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삑-. 경수가 들어오나 보다. 요즘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든다.
왔어? 하고 답을 요구하지 않는, 뻔한 질문도 해보고 이러고 있으니 퇴근한 남편 맞아주는 색시 같다고 실없이 웃어도 본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수.
그의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지나쳐 과자를 두어 봉지 챙겨 거실 한복판에 있는 소파의 중앙에 앉는다. 괜히 서운해져 소파 한 구석에 엉덩이를 걸치는 나. 경수는 딱히 보는 프로를 정해놓지도 않았는지 텔레비전 채널만 계속해서 돌린다. 이 모든 것이 평소와 같지만 평소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경수에게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괜히 서운해지는듯한 마음에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는 데도 나를 보지 않는 경수 탓에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도 못하고 동네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똥개처럼 안절부절못하다 바닥에 앉아 경수가 채널을 열심히 돌리는 텔레비전을 봤다. 9시 뉴스 하는가 보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앵커가 열심히 말을 하더니 화면을 바꿔 연기가 나는 핏자국이 묻어있는 바닥을 보여준다.
투신자살 추정.
저렇게 띄어져 있는 자막을 나지막이 읊어보고 나니 속이 막 답답하다. 조금만 더 참지, 조금만 더 살지. 하고 남일이 아닌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경수도 내 마음과 같은지 비통함이 느껴지는 것 같은 짧은 한숨을 빠르게 내뱉고는 채널을 돌린다. 경수가 열심히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춘 채널은 영화 채널이다. 경수와 내가재작년에 손잡고 갔던 영화관에서 나쵸를 먹자 팝콘을 먹자 싸우다가 둘 다 먹는 걸로 합의를 하고 봤던, 로맨스 코미디 영화가 방영되는 중이다. 나는 나쵸를 좋아하고 경수는 팝콘을 좋아했는데, 어느 땐가부터 경수가 나초만 먹는다. 사랑해서 입맛이 닮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요즘은 나초 하나만 사서 나눠먹는다. 자리는 조금 좁지만.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인 영화인데, 정말 행복하게 끝나는 영화인데 작년에 나는 악역을 맡은 배우가 사형을 받고 죽자 펑펑 울었다. 그때 경수가 어떤 말을 했었더라. 뭘 이런 것 가지고 유난이냐고 질책했던 것 같은데 지금 경수는 숨을 헐떡이며 곧 죽을 듯이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다. 얼른 가서 안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경수가 울음을 닦아내고 끅끅대며 슬리퍼를 신는다. 애써 눈물을 닦은 게 무색하게 금방 또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되었다. 닦아주고 싶다.
보고 있는 내가 더 슬프게 우는 건수에 눈물에 당황해 잠시 멍 때리고 있었더니 경수는 나가고 없다.
싸한 기분이 들어 얼른 경수를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어 낙담했다.
경수가 원래 나를 두고 밖에 나가면 속이 터질 듯이 불안했지만, 오늘은 또 뭔가 달랐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가도 또 불안했다.
경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또 나는 경수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봐야지.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꼭 말해줘야지. 양쪽 볼에 뽀뽀도 한 번씩 해줘야지.
타들어가는 속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제발, 제발 끝없이 되뇌고 아닐 거라고 위안한다.
그리고 그날 밤 경수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춘지 |
나 글 깨나 읽었다. 하시는 분들은 눈치 채셨을 지 모르지만 백현이는 죽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차차 나올테니 마음 편히 봐주시면 돼요. 프롤로그? 같은 글이라 제가 쓰고싶은 부분보다는 내용 전개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별로 제 마음에 차지는 않네요ㅜㅜ 이번 편에서는 오백이들이 영화를 보던 추억을 토대로 쪘고, 앞으로도 물건! 그러니까 텔레비전! 과 같은 물건을 주제로 쓰고싶어요. 아직 부족해서 연재 텀은 짧지 않을 것 같아요ㅜ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쓰시고 구독료 가져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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