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갱!"
내가 도경수의 별명을 처음 불렀을 때 녀석은 부끄러운지 자신의 뒷목을 쓸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내가 다시 너의 별명을 말했을 때, 너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서투른 너의,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도서관도경수
'됐고 이제 나보면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 걸어라? 약속해라. 어?'
아니나 다를까 도경수는 저 말이 퍽 신경쓰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복도를 지날때면,
나와 눈이 마주친 도경수는
"...!"
"ㅇ..어.."
'말을 해라! 말을!'
딱 저 상태로 굳어있다.
"야 인사를 하라고! 바보냐?"
"ㅎ..안녕."
솔직히 귀엽다.
붉어진 귀하며, 이리저리 굴려대는 큰 눈은.
나와 함께 있다 경수의 인사를 몇 번 받은 김민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지금 설마. 수줍어하는거가? 니보고?"
"그런듯"
"헐"
"뭐"
"니 혹시.. 도경수 좋아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대답없이 웃기만 하면 김민석은 그날 종일 밉게 굴었다.
은지는 내 표정만 봐도 내가 도경수를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알던데, 김민석은 내 대답을 듣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묻곤 했다.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도경수와는 함께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시작한 적이 많았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도경수는 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뱉어냈다.
"어제 체육시간에 피구공으로 장난치다가 쌤한테 걸려서 벌 섰다. 팔 아파."
"무슨 장난?"
"김민석이 자꾸 시비걸잖아. 애한테 공 던지는 시늉만 하는데 그 때 딱 쌤이 봤다. 한 시간 동안 손 들고 있었다 ㅠㅠㅠ"
"김민석이랑 많이 친해?"
"저번에 도서실에 보니까 친해보이던데."
"아닌가?.."
도경수도 김민석처럼 가끔 핀트가 엇나간 질문을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도경수가 그렇게 물을 때를, 나는 기다렸다. 그 순간 간지러운 느낌이 좋았다.
복도를 지나다 도경수를 마주칠 땐, 늘 박찬열이 옆에 있었다.
박찬열은 도경수와 달리 늘 먼저 다가왔다.
"김ㅇㅇ, 어디가냐?"
"나 교무실 가는데."
"도갱이랑 나도 교무실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
"교무실에 왜 가는데?"
"담임이 불러서."
"니 또 졸다가 걸린거 아니가 ㅋㅋㅋ 가끔 수업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니네 반 지나갈 때 보면 맨날 졸든데 ㅋㅋㅋ"
"그걸 왜 봨ㅋㅋㅋㅋㅋㅋ설문지 걷어서 제출하러 가는거다 ㅋㅋㅋ"
"아이고. 김 ㅇㅇ, 맨날 조는 잠탱이에. 키 작은 꼬맹이에 어휴."
그 말에 설문지로 박찬열의 등짝을 때리는데 우리가 한참 떠들 동안 도경수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박찬열은 등짝을 때리던 내 손을 막더니 동시에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간 나는 무심결에 도경수를 쳐다봤다. 조용하던 도경수의 표정이 이상했다.
'??'
"도갱. 표정이 왜 그래. 니가 교무실에 혼나러가냐?"
내 물음에 도경수는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
시간은 빨리 흘렀다.
도경수와는 그대로였다. 학기 초에 조금 친해지나 싶었는데, 여름방학 동안 보지 못하면서 다시 어색해져 버린 관계를 되돌리느라 가을에 애 좀 먹었다.
무슨 남자애가 고작 방학 몇 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2학기 첫 날 내가 어깨를 치며 '도갱!' 하는데 까무러치는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도서부 활동을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는게 다였다.
복도에서 나누는 대화가 더 길만큼, 도서실에서는 경수에게 거의 말을 못 붙였다. 책만 뚫어져라 보는 도경수는 낯설기까지 했다.
박찬열과는 매번 마주칠 때마다 별 이야기를 다하는데 도경수와는 작은 접점조차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게 온전히 박찬열의 배려였다는 걸,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무지했던 나는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도 난 도서부를 했다. 도경수도 그랬다. 다른 점이 생겼다면, 박찬열과 나의 관계였다.
김민석과 은지는 1반, 도경수와 변백현은 3반, 그리고 나와 박찬열, 김종대는 4반이 됐다.
박찬열과 김종대와 함께 있으면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으면 박찬열이 내 손을 떼어냈다.
박찬열은 쉬는 시간마다 내 앞자리에 앉아 놀았다. 주로 박찬열이 말을 하면 내가 답했다.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내 대답이 짧으면 박찬열은 책상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뜬금없이 장난을 치곤 했다.
"와.. 니 손 진짜 작다. 키만 작은 줄 알았더니.."
김민석이 했다면 비속어를 섞어서라도 걷어냈을 말을, 박찬열에게는 하지 못했다.
김민석과는 달리, 박찬열은 진지하게 무언가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박찬열의 손이 또래 아이들보다 크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도경수가 주고받은 말이 기억이 나는 사람이라면, 박찬열은 주고받은 행동이 떠오르는 아이였다.
김민석은 나와 박찬열이 친하게 지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은지는 가끔 내게, 박찬열이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찬열이 직접 고한 적이 없는 마음이었지만 난 불안했다. 도경수는, 여전히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멀어진 건 나와 도경수였다.
도서부 활동 때도 엇갈려서 도경수와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점심 때도 규칙대로 7반의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활동했다.
준면선배도 졸업하고 없는 도서부에 도경수마저 늘 등을 보이니 씁쓸했다.
*
3학년 때 도경수와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는 내 이기적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박찬열과는 다른 반이 되었다.
도서부를 그만두었다. 도경수는 여전히 도서부 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박찬열에게 전해들었다.
박찬열은 내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착각이라는 착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늘 등 뒤에 서 있던 박찬열을, 우린 어리니까 가벼울 것이라는 핑계로 밀어냈다.
도경수와 다시 마주한 때는 한참 시간이 지난, 3학년 말의 도서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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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ㅇㅇ이랑 눈 마주치고 눈치보는 도갱.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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