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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슙 뚜껑 

 

 

 

 

 

1. 

 

형은 뚜껑 같았다. 가끔은 전기밥솥의 뚜껑 같기도 했고, 가끔은 질식할 만큼 굳게 닫힌 병 뚜껑 같기도 했다. 어쨌든 형은 그 정도로 든든한 사람이었고,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병을 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병을 깨는 것이라는 걸 형도 나도 그땐 잘 몰랐었다. 

 

형의 친모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형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였다. 가끔 나는 아버지의 좆을 저주했다. 형은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이 착하고 친절해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해 줬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이학년 때의 생각이었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지금의 형은 말수가 아주 적어졌다. 

 

형은 요리를 잘 해서 새벽 같이 일어나야만 했다. 그것은 형의 임무와도 같아서, 형은 오 년 전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밥을 해 왔다. 열일곱이면 남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여기선 중졸만 해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반면에 중졸도 못한 사람들은 개 취급 비슷한 것을 받았다. 형이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엔 그것들도 포함됐다. 

 

형의 별명은 쿠첸이었다. 형이 밥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형을 찌르면 뭐든 쏟아져 나와서 그랬다. 내가 형을 이렇게 잘 아는 것만큼 형도 나를 잘 알았다. 형은 나를 꼭 친동생처럼 아꼈다. 형의 친동생은 사실 오래전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형의 눈동자는 가끔 파랬다. 

 

 

 

2. 

 

형은 아주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아파트 바깥엘 나갔다 왔다. 형이 김태형의 호출로 나간 건 딱 한 달 만이었다. 하지만 형은 조금 과장해서 피 한 방울, 먼지 한 톨 묻히지 않고 돌아왔다. 사실 형의 이마에 찢어진 자국이 있어서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나는 형을 내 방에 앉혀두고 연고와 밴드를 찾아 서랍을 뒤졌다. 

 

형은 열여섯 겨울에 여길, 그러니까 아파트엘 처음 들어왔고, 그때 나는 열넷이었다. 그때는 정국이도 태형이도 없었다. 아주 옛날이었다. 마담이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줬고, 우리는 그 좁은 방에서 점차 몸을 불렸다. 형은 처음에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닥치는대로 몸을 굴렸었고, 나는…… 나는 형을 따라 다녔다. 

 

나는 형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형이 다치고 오면 약을 발라 줬고, 형이 심심해 하면 노래를 불러 줬다. 또 형이 배고플 땐 주머니에 몰래 넣어 온 음료수나 초콜릿 하나를 형의 손에 쥐어 줬다. 아, 그땐 형의 남동생도 살아 있었다. 형의 남동생과 나는 항상 함께 형을 따라다녔다. 

 

형의 남동생이 오토바이를 타다 죽었고, 그 뒤로 형은 바깥에 나가는 것보다 밥을 했다. 형은 엠피쓰리 소리를 줄여 듣는 버릇이 있었다. 그건 형의 동생이 목소리가 작아서였다. 그리고 형의 동생 자리는 온전한 내 것이 됐다. 형은 동생이 죽던 날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형이 날 평생 지켜 주겠다 한 것도 그날이었다. 

 

형의 찢어진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형이 푸슬푸슬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지만, 사실 형은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엊그제는 형의 친동생의 기일이었다. 

 

 

 

3. 

 

오랜만에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살금살금 문을 열고 걸어나와 형의 뒤로 걸어갔다. 형은 이어폰을 귀에 끼고 있었다. 나는 나지막이 형을 불렀다. 혀엉. 늘어지는 내 목소리에 형이 뒤를 돌아봤다. 일어났어? 형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뒤에서 빼냈다. 

 

형. 

응, 윤기야. 

그냥 불러 봤어.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깼어? 

그러게. 

 

형이 싱긋 웃으며 다시 칼을 쥐었다. 채소를 써는 손길이 어쩐지 징그러워 나는 한쪽에 마련해 둔 식탁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형, 나 밖에 나가고 싶어. 응? 밖에 나가고 싶다구. 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채소를 마저 썰고 나서, 형은 양파 향이 진동하는 손으로 내 뺨을 감싸고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 말 제발 하지 마. 

그치만 나가고 싶은데. 

시간 나면 형이랑 같이 나가자. 응? 

으응, 마담한테는 형이 말해 줘. 

알았어. 

 

형은 가끔 놀라울만큼 약한 모습을 보였다. 보통은 누군가를 잃을 지도 모를 상황에였고 그렇지 않으면 이미 잃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형은 한참 동안 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도마 앞에 섰다. 혼자서는 나가지 마, 윤기야. 형의 눈동자가 파랬다. 형은 나를 등지고 서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볼 수 없어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4. 

 

정국이가 어제 태형이 차 키를 훔쳐서 내 방에 찾아와서, 정국이랑 둘이서 밖에 나갔다 왔어. 같이 밥도 먹었고 커피도 마셨어. 그리구 다시 아파트에 돌아와서는 내가 정국이 것도 빨아 줬구……. 형? 

이 씨발 년. 

 

형은 손이 컸고, 힘이 셌다. 형의 손바닥이 내 뺨을 강타했다.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지만, 맞은 뺨이 얼얼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미친 년. 너 지금 그게 자랑이야? 형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나를 다그쳤다. 다시 한 번 형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넌 정말……. 

……. 

답이 안 나오는, 

……. 

썅년이야. 

 

형은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내 뺨을 몇 번이나 내리쳤다. 형은 말하면서도 눈가를 떨었다. 형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져내렸다. 형은 충혈된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이내 주저앉았다. 나는 형에게 너무 미안해져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형의 목을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 

씨발. 

형…….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 

나는 네가 미안해져야 할 이 상황이 너무 좆같아. 

 

형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5. 

 

형, 우리 둘이 같이 나오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어, 그러네. 

사실은 말이야. 

응. 

형이랑 둘이 너무 나오고 싶었어. 

 

형은 내 말에 대답은 않고 웃었다. 한참을 걷다 형이 내게 물었다. 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형이 좋아서? 형은 그 말에 또 웃었다. 형은 내가 싫어? 응, 아주 잠깐 싫었었는데 이젠 안 싫어. 그럼 내가 좋아? 응, 좋아. 네가 잠깐 싫었을 때 빼곤 항상 좋았어. 형은 대답을 마치고 머쓱한지 주머니에 손을 쑥 넣었다. 

 

형, 그런데 있잖아. 

응, 윤기야. 

형 친동생 말이야. 

으응. 

내가 죽였어. 

 

나는 병을 깨려고 했다. 깨고 싶었지만 형은 어쩐지 꿈 속의 사람 같은 파란 눈동자를 하고서 대답했다. 하지만 나한테 동생이라곤 너 뿐인 걸. 나는 그날 내 자신을 한 번 죽였다. 병이 깨져도 뚜껑은 깨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국슙 틈새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여러분 진슙 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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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뷔민 글 올리셨을 때 부터 몰래 몰래 보다가 최근에야 인티 들어왔는데 딱 보이는 게 작가 님 글...♥♥♥ 이제서 댓글 달아요 예전 글도 전부 보고 왔는데 (사실 3일 전 쯤) 작가 님 글 너무 제 취향이에요 담담하고... 표현도 예쁘고... 그러니까 제 말은 님이 제 취향이라고요... 포느로 급하게 덧글 다느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여튼 ㅅ랑해요 ♥♥ 참 커플링 취향도
9년 전
yahwa
앗 감사해요ㅠㅠㅠㅠㅠ 제 글을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ㅇ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사랑해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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