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야?"
"항구요."
"배타게?'
"싫어요?"
나는 해산물에 극심한 알레르기가 있어서 비린내만 맡아도 죽을지경이라 바다 자체를 별로 안좋아하거든....
그래서 배도 지금까지 한번도 안탔어...
그걸 말해야되나...
"저기..."
"표 끊어왔어요. 가요"
"나 배를 못타..."
결국 말을 했지. 말하는 와중에도 바다냄새때문에 속이 울컥울컥거려서 꽤나 고생했지 뭐야.
속이 답답하기도 했고, 뭔가 김태형씨한테 죄짓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몰랐어요 선배..."
"말을 안했으니ㄲ..우리 빨리 다른데로 가자"
차에 타고, 한동안 정적이었는데, 진짜 이렇게 맘놓고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핑계를 대고 놀러가지 않기로 결심했어.
"정국아..나 속이 너무 안좋네..놀러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자."
"아...오늘이 기회였는데..."
"미안해..나도 이렇게 온 거 놀고 싶었는데...지금 컨디션이 말이 아니야.."
"알았어요. 선배 집 내비에 찍어요."
차는 출발했고, 나는 잠들었어.
꽤 지나고나서 눈을 떠보니 집 앞이더라구.
"선배 몸은 좀 어때요?"
"어..조금 나아진 것 같아. 데려다줘서 고마워"
"미안해요. 앞으론 조심해야겠다"
"그래. 너도 잘 들어가"
인사를 마치고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전정국이랑 있었던거야?"
"..!!김태형씨!!"
"전정국...한달만 참으라니까 진짜 딱 한달만에 들이대네"
"아무것도 안했어요 우리."
"집착하려는거 아니니까 변명 안해도 돼"
"....네"
"놀러와도 된다고 해서 놀러왔는데 보지 말아야 할 것만 보고 가는 느낌이 드네"
"같이 올라가요"
"아니. 오늘은 같이 놀 기분이 아니야"
김태형씨가 훌쩍 가버렸어..쒯..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어쩐지...
김태형씨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따라가면 되지.
"같이 가요!"
"그럼 빨리 와요. 놀게"
난 또 좋다고 금세 졸래졸래 따라갔어.
오랜만에 또 설레는 거 있지.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밤이 될 때까지 정말 이것저것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행복하게 놀고나서 김태형씨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커피 마시고 갈래요?"
이대로 보내기가 좀 아쉬워서 불러세웠지.
난 사실 김태형씨가 거절할 줄 알았는데 웬걸?
"좋아요."
바로 승낙을 하더니 나한테 문을 열라고 재촉했고, 나는 도어락을 풀었지.
"커피는 그냥 믹스커피 타드릴게요"
"그래요"
서둘러 커피를 타서 거실로 가져와 대접했고, 옆에 나란히 앉았어.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김태형씨한테는 묘한 살냄새가 있어서 옆에 있으면 되게 기분이 편해지거든.
그래서 커피를 홀짝이면서 우리 둘이 OCN에서 나오는 영화를 봤어.
"아...졸리다..."
"영화 다 보셨으니까 이제 가요~"
"잘 자"
정말 뻔뻔하게도 소파에서 김태형씨가 잠들어버렸어. 그래서 완전 누울 수 있게 눕히고, 방에서 두툼한 이불이랑 베개를 가지고 와서 편하게 자도록 도와줬어.
그리고 나는 내 방 침대에 가서 일기를 쓰고 잤지.
밤에 뭔 일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으흠흠..) 아무 일도 없었어 ㅋㅋㅋㅋㅋㅋ
내가 김태형씨보다 늦게 잤는데 왜 눈이 더 일찍 떠졌지?
암튼 1년에 몇 번 없는 일인데 되게 일찍 일어나졌길래 김태형씨 아침이나 차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났지.
대충 식빵을 토스터기에 넣어놓고, 베이컨이랑 계란후라이 몇 개 부쳐놓은 다음에 김태형씨를 깨우러 갔어.
"물..."
김태형씨의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아침에 일어나면 꼭 물을 한 잔씩 마신다는 거야.
피부비결이니 뭐니 하는데, 아침마다 그 물을 가져다주는 나는 참 고역이었다고...
근데 또 시켜 이놈의 김태형씨.
"갖다 마시지?"
"...우우웅"
"후..."
저런 앙탈은 누구한테 배운걸까?
결국 나는 갖다줬지. 한 컵 아주 가~득 떠서.
"나와서 아침 먹어요. 내가 의리로 만들어 준거니까 다 먹고."
김태형씨가 꾸물꾸물 일어나더니 정말 다 먹었어.
원래 되게 안 먹는 사람인데도.
"어제 커피만 마시고 가기로 했으면서!"
"원래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거예요."
"뭐라구요?"
"장~난~"
"....이제 빨리 가요. 어머님 아버님 걱정하시겠다."
"혼자 사는 거. 외롭지."
김태형씨가 무심하게 툭 내던졌는데, 식기를 치우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서, 대답을 안했어.
"부르면 항상 옆에 있을게. 너무 외로워하지 마."
너무 울고 싶고, 또 안기고 싶었는데, 김태형씨가 그런 말을 해줘서, 근데 나는 이제 김태형씨의 그 무엇도 아니니까.
기대면 짐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너무 깊이 박혀버려서.
그래서 차마 뒤돌지도 못하고, 고개숙여서 눈물만 뚝뚝 흘렸어.
그런데 그 때,
"그렇게 울면, 내가 어떻게 집에 가"
뒤돌아 서있던 나를 돌리더니 그렇게 말하면서 꼭 안아주는데 근 한 달간 애써 웃고, 애써 참아왔던 모든 것이 다 와르르 무너져내렸어.
"흐흑....나...나 진짜 힘들어요...내가...흑...."
그동안의 내 마음을 더듬더듬 말해나가는데 끄덕거리면서 눈물도 닦아주고 끝까지 들어줬어.
"잘 이겨냈어요. 많이 힘들었을거잖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어떤 사람이건,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마워했겠지만, 그 사람이 김태형씨라는 것에 대해 하늘에게도 감사하고 있어.
물론 하늘에겐 감사 반 원망 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