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Letters to Juliet 中 경수는 지금 딱 미칠 지경이었다. 그 편지 하나 때문에 다른 편지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하루에 적어도 열 통씩은 써야 한 달 안에 삼백 통을 채울텐데, 열 통은 커녕 그의 편지 하나 조차 쓰지 못했다. "...아니야 경수야. 이게 그 남자일 거란 보장이 없잖아? 넌 프로야. 프로답게 상담해줘야해!" 애써 자신을 달래려 자신에게 조언까지 한 경수는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두 귀를 애써 무시한 채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꺼슬꺼슬한 편지지 표면을 손으로 한 번 쓸고는 필통에 꽂혀져있는 만년필을 들었다. 까만 잉크가 가득 차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한자한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To. 김종인씨. 안녕하세요. 줄리엣입니다. 편지는 잘 읽었어요.' "으아아아" 이상하다. 지금까지 수천수만통을 적은 편지인데 시작부터 삐걱삐걱 영 써지지가 않는다. 찢어버리고 다시 쓸까도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간 괜히 더 망칠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된 거 한 번 제대로 적어보자는 생각에 경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서 잘 나오지 않고, 소심한 사람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랑 너무 비슷한 게 그냥 자신이라면 뭘 해주는 게 좋을까 생각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달콤한 건 좋아하는데 매장까지 찾아가기는 불편해서 한 번에 쟁여놓고 먹고, 누군가 날 위해 샀다고 말하면서 선물을 주는 건 부담스럽다. 밖에 나가는 것보단 실내를 좋아하고, 영화는 공포보다는 로맨스가 취향이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 노래도 잔잔한 뉴에이지나 부드러운 발라드를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누군가가 먼저 다가오는 것도 어색해해서 사람 사귀기는 어렵고, 한 번 사람을 믿는데도 오래 걸린다. 어느정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난 경수는 다시 펜을 들고 편지지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좋아하신다는 그 분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도, 먼저 다가가는 것도 잘 못하실 거에요. 그러니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는 게 그 분하고 친해지는 방법일 거같네요. 너무 늦지 않은 오후쯤에 케익 한 상자 들고 그 분 집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케익을 선물받았는데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 나눠먹었으면 해서 가져왔다는 말과 함께 그 분을 찾아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케익은 단순한 디저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니까 그 분도 매몰차게 거절하시지는 않으실 거에요.' 솔직히 문장도 내용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경수는 써내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서툴고 거칠더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전해진다면 이 편지를 받은 그도 경수가 하고싶던 말들을 전부 이해하고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마주칠 때마다 그분에게 가볍게 한 가지씩 물어보세요.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라던지, 아니면 좋아하는 음악같은 아주 소소한 걸 물어보고 종인씨가 좋아하는 것도 그 분께 얘기해주세요. 한번두번 말하는 건 잊혀지지만 계속해서 얘기하다보면 저절로 익숙해지는게 사람이니까요.' 생각해보면 경수,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하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옆집의 그에 말은 잘 못하지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실이니까. 자신에게 이미 증명된 방법이니까 아마 이 편지의 주인인 종인씨에게도 도움이 될 것같다. '사랑은 한 번에 빠지는 것도 있지만 잔잔하게 스며드는 게 더 강렬한 거에요. 한 번에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보다 잔잔히 타오르는 불꽃이 더 오래 가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그 분에게 스며들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제 편지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From. Juliet ' "됐다." 줄리엣의 상징인 From. Juliet 까지 적어넣고서는 잉크가 마르라고 편지지에 가볍게 바람을 부는 경수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써야될 것 같고, 그러다간 이 편지 한 통에만 하루종일, 아니 몇 주고 매달려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경수는 책상 한 켠에 가득 쌓여있는 편지봉투를 꺼냈다. 연한 분홍빛이 은은히 감도는 편지봉투에 잘 접은 편지를 집어넣고 붉은 색 씰로 봉한다. 받는 사람의 주소를 편지봉투 겉면에 적고 발신인에 Juliet이라고 필기체로 적어넣으면 "이제 진짜 끝!" 본사에 보내는 가방에다가 편지를 조심스럽게 넣은 경수는 바로 다음 편지를 뽑아서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저 한 통은 낑낑대며 고민해도 성에 차지않는 문장들만 나왔는데 다른 편지들은 평소처럼 쉽게 써진다. 그 편지가 뭔가 특별한가, 이상하단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다시 편지 쓰기에 집중하는 경수다. - "아 김대리님!" "네." "김대리님 책상에 편지 온 거 올려놨어요." 드디어 왔나보다. 며칠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게된 'Letters to Juliet'이라는 회사. 사랑에 대한 고민을 적어서 보내면 답장을 준다는 말에 바로 써서 보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연한 분홍빛의 편지봉투. 발신인에 적힌 Juliet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는데 옆자리의 변대리님의 깐족거림에 정신이 든다. "오- 김대리 러브레터라도 받은 거야? 그 핑크핑크한 편지는 뭐야?" "변대리님은 게임 좀 끊으시죠. 그 나이에 핑크핑크가 뭡니까, 핑크핑크가." "지금 나 갈구는거야? 헐, 나 애인한테 이를거야." "네, 네. 제발 좀 이르세요." 김대리 미워!라는 정말 초딩, 아니 초딩도 많으니까 유딩같은 멘트를 던지는 변대리님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편지봉투를 조심스레 뜯고는 읽어내려갔다. "변대리님." "왜 차가운 김대리야." "혹시 이 근처에 맛있는 케이크가게 아십니까?" "왜 나 사주게?" 강아지마냥 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변대리님에게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곤 말했다. "꿈 깨십시오." - 딩동- 하루동안의 공백을 매꾸겠다고 미친듯이 써댄 턱에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건만 백오십통을 썼다. 지금 이 기세로 가면 이주 안에 삼백통을 끝내고 한 일주일 정도는 맘 편히 쉬다가 느지막히 더 받으러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짧은 휴식시간을 즐기던 경수는 갑자기 울리는 현관벨 소리에 문을 열었다. "...아?" "혹시 케이크 좋아하세요?" "네?" 경수가 멍하니 보고만 있자 옆집의 그가 손에 쥔 케이크 상자를 살짝 흔들었다. '너무 늦지 않은 오후쯤에 케익 한 상자 들고 그 분 집에 가보는 건 어떨까요.' 설마설마했는데 "케익을 선물받았는데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요." '케익을 선물받았는데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 나눠먹었으면 해서 가져왔다는 말과 함께 그 분을 찾아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설마가 사람잡는구나. "혹시 케익 싫어하세요?" "아, 아니요. 조, 좋아해요." "다행이다." 안심했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에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굳었다. 나 좋다는 남자가 나보고 웃는데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려고 하는 게 아무래도 편지를 너무 열심히 썼나보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싶은 경수다. "저 혹시..." "아, 드,들어오실래요?" "괜찮다면 그래도 될까요?" 들어올 수 있게 살짝 몸을 뒤로 하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들어오는 그다. 편지는 서재에서 쓰니까 거실은 깨끗하지만 왠지 모르게 치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경수는 서둘러 눈에 보이는 것만 서둘러 치웠다. "아,앉으세요." "네." 경수가 작은 접시와 나이프, 포크를 챙겨나오자 이미 케이크를 상자에서 꺼내올려놓은 그. 하얀 생크림에 붉은 딸기가 올려진 케이크는 분명 흔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양새인데도 꽤나 달큰한 향기가 풍겨서 그런가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러고보니" "ㄴ,네?"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우리." 우리라는 말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경수와 그. 이게 다 그 편지때문이다. 괜히 이상한 생각이나 들고... "전 김종인이에요." "......" 역시나. "어디 불편하세요?" "...아, 아니요. 전 도경수에요." "도경수.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엄마 나 어떡해요. 저 남자가 웃는데 자꾸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아무래도 편지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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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가슴 크다면서 시도때도 없이 만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