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유학, 을 빙자한 호주 여행.
이때의 나는 이마 위로 흐르는 땀마저도 유쾌했다.
어릴 적에 우리집은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는 집이었다.
단 한번,8살이 되기 엿새 전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아침, 나는 머리 맡에서 어설픈 장식으로 포장되어있는 선물 꾸러미를 발견했다.
물론 안방 화장실 앞에서 포장지를 발견했다던지, 그 전날 점심 시간 전에 아빠 혼자 어딘가를 다녀와서 안방에 틀어박혔다는 사소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꾸러미를 열어보는 그 순간까지도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 선물을 열어보는 순간에는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서 그 시간의 긴장감과 기대감, 따스한 공기마저도 꿀에서 헤엄쳤다.
그리고 나는 호주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 행복의 전조인지 그 누구보다도 감미롭게 음미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함의 절정은 한 소년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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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자 거실에는 리차드와 낯선 소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리차드에게 기타를 배우러 오는 다니엘 스눅스라고 했다.
*리차드는 내가 두달간 머무는 홈스테이집 주인아저씨였다.
“ 좋은 아침, 잘 잤어?”
나는 다니엘의 웃음기 어린 인사에, 내가 지금 하고있을 추레한 몰골이 떠올랐다.
oh,my.
세상에!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달려간 화장실에서 확인한 몰골은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질 지경이었다.
두 눈은 퉁퉁 부어있고, 머리는 봉두난발이 되어 하늘 높은줄 모르고 뻗어있고 얼굴은 밤새 낀 기름기로 번지르르 했다.
정신없이 씻어내고 나니 점차 머리가 맑아져 왔다.
내가 왜 부끄러워했지?
두 달 뿐이지만, 여긴 내 집이잖아!
아침부터 방문한 사람이 문제인거지 자고 일어난 내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냐.
당연하거라고.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안녕, 난 한국에서 왔어. 정이라고 불러줘.”
물론 이 간단한 통명성 이후에 앞집의 찰리 세 자매를 돌보러 가야한다고 얼른 빠져나오기는 했다.
서너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가자 옆 방에 머무는 엠버가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이 집에 좀 더 머물렀으니 알 것 같아 다니엘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묘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배우러 오는 소년이야”
그녀는 또한 덧붙였다.
“착한 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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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줘도, 결국 나는 이방인이다.
이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달뿐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세계는 아주 조그맣게 형성되었는데, 기이하게도 다니엘과 나는 운명처럼 엮어들어갔다.
서로의 관계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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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큼새큼한 우리의 사랑은 무겁지 않다.
서로를 생각하면 눈물이 고이고 가슴 한켠이 먹먹해질만큼 애틋한 어른의 사랑도 아니고, 감정에 취해 앞뒤 가리지 못하는 바보같은 사랑도 아니다.
그렇다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는 사랑처럼 가볍다는 것 또한 아니다.
단지 우리의 사랑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첫사랑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표현하라면, 깨달음을 얻은 수도자라고 조심스레 말하겠다.
너와 함께하면 장대비는 메마른 땅을 촉촉하게 적셔 줄 상쾌한 소나기가 되고, 안개가 내리면 구름을 걷는 기분 같았다.
너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움트는 봄에 피워낸 첫 봉오리 장미가 되었고, 너를 만나면 그 꽃 한 송이를 네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안녕, Pretty?"
너의 장난기 어린 인사로 우리의 만남은 시작한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부끄러워 너를 안기면, 너는 나를 단단히 끌어 안고 발걸음을 옮긴다.
너의 손이 너무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