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현나라의 황제와 건국공신인 변가문의 둘째여식이 국혼을 치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온통 꽃잎이 날아다니고 노래소리가 끊이지 아니했다. 백성들은 어리지만 어진 황제를 찬양하고 존경했다. 예전에 힘들었던 나라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지금 이 태평성대가 누구보다 반갑고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변가문의 인자함과 현나라를 건국하는데 그의 힘이 큰 역활을 했다는 것은 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의 혼인이라니, 진정한 나라의 축제였다.
변가문의 집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하인들은 이리저리 음식을 나르기 바빴고 집안의 경사에 이곳저곳에서 친척들과 지인분들의 반문이 끊이질않았다. 중건은 가문의 수장으로써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네에게 둘째여식이 있다는 것은 내 알지도 못했네! 얼마나 어여쁘길래 그리 꽁꽁 숨겨두었나! 사람좋게 웃으며 중건의 어깨를 두어번 투닥이는 친한 문관의 말에 중건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몸이 아파 어렸을때부터 가둬놓고 키워서 그러네.. 마지 못해 나온 변명이 너무나 초라하다 느꼈다. 그러나 그 말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않는지 문관은 듣고선 그저 고개를 끄덕여 버린다.
" 누님.. 눈이 너무 무거워요.. "
" 아유- 백현아 가만히 좀 있어보거라! 이쁘게 단장한 것이 다 뭉개지지않느냐! "
뒷채에서 한참을 바쁘게 준비하던 백연이 백현의 어깨를 찰싹하고 때렸다. 누님! 아픕니다.. 백현이 투덜대며 손을 들어 두어번 문지르자 백연은 깜짝 놀라 백현의 손을 꾹 잡았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누님이 아니라 언니란말이다.. 누가 들은건 아닌지 고개를 쑥 내밀고 주위를 살펴보다 이내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백현의 머리에 얹어진 휘장을 정돈했다.
빨간 비단천에 금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혼례복을 입은 백현은 아름다웠다. 손을 다 덮은 빨간 천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손이 너무나도 고왔고 머리를 위로 틀어올려 황금빛 비녀와 귀한 보석들이 박힌 장신구로 장식해 무거워보였지만 그 또한 아주 아름다웠다. 휘장으로 가린 백현의 얼굴은 뽀얗게 색이 올라 빛이 날 정도였는데 휘장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얼굴이 단장을 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배는 고왔다. 백현의 혼례복 끝단을 만지작거리던 백연은 폭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백현은 한숨 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려 백연을 바라봤다. ㄴ, 아니.. 언니.. 왜그러셔요.. 버릇처럼 누님이라 부르려했던 백현은 재빨리 말을 바꾸고는 손을 내어 제 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런 백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연은 제 손을 잡고있던 백현의 손을 떼어 제가 백현의 손을 더 꽉 잡았다.
" 니가 이리 시집을 가버리면 나는 너무 서글프구나.. "
" 언니... "
" 황제께서도 너무 하시다, 이리 너를 빨리 데려가시는게 어디있단말이야.. "
백연의 말끝이 떨려왔다. 정말로 황제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저번에 딱 한번 본 황제폐하는 너무너무나 멋지고 커서 백현을 지켜줄꺼같았지만 이리 제게서 백현을 빨리 떼놓을줄은 상상도 못했다.. 적어도 두달은 지날줄 알았는데.. 작게 중얼거리던 백연은 곧 울음이 터져 입술을 꼭 깨물었다. 누, 누님.. 울지마세요.. 당황한 백현은 제가 누님이라 말한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당황스러워 백연의 앞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태어나 백현과 떨어져본적이 없다. 그저 작은 제 동생이 상처라도 받을까 어화둥둥 내새끼 하면서 키웠는데 이리 한순간의 봄처럼 지나가버리면 그 황홀함이 그리워 아쉬움이 가득찰 것이 분명했다.
누님께서 저를 자주 보러와주시면 되지않습니까.. 제 손을 꼭 잡은 백연의 손을 다른쪽 손으로 꼭 잡은 백현도 눈물이 날것만 같아 참으려 연지가 곱게 발라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궁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쉬운줄 아느냐? 네가 이리 가버리면.. 곧 나도 시집을 갈텐데.. 혹시라도 멀리 지방으로 가면 어찌하냐.. 고개를 들어 백현과 눈을 마주한 백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제가 폐하께 떼를 쓰겠습니다, 누님이 너무너무 보고싶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떼라도 쓰겠습니다.. 그러니 이리 울지 마셔요.. 화장대에 올려져있던 천을 들어 백현이 백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폐하께 그러다가 네게 화라도 내시면 어쩌려구.. 백연이 천을 받아들어 제 눈가를 쿡쿡 누르며 눈물을 닦기 바빴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누님을 보고픈 마음보다 무섭지않습니다.. 새삼 제 동생의 마음이 너무도 어여뻐서 저리 아름답게 단장해놓고서는 안절부절못하는 제 동생이 귀여워져 웃음이 나왔다. 풋- 천을 꾹 쥔채로 웃어버리는 제 누이를 보던 백현도 이내 마음을 놓고 미소지었다.
" 제겐 누님이 어머니이고.. 아버님이고.. 친구였어요.. "
" .... "
" 제 세상은 이 뒷채가 전부였잖아요, 그 안에 있는건 저와 누님뿐이었고.. "
" 백현아... "
" 이젠 제 세상도 너무나 커져버렸지만, 누님이 그 안에 있다는건 변하지않아요. "
그러니, 저 꼭 행복할께요 앞으로도 계속.. 백연의 손을 꾹 잡은 백현을 바라보자 제 동생이 언제 이리 훌쩍 커졌나싶어서 살짝 아쉬웠다. 그저 제 품에 있는 아기일줄 알았는데...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백연이 분통을 들어 백현의 얼굴에 다시금 덧바르기 시작했다. 아 너무 답답하다니깐 또 바르세요? 투덜거리는 백현의 볼을 꼬집으며 혀를 찼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이리 분을 많이 발라보겠느냐? 조용히 하거라 쫌!
단장이 다 되고 조금 쉬면 되겠다할때 집사가 헐래벌떡 뒷채로 뛰어들어왔다.
가마가 도착했습니다!
아.. 백연은 집사의 말에 백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백현은 그저 떨리는지 손을 가슴팍에 올려놓고 숨을 고르기 바빴다. 후우.. 물이라도 좀 마실껄.. 백현은 마구 콩닥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 * *
백현을 태운 커다란 꽃가마가 중심길을 지나 궁의 대문에 당도하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은 그리 아름답다하는 변가문의 둘째 여식의 얼굴을 보기위해 몰려들었지만 얼굴을 가린 휘장과 가마에 쳐진 천때문에 얼굴을 커녕 손끝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자태가 너무 고와 아름답기로 소문난 항부인을 닮았구나 하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을 태운 커다란 가마가 천천히 움직여 황궁안으로 들어섰다. 긴장된 마음에 그저 눈만 꼭 감고있던 백현은 슬며시 눈을 떠 이리저리 눈만 도로록 움직여 황궁을 작게나마 둘러봤다. 제가 머물던 뒷채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커다란 궁들과, 궁녀들은 바쁘게 제가 탄 가마 주위를 정돈하기 바빴고 황제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신다하여 무관들은 바쁘게 호위대형을 맞추고 있었다.
새삼 제 혼인의 크기에 긴장된 백현이 손을 들어 가슴팍을 쓸어내리는데, 황제폐하 납시오! 하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찬열의 모습이 여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금빛 황룡포를 두르고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찬열의 당당한 풍채에 백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어찌 자존심도 없이 여인의 복장을 하고 여인이 되어 그의 비가 되는가.. 만약 모두가 알게된다면 제게 손가락질을 하겠지, 그럼에도 백현은 지금 이순간이 행복했다. 저의 지아비가 저를 보러 오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가마를 가리고 있던 천이 걷어지고 나이가 꾀나 들어보이는 상궁이 손을 내밀었다. 나오시지요.. 크게 쉼호흡을 한 백현이 상궁의 손을 잡고 가마 밖으로 발을 내밀어 한발짝 걸었다. 환한 빛에 눈을 살짝 찡그리곤 다시 다소곳이 손을 모아 찬열이 걸어오는 그 길 끝에 가만히 서있었다. 황제폐하 홍복을 누리소서- 일제히 찬열을 향해 엎드려 절을 했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 떤 백현은 눈만 깜빡 거렸다. 그러나 이내 제 앞으로 당도한 찬열의 모습에 가슴이 요동치는것을 느꼈다.
" 황제폐하.. 홍복을 누리소서.. "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백현의 인사에 찬열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했다. 백현이 가마에서 내려 서있는데 금방이라도 뛰어가 안아버릴뻔한것을 찬열은 참고 또 참았다. 그 고운자태에 세삼 감탄스러웠다. 휘장을 걷어내면 얼마나 더 고울까.. 휘장에 가려진 백현의 뺨이 보지않아도 붉게 달아올랐을 것을 의심하지않을 수 없었다.
찬열은 손을 들어 백현의 시야를 가린 휘장을 걷어올렸다. 이내 드러나는 하얀 얼굴과 다소곳한 입매, 그 고운 모양의 눈망울까지 전부 감탄스러웠다. 그저 얼굴 만발에 웃음이 가득하여 이대로 백현을 안고 궁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그저 꾹 참았다. 길다란 붉은 혼례복 자락에 감춰진 그 손을 잡고싶어 가만히 뒷짐만 지고 있던 찬열은 손을 내밀어 백현의 손을 잡았다. 가느라단 손목을 엄지손가락으로 쓰담거리자 두근거리는 맥박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찌 그 모습마저 이리 한없이 곱기만 한건지.. 백현이 야속한 마음까지 들었다.
" 폐하.. 태왕전으로 드셔서 비마마께 품계를 내려주셔야 합니다.. "
백현과 찬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휘장이 걷어지고 그 뒤 보여진 백현은 아름다운 미소는 그 누구에게도 볼 수 없었던 그 특유의 향이 있었다. 새로운 비를 보고 미소짓는 황제의 모습마저 참으로 아름다워 멍하니 그 모습만 바라보던 내관과 궁녀들이 정신을 차릴 무렵, 옆에 서서 보좌하던 종인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았다. 그 말에 찬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현의 손을 꾹 잡았고 태왕전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황제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자리에서 걸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높고 앞선 자리에서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찬열의 행동에 상궁들과 내관들은 당황스러워 어찌할줄을 몰랐다. 그것은 백현도 마찬가지였다. 궁에 들어오기전 누누히 들었던 여러가지 법도중에 발걸음을 같이 해선 안된다는 것도 분명히 있었는데 제 지아비께서는 그것을 모르시는거 같았다. 폐하.. 백현이 어찌할줄 몰라 손을 꼼지락 대자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찬열은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허.. 가만히 있으래도.. 짐짓 엄하게 혼을 내는거같지만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 오히려 더욱 장난스러워보였다.
" 이리 걸으면 아니된다고 들었사온데.. "
" 그대도 너무하는군,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인데. 내가 모르는 법도 있소? "
" 아... "
" 그러니 가만히 좀 있으시오, 이리 잡고 걷고싶으니.. "
태왕전은 남성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그 예외의 상황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황제의 여인들이 품계를 하사받을 때였다. 고운 빛깔의 혼례복을 입은 백현이 태왕전안에 들어서자 모든 문무관들은 자그마한 탄성을 냈다. 변가문의 둘째여식, 아름답기로 소문난 항부인들 꼭 빼닮았다고 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깊이를 생각도 못했는데 그저 하얗고 또 밝다. 황제가 반한 것에도 이유가 있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관료들 사이에 중건이 높은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백현을 바라보았다. 가마를 타고 떠날때 그저 휘장에 가려진 모습만 보았는데 저리 휘장을 걷어내도 제 아들은, 아니 제 여식은 그저 아름답기만 해 가슴이 먹먹했다.
몇몇 관료들은 말했다. 그렇게 높은 지위를 가졌으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또 누려보겠다고 제 여식을 황제의 비로 보냈느냐고. 그렇다면 중건은 그들에게 솔직한 심정으로 모두 털어버리고 싶었다. 황제가 제 아들을 탐낼때는 어찌 해야되는것이냐고.. 중건은 그저 눈을 꼭 감았다.
찬열이 백현에게 품계를 내리는 칙서를 읽는 소리가 들리고 가만히 무릎을 꿇은 백현이 정중히 명을 받들었다. 예쁘고 은애한다 하여 직접 이름까지 내려준 황제의 목소리가 태왕전 가득 퍼졌고 그에 답하는 관료들은 목소리는 크고 웅장했다.
현나라 건국 5년, 태명제의 세번째 비 윤애(贇愛)비가 들어왔다.
* * *
백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인의 복색이 너무나 불편했다. 밑에가 훵하니 빈 것이 이상하게 답답해서 다리를 다소곳이 오므리고 침대위에 웅크려앉았다. 폐하께서는 언제 오시는걸까.. 길게 내려뜨려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꼬으며 백현은 자신의 처소를 둘러보았다. 뒷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커다란 침상도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두려운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웬일인지 실없는 웃음만 나와 제 가슴을 꾸욱 눌렀다. 그만 좀 웃었으면 어디 부족한 사람같아.. 탁자위에 정갈하게 차려져있는 음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두개의 술잔이 한쪽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이제 정말 자신이 비가 된 것같아서 찬열이 손수 지어 내려준 이름을 웅얼거려봤다. 윤애.. 예쁘다, 은애한다.. 아무도 불러준 이도 없는데 왜 제가 제 이름을 부른 것이 부끄러운지.. 볼이 달아올랐다.
황제폐하, 홍복을 누리소서-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한 찬열이 들어왔다. 멍하니 바라보던 백현은 화들짝 놀라 침상위에서 허둥지둥 일어나 웅크려있어 살짝 구겨진 침의를 쭉쭉 늘려 정리했다. 황제폐하.. 홍복을 누리소서.. 단정치 못한 제 모습이 부끄러워 기어들어갈 듯 작은 목소리를 웅얼거렸다. 이제 정말 얌전히 굴어야하는데 아직 그 길이 멀은듯 하여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듯 두 손 얌전히 모은 백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찬열은 걸음을 크게 해 백현의 앞에 섰다. 작고 가녀린 어깨가 한줌에 다 들어올꺼 같았다. 그때 처음 만났을때처럼 가까이 붙어 숨소리만 들렸다.
" 어찌 그렇게 고개만 숙이고 있어.. "
백현이 연지를 지워도 곱게 붉은 빛이 도는 제 입술을 한번 꼭 물었다 놓은 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찬열을 응시했다. 무게있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가득 피어오르는 사랑을 백현은 알 수 있었다. 슬금슬금 올라가 미소짓는 제 입꼬리가 너무 방정스럽다 생각이 들어 백현은 손을 들어 옷가락으로 제 입가를 가렸다.
제 얼굴을 바라보며 곱게 눈을 접으며 웃는 그 모습에 찬열은 그대로 백현을 번쩍 안아들어 침대로 털썩 같이 누워버렸다. 놀란 백현이 찬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자신도 모르게 꺄르르 소리까지 내며 웃어버리자 그 모습에 찬열은 또 좋아 백현의 허리를 감싸안고 고개를 묻었다. 오늘 너무 피곤했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는 제 지아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던 백현은 찬열의 볼을 부드럽게 감싸 저와 눈을 마주보게했다. 이리 벌써 누우시면 아니되십니다.. 저기 합환주를 마셔야 한다고.. 한상궁이 귀가 닳도록 설명했던 초야에 대한 주의를 어느새 그대로 백현이 줄줄 읊자 그 모습이 앙큼스럽기 그지없어 찬열이 손을 뻗어 백현의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 그리 이 밤을 기다렸더냐, 줄줄 읊는 것이.. "
" 그것이 아니오라.. "
깜짝 놀란 백현이 제 눈을 크게 뜨곤 손까지 저어가며 아니라 하는데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찬열이 치마자락안으로 손을 넣어 백현의 발목을 쥐었다. 힉! 이상한 소리까지 내며 백현이 몸을 뒤로빼자 짖굳게 웃은 찬열이 몸을 더 가까이 붙혀 얼굴을 마주했다. 밤을 기다린것치고는 너무 놀라는거아니냐.. 하얀 얼굴에 붉은기가 가득해 그저 눈만 깜빡거리던 백현은 이내 그저 웃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하십니다 폐하.. 입까지 삐쭉대며 투덜대는것이 아직 그저 어리구나 싶어 손을 뻗어 깨끗한 볼을 한번 쓸었다.
" 진심으로 은애하고 또 은애하오, 윤비 "
" 아.. "
" 이제 내겐 그대가 이 나라니.. "
품 안 가득 안겨오는 백현의 향이 좋았다. 세상에 어떤 향유를 쓰면 이리 고운내가 날까 싶어서 그저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묻고 숨을 골랐다. 찬열에게 밤은 언제나 길었다. 소년의 밤은 그저 무서웠고 황제의 밤은 길고 길어 외롭기까지했다. 하지만 이제 그 외로움도 무서움도 백현과 함께라 생각하니 그곳이 천국이었고 극락이었다. 좀 더 일찍 만났으면 그대가 내 평생의 하나뿐인 짝이었겠지 싶어 쓴웃음이 묻어 나왔다.
그런 찬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던 백현이 찬열의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찬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맞대었다가 떼곤 부끄러운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 생애 지아비는 폐하 한분이시니.. 작게 소곤거리는 백현의 목소리가 달았다. 멍한 기분으로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던 찬열은 이내 깊게 미소를 짓고 침대 옆쪽에 구겨지듯이 놓아져있던 금침을 들어 백현과 자신을 가렸다.
" 폐,폐하.. 합환주를... "
" 쉿, 재잘재잘 아주 시끄럽소 "
" 아... 그치만... "
달디단 향이 검은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도 영롱하게 빛나는 달도 마치 꼭 이 밤만을 기다렸다는것처럼 더욱 더 영롱하게 그 빛을 뽐낼뿐이었다. 침대 아래로 백현의 하얀 치마가 좋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곧이어 금색 황룡포도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물 흐르듯 흘러 떨어졌다. 간간히 키득거리는 소리와 더운 소리가 오갔지만 그것 또한 이 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