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한빈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화면 속 좀비를 죽이는 데에만 열중해 있던 지원은 게임기 위를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보았다. 일찍 왔네. 지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빈이 제 목에 감긴 목도리를 풀며 말했다.
“할 일이 생겼어.”
“뭔데?”
“이번 목표는 판도라야.”
“판도라?”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에 들고 있던 게임기를 쇼파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지원은 몸을 돌려 쇼파 등받이 위로 양팔을 올렸다. 엎드리듯 몸을 기댄 지원이 한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뉴스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그 판도라?”
“응.”
“Oh! 난 완전 마음에 드는데.”
지원의 대답에 한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실 웃으며 제 목도리를 식탁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그리곤 바로 옆의 의자를 빼서 몸을 앉혔다. 지원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한빈을 향해 말했다.
“훔치는 거야?”
“아마도.”
“그렇다면 블루 호프는?”
“이걸 하고 찾아도 늦지 않을걸.”
블루 호프에 관한 새로운 정보는 아직 없거든. 한빈의 말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한빈의 뒤로 때 마침 찬우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날씨가 추운 탓에 볼이 조금 붉어진 찬우는 목도리 사이로 입을 푹 파묻고 있었다. 찬우가 하고 있는 하얀색 목도리는 지원이 찬우의 생일 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선물 고르는 센스가 부족한 김지원은 매년 찬우의 생일 때마다 목도리를 선물로 주곤 했다. 덕분에 찬우는 지원을 알게 된 이후로 매년 목도리 걱정은 없었다. 매년 같은 선물만 받다보니 기대는 커녕 이젠 그의 목도리 선물이 지겹기까지 했다.
왔어? 하는 한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온 찬우가 제가 들고 있던 가방을 현관 언저리에 대충 세워두었다. 그리곤 목도리를 풀어 조금 전 한빈이 목도리를 걸어둔 의자 위로 제 목도리를 걸었다.
“판도라를 훔치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한빈의 물음에 그를 잠깐 바라보던 찬우는 한빈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갑자기 판도라는 왜요?”
“찾는 사람이 생겼거든.”
“한국에서요?”
“아니. 중국 쪽.”
“대체 그런 바이어들은 어떻게 알아오는 거에요?”
“쓸데없는 질문 말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나 말해.”
살짝 인상을 쓰고 말해오는 한빈의 말에 찬우가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지금 훔치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티비에서 아주 광고를 하니까?”
“네. 아무래도 지금은 보안도 조금 더 셀테고….”
“그러니까 더 스릴 넘치는 거잖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지원이 씩 웃으며 짧게 입을 열곤 몸을 돌려 쇼파에서 일어섰다. 한빈과 찬우를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 그는 의자가 아닌 식탁 위로 엉덩이를 걸터 앉았다. 덕분에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투명 화분 속의 물이 가볍게 찰랑였다.
“이걸 훔치고나면 분명 뉴스에선 이렇게 방송하느라 바쁠걸. 판도라, 괴도 비아이 일당에게 도둑맞다.”
“그 이름 좀 부르지 마요.”
“뭐 어때. 난 이제 좀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지원의 말에 찬우가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한빈이 킥킥 웃었다.
괴도 비아이 일당. 그 이름은 여기 모인 세 명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었다. 각자의 능력을 합하여 여러 나라의 희귀한 보석을 훔쳐 판매하는 그들은 말하자면 도둑에 가까웠다. 그런 그들의 목표는 사실 하나였다. 세계 최고의 가치를 자랑하는 보석 '블루 호프'. 블루 호프를 찾는 이유는 세 사람 모두 달랐다. 한빈은 아버지의 죽음과 블루 호프가 관련이 있다는 이유였고, 찬우는 돈 때문이었으며, 지원은 단순히 즐거움 때문이었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블루 호프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약 1년 전에 한국에 정착한 그들은 가끔 이렇게 조용할 때면 작은 일을 맡아서 하기도 했다. 그 일들은 주로 한빈이 어마어마한 정보력 속에서 물어오는 것들이었다. 이번에 한빈이 목표로 한 보석은 '판도라'였다. 뉴스에서는 보석 판도라에 관한 이야기로 한창 시끄러웠다. 가장 큰 크기의 판도라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은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한빈이 작은 소리로 틀어진 뉴스를 보며 콧웃음 쳤다.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아주 광고를 하지 그래.
“하죠, 뭐.”
“Great! 판도라가 어디있는지는 알아?”
지원의 물음에 한빈이 제 주머니에 넣어져 있던 종이를 꺼냈다. 여러번 접혀진 종이를 펼치자 은행의 구조가 그림으로 나타나있었다. 테이블 위로 그림을 쭉 펼친 한빈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도는 껌이지.”
밤이 되자 은행 주위의 경비가 한층 더 강화된 듯 했다. 은행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를 걸으며 은행을 주시하던 찬우는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검은 정장의 남자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들의 머릿수를 세던 찬우가 제 옆에서 함께 걷는 지원을 바라보곤 살짝 인상을 썼다.
“이게 뭐에요.”
“뭐가?”
“이게 다 형 때문이잖아요.”
“내가 뭘!”
“대체 경고장 같은 건 왜 보내선.”
찬우의 말에 지원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재밌잖아.”
그 말에 옆에서 검은 가죽 장갑을 손에 끼던 한빈이 어이가 없단 듯 웃으며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치한 경고장 같은 건 형 이름으로 좀 보내란 말야. 왜 보낼 때마다 자꾸 내 이름이야?”
한빈의 말에 지원이 한빈의 어깨를 툭 쳤다.
“비아이라고 쓰는 게 간지나. 그리고 또.”
“그리고?”
“네가 우리 대장이니까?”
참 나. 이럴 때만 대장이지. 한빈이 지원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있다 만나요.”
한참 그들을 관찰하던 찬우는 제 손에 들고있던 검은 가방을 들곤 한빈과 지원을 바라보았다. 한빈은 찬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지원은 그를 향해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보냈다. 지원의 윙크에 찬우가 인상을 팍 썼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은행 맞은편의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먼저 걸음을 옮긴 찬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빈이 지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빈의 시선에 지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 주머니에 있던 껌을 하나 꺼내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한참 우물거리던 지원이 한빈을 바라보며 예쁘게 눈을 접어 웃곤 입으로 작게 풍선을 불었다. 손을 들어 한빈에게 짧게 인사를 한 지원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길 건너편의 은행 입구로 들어온 지원은 손에 든 노트북 가방을 달랑거리며 은행 안으로 들어왔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다른 사람들을 지나쳐 곧장 창구 앞으로 걸어간 그는 빈자리 하나에 몸을 앉혔다. 지원의 맞은 편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여자는 지원을 발견하곤 놀란 듯 그를 향해 물었다.
“388번 고객님?”
“아,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 건가요?”
“네, 고객님. 옆쪽에 놓여진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주셔야 합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이 자리로 올 수 있는 건가요?”
무슨 의미냐는 듯 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여자를 향해 지원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이 제일 예쁘신 거 같아서요. 얘기든 업무든 그쪽이랑 하고 싶은데. 지원의 말에 여자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에 밖에서 대기하던 한빈이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튼 저 놈의 카사노바 성질이 어디 안 가. 가만히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한빈은 '화장실 좀.'하고 자리를 뜨는 지원의 말을 신호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빠르게 세는 게 어딨어?”
“잔말 말고 빨리 시스템 끄기나 해.”
“걱정 마셔.”
웃으며 대답한 지원이 말을 이었다.
“저 여자, 내 눈웃음에 한 방에 넘어온 거 봐. 내가 자기 컴퓨터에 뭘 끼워놓고 온 지도 몰라.”
“그만 좀 꼬셔.”
“선천적으로 타고난 걸 어떡하나.”
“시끄러워.”
“Hey. 어떡하지?”
갑작스러운 지원의 말에 한빈이 순간 멈칫했다. 왜. 걸렸어? 무슨 일 있어?
“I'm starving.”
“Oh, shut up.”
한빈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지원이 킥킥 웃었다.
“들어와.”
지원의 말과 함께 한빈이 몸을 움직여 은행 안으로 들어왔다. 쓰고 있던 비니를 조금 더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다 덮을 만큼 가린 그는 제 움직임을 따라 은행 입구의 CCTV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CCTV가 있으면 뭘 하나. 김지원에게 이렇게 쉽게 다 막혀버릴 거면서. 은행 안으로 들어온 한빈은 뿌옇게 변한 은행 안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이것 또한 지원의 솜씨였다. 화장실에서 피운 연막탄이 새어나온 것이리라. 영문을 모르는 연기에 혼비백산이 된 은행 안에서 한빈은 주위를 한 번 살폈다. 검은 정장의 남자들 또한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에 급한 듯 보였다.
그들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도록 걸음을 재촉한 한빈이 가장 안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한빈이 6층 버튼과 함께 닫기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6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한빈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좌우로 고개를 까닥여 목을 푼 한빈은 찬우의 신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에 끼워둔 이어폰에서 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요.”
찬우의 목소리에 한빈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복도를 향해 살짝 눈만 내민 한빈은 그 곳에 쓰러져 있는 검은 정장의 무리를 발견하곤 피식 웃음을 지었다. 쓰러진 검은 무리들의 목에는 저마다 바늘 같은 것들이 꽂혀있었다. 그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든 한빈은 시멘트로 된 벽들 사이로 작게 난 유리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동그란 구멍을 바라보자 다시 한 번 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찬우의 솜씨는 실로 대단했다. 찬우가 있는 건물은 은행의 바로 맞은편 건물이었다. 옥상의 높이가 금고의 높이와 얼추 비슷한 그 건물에서 찬우는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눴다. 총알 한 방이 처음으로 소리 없이 유리를 통과했다. 구멍을 낸 뒤 그 총알은 바로 옆 벽에 박힌 듯 했다. 갑작스러운 총알의 등장에 우왕좌왕하는 검은 무리들에게 이어서 한 방씩 갈겨준 것 또한 찬우였다.
쓰러진 검은 무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인 한빈이 작게 입을 열었다.
“보안 시스템은 다 껐어?”
한빈의 물음에 지원이 당연하다는 말투로 답했다.
“It's already done, baby.”
한빈이 피식 웃으며 철로 만들어 진 듯한 커다란 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리적거리는 검은 옷의 무리를 한쪽으로 쭉 밀고선 철문을 옆으로 돌려 열었다. 문을 열자 안에는 꽤 커다란 금고가 하나 들어있었다. 그 금고는 한 눈에 보기에도 들고 움직이기 어려울 뿐더러 부술 수도 없어보였다. 한빈이 금고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금고를 향해 다가간 한빈이 금고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철로 만들어진 금고의 차가움이 한빈의 손으로 전해졌다. 한빈이 웃으며 몸을 쪼그려 앉았다. 귀를 금고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댄 채로 금고의 다이얼 위로 손을 올렸다. 눈을 감은 한빈이 금고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드르륵. 드르륵. 따닥. 따닥. 그리고 마지막으로 탁. 몇 번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던 한빈이 씩 웃었다. 이런 금고를 터는 것 쯤은 그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껌이었다.'
한빈이 웃으며 금고의 문을 열었다. 보석함을 기대하며 금고 안을 바라보던 한빈의 표정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금고 안에는 또 다른 금고가 하나 더 있었다. 금고 안의 금고. 심지어 다이얼이 두 개가 존재하는 금고를 바라보던 한빈이 순간 저도 모르게 제 허리춤에 있던 총 위로 손을 올렸다.
“망할 놈의 금고.”
지금 누굴 놀리는 거야? 총을 꺼내 금고를 향해 겨누던 한빈이 이내 정신을 차린 건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제 손에 들려져 있던 총을 다시 허리춤에 채웠다. 귀에서 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왜 그래요?”
“아냐. 아무 것도.”
심호흡을 하듯 숨을 가다듬은 한빈이 다시 몸을 굽혔다. 조금 전보다 더 작고 더 차가운 금고에 귀를 가져다 대고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작은 다이얼을 잡은 그의 손이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드르륵. 드르륵. 딱. 따닥.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작은 다이얼에서 손을 놓은 한빈이 얼마 드러나있지 않은 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리곤 다시 눈을 감고 이번에는 큰 다이얼 위로 손을 올렸다.
처음 금고를 열 때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빈이 눈을 떴다. 입가에 씨익 웃음을 건 한빈이 굽힌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럽게 금고 문을 열자 그 안에는 한빈이 그토록 원하던 보석함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보석함을 향해 손을 뻗은 한빈이 금고 안에서 보석함을 꺼냈다. 보석함을 열자 보이는 검은 파우치에 한빈이 웃으며 말했다.
“get it.”
한빈의 말에 찬우가 네. 하고 곧장 대답했다. 이어서 바비의 대답도 들려왔다. Ok.
한빈은 파우치를 열어 안에 있는 판도라를 확인했다. 목걸이 아래에 달려져 있는 보라색의 보석에서 반사된 빛이 한빈의 눈을 간지럽혔다. 씩 웃으며 판도라를 다시 파우치 안으로 넣은 한빈이 파우치를 제 옷 깊숙한 곳으로 넣었다.
필요없는 보석함은 대충 아무 데나 올려둔 한빈이 몸을 돌렸다. 품에 판도라를 안고 있으니 절로 노래가 나올 것만 같았다.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금고가 있던 방을 나오던 한빈이 순간 멈칫했다. 맞은 편에서 여자 한 명이 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여자는 머리색 또한 검정색이었다. 그와 다르게 피부는 하얀게 꼭 우유만 같았다. 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여자를 한빈이 움직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총은 진짜다. 장전이 되어있는 총을 보며 한빈이 살짝 인상을 썼다.
“움직이지 마.”
“…….”
“움직이면 쏠 거야.”
“…….”
“…판도라는 어디에 있지?”
두 손으로 총을 꼭 잡은 채로 묻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빈이 살짝 웃었다. 마스크에 얼굴이 다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눈이 살짝 접히자 여자가 움찔했다.
“쏠 수 있어?”
“뭐?”
“그럼 쏴.”
한빈의 목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울렸다. 한빈의 말에 총을 잡고 있던 여자의 손이 작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한빈이 피식 웃었다. 이번엔 한빈이 웃는 소리가 마스크 사이로 새어나왔다.
“못 쏘잖아.”
“…….”
“손을 그렇게나 떨고 있으면서.”
웃으며 말을 잇던 한빈이 여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너.”
“……?”
“혹시 저번에 샐리를 훔칠 때에도 본 적이 있었던가?”
한빈의 말에 여자가 살짝 흔들리는 눈으로 한빈을 바라보았다. 한빈은 다시 한 번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맞네. 그 때도 봤던 여자.
한 달 전. 지원이 남긴 유치한 '괴도 비아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그들은 또 다른 바이어의 주문을 해결해준 적이 있었다. 너무 일찍 경고장을 날린 지원 덕분에 어마어마한 보안을 뚫기 힘들었던 그 곳에서 우연히 보았던 여자. 그 때도 이렇게 검은 정장 차림이었는데. 사설 경호업체의 경호원 중 한 명인가? 가드라고 하기엔 너무 약해 보이는데. 경찰인가. 꼬리를 무는 생각에 여자를 바라보던 한빈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한빈이 움직일 때마다 몸을 움찔했다.
“가드? 아니면 형사?”
“…….”
“대답하기 싫은가 보네. 그럼 말고.”
“판도라를 이리 던져.”
“싫어.”
한빈의 답에 여자가 다시 한 번 떨리는 손을 가다듬었다. 한빈의 심장을 정확히 겨눈 여자는 살짝 인상을 쓰곤 한빈에게 말했다.
“마지막 경고야. 이렇게 남의 것을 훔치는 짓은 그만둬.”
그 말에 한빈이 인상을 팍 썼다. 뭐?
“남의 것을 훔쳐?”
“…그래.”
“말은 똑바로 해.”
“…….”
“내가 훔치는 물건 중에 그들의 것이었던 건 단 하나도 없어.”
찡그린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던 한빈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이 부딫혔다. 일렁이는 한빈의 시선에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 인간들도 따지고보면 다들 훔친 거잖아.”
“…….”
“빚 때문이란 핑계로 남의 아버지 유품을 함부로 뺏어가는 건 용납이 돼?”
화를 담은 눈으로 한참을 여자를 바라보던 한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들이 훔친 물건을 다시 훔치는 것 뿐이야.
한빈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고있던 여자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찰나, 바람을 가르는 빠른 소리와 함께 주사 바늘 같은 것이 여자의 목으로 날아와 꽂혔다. 한빈을 바라보던 여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고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여자가 눈을 감는 것을 바라보던 한빈이 인상을 쓰곤 제 귀에 끼워진 마이크에다 대고 말했다.
“늦었잖아.”
“다 철수하고 다시 설치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찬우가 투덜대며 말을 이었다.
“진짜 총알이었으면 그 여잔 벌써 진작에 죽었어요. 죽이는 건 안 된다던 누구 덕분에 마취총으로 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구요.”
한빈은 찬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저를 바라보던 여자의 곁에 선 한빈이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눈을 감고 잠든 이 하얀 여자를 내려다보자 조금 전 서툴게 총을 잡은 모습이 떠올랐다. 두 손을 겹친 채로 팔을 작게 떨며 저를 바라보던 그 모습은 꼭 겁먹은 하얀 토끼같다고 한빈은 생각했다. 토끼. 그러고보니 이 여자는 토끼를 닮은 것도 같다.
“…귀엽네.”
“네?”
“아니야.”
한빈은 저도 모르게 피실 웃음을 흘렸다. 이 와중에 귀엽네, 라니. 잠이 든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재빨리 복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건물 밖으로 나와 조금 전 헤어졌던 그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자 먼저 도착한 찬우가 피실 웃으며 한빈을 맞았다.
“판도라는요?”
찬우의 물음에 제 가슴을 손으로 툭 친 한빈이 웃었다.
“형은?”
지원을 찾는 한빈의 물음에 찬우가 고개를 저었다. 한빈이 아직 제 귀에 끼워진 마이크를 향해 물었다. 형. 어디야? 조금 뒤에 이어폰을 통해 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이거만 좀 하고.”
뭘 한다는 거야? 영문을 모르는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지원이 노트북 가방을 달랑이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피실 피실 웃으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지원을 향해 한빈이 물었다.
“왜 웃어?”
한빈의 물음에 지원이 킥킥 웃으며 답했다.
“그냥. 선물을 하나 주고 왔거든.”
다음 날 뉴스는 판도라와 그들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그들이 오기 전부터 이미 CCTV는 먹통이 되어있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난당한 판도라, 범인은 괴도 비아이 일당, 판도라의 가치, 왜 그들은 판도라를 훔쳤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 없이 방송되었다. 판도라를 방 안 서랍 깊숙한 곳에 넣은 한빈이 만족한다는 웃음을 지으며 방 밖으로 나왔다. 쇼파에 앉아 TV를 바라보는 찬우와 지원은 뉴스를 보면서도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 엉덩이를 붙인 한빈이 옆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왜 웃어?”
“저거 봐요, 형.”
찬우의 말에 티비로 시선을 돌린 한빈은 제 눈을 의심했다. 화면 속에는 가운데 손가락만 들고 있는 손의 그림 아래로 Fuck! 이란 글자가 적혀진 그림이 나오고 있었다. 방송을 위해 모자이크를 했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저건 욕이었다. 저게 뭐냐는 듯 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한빈의 눈길에 지원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선물 하나 주고 왔다고.”
“맙소사. 저거 형이 한 거야?”
“엉.”
“어떻게?”
“뭘 어떻게야. 잘. 알아서. 아주 쉽게. 그 은행 안의 모니터란 모니터엔 다 저게 떴을 거야. 아, 더불어서 티비도.”
지원이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꼴 좋다. 지원의 말에 한빈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
안녕! uriel이에요!
이번 단편은 행동 대장 김한빈, 천재 해커 김지원, 쭉여주는 스나이퍼 정찬우 셋의 이야기입니다! 빙의글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글이긴 해요, 중간에 나오는 여자가 여주이긴 한데 음.. 엄.. 뭐 사실은 그냥 개인적 만족을 위해 쓴 글이에요 여기 나오는 셋 되게 섹시하지 않나요? (은근) 저만 그런가? 흐흐 늘 1인칭 시점으로만 쓰다가 이렇게 색다른 시점으로 써보려니 되게 어색하네요 읽는 제 이쁜이들도 어색하진 않으실런지 ㅠ_ㅠ
중간중간 나오는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셋의 원래 목표는 블루 호프! 그치만 블루 호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없는 지금 그들은 한국에 머무르며 한빈이가 물어오는 일을 처리하고 있음! 이번 목표는 판도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한빈이가 판도라 건을 맡은 이유는 판도라 또한 원래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 천재 해커 지원이가 은행을 뚫어주고! 천재 스나이퍼 찬우가 경호원들 다 피슝피슝 해주고! 날렵한 우리 한빈이가 판도라 캐치! 그리고 김지원 해킹 끝내고 나오던 김에 엿 먹으라고 선물! 뭐 요약하면 이런 글..? (동공지진)
제목 Run and Gun의 의미는 '스타일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경기한다'는 뜻의 농구 용어라고 합니다 *_* 사실 저는 EXO분들의 티저 노래중 하나인 런앤건을 듣고 삘 꽃혀서 쓴 글이기에.. 이렇게 제목으로..★
병원에서 지내면서 시간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몸도 마음도 힘든지라 여유가 잘 없네요 게다가 노트북도 맛이 가고, 멀쩡한 노트북은 동생의 품에 *_* 엉엉.. 힘 없는 누나는 웁니다.. 엉엉엉
아마 몇 일은 글을 못 가지고 올 것 같아요 공지라도 띄울까 하다가 공지를 띄울 만큼 오랜 시간 못 오는 건 아니라서 어찌해야하나 망설이다가 이렇게 글에 적습니다!
2월 10일까지는 아마 못 올 것 같아요 요 몇 일 몸 안 좋다고 자꾸 징징대서 죄송합니다 엉엉 몇 일만 기다려줘요 올 땐 아주 튼튼이로 올게!!! 완전!!! 튼튼해서 놀랄 정도로!!!! 흐흐 ㅎ_ㅎ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추천도! 새삼스레 요새 또 여러분의 추천에 힘을 얻습니다..♡ 헤헤 언제나 사랑해요! 쪽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