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에기벨에 대한 필명 검색 결과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에기벨 전체글ll조회 792l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No Name)

 

 

 

 

 

 

 

때는 겨울이었다. 나는 겨울에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집에만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져서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날씨는 겨울치고 따뜻했다. 평소에 추운 걸 싫어하기에 목도리에 장갑, 모자까지 껴입고는 밖으로 나선 나는 왠지 모르게 민망해졌다. 눈이 햇볕에 녹아간다. 나는 목도리를 풀었다.


예상대로 시내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커플이었다면 믿겠는가? 난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 타입인지라, 그저 둘둘씩 짝을 지어 걷는 모습들이 거슬린다거나 괜히 우울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햇살 참 좋다.’


녹은 눈이 바닥을 적시고, 자국을 만든다. 아직도 나무 곁에 쌓여있는 눈은 날이 완전히 풀리는 봄쯤에야 녹을 것이다. 괜히 높은 굽이 있는 부츠를 신고 나와서 팔이 살짝 아파진 나는 앞에 보이는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생각 없이 앉으려고 했다.


“조심성이 없으시네요.”
“예?”


웬 남자가 손수건을 꺼내들더니 내가 앉으려는 벤치를 슥슥 닦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멀뚱히 그 남자를 쳐다봤다. 금발의 외국인.


“자, 이제 앉으세요!”


벤치를 다 닦더니 그가 꺼낸 말이었다. 웃기게도, 아주 해맑았다. 나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요. 자칫하면 코트가 다 젖을 뻔 했네요.”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자 의외로 수줍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더니 가지도 않고 내 옆에 털썩 앉더니, 그는 자신을 줄리안 퀸타르트라고 소개하면서, 특이한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벨기에 사람이고, 한국에 온지는 7년 정도 됐다고 소개했다. 한국말을 잘하는 듯 서투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는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먼저 말을 꺼낼 만큼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가끔 말하면서 침이 튀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내 착각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래서 프랑스 친구랑 영국 친구랑 싸우는 거예요.”
“아아.”


나는 그의 수다를 받아주는 척,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으로 대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할 때면 지나치게 눈을 마주치려하는 그런 것이 있었다. 그게 벨기에에서는 일종의 ‘예의’겠지만 나는 그것이 익숙지 않아서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내 신발을 슬쩍 쳐다보거나 거리 쪽을 쳐다봤다. 다행히도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말을 이어줬다.

나는 그의 장장, 30분이 넘는 수다를 들으면서 그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주도해서 말을 꺼내는 것보다는 한사람이 주구장창 떠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괜히 오늘은 마음이 울적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슬럼프에 빠져있다. 그래, 오늘은 날씨도 따뜻하고 햇살도 좋고 기분이 좋아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우울해지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 그리고 밀려오는 허탈감. 나는 그것에게 붙잡혀서 내 갈 길을 잃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걸까. 마음만은 세상 다산 사람마냥 공허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감자튀김이라는 것이, 어, 울…울어요? 이거 슬픈 얘기 아닌데…”


그 잠깐 맺힌 눈물을 어떻게 봤는지 바로 말을 멈추고 그가 말했다. 프렌치프라이의 어원을 설명하던 그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당황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입을 꾹 다무는 습관이 있다. 난 그 모습이 사랑스럽고, 그래서 자주 당황시키곤 했다.


“아뇨. 감자튀김 때문에 우는 게 아니에요. 약한 조울증이래요. 괜히 우울해져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아요. 하던 얘기 마저해요.”


가끔은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털어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내 결점을 말해줬으니 이제 그는 수다를 멈추고 떠나지 않을까. 그렇지만 역시나 괜한 기대였다. 그는 떠나기는커녕 더 들러붙었다. 나는 다시 시작된 그의 위로 따위는 듣지 않으면서 나혼자만의 생각 섬으로 떠나버린 뒤였다. 한참을 위로하던 그는 그것을 알아챈 것 같다.

“내말 안 듣고 있죠?”
“네.”
“처음부터 안 들은 거죠?”
“솔직하게, 그래요.”


그는 화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나의 무례함을 받아들였다. 혹시 내가 고백한 병 때문에 이해해주는 것일까. 아, 내 병에 ‘과대망상’을 추가해야 될 것 같다. 나는 확실히, 대부분을 공상을 하며 지낸다.


“…잠깐 같이 걸을까요?”


그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살짝 녹은 땅 때문인지 살짝 비틀거린 나를 그가 잡아주었다. 난 그래도 감사인사를 빼먹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가는 대로 따라 걸으며,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역시 입을 다물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헤어지기 일보직전인 커플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드는 내 생각이 무엇이냐면,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긴 제가 좋아하는 길이에요. 주로 생각을 할 때 이곳에 와서 걷곤 하죠.”


요새는 날씨가 추워서 자주 걷진 않아요. 그가 말한 곳은 한강 옆길이었다. 뭐, 위대한 장소는 아니네.


“지금은 무슨 생각해요?”
“뭘까요? 맞혀 봐요.”


그의 생각에 잠긴 얼굴이 한순간에 장난끼 넘치는 얼굴로 변한다. 나는 말하자면 그의 생각에 잠긴, 진지한 표정이 좋다. 그래, 줄리안 씨는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고향 생각?”
“그거야 매일 하는 생각이죠.”
“헤어진 여자친구?”
“여자친구랑 헤어진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나랑 비슷하니까.”


내 생각에는 당신도 무작정 거리에 나온 것 같거든요.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궁상맞아서, 밖으로 나온 거지. 그는 입꼬리를 삐죽였다. 나는 풀었던 목도리를 다시 맸다. 불지 않던 바람은 강 옆에서 거세게 분다.

헤어진 남자친구는 내가 너무 공상에 빠져산다고 말하곤 했다. 대화에 집중하려고 하면 항상 너는 다른 곳에 있다면서. 마치 허수아비를 앞에 두고 얘기하는 것 같다고. 나는 없는 듯, 너는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마치 인형을 상대하는 것 같다고. 그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귀 기울여 듣는 법을 어떻게 배웠게? 너 덕분이야. 너랑 있으면서 많이 치유됐어. 너 옆에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 모든 걱정들이 훌훌 사라져버려. 너는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야?


“그쪽도 헤어졌어요?”
“그래요.”
“좋게, 아니면 나쁘게?”
“둘 다 아니에요.”


모호한 대답에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헤어졌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신물이 났겠지, 나를 상대하는 것에. 나는 그에게 사랑을 퍼붓지 않았으니까. 그가 주는 사랑에 비해서 내가 주는 것은 너무나도 적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의 잠수를, 잠수로 받았다. 아니, 잠수로 받은 것도 아니다. 평소처럼 지냈다. 나는 평소에도 그에게 ‘무관심’했으니까.

그는 내가 한 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좋게 헤어졌어요.”
“음?”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대화로 풀고, 그날로 헤어졌어요.”


일에 더 집중하고 싶은 자신을 위해서 여자 친구가 떠나줬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헤어진지는 꽤 됐었다. 나는 그가 순정파라는 것에 놀랐던 것 같다. 왠지 얼굴도 꽤 괜찮고, 성격도 좋고, 많은 여자들을 사귀었을 것 같은데. 헤어진 여자 친구를 못잊어서 아파하고 있었다.

그의 밝은 외면과는 다르게 내면은 우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반대다. 그는 우울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서 최대한 포장하고, 나는 겉으로 드러낸다. 그가 누구도 모르는 아픔을 내게 털어놓았다는 것이, 내가 털어놓은 아픔에 대한 보답일까. 그 역시 솔직해지고 있었다.


“여행갈 생각 없어요?”
“배낭여행정도.”
“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영국. 옛날에 생각했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네.”
“왜요?”
“그러기엔 나는 자유롭지 못해요. 가진 짐이 너무나도 많죠. 그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기엔 나는 너무 어려요. 여유도, 기회도 없다, 그런 셈이죠.”


나도 알고 있다. 이게 나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걸.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 억압과 속박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그런 의지조차 없고, 그저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작은 물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다. 사막 한복판 거대한 돌덩이에 짓눌려서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해도, 매일 밤 주어지는 작은 이슬에 만족하며 사는 인생이라는 거다. 내가 돌덩이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사막인건 매한가지다. 나는 도망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너는, 작은 씨앗이다. 작은 이슬을 머금고 자라나서, 황폐한 땅을 거대한 숲으로 바꿔놓는 작은 씨앗이다. 네가 있는 곳은 곧 푸른 숲이 된다. 내가 사막이라면 너는 오아시스다.

그리고 그 작은 오아시스는 나를 바꿔놓았다. 나의 본질부터, 그리고 나의 속성을.


“…같이 떠날래요?”
“어디로요?”
“영국도 좋고. 내 고향도 좋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떤 것이요?”
“벨기에. 가보고 싶어요.”


내뱉어진 나의 말을 듣고 그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우리, 오늘 처음 만난 거 알아요? 글쎄요, 상관없지 않나. 우린 서로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언제 떠날까요? 내일 어때요? 너무 빠르다. 빠를수록 좋아요. 난 당장 떠나고 싶으니까.

어쩌면 내가 파랑새를 잡은 게 아닐까. 소원을 이뤄주는 파랑새. 그의 모습은 오리에 가깝지만 나는 감히 그에게 ‘파랑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나의 멋진 새.

내가 무기력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놓치는 성격은 아니다. 내게 찾아온 기회를 넋 놓고 보내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나의 빠른 추진력에 놀란 듯 했다. 바로 떠나자, 준비된 것 하나 없이. 너와 내가 떠나는 여행.

 

벨기에로, 너의 고향으로, 너의 집 앞으로, 네가 아끼는 아름다운 거리로,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으로,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로, 네가 마시고 즐기던 고즈막히 작은 술집으로, 청춘을 보낸 너의 거리로, 정을 느낄 수 있는 저녁식사 자리로,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옆자리로. 

 

[줄리안빙의글] No Name | 인스티즈

 

 

 

//일반방에도 올렸던 글인데 올려봤습니다.//

//새로 생긴기능에 이름 넣는게 있던데, 이건 1인칭이라 필요없겠죠ㅋㅋㅋ//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9 1억05.01 21:30
      
      
      
      
비정상회담 [단편/줄리안] Code Name : Duck (3)2 에기벨 02.15 15:00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 시즌1 마무리 에필로그 - Season One..3 에기벨 02.09 16:36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10 - 다시 찾아온 평화?4 에기벨 02.09 16:25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9 - 아벨라 정상4 에기벨 02.05 23:15
비정상회담 [줄리안빙의글] No Name 에기벨 02.04 19:28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번외 - 그들의 속사정2 에기벨 02.01 18:48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8 - 서민's 올마이티! (Seomin's A..3 에기벨 01.29 21:41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7 - 탈출6 에기벨 01.27 12:19
비정상회담 [단편/줄리안] Code Name : Duck (2)5 에기벨 01.25 14:57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6 - 추적7 에기벨 01.25 13:54
비정상회담 [단편/줄리안] Code Name : Duck (1)2 에기벨 01.24 22:22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5 - 만물의 어머니5 에기벨 01.24 14:02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4 - 비정상? 남서민?6 에기벨 01.12 17:39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3 - 이게 누구야?7 에기벨 01.08 19:48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2 - 염탐하라!14 에기벨 01.06 17:42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Ep.1 - 인류가 뭐가 나빠?12 에기벨 01.04 18:58
비정상회담 [비담] 가디언즈 워(Guardians War) 프롤로그12 에기벨 01.02 22:32
비정상회담 [줄로줄/다각] 미스핏츠au 썰 28 에기벨 12.17 16:18
비정상회담 [줄리안빙의글] 6 에기벨 12.08 19:05
비정상회담 [줄로줄/다각] 미스핏츠au 썰11 에기벨 12.07 21:53
급상승 게시판 🔥
전체 인기글 l 안내
5/2 18:36 ~ 5/2 18:38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조각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