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그 이름, 소꿉친구
내가 어렸을 때 당신을 좋아했던 거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사랑은 감추기 어려운 거니까.
-로렌조의 밤-
안녕. 그대는 보고 계실까요. 아아, 오늘따라 추억에 잠기네요. 거리를 살짝 적시고 떠나간 비님 때문일까요, 아니면 먹먹한 이 공기 속에서 유난히 빛을 잃어가는 별님 때문일까요. 확실히 느끼는 건, 비님과 별님 사이에 끼어버린 불쌍한 시간이 갈수록 축 늘어진다는 거예요. 우리의 시간도 불쌍할까요? 이미 추억으로 탈바꿈해 저기 저 깊은 어둠 속에 잠겨버린 시간, 우리가 함께 공존했었던 그 때. ‘우리’라고 칭할 수 있었던 그 날들의 현재. 아, 바람이 부네요. 이 바람에 흩날리는 저의 묶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저희를 감싸고 있던 기억의 굴레도 흩날려 떠돌고 있어요. 우리를 지칭하던 그 고유의 단어들. 서로에게 한 단어 한 단어 속삭이며 해맑은 손장난을 치던 그 시간들. 이제 되돌아 다시금 찾아가보려 합니다.
미친, 정호석. 짧은 욕설을 씹으며 내달렸다. 깨우고 가라니까! 덜 마른 머리카락을 무자비하게 헤집으며 달음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힐끗 내려다 본 결과 지금의 시각은 정확히 7시 57분 24초. 2분 36초 내에 교문을 통과해야한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과 짜증에 아!!!!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뛰는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아, 교문 보인다. 기억도 안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미친 듯이 달렸다. 내 등교역사에 지각이란 사치 따위는 남길 수 없다. 눈에 뵈는 것 없이 교문을 통과하고 난 후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 59분 01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엉망이 된 머리칼을 정리했다. 어느 정도 정리되어 축 가라앉은 머리카락을 살짝 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됨을 느끼곤 몸을 돌려 교문을 바라보았다. 항상 서 있던 선도부와 학주가 없다. 몇 번이고 둘러보아도 등교하는 학생이며 교복을 입은 학생은 저 말곤 보이지 않는다.
“...하. 하..하, 하하하. 하하...”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고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홀드 버튼을 눌렀다. 하얀 바탕이 빛을 내며 띄워지고, 그 화면에 자리한 표기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3월 28일, 토요일.
악!!! 씨발!!!! 욕을 내뱉으며 뒷목을 잡았다. 아오, 내 혈압. 가쁜 숨을 몰아 쉴 겨를도 없이 숨이 턱턱 막혔다. 짜증이 밀려왔다. 토요일이라니. 토요일이라니요. 오오, 신이시여. 얼굴 가득 울상을 짓고선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들지 않았다고 정정해야겠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으니까. 통곡 아닌 대성통곡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을까, 내 허리를 잡아 일으켜 세우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으어억!!!”
“미친, 성이름. 똑바로 좀 서라.”
...아? 귓가에 닿은 익숙한 목소리에 안정을 취하고서 발을 땅에 내딛었다. 안정적인 자세로 서게 되자, 허리를 감쌌던 손이 풀리고 몸이 돌려졌다.
“야, 너 오늘 토요일인데 학교 왜 왔냐?”
교복은 또 왜 입음? 어이없는 눈초리로 나를 흝으며 물어오는 정호석이 보였다. 시팔... 작게 욕을 웅얼거리며 정호석의 멱살을 잡아 흔들어댔다.
“아, 야! 왜 이러는데!! 아, 놓으라고!”
“미친아!!! 어어어어엉어엉 허엏어허어허어허엉 진짜 내가 어어어허어허허ㅓ헝 오늘 시발 진짜 어허허ㅓ헝 학교 오는 날인 줄 알고 어ㅓ엉ㅇ 지각인 줄 알고 엄청 뛰었는데 엉어엉ㅇ”
“...아? 야, 잠시 좀. 놓고, 야, 놓고. 놓고 말하자, 어? 이름아, 응?”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은 호석이 나를 달랬다. 어허허허엉... 울상을 지으며 정호석의 어루달램에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그제서야 숨을 돌린 정호석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곤 내게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등교한거야?”
끄덕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몇 번 끄덕이자 머리 위에 큼지막한 손이 올라와 머리칼을 헤집었다. 근데 내가 안 깨워주고 그냥 학교 가버린 것 같아서 막 욕 했던거고? 또 한 번 끄덕끄덕.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피식 내뱉은 정호석이 두 손으로 내 볼을 꼬집고는 흔들었다.
“야, 내가 너 안 깨워준 적 있었냐. 어제 금요일이라고 좋아했으면서 까먹고 이러는게 어딨어, 응? 아주 그냥 할머니세요, 할머니. 벌써 건망증이야?”
“아브브, 놔!”
그러면서 18살이라고 자꾸 열여덟 남발하지? 욕도 잘 안하던 애가 이래. 욕 하지마, 기집애야. 안 어울려. 내 볼에서 손을 뗀 호석이 손목에서 시계를 확인했다.
“아, 너 그럼 지금 할 것도 없지?”
“...으씨, 아퍼. 할 거 없긴 하지. 왜?”
“나 이번에 대회. 나가는 거 연습, 니가 좀 봐주라.”
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인 정호석이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무용실 가는거야? 응.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그가 계단을 올랐다. 손이 잡힌 채로 정호석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나. 꽉 잡힌 손을 바라보는 내 눈, 그 옆에 자리한 귀는 새빨개져 덩달아 심장도 함께 정신없이 뛰어댔다.
왜, 왜 그런걸까. 이유는 당연했다. 난, 정호석을 좋아하니까.
무용실의 문을 연 정호석이 날 끌어 안으로 밀어넣었다. 무용실의 문이 닫히고, 구석 한 켠에 자리 잡아 앉은 나는 금새 몸을 풀고 있는 정호석을 바라보았다. 빤히 저만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귀가 새빨개져선 음악을 틀었다. 빨라지는 비트와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음악. 자신을 맡기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정호석은 멋있었다. 또 다시 빨개지는 두 귓불을 느끼며 연습에 여념없는 정호석을 바라보았다. 1분, 10분. 그리고 1시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를 바라보던 나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춤에 빠져 즐거운 미소를 짓던 그. 둘 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헐, 시간 빠른 것 봐.”
“그러게. 야, 너 연습 더 하다가 갈거냐?”
“그래야겠지? 일주일 뒤가 대횐데, 마냥 놀고 있을 순 없으니까.”
“으아, 그럼 난 먼저 간다. 끝나고 연락해라.”
“벌써 가게?”
알았어, 잘 가. 도착하면 꼭 문자하고, 칠칠아. 누구보고 칠칠이래. 또 다시 투닥대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선 무용실을 나섰다. 교문을 벗어나고, 집 근처로 다다랐을 때. 두 볼을 부여잡고 훅 쪼그려앉았다.
“...어떡해.”
더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 같아. 터질듯이 붉어진 두 볼이 18살의 설렘을 여과없이 내비춰주었다.
시간은 참 빨랐다. 어느새 나는 22살의 대학생이 되어있었고, 나의 8년지기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의 상대 정호석은 군대에 갔다. 2월 18일, 정호석의 생일. 오늘은, 2월 18일이었다.
오늘도 남다를 것 없는 하루가 흘러갔다. 새내기 때와 같이 여전히 술자리에 소환되었고, 나는 그에 맞게 생글생글 웃으며 선배의 잔을 따랐다.
“이름이는 술을 참 좋아한단 말이야.”
“엄마 아빠 닮아서 그래요, 두 분 다 엄청 주당이시거든요.”
“사회 나가면 이쁨받겠어, 우리 이름이?”
하하, 감사합니다. 눈을 접어 웃으며 선배의 목소리에 답했다. 오늘따라 왠일인지 빠르게 올라오는 취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 오늘 느낌이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거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글와글 복작거리는 술자리를 몰래 빠져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거닐었다. 아, 오랜만에 취했더니 왜 정호석이 생각나냐. 아우우, 정신차리자. 성이름, 정신차려!! 두 볼을 몇 번 톡톡 치곤 고개를 도리질쳤다. 점점 가까워져가는 집에 헤픈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누구지? 가로등을 기대고 선 어두운 그림자가 보여 눈을 찌푸렸다.
“...성이름.”
“...어?”
정호석. 정호석이었다. 당황스러움에 눈을 크게 뜨고서 깜박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야, 넌.”
내 생일인데 술이나 먹고 들어오냐. 좀 빨리 좀 다녀라, 여자애가. 울컥하는 듯 큰 소리를 내려던 정호석이 한숨을 내쉬곤 조곤조곤 말했다. 당황스러움에 어버버거리며 삿대질했다.
“야, 너. 너 군대갔잖아.”
“...나 오늘 제대했어.”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 8년지기 친구라는 게. 아, 씁쓸하다. 친구 잘 못 뒀네, 잘 못 뒀어. 장난스레 한숨을 턱턱 내뱉는 정호석에게 다가가 무지막지하게 안겨버렸다. 당황한 듯 굳어버린 정호석의 품을 파고 들었다.
“야, 생일 축하한다.”
“...어.”
“아, 진짜. 생일은 넌데 왜 내가 선물을 받는 것 같냐.”
“무슨 선물?”
“너, 병신아.”
울먹이며 정호석의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 정호석의 나른해지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정호석이 느껴졌다. 그리웠었다. 너.
“...이름아.”
“응.”
“집에, 이모랑 삼촌 계셔?”
“아니, 1년 전에 귀농할거라고 시골 내려갔어.”
“아, 그럼.”
“...응?”
“가자.”
씩 웃은 정호석이 내 허리를 둘러 안았다. 우리가 들어간 아파트의 6층 불이 켜졌다. 한참 밝은 빛을 내던 방의 불이, 꺼졌다. 밖에선 들리지 않는, 허나 서로의 귓가와 방 안을 가득 울리는. 서로의 속삭임이 달콤했다.
아직 네 마음은 모르겠어. 하지만, 하지만. 너도, 나랑 같았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내가 간직하고 있던 가장 아껴왔던 순정을. 너에게 바칠게.
전 여전히 그 때 그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허나 그 뒤로 우리의 사이가 마냥 딱 그어진 경계선처럼 그저 친구사이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라, 빛을 잃었던 별님께서 아예 운명을 다하셨네요. 허나 새로운 아기별님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전 친구를 잃었지만 사랑을 얻었습니다. 시간을 잃었지만 또 다른 시간을 얻었어요. 당신은 알까요?
내가 어렸을 때 당신을 좋아했던 거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사랑은 감추기 어려운 거니까.
-
어떤 탄이 보고 싶다고 해서 쓴 글. 맘에 들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빠르게 쓰느라 잘 쓰지는 못했어요.
마지막에, 불이 꺼졌다는 건. 무슨 의민지 알고있죠?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써달랬던 탄, 보고 있어요? 어때요, 마음에 드는 것 같나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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