔가 이 부분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한 편 더 들고왔습니다.
음..정말 생각 안하고 술술술 써내려간편인데, 이제까지 썼던 것 중에 제일 잘 써진 것 같아요 물론 제 기준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중에보면 이상할수도있음ㅋㅋ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네용
매번말씀드리지만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진짜로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