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아파.. 경수가 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다. 돌아온 자신의 침대가 어색했다. 크리스의 집에 있던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머물었던 자신의 집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낯설어져버렸을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휑하게 비어진 자신의 옆자리를 쳐다봤다. 분명 같이 잠들었던거 같은데 그는 없었다. 꿈이었을까, 그를 만나고 그와 키스하고 섹스하는 것이 모두 꿈이었던걸까.. 그렇다면 너무 잔인한데. 조용히 중얼거린 경수가 덮고 있는 이불을 들어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아.. 작은 탄성과 함께 경수의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가 어쩐지 슬펐다. 배 한쪽에 남아있는 선명한 그의 흔적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아도 없어지지않았다. 그래, 꿈이 아니었어..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경수가 침대에서 발을 내려 자신의 옷장으로 가 속옷과 여벌의 잠옷을 꺼내 불편한 몸으로 주섬주섬 챙겨입기 시작했다. 몸은 깨끗했다. 아마도 그가 씻겨놓고 갔을테지.. 무슨 일이 있길래 자신을 혼자 두고 간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믿음이란게 조금은 생겼기 때문에 자신을 집에 혼자 두고 갔을테지.. 고개를 끄덕인 경수가 문득 찢어질듯 아픈 목에 인상을 찡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익숙한 걸음으로 주방으로 가 냉장고 홈바를 열어 물을 꺼내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의 감촉에도 따끔함이 느껴져 잠시 콜록대다 물을 다시 집어넣고 몸을 돌리는데 경수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놀라움이 번져갔다. " 여기가 네 집이야? 온통 네 향기가 가득하네, 아 아니다. 왠 남자새끼향도 나네. 익숙한걸로.. " " .... 당신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 " 생각이 애기네 아직. 여기 들어오기 쉬워 은근히. " 형이 주변에 타오 붙혀놨다는 소리듣고, 걔 오기전에 재빨리 들어왔지. 고개를 끄덕인 종인이 쇼파에서 일어나 거실 가운데 섰다. 방에 들어갔는데 너 벗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좀 건드려도 볼까 했는데, 그랬다간 진짜 죽을꺼같아서. 피식 웃는 종인의 얼굴에 경수는 뒷걸음질을 쳤다. 경수가 잠깐동안 본 종인은 어렸다. 그러기에 무서웠다. 자신을 어떻게 할지 알기에 그래서 더 무서웠다. 뒷걸음질을 쳐 싱크대에 닿은 경수는 손을 더듬어 수납장 안에 놓여진 식칼을 집어 들었다. 자신은 크리스를 사랑했다. 그러기에 이젠 자신을 지켜야했다. 징그러울정도로 몰아치는 쾌감속에서도 경수는 크리스에게 분명히 약속했다. 같이 가겠다고, 그의 옆에 있겠다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단단히 고쳐잡았다. 가까이 오지마. 경수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종인을 노려봤다. 워워, 진정해. 너 그렇게 해도 나 못 죽여. 씨익 웃는 종인의 얼굴은 장난끼가 가득했다. 종인은 경수가 좋았다. 아무것도 모른단 것처럼 보이는 경수의 하얗고 말간 얼굴이 좋았고 그 안에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탐이 났다. 내 옆에 있어야 돼 저런 물건은. 경수를 보면서 종인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고 또 정말 원했다. 어둠 속에서 조금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칼날이 아름다웠다. 나는 피를 좋아해, 하지만 내 피는 싫어. 종인이 투덜대는 목소리로 손가락을 까딱하자 현관쪽 어둠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그럼 그렇지, 혼자 왔을리가 없지. 경수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세훈아 그냥 저 칼만 떼어놔, 다치면 안되니깐..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의 나이는 꾀나 어려보였다. 타오라는 사람은 언제오는걸까, 바짝 마르는 입안에 침이 고였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 내가 널 지금 데려갈꺼거든? " " 난 그런 생각 한적 없는데 " " 네 의견은 중요하지않아, 내 의견에 의해 넌 움직이는거지 " 미친.. 경수의 입에서 참지못하고 욕이 흘러나왔다.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 종인은 어두웠다. 그 어둠이 바닥을 기어 슬금슬금 경수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돼. 경수가 떨리는 숨을 애써 담담히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않았다. 종인은 어느새 웃던 표정을 감추고 세훈에게 고갯짓을 하자 세훈이 구둣발로 경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경수가 소리지르며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종인의 어둠은 세훈이었던가.. 그를 보면 볼수록 그림자라는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잡아먹힐꺼야.. 경수는 빠르게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를 위협해야 가장 효과적이고 최대한으로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저 어린 늑대는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조용히 중얼거린 경수가 칼 끝을 돌려 눈을 감고 자신의 왼팔을 힘껏 그었다. 아..! 외마디 짧은 비명과 함께 입고 있던 잠옷은 찢어지고 경수의 팔에서 나온 피가 옷을 적시고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무표정으로 다가오던 세훈도 놀랐는지 발걸음을 멈췄고 팔짱을 낀채 경수를 덤덤히 바라보던 종인의 표정엔 놀라움과 헛웃음이 감돌았다. 역시 물건이네.. 머리가 좋아. 종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 다음은 목이야, 내가 못할꺼같아? " " ... 보면 볼수록 탐나네, 너. " " 다음은 목이라고 분명히 경고했어. " 왼팔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억지로 손에 힘을 주려고 해봤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경수는 깊게 숨을 내쉰 뒤 칼을 왼손으로 고쳐잡고 오른손으로 힘을 주어 꾹 쥐었다. 천천히 칼 끝이 경수의 목 끝에 닿았다. 칼 끝이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렸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험했다. 마주친 눈에 다리마저 떨려왔지만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방심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자기 자신이었다. 내 자신을 뺏기면 더 이상 상대 할 수 없으니까, 방심은 최악이었다. " 도대체 내가 가질 수 있는건 뭔데 " 종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말이었다. 종인이 가질 수 있는것,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었다. 그가 가질 수 있는것은 무엇인가. 태어날때부터 종인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자신의 행복, 자신의 안위. 그리고 자신의 모친까지도 포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포기를 해서 결국 종인이 가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형이라는 작자에게 모든 것이 다 돌아갔다. 적어도 아버지라는 인간이 제게 하나만이라도 나눠줄 생각이 있었고 나눠줬다면, 그렇게 도망치듯 영국으로 가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종인을 버렸다. 씨발.. 그 거만하게 자신을 쳐다보던 크리스의 눈빛은 생각하면 할수록 치욕스러웠다. 니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뭐가 잘났는데 나를 이렇게 개무시하는데.. 착한 척 사람 좋은 척 멍청한 척, 종인이 하하 웃고 다녔어도 그 새끼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놈이라는거. 그래서 홍콩본사로 튀려는거겠지. 앞머리를 쓸어올린 종인은 피곤한듯 목을 주물렀다. " 그래서 너라도 가지려고 " " ...... " " 너라도 억지로 가지면 그 새끼 약 존나 오르겠지 " " .... 미친새끼.. " " 나 미친새끼인거 아까 알았잖아, 세훈아 쟤 때려도 되니깐 기절부터 시켜. " 순간이었다. 세훈이 재빨리 달려든 것은.. 경수의 왼손의 상처를 있는 힘껏 치자 칼은 떨어지고 경수를 자빠뜨린 뒤 세훈은 그 위에 올라탔다. 숨이 가파져왔다. 아마도 팔의 상처는 지금 심각할 것이고 제 눈에서는 눈물이 나올거같았다. 이대로 가면 안돼, 그가 날 찾으러 올꺼야.. 억지로 미간에 힘을 주며 정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감겨오는 눈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수의 위에서 세훈이 미소짓고 있었다. 제게 모든 것을 준다 약속한 제 주인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윽코 경수의 눈이 완전히 감기고 세훈의 팔을 긁어대던 따끔함이 없어졌다. 후. 작게 한숨을 쉰 세훈이 경수를 들쳐매려 몸을 일으키는데, 그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종인이 쇼파위로 밀려 넘어졌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세훈은 놀라 뒤를 돌아봤다. 미친.. 작게 중얼거림이 싸늘한 공간을 메아리처럼 오랫동안 맴돌았다. 종인의 목을 잡고 머리 옆에 칼을 들이 댄 타오가 싱그럽게 웃고있었다. " 보아하니 레이디가 시간을 잘 버신거같네, 훌륭하셔. " " 이거부터 좀 떼어주지 " " 저기 보스의 동생님, 지금 당신은 인질이예요. " " ... 내가 시간을 너무 지체했나 " " 그러게 말이야, 보스라면 금방 끝내셨을텐데. 우선은 레이디가 다쳤으니깐 너도 기스 좀 나야지? " 칼을 움켜쥔 커다란 손이 종인의 팔뚝을 부드득 소리와 함께 그었다. 작은 신음조차 나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나고 있었지만 종인은 꿈쩍도 하지않았고 그저 이 순간에도 자신과 크리스를 비교한 타오를 죽일듯이 증오할뿐이었다. 오, 또 독한면은 쏙 빼닮았군.. 고개를 끄덕인 타오가 눈을 돌려 세훈을 바라봤다. 식탁 밑으로 보이는 하얗고 조그만 발의 주인은 레이디겠지.. 장난스럽게 웃고 있던 눈이 어느새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너 당장 레이디 옆에서 떨어져.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그 안에 살기는 전혀 만만하지않았다. 그것을 세훈은 느끼고 있었고 그저 타오에게 잡혀있는 종인의 상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부터 주인을 풀어줘, 바닥에 떨어져있던 칼을 주워 든 세훈의 칼끝이 경수를 향해 있었다. 새벽의 칼날은 아름다웠다. 타오는 지금 레이디의 상처가 몹시나 궁금했다. 그 상처에 따라서 자신이 얼마나 크리스에게 맞을지 계산해야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방긋 웃은 타오가 세훈을 향해 즐거운듯 말을 내뱉었다. " 너 무식하구나 " " 뭐? " " 지금 생각해봐, 레이디가 죽으면 누구 손해일까? " " .... " " 솔직히 우리 보스는 레이디가 없어도 잘 하실분이야, 물론 조금의 분노는 하시겠지. " " .... 씨발 " " 그리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너와 네 주인에게 향해, 그리고 그 뒤엔 죽여달라 발악해도 죽이지않을꺼야. " 살고싶어? 힘을 키우고 싶어? 그럼 닥치고 이 새끼 데리고 꺼져. 타오가 종인의 등을 밀었다. 분한 듯 밀려나서도 숨을 격하게 쉬던 종인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숨을 가다듬은 뒤 발걸음을 옮겨 집안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한참이나 타오를 노려보던 세훈도 칼을 싱크대에 던져 놓은 뒤, 종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빠져나갔어도 한동안 타오는 경계를 늦추지않고 밖을 살폈다. 비로소야 안심이 되었을때 재빠르게 경수의 곁으로가 팔의 상처를 살폈다. 적어도 자르지는 않아도 되겠네. 안도감에 중얼거린 타오가 경수를 업고 집을 걸어나갔다. * * * 손에 붕대를 감은 경수를 크리스는 가만히 쳐다봤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이 사단이 났다. 그마저도 타오를 보내지않았다면 더 커졌을 사건이었다. 크리스의 옆에서 가만히 지키고 서있는 레이와 타오는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않는 자신의 보스를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 상태 " " 다행히 피부에 괴사가 덜해 자를 정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 " ... " " 다만, 신경을 건드린 탓에.. 평생, 손을 절으실지도.. " 크리스는 가만히 경수의 왼손을 응시했다. 자신의 목에 감겨있던 가냘팠던 그 손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저 작은 아이는 왜 자신의 손을 희생했던 것인지, 그 상황에 지금 몹시 화가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경수가 깨어나면 무슨 말로 진정시켜야하는지 그마저도 답답해 무언가를 처참히 밟아버리고 싶었다. 카이는, 어딨어. 가라앉은 목소리가 현기증이 날만큼 잔인함을 품고있었다. 그 뒤로 잠적했습니다, 아마도 중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레이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타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저의 보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였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레이디가 일어나 제 보스를 달래주었으면 좋겠것만 그 눈은 굳게 닫혀있었다. 변백현한테 말해서 그 새끼 뒤에 누가 있는지, 뭐하는 새끼인지 자세하게 알아보라고 해. 빨리..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억누르는 목소리가 단호했다. 고개를 숙인 레이와 타오가 몸을 돌려 재빨리 방안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타오의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단도가 박혔다. " 실수는 용서치않아, 그건 너희가 더 잘 알고있겠지. " " .... 예, 보스. " " 슬슬 경수의 주변정리를 시작해, 흔적따윈 남기지마. " 옆에 박혀있던 단도를 뽑아들고 고개를 숙인 타오와 레이가 방안을 빠져나가자 크리스의 경수의 옆에 앉아 머리를 쓸어넘겼다. 피를 많이 흘린탓에 하얀 피부가 창백해졌다. 마치 시체처럼.. 가슴속의 답답함에 크리스가 경수를 안아 자신의 품에 기대게했다. 작은 어깨가 처음봤을때와는 다르게 좀 마른거같아 눈을 뜬다면 밥부터 먹여야겠다 생각했다. 경수는 아쉽게도 한국에서 변호사가 될 수 없었다. 자신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를 해야하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경수가 꿈마저 잃게 되도 자신의 곁에 있어줄지 그것이 이제껏 느껴본적도 없는 두려움을 주었다. 가만히 한숨을 쉰 크리스가 다 맞은 링겔바늘을 경수의 손목에서 빼내 협탁위에 두었다. 그 순간, 크리스의 품인걸 알기라도 하듯이 경수의 팔이 크리스의 허리에 감아들었고 굳게 닫혀 떠지지않을꺼 같았던 눈이 느릿하게 뜨여졌다. 가만히 경수만 바라보던 크리스가 놀라 경수의 볼을 쓰다듬었고 눈을 떠 크리스의 존재를 확인한 경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울지말란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뒤에는 더 울게될지 몰라 그저 감싸 안아주고싶었다. " 얼마나...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 " 미안.. 미안하다.. " " 얼마나 기다렸는데.. 왜 늦었어요.. " 미안해.. 그저 경수를 좀더 꽉 안고 뒷머리를 쓰다듬어주기만했다. 크리스의 품에 안겨 가만히 기대있던 경수가 자신의 다친 왼손을 꽉 쥐었다가 폈다. 그 순간 바들바들 떨리는 팔에 눈이 크게 뜨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돼.. 믿을 수 없다는듯이 경수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떨리는 손을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덜덜 떨려오는 손은 애석하게도 경수의 바램을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다. 거짓말.. 아냐... 크리스의 품에서 화들짝 놀라 떨어져 나온 경수가 그를 바라보며 숨을 가프게 쉬었다. 그리고 이내 엉엉 우는 소리까지 내며 크리스의 품에 안겨 울었다. 꺽꺽거리며 숨이 넘어갈듯 우는 경수를 향해 크리스는 그저 이마에 입을 맞춰줄수밖에 없었다. 불쌍한 내 아이, 너는 이 상황을 이겨내고 내 옆에 설 수 있을까.. 크리스는 경수가 스스로 이 혼돈을 이기지못하고 무너질까 모든 것에 분노가 일었고 어떤면으로는 냉정하게 가슴이 식기도 했다. 경수야, 진정해. 이젠 울다가 정신마저도 놓을꺼같아 크리스가 경수의 볼을 감싸쥐고 눈을 마주쳤다. 눈물때문에 흐릿해진 눈동자에서 크리스는 분노를 읽었다. 그래 너도 화가 나겠지 그리고 이 상황을 믿고싶지않겠지.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살살 쓸어주자 경수가 훌쩍거림을 곧 멈추고는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 내 팔.. 내 팔, 왜 이래요? " " .... " " 이제 못써요? 나 이상해진거야? " " 우선.. 진정하고.. " " 어떻게 진정해.. 이 상황에서 당신은 진정이 되요? " " 그렇지만 경수야 이건.. " 니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야, 네가 날 선택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단호하게 경수의 눈을 바라보며 크리스가 대답했다. 잔인한 말이겠지만 이 말은 그래도 자신의 곁에 있겠냐는 선택을 의미하기도 했다. 경수에게 말하기 어려운듯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크리스가 경수의 손을 꽉 잡았다. " 내 옆에 있으면 이보다 더 심한 일 당해, 아니 운이 좋으면 이게 제일 심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 " " ..... " " 난 너에게 어떤 안전도 확실히 보장해줄수가 없다. 그게 내가 사는 세상의 룰이야. " 경수의 왼손을 들어 크리스가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췄다. 경수 자신도 이미 무슨 선택을 해야할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그리고 이건 시작일뿐이라는 그의 말이 너무나 힘겨웠다. 자신은 그냥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싶을뿐이었는데 내 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상황조차 어려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