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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민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저를 찾아오셨다구요?



...어디서부터 이야기 할까요, 아무래도 처음부터 들으시는 것이 편하시겠지요. 



사내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날 때부터 고아였던 아이를 서커스단 단장이 데려다 키웠는데, 다른 데에는 영 관심이 없던 흥민이 유독 관심을 보이던 것이 줄타기였습니다. 흥민이 어느정도 자라자 단장은 그에게 줄을 타는 법을 가르쳤고 오래지 않아 흥민은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느 줄광대들보다 줄을 높게 매어 탔는데 그 걸음이 마치 땅 위에서 걷는 듯 여유롭고 흔들림이 없어 보는 이들마다 그의 솜씨를 칭찬했습니다. 허나, 흥민은 다른 줄광대들처럼 잔재주나 묘기를 부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줄 위에서 보여주는 것은 단지 줄 위를 걸어서 줄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커스단을 찾는 구경꾼들 중 절반이 흥민을 보러 오는 이들이었지만 단장은 항상 그의 줄타기를 못마땅해했습니다. 줄 위를 걸어가기만 하는 것은 시시하고 지루하다고, 구경꾼들은 좀 더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그를 재촉하고 닦달했지요. 그러나 흥민은 아무 말 없이 단장의 말을 듣기만 했고 그 다음날이 되면 역시나 전날과 같이 줄 위를 걸었습니다.




"줄 위에서 다른 묘기를 부릴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구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잠시 후에 이야기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내내 쥐고있어 구김이 간 바지를 매만져 피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우리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다 춘천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흥민이 줄을 타고 내려오던 어느날 그에게는 꽃다발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꽃다발을 흥민에게 전해준 사람이 이르길, 어떤 여자가 그에게 건네 달라고 했다더군요.
그 당시 흥민은 스물 둘이었지만, 줄에만 신경을 쏟느라 변변한 여자 하나 없었습니다. 꽃다발을 받아든 순간,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흥민에게는 꽃다발이 전해졌지만, 흥민이 줄타기를 마치고 내려오기 직전에 가 버렸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흥민이 그 여자가 누군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일겁니다. 그의 성격탓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저를 비롯하여 오랫동안 흥민을 알고 지내던 이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흥민이 그 여자와 만날 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을까요, 그 여자를 만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흥민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더냐며 우리는 농을 던졌고 흥민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전해지는 꽃다발이 쌓여갈수록 그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흥민에게 그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대답했냐구요?






-그녀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내가 아니라...나의 줄타는 모습을 사랑했습니다.






...결코 내가 아니었어요. 말을 끝맺던 그의 표정은 제가 이때까지 그와 수세월을 함께 해 오면서 처음 봤던 표정이었습니다. 



그 때 부터 였을겁니다. 흥민이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던 것은.

그날 이후로 그는 더더욱 줄타기에 몰두했습니다. 밥도, 잠도 뿌리치고 거의 온종일을 줄에만 붙어 보냈습니다. 그러다 쓰러진다며 만류하던 동료들의 손짓도 뿌리치고 그는 줄을 탔습니다. 저는 달라진 그의 모습을 불안해 했지만, 관중들과 단장은 새로운 묘기를 보이는 흥민에게 열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천정의 포장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영문도 모르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항상 줄을 매던 아이가 와서 그러더군요. 흥민이 평소보다 줄을 더 높여 매달아달라 부탁했다고.


드디어 흥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의 줄타기는...여지껏 제가 본 어느 줄타기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사내는 그 모습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는 온갖 재주를 보였습니다. 줄 위로 튕겨오르는가 하면, 걸터앉아 드러눕기도 하고 뒤로 걷기도 하는 등 마치 원래부터 줄 위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사람들은 흥민의 묘기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어느덧 그의 공연이 절정에 다다랐을때였습니다. 그는,



"줄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사내는 몇번이고 입을 달싹이다 말을 이었다. 어쩌면 실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떨어짐과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한 손으로 줄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그는 고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랬습니다. 암만 장시간 줄을 탄 탓에 지쳤다 한들,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올릴 힘은 있었을 겁니다. 제가 그 생각을 마치고 다시 흥민을 바라봤을때엔, 그가 잡았던 줄을 놓고 바닥으로 떨어진 뒤였습니다.






...아. 한가지를 깜빡했군요. 흥민에게 매번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여자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가느다란 줄 위에서도 자유로웠던 흥민의 모습을 동경했던것이 아닐까..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시거든, 다른 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사내는 처음과 같이 눈을 감았다. 방안은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더보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제목과 내용이라면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이청준의 줄을 읽고 그 내용을 모티브로 쓴 거거든요 ☞☜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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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잘보고가욧!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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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감사합니다ㅎㅎ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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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허류ㅠㅠㅠㅠ대박 금손이다ㅠㅠㅠ전에 글도 방금 읽고 왔는데 그것도 다다달달하고..이것도 진짜 금글..bb신알신 하고 가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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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별것없는 글을 보고 금손이라고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_-*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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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아 진짜 엉엉 자까님 내가 워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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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워더가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쳐봤어욬ㅋㅋㅋ저도..*_*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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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와 대박이다...우와...저 신알신에 암호닉할거에요! 작가님 짱이야ㅠ
-지몽-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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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우와 첫 암호닉!감사합니다 지몽님도 짱짱!!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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