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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슙 첫눈 

 

 

 

 

 

1. 

 

그러니까 그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길거리 공연을 마치고 기타를 챙겨 일어서던 내 옆으로 작은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정말 작고 하얀, 꼭 어린 아이 같은 남자였다. 한참을 쭈뼛거리던 남자는 내가 떠나려 하자 팔을 꼭 붙잡고 나를 불렀다. 저기요! 그런 후 한참의 침묵 끝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노래 잘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또다시 한참 우물쭈물 하던 남자가 내게 물었다. 

 

"그, 다음에 또 오나요?" 

"다음에요? 또 올게요."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또 봬요." 

 

남자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해 보인 후에 자리를 떴는데도 남자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머물렀다. 까만 컨버스 위로 드러난 발목이 시리게 느껴졌다. 

 

 

 

2. 

 

남자를 다시 본 건 그 일주일 후였다. 몰린 인파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남자에게, 공연이 끝난 후 먼저 다가가자 남자가 의아한 빛을 띄었다. 저번에 우리 약속했잖아요. 웃으며 말을 건네자 남자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그쪽 목소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었다. 네? 내가 되묻자 남자가 한숨을 내쉬곤 이어 말했다. 그쪽 목소리는 꼭 자주색 같아요. 남자의 말에 이번엔 내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그쪽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 거에요." 

"자주색이요?" 

"좋은 의미로요." 

 

남자가 신발코 끝으로 땅을 툭툭 찼다. 저기, 혹시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내 말에 남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저는 민윤기에요. 

 

 

 

3. 

 

남자와 나는 커피 한 잔씩을 손에 사 들고 강가 벤치에 앉았다. 그래서 왜 윤기 씨 귀엔 내 노래가 자주색이었을까요? 내 물음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색청이에요. 색청이요? 네. 소리가 눈앞에 나타나는 거에요. 남자가 커피를 손에 쥐고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해가 걸친 강을 한참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그렇게, 예쁜 자주색은 처음 본 거 있죠.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질 정도로. 뒤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도 안 들렸어요." 

"제 목소리가요?" 

"네. 정말로요." 

 

남자는 황홀한 얼굴로 말하곤 빨대를 입에 물었다. 어쩐지 쑥쓰러워 발을 모으자 남자가 머쓱한지 웃음을 터뜨렸다. 

 

 

 

4. 

 

남자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세번째 만남에선 한적한 거리로 가 노래해 주기도 했고, 시끄러운 곳에 있지 못 하는 남자를 위해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 한참이나 대화했다. 남자는 가끔 모자를 쓰기도 했고, 또 목도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까만 컨버스를 신고 나타났다. 있잖아요. 네? 오늘 첫눈이 내린대요. 남자를 마지막으로 본 날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저는 눈이 좋아요. 꼭 피아노 소리 같거든요." 

"저는 말이에요." 

"네?" 

"윤기 씨가 참 좋아요." 

 

남자는 놀란 눈으로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깜빡였다. 몇 마디의 대화 후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며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나가는 남자를 보다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첫눈은 내리지 않았다. 

 

 

 

5. 

 

진짜 첫눈이 내린 건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난 날이었다. 작고 하얀 남자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남자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마지막 곡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던 내 눈에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찼다. 가는 발목이나 컨버스가 딱 남자의 것이라 나는 기타를 어깨에 들쳐메고 남자를 쫓았다. 

 

"저기요!" 

"어, 자주색이다." 

"김성규에요." 

"성규 씨, 오늘 진짜 첫눈이 내린대요." 

 

첫눈 올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날 소원을 빌려고 했어요. 근데 소원을 빌기도 전에 소원이 이루어진 거 있죠. 남자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 소원이 뭐였는데요? 나는 내심 기대하며 물었지만 남자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성규 씨랑 첫눈을 함께 맞는 거요." 

 

남자가 대답하곤 머쓱한지 뺨을 긁적였다. 눈 한 송이가 남자의 컨버스 코 끝에 내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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