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느새 해는 어둑 어둑 져 가고, 하늘은 노오란 노을 빛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마당에는 아직 채 식지 않은 가마솥에서 죽이 끓고 있는지 죽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세훈과 한참동안 계단에 붙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가고 있었을 즈음,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이윽고 박찬열이 나왔다. 박찬열은 우리를 발견한 듯 터벅터벅 걸어와 내 옆에 걸터앉았다.
"둘이서 뭐하냐."
"왜, 너 빼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할까 봐?"
"하던지 말던지. 넌 집에 안 가냐?"
"안그래도 가려고. 엄마가 옛날에 남의 집에 오랫동안 있는 거 아니랬거든."
안 가냐는 박찬열의 물음에 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 바지에 뭍은 흙을 털어냈다.
간다고 말하며 둘에게 손을 저어주자, 오세훈이 일어나며 광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더니 자기가 데려다 주겠단다.
밤도 어두워져 가고 괜히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닌가 하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는 자전거를 도로 광에 갖다 놓았다.
대문 앞에 서서 박찬열과 오세훈은 나를 잘 가라며 손을 흔들더니 이내 집으로 들어간다.
곁에 같이 걸어주던 사람이 다 사라지고 나니 마치 서울에서 나 홀로 학원을 가던 생각이 들어 기분이 착하니 가라앉는다.
그땐 친구 엄마들이 내 친구들을 학원으로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는 것이 참 부러웠었다.
우리 엄마는 내 동생 챙기기에만 바빠, 나란 존재에는 관심 한 푼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작은 관심이라도 받아보려고 괜히 아픈 척 하며 아픔을 표해봐도 약국 가서 약이나 사다 먹으라며 만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사라졌었던 우리 엄마.
그래서 인지, 외로운 이 거리에 자그마한 가로등이 무섭지는 않은 것 같다. 내성이라도 생겼는지 말이다.
.
.
.
(세훈 시점)
그 애가 돌아가고 난 뒤 나와 박찬열 둘이만 마당에 덩그러니 남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방 안에서 둘이 담소라도 나누시고 있으시겠지.
박찬열은 대문 밖으로 나가 밖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 앉더니 나보고 얼른 와서 앉으라며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친다.
그래서 옆으로 가 앉자 박찬열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앞을 보고는 씨익- 하고 미소를 짓는다.
![[EXO/오세훈박찬열] 눈이 될까 두려워 영원한 봄이 되어 주었다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214/09dd9f62660db8ffc8797c884ed8969f.png)
"괜찮냐."
다짜고짜 괜찮냐느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쳐다 보자 박찬열을 잠시 나를 보더니 다시 앞을 보며 말한다.
"걔가 너네 집안 사정 알아버린거. 괜찮냐고."
"..."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내 과거를 알던, 우리 집안 사정을 알던.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게 나는 내 과거에 목 메이며 살고 싶진 않았기에, 우리 가족에 대해 알게 되었더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마을 사람이 다 아는걸. 그 아이가 이 마을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 하에 이 마을 소문이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
.
.
때는 내가 일곱 살 정도 였을까.
우리 가족은 꽤나 화목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던 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아버지도 내게 자상한 아버지였고, 언제까지나 내가 존경하던 아버지였다.
그러다가 내 아버지는 한참동안이나 집을 비웠던 걸로 기억한다.
늘 아버지의 밥상 자리는 비워져있었고, 어머니는 말 없이 나와 할머니의 끼니를 챙겨주셨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났으려나, 내가 10살 쯤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다 낡은 거적떼기를 걸치고 우리 집 대문에 발을 들이는 남자를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우리 아버지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기쁜 마음이 부풀어 올라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를 껴안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옛날의 우리 아버지가 아니였다.
내가 아버지를 와락- 끌어 안자, 아버지는 나의 작은 몸을 밀쳐내며 욕을 내뱉었고,
그 후론 나를 볼 때마다 욕설을 내뱉으며 내게 손을 들어올리셨다. 그래서 항상 내 몸 한데 성한 곳 없었고,
마을 아이들은 나를 볼 때면 매일 아버지에게 맞는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방안에 들어와 퍼즐 놀이를 하고 있었을 즈음, 아버지는 어머니와 한참을 싸우시고는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방안으로 들어오시고는 나를 발견하자 마자 어린 내가 받아들이기는 힘든 욕설을 하시며 한참을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론 내가 말을 못 하게 된거고. 의사 선생님 말로는 머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어 벙어리가 된 거라나. 아무튼.
마을 아이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벙어리다! 도망가자~!" 라며 도망치기에 바빴고, 그 중 덩치가 큰 아이들은 나에게 와서 벙어리라는 이유만으로 해코지를 하였다.
그럴 때마다 박찬열은 항상 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에게 해코지 하는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아 주었고,
그런 박찬열에 마음과 몸 어디하나 성할 곳 없었던 나는 많은 의지를 해 왔던 것 같다.
그리하여 팔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팔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벙어리라 아깝다며, 무엇에 쓰겠냐며 쓴 소리를 해왔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항상 웃으며 대해주었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쓸만 하다며, 벙어리여도 뭐 어떻냐며..
의사소통이 불편했던 나는 중학교때부터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자 우리 집 가족들도 하나같이 배우기 시작했고,
내 든든한 버팀목이자 둘도 없는 친구 박찬열도 나를 따라 수화를 배웠다.
그래서 인지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최근들어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하나 생겼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그 아이. 항상 외로워 보였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나도 벙어리라는 내 자신이 그은 선 안에서 항상 외로웠지만 가족들이 있어 극복해 나갈 수 있었지만,
그 아이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이 좁고 좁은 마을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혼자 내려와 작은 집에 혼자 산다.
외롭지는 않으려나.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혹시 내가 벙어리인걸 알고 말 하기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불편하지는 않으려나. 밤낮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어머니가 감자와 고구마를 잔뜩 찌시더니 서울애한테 가져다 주란다.
그 아이 집앞. 밥도 안 해 먹는 건지 연기 한 점 안 보인다.
대문을 똑똑- 두드려보아도 아무 기척이 없길래 실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갔다.
그러자 오 분이 채 안 돼서 나오는 그 아이.
당황한 것 같았다. 하긴. 당황할 만도 하지. 왠 모르는 남자애가 바구니를 들고 서 있으니.
근데 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다. 자꾸 말을 건다 이 여자애.
나보고 감자 좀 같이 먹다 가란다.
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아는건지, 눈치는 챈거 같은데. 별로 꺼려하는 기색이 없는 거 같다.
이 여자애, 더 친해지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어 주변을 멤돌았고, 태어나서 처음 여자애한테 머리끈 선물도 해봤다.
옛날에 어렸을 적 옆집 순이한테 준 선물이라곤 풀 몇가닥 뽑아준 기억밖에 없는데, 머리끈이라니.
나도 참. 뭐하는 짓인가도 싶다가 머리끈을 건네받고는 얼굴이 활짝 펴지는 그 아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이 설렘이라는 건가보다.
할머니가 그 아이에게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빤히 보고 있었나보다.
그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는데, 그 아이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냥 친구 보는 느낌? 왜 쳐다보냐는 듯한 그런 느낌.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다른 사람들은 다 불쌍하다던데.
밥을 다 먹고 사례가 들려 밖으로 나와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는데 그 아이가 따라 나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 아이에게 내 마음을 조금 보여주어 버렸다.
'너 한 테 제 일 먼 저 들 려 주 고 싶 어.'
'내 목 소 리'
미친게 분명하지, 오세훈. 니가 무슨 우리 할머니 보는 드라마 남자 주인공도 아니고. 저런 이야기를 해서는.
그 아이 반응이 궁금하여 그 아이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 저에게 먼저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 기쁜건지 미소를 씨익하고 짓는다.
언제봐도 참 예쁜거 같다. 웃는게 순한 상이라고 해야되나. 보고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그런 웃음.
![[EXO/오세훈박찬열] 눈이 될까 두려워 영원한 봄이 되어 주었다 05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30214/f591478bf0ae9fadb2c699abcb38674b.png)
요즘 들어 부쩍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 잦아진다.
그 아이와 공유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내 일상, 내 생각, 내 마음.
좋아하는 건가.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아직 좋아하는 거라 정의 하긴 이르다.
그냥... 관심? 그래, 관심 정도라고 정의 하자. 좋아하는 건 나중에. 조금, 조금만 더 있다가.
.
.
.
이번화는 주로 세훈이의 시점..? 에서 글이 써진거 같아요.
이번편은 약간 재미가 없으셨을 수 도 있지만, 말을 못하는 세훈이의 생각을 보여드리려고 세훈이의 시점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원래 자유연재 소설이지만, 그래도 1일 1연재 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피곤함이 쌓인 관계로.. ㅠㅠ! 네... 그렇구요!
암호닉은 신청 받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
암호닉
늘봄 / ㅅㅇ사랑♡ / 매일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오세훈박찬열] 눈이 될까 두려워 영원한 봄이 되어 주었다 05 4
10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조인성은 나래바 초대 거절했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