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성찬
찌약 전체글ll조회 1973l

남작의 비밀스런 취미생활 | 인스티즈




 남작은 작은 시골 영지의 주인이었다. 

남작가(家)에서 대를 이어 관리하고 있는 영지에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작은 마을들 뿐이었다.

다른 집안의 영지처럼 비옥한 토지를 가진것도 아니고 광물이 생산되는것도 아니었지만 남작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숨가쁘게 흘러간 하루가 저물어 창 밖의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무실에 앉아 책상에 쌓인 너저분한 서류를 정리하다

순간 어지럼증이 인 남작은 잠시 숨을 멈췄다. 요새들어 남작은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거나 머리가 지끈거리고 울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남작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정지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머리가 울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통증은 더해져 이제는 숨 쉬는 것 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이 통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 어지럼증이 늘 있는 일이 아니라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며 남작은 남은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서류를 검은 가죽끈으로 묶고 남작은 그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번 어지럼증이 찾아오면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기에 서류 정리를 마친 남작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목을 조이는 크라바트를 손가락으로 당겨 느슨하게 만들고 나서 흐트러진 머리를 겨우 붙잡고 있는 리본을 다시 한번 단단하게 묶었다.

한 숨 돌린 남작은 의자를 돌려 등 뒤의 밤하늘을 감상했다. 사실, 감상이랄 것도 없었다. 이미 촛불의 빛에 익숙해진 눈으론 창틀 너머 까맣기만 한 풍경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작은 대강 이정도면 하늘이겠구나 싶은 지점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남작의 가문은 대대로 이 작은 영지의 주인이었다. 딱히 얻을 것도 없고 기대할 것 없는 땅이라 아무도 영지를 욕심내지 않았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덕분에 남작은 남들처럼 권력싸움에 발들이지 않아도 됐다. 비록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이었고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해 줄 하인 몇명만 있으면 남작은 불만스러운 것이 없었다. 호위호식따위엔 애초에 관심이 없어 처음부터 빈털털이인채로 지금까지 살아왔어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니, 사실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바빠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비싼 장서들을 구해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작은 영지의 가난한 영주이나 남작 특유의 다정다감함과 성실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한 때 귀족가의 영애들이 자선이라도 베풀듯 교제를 요청해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영지 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남작은 그 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했고  이런 남작의 행동이 주제넘는 짓이라고 생각한 여자들은 저들끼리 모여 수군대며 남작에 대한 안좋은 소문을 부풀려냈다.  얼마 안 가 남작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기정사실화 되었고 이내 마을의 어린 소년들을 데려가 즐긴다더라, 하는 질탕한 소문까지 돌았다.  물론 그 때도 일하느라 바빴던 남작은 그 소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시간이 꽤 흘러버린 지금에야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나랑 교제해주시겠다고 하시던 그 영애분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멍하니 잡생각을 하던 남작은 결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찌뿌드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정말 아쉬운 것은 몇 권 안되는 책장 속의 책이라고 생각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남작은 책이 너무 좋았다. 좁은 영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질 않으니 책 속의 세상 이야기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커다란 서재를 만들어 밤이고낮이고 책 속에만 파묻혀 있고 싶었지만 당장 품위 유지하기에도 부족한 남작의 재산 현황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꿈이었다. 어떻게든 책을 보고싶어 다른 영지의 남작이며 백작들에게 체면이고 뭐고 다 접어가며 부탁을 했지만 흔쾌히 책을 빌려주던 것도 다 옛날 이야기, 지금은 왠일인지 하나같이 냉담한 태도를 보이며 다시는 편지 보내지 말라는 말을 예의있게 돌려꼬아 답신하는 것이었다. 아. 하고 한숨지으며, 그 편지들을 떠올리니 남작은 침울해지고 말았다. 

남작은 어두운 복도를 초 하나에 의지해 그나마 서재라고 만들어놓은 자신의 소박한 침실을 향해 걸었다. 남작은 침실겸 서재의 나무문을 열고 잠시 환기시킨 다음 끼이-익 하고  비명을 지르는 문을 황급히 닫은 후, 내일은 꼭 기름칠을 하라고 말해두어야 겠구나, 하며 습관적으로 침대 옆 탁상에 올려놓은 낡은 책을 집어들었다. 하도 읽어서 손때가 타고 무명 옷처럼 너덜너덜하게 헤진 표지가 남작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읽고 또 읽어 이미 내용은 눈감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작은 행여나 종이가 다칠까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독서시간이 너무 비싼 초값 때문에 점점 짧아진다는것이 안타까웠지만 일단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에 남작은 이내 티끌만큼 남아있던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일렁거리는 불빛에 남작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것과 반대로 남작은 미동도 않고 눈동자만 굴리며 독서를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책상에 엎드린 채로 세상 모르고 자던 남작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신이 책 위에 얼굴을 기대고 잠들어버렸다는 것을 깨닫자 민망한듯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책상 위에서 책을 주워들어 읽던 부분에 줄을 끼운 후 책장에 꽂아놓고 나서야 밖의 시종에게 들어오란 소리를 했다. 

무슨일이냐고 묻는 남작에게 시종은 흰 봉투를 건네주었다. 멋들어진 문장의 붉은 촛농으로 봉해진 편지였다. 혹시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한 긍정적인 답장이 아닐지,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금방 덮어버렸지만 기쁜 마음에 기분이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꾸벅 인사를 하는 시종에게 어서 나가보라고 손짓을 한 후 필통에서 편지를 뜯는 막대를 들어 정신없이 봉인에 갖다대는 찰나 남작은 뭔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어디서 본 것같은 인장이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주섬주섬 안경을 쓰고 편지를 자세히 살피던 남작은 인장에 공작가의 상징인 사자와 칼이 새겨져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째서 공작가가 나에게 편지를? 

붉게 상기되었던 얼굴이 창백해지고 불안한 마음에 느릿느릿 봉투를 개봉하자 고급 종이에 크게 써진 공작의 이름이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남작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멋들어지게 휘갈긴 글씨를 눈으로 붙잡아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삼키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갔다.

 예상 외로 남작의 지위를 박탈한다던지 영지를 반환하라던지 하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아니라 남작의 안부를 묻는 예의바른 편지였기에 남작은 점점 어리둥절해갔다.

화창한 날씨에서부터 걸리지도 않은 감기에 이르기까지 예의바른 뜬소리만 잔뜩 늘어놓던 편지는 이내 각설하고, 라는 말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갔다.

남작의 취미가 고상하고 어쩌고, 라며 남작을 칭찬하더니 이번에 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책들의 정리가 끝났다며  괜찮다면 공작의 저택에서 함께 독서를 하며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냐는 소리였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남작은 주체할 수 없는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뭔가 석연치 않았던 점은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맘같아선 노래라도 부르며 당장 공작가로 출발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참을성 하나는 예부터 자랑할 만했던 남작은 겨우 펜을 들어 답신을 쓰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고맙고 망극하니 편하실 때에 시간을 잡아 찾아뵙겠노라 하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계속....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독자1
짱이다 다음편원해요ㅠㅠ
10년 전
독자2
우와 글도 잘쓰시네....대다나다..bbbb
10년 전
독자3
세상에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ZE:A 임시완군 대학 자퇴? 한 정확한 이유가 23 하아아아아ㅏ아.. 04.11 20:12
ZE:A [변요한X임시완] 연우 (連雨) 21 김설 03.22 14:00
ZE:A [제국의아이들/임시완] 더 이상의 행복은 없다 00 02.27 15:00
ZE:A [변요한X임시완] 연우 (連雨) 16 김설 02.18 00:15
ZE:A [한석율X장그래] 맞닿음34 율래 01.17 22:04
ZE:A [한석율X장그래] 한 발짝, 성큼24 율래 01.13 22:06
ZE:A [한석율X장그래] 시작25 율래 01.09 22:04
ZE:A [한석율X장그래] 심야 영화15 율래 01.04 21:53
ZE:A [한석율X장그래] 집착, 혹은 질투16 율래 12.19 22:13
ZE:A [한석율X장그래] 열감기15 율래 12.17 21:51
ZE:A [한석율X장그래] 접촉 금지15 율래 12.14 21:44
ZE:A [한석율X장그래] 상사병26 율래 12.12 21:15
ZE:A [하정우x임시완] 제목 없음 3 야하아아 12.07 01:00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6 야하아아 11.26 21:12
ZE:A [카디/오일/김수현x임시완] 성석제 첫사랑6 두루미폴더 03.29 02:36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6 뀨ㅣ뀨ㅣ 03.02 00:08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5 온나 02.13 19:18
ZE:A [퓨전/우지호X임시완] 그때의 너, 그 날의 나12 악당 01.25 03:43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 온나 01.13 18:50
ZE:A [임시완/박경] 회상22 순민민 01.12 20:35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7 온나 01.10 19:07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0 온나 01.08 10:13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7 온나 01.06 17:04
ZE:A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69 미인령 01.04 00:24
ZE:A 남쟈기의 은밀한 취미생활22 찌약 06.05 08:21
ZE:A 남작의 비밀스런 취미생활3 찌약 06.04 06:51
ZE:A 제국의아이들네 10남매; 01 베베과자 08.18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