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지방이라서 애들 대사 다 사투리니까 당황ㄴㄴ)
(그리고 2007년 중학교 1학년부터 2015년 대학생 때까지 이야기가 천천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도경수를 처음 본 2007년 4월, 초등학교를 막 벗어난 아이들이 한 치수 큰 교복을 입고 교실과 복도를 뛰어다닐 때, 14살이었던 녀석과 나는 도서부에서 만났다.
그 때 부터 시작되었다.
한 여름의 더운 교실, 오래된 선풍기 바람에 넘어가는 책장처럼,
느리고 미숙했던 도경수와 나의 관계가.
도서관도경수
나는 적당히 활발하고 잘 웃었다. 교우관계는 넓고 얕게 그 중 몇은 깊게 지냈다. 키가 작았다. 20살이 넘어서도 160대를 넘어서지 못한 키는 꼬맹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머리는 늘 단발이었다. 성격이 그다지 여성스럽지 못했다. 감기 귀찮으니 말리기도 귀찮았다. 덜 마른 머리카락은 늘 교복 어깨자락에 물기를 남겼다.
등교 후 창가 자리에 앉아 부는 샛바람으로 머리를 말렸다. 3, 4월에 분다는 샛바람은 어린 마음을 살랑이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읽는 책을 좋아했다.
도경수는 적당히 조용했다. 중학교 입학 전때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고 했다. 먼 곳에서 전학을 온 것 때문에 적응하지 못해서 조용한 건 아니었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차분했다. 그래서 남녀합반임에도 가깝게 지내는 여자아이가 없었다. 웃기게도 장난끼 많은 반 남자아이들과는 친하게 지냈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도경수는 조용한데 주변이 시끄러웠다. 그래서 적당히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도경수와 복도에서 가끔 마주칠 때마다 옆에 있던 박찬열과 변백현은 경수와 가장 친해보였다. 도경수 옆 박찬열은 고등학교 때까지 나를 좋아했다.
나를 꼬맹이라고 놀리던 박찬열의 목소리는, 마음은. 미성이 저음으로 바뀌는 시간만큼 길고 짙었다. 그리고 나는 바보같게도 그 동안 도경수를 짝사랑했다.
도경수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정도 지난 동아리 활동 때 였다. 도경수는 1학년 1반이었고, 나는 10반이었다. 복도의 끝과 끝. 마주칠 일도 드물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의 국어시간, 국어 담당인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오늘은 수업 대신 동아리 부서를 정하자고 하자 졸린 눈이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선생님이 '축구 동아리 할 사람'이라고 하자 반 남자아이들이 다 손을 들었다. 짝인 남자아이가 미친듯이 손을 흔들었다.
가위바위보로 정해진 축구동아리 선정에서 이긴 짝은 신이나 미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김ㅇㅇ, 니 무슨 동아리 들꺼고?
고음의 신난 목소리가 옆에서 조잘거렸지만 나는 칠판에 써진 부서 이름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독서 동아리랑 도서부 둘 중에 뭐할까..'
"야, 김ㅇㅇ 지금 내 말 안들리나? 니 어디 들거냐니까? 저 보이까 여자도 축구 동아리 있는데?"
"아 김민석 속 시끄럽다. 좀 닥치라."
"헐..ㅇㅇ이 무서웡.."
김민석은 몇 번 더 귀찮게 내 어깨를 찌르다가 반응이 없으니 곧 앞자리 남자애와 떠들기 시작했다.
고민하고 있는데 옆 분단에 앉아있던 은지가 '독서동아리하자.' 라고 속삭였다.
"이제 도서부 할 사람? 도서부는 우리 학교 별관 1층에 도서실있죠? 거기에서 사서선생님 도와서 책 정리하고 하는거에요."
"없어요? 도서부 할 사람? 반마다 한 학생인데?"
아무래도 자리가 하나다보니 혼자 활동하기 싫은 어린 마음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듯 했다. 눈치를 봤다.
은지와 같이 독서 동아리를 하자고 말까지 해놓았는데 신경이 쓰였다. 이상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문학소녀라고 불릴 만큼 책을 끼고 사는 것도 아니고, 입학하고 수업 때를 제외하고는 가본 적도 없는 도서실이 왜이렇게 신경이 쓰인건지.
"그럼 도서부는 나중에 남는 사람이 하기로 하고, 다음은 밴드부 할.."
"선생님. 저 도서부.."
손을 든 나를 보고 은지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수업 끝나고 몇 대 맞자는 생각으로 나는 도서부에 이름을 적었다.
김민석이 갑자기 손을 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니가 책도 읽냐며 놀리기 시작했다. 14살 남자애의 장난은 유치하고 어설펐지만 퍽 재수없었다.
"끄지라 좀. 니 축구하고 땀냄새나는 옷 고대로 내 옆에 앉으면 죽여버린디."
"헐. 맨날 머리도 안말리고 오는게 깨끗한 척 하지마라."
"디질래?"
"김ㅇㅇ..무서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나에게 달려온 은지는 연신 내 등짝을 때렸다.
"니 책 좋아한다캐서 마음에도 없는 독서 동아리 하자 캤더니 도서부? 뭐 도서부? 아 김ㅇㅇ 진짜!"
"아잉.. 니 캐도 종대랑 밴드부 들어갔자나. 함만 봐도 은지야아~"
그렇게 나는 도서부에 들었다.
첫 동아리 활동 날은 한참 샛바람이 불던 2007년 4월 2일이었다.
매주 월요일 5,6교시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2, 3학년 선배들과 같은 학년 도서부 아이들을 처음 보는 날이라 긴장이 됐다.
함께 걷다가 은지와 종대는 3층의 음악실로 향하고 김민석과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별관으로 향하는 길에 핀 벚꽃이 보기 좋았다.
도서실로 가려는데 김민석이 도서부하는 3학년 형을 안다며 나중에 셋이 한 번 보자고 했다.
운동장으로 가볍게 뛰어가는 김민석의 뒷 모습을 보며 어지간히 축구가 좋나보다 싶었다.
작년에 신축했다는 별관의 도서실은 덜마른 페인트 냄새와 책냄새가 같이 났다.
동아리 첫 날이라 그런지 대부분 혼자 서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뭉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은 2학년 아니면 3학년 명찰을 달고 있었다.
수업 시작 종이 침과 동시에 사서선생으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를 도서실 책상에 앉게 한 후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도서부는 초등학교 다닐 때 해본 친구들도 있을거구. 각 학교마다 있는 동아리니까 부담가지지 말구요.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 새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맞죠?"
나긋나긋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도서실을 가득 메웠다. 창가로 따듯한 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축쳐지는 월요일 5교시다 보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다.
"한달에 한 두번정도 점심시간에 빨리 먹구 도서실에 와서 친구들이 책반납, 대출하는거 도와줘야하구요.
그리고 여름, 겨울방학 때도 지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도서실 지킴이도 하구.. 또.."
다들 열심히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는 조용한 분위기에 취해서 조금씩 졸았던 것 같다.
"김ㅇㅇ? 김ㅇㅇ 안왔어?"
한 5분 졸았나, 갑자기 누가 내 등을 가볍게 톡톡 쳐서 화들짝 깨어나니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아리 첫 날부터 잠이 오지? 응? 김ㅇㅇ 나와서 도서부 명찰 받아가요."
그렇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하필 아는 친구가 없어서 더 그랬다. 재빠르게 일어나 명찰을 받는데 선생님이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앞자리에 앉은 선배들이 귀엽다며 웃었다. 애써 웃으며 자리로 돌아오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뒷자리에 앉은, 아까 날 깨워준 아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정신없이 앉아서 뒷자리에 어떤 아이가 앉는지 보지 못했었다. 뒷통수가 동글동글했다.
자리에 앉아서 뒷 쪽으로 돌아볼까하는데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서선생님은 다 받아간 도서부 명찰이 있어야 급식우선권을 받을 수 있으니 잃어버리지말라고 한 후, 점심시간에 도서실을 지킬 순서를 말했다.
" 점심시간에 도서실 지키는건 두 명씩 짝지어서 해요. 늘 하던대로 정할게요. 일학년은 딱 열반이니까,
1반이랑 10반, 2반이랑 9반, 3반이랑 8반, 4반이랑 7반, 5반이랑 6반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보자 2학년은 8반이니까 그렇게 하구.. 또 아이구 3학년은 홀수반이네. 어떡하지?"
선생님과 3학년 선배들이 시간을 조율할 동안 1학년 아이들은 눈치껏 어색해하며 서로의 반을 묻고 있었다.
나도 콘소리로 말을 못하니 양손을 펴서 10을 만들어서 10반임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짝을 찾는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거다..
사서선생님이 짝은 나중에 찾으라며 다시 집중하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어색하게 다시 앞을 보는데 누가 등을 콕콕 찔렀다.
뒷자리 남자애였다. 선생님 때문에 살짝 고개만 돌렸는데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1반이야. 어.. 네가 손 펴고 있는거 방금 봤어."
'헐..그냥 나도 작게 10반이라고 말할 걸 바보같이 손꾸락으로.. '
"어. 아. 어. 알았다."
부끄러워서 그런지 말이 딱딱하게 나왔다. 사서선생님이 몇마디를 더하니 5교시를 마치는 종이 쳤다.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각자 짝 찾아서 같이 앉아있으라고 했다. 민망하게 뒤돌아보니 역시 멍하게 나를 쳐다만 보는 남자애였다.
"어.. 난 김ㅇㅇ. 니는?"
바로 대답하면 될 걸, 녀석은 내 얼굴을 한 번 봤다가 명찰을 봤다가 작게 입을 뗐다.
"난 도경수, 1반."
"어. 안다."
큰 눈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부담스럽게 눈이 컸다.
14살의 도경수는, 솔직히 또래 남자애들보다 작았고 입고 있던 교복이 덩치보다 커서 웃겼다. 보통 이런 남자애들이랑은 말을 어떻게 트더라.
"도경수? 이름은 흔한데 성이 안흔하네."
고개만 끄덕인다. 이게 아니던가.
"내 니 처음 보는데, 니 복도 잘 안돌아댕기나?"
고개만 끄덕인다. 심지어 고개를 숙여버렸다. 뭐지 나랑 말하기 싫은건가.
몇 마디 더 물었지만 반응이 똑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슨, 사춘기 온 여중생 반응 같았다.
"야."
"응?"
거기다가 내 귀에는 어색한 서울말. 응이라니. 순간 응이라고 하는 김민석을 떠올렸다가 토할뻔 했다.
뭐라고 해야 애가 말을 길게 할까. 한참 고민 끝에 내뱉었다.
"니 지금 부끄러워 하는거가?
"..."
'대답이나 뭐 제스쳐 좀..눈만 똥그랗게 뜨면 부담스러운데..'
내 말이 다른 아이들 목소리에 묻혀 사라지고 있을 때 쯤 도경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눈에 들어온 도경수의 귀가 미친듯이 붉은 색이었다.
그게 너무 웃겨서 웃었다.
내 웃음소리에 어쩌면 나보다 덩치가 작았던 14살의 도경수가 안절부절했다.
한참 똥그란 눈을 굴려대다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아..아이다. 부끄러운거아니고 그게 아니고"
"뭐고 니 방금 사투리 썼나?ㅋㅋㅋ"
"아 변백이랑 박찬한테 옮았어 아.."
"사투리가 뭐가 어때서 그카는데 귀엽구만 ㅋㅋㅋ"
이젠 귀가 아니라 얼굴전체가 붉어진 도경수였다.
귀여웠다.
마음에 들었다.
그게 정말 천천히 시작된 너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
도경수 보면 첫사랑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냥 어릴 때 만나서 서로 조금씩 좋아하는 그런 미숙하고 풋풋한 그런 관계를 그려보려했는데
과연 끝까지 잘 이어나갈지 모르겠네요.
중학교 졸업한지가 몇년인데 묘사하려고 하니 어려웠..ㅠㅠ
대사랑 내용 많이 어설플텐데 댓으로 피드백해주면 사랑합니다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