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집이라며. ”
“ ……. ”
“ 집이 아주 화끈하네. ”
X됐다. 단단히 화난듯한 김종대의 말에 신나게 탬버린을 흔들며 춤추던 친구들이 일제히 멈춰섰다. 일시 정지 시켰던 노래는 어느새 아예 꺼져버렸고, 내 친구들을 쏘아보는 김종대의 표정에 자비란 없어보였다. 김민석이 너 걱정하는 거 알아 몰라. 껄렁껄렁하게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빼던 김종대가 노래방 옆 구석에 처박혀 있는 쓰레기통에 그것을 버렸다. 아, 알죠. 알다마다요….
“ 아는 년이 신나게 궁둥이 흔들고 계셨어? ”
“ 오빠, 그거 엄연히 성희롱이…. ”
“ 닥쳐. 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
가자, 가방챙겨서 나와. 파마가발을 쓰고 잠자리 안경을 끼고 있던 친구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다. 미안…, 저녁에 카톡할게…. 사그러드는 목소리로 소근거리자 부동의 자세를 지키고 있던 친구들이 그냥 너네 오빠 데리고 빨리 꺼져달라는 눈길로 날 쳐다봤다. 가방을 들고 방을 나오자 익숙하게 내 가방을 어깨에 걸치던 김종대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짓껄였다.
“ 도대체가. ”
“ ……. ”
“ 형들이 너 같은 걸 왜 이리도 아끼는지 모르겠다. ”
사실 나도 그건 그래.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어 그냥 고개만 주억거리자 나를 힐끔 보던 김종대가 혀를 끌끌 차며 노래방을 나갔다. 그러는 너는 그딴 말 하면서 왜 익숙하게 내 가방 챙겨주는데. 차마 앞에다 대고 하지 못한말이 입안에서만 빙빙 맴돌았다. 아, 좀 빨리 오라고. 느린 걸음으로 김종대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자 중간에 멈춰서던 김종대가 뒤를 돌아보며 내게 성질을 냈다. 저새끼는 꼭 나한테만 지랄이야. 입술을 삐죽이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 야. 너 교카 돈 얼마있냐? ”
“ 어저께 준면오빠가 퇴근길에 충전해줘서 2만원정도 있으려나? ”
“ 잘됐다. 두사람 찍어. ”
뭔 개소리래. 김종대가 들고 있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여전히 내가 왜 네것까지 찍어줘야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휘파람까지 불며 여유롭게 버스를 기다리던 김종대가 뭐 불만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현관문 열자마자 너새끼 안왔다고 나가서 찾아오라고 형들이 하도 닦달하는 바람에 가방 내려놓지도 못하고 바로 나왔는데, 네가, 그런, 내, 수고를, 개, 무시, 하고, 그, 안, 찍어준다는, 듯한, 표정은, 뭐냐. 다이나믹한 김종대의 스토리에 그냥 눈깔고 버스만 기다렸다. 내가 잘못했네.
Ⅱ
집에 오는 길은 어둡고 찼다. 바람이 하도 쌩쌩부는 바람에 앞머리가 집 나가실 정도였다. 눈물을 글썽이며 김종대의 뒤에 숨듯이 기대자 옆에서 잘만걷고 있던 멍충이가 어디갔냐는 듯 두리번대던 김종대가 뒤를 쳐다봤다. 너 뭐하냐? 아주 한심한 것을 본다는 듯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던 김종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바람이 너무 강해…. 어차피 가려지지도 않는데 왜 뒤에서고 지랄이냐며 끝까지 꿍얼거리는 김종대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 야, 어디 아파? ”
“ 아니. ”
“ 약 사다줄까? 아니 집에 약 있으려나? ”
“ 아마 있을 걸ㅡ, 근데 나 안 아프다니까. ”
그 양반들은 네가 아프다고만 하면 매번 약국 다 털어왔던 인간들이니까. 정신상태에 관련된 약도 털어오려나? 진심으로 내 정신상태가 걱정되는지 어디 아픈건 아니냐고 묻는 김종대를 째려보다가 13층에 내려 도어락을 풀고 집에 들어갔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오빠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 어디있었어? 이제껏 나를 찾는다고 개고생한 김종대는 뒷전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오빠들을 보다가 실실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진정하고 옷 좀 갈아 입자, 이 비글같은 인간들아.
“ 야, 소파위에 네 가방 갖고 가. ”
“ 엉. ”
그래도 매너 좋게 숙녀방에 들어올 생각은 않고 두어번 노크하던 김종대가 시크하게 한마디 하고는 사라진듯 조용해졌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가지러 방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내 방 앞에 멀뚱멀뚱 앉아있던 김민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내야, 막내야. 가방을 가지러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따라오던 김민석이 내 머리를 쓰담쓰담 해줬다.
“ 우리 오늘 외식하자. ”
“ 지금? ”
“ 응. ”
“ 지금 저녁 먹기에는 너무 늦었지 않아? 차라리 내일 먹…. ”
는게 낫지않을까라고 말을 하려는데 나를 쏘아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깨갱했다. 그래, 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나 찾으러 돌아다니게 해서 참 미안하게됐수다. 어디 한 번 마음껏 짓껄여보라는 듯한 김종대의 표정에 지금 당장 가도 괜찮을 것 같다며 억지로 웃었다. 그제서야 굶주린 배를 퉁퉁치며 만족하던 김종대가 겉옷을 들고 나온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Ⅲ
“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
“ 으, 응. ”
벌써 20번째 듣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눈물까지 날 지경이였다. 오빠, 이러다가 다 외우게 생겼어. 퇴근하고 바로 오겠다는 준멘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이 쪼르르 식탁에 둥글게 앉아 일제히 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종대가 내 가방을 들어줬던 것 만큼이나 익숙하게 고기를 굽던 김종인이 당연하다는 듯 잘 익은 고기를 제일 처음으로 내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냐? 내 옆에 앉아 젓가락을 입에 물고는 그 모습을 부러운듯 쳐다보던 김종대가 툭하니 내뱉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익은 고기를 김종대의 접시에 올려주자 날카로운 눈매로 김종대를 쳐다보던 김종인이 김종대가 젓가락으로 집기도 전에 내가 올려준 고기를 집어들어 저의 입에 집어넣었다.
“ 아씨, 왜 또 쓸데없는데 질투하고 난리야. ”
“ 고기는 무조건 형님이 먼저다. ”
“ 그럼 얘는 왜 줬는데? ”
“ 우리 집안에 하나뿐인 여자니까. ”
유난히 하나뿐인을 강조하던 김종인이 고기를 굽던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힐끗 나를 쳐다봤다. 그 말에 반박은 하고 싶은데 할말이 없는지 작게 한탄하며 사이다를 원샷하던 김종대가 대뜸 나를 째려봤다. 많이 먹어라, 넌 우리 집안에 하나뿐인 여자니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아프다, 종새야(종대새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기가 익는 걸 빤히 쳐다보고 있던 민석이 휴대폰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받았다.
“ 응, 응. 우리 자주 가는데 있잖아. 아, 알았어. ”
“ 준면오빠야? ”
“ 응. 일때문에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먼저 먹고 있으래. ”
준멘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후드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던 김민석이 본격적으로 먹을 준비를 했다. 야, 너는 고기도 다 안익었는데 그새 사이다 다 마셨냐? 비어있는 사이다병을 보자마자 김종대에게 입술을 씰룩대던 김민석이 이모, 여기 사이다 한 병이요. 라고 크게 말했다. 슬슬 다 익어가는 고기를 골라 내 접시에 담아주던 김종인이 형제들은 알아서 먹으라며 집게를 넘겼다.
“ 와, 존나 치사해서라도 맛있게 먹어야겠다. ”
“ 근데 이거 계산은 누가해? ”
“ ……. ”
“ ……. ”
“ …제일 늦게 오는 준면이형이 하겠지. ”
쿨하게 말하는 김종인 덕택에 덩달아 쿨하게 넘겼다. 그래, 계산은 돈많은 준멘이 하겠지. 접시에 있는 고기를 덜어 상추에 싸서 입에 넣자 미쳐버리겠다는 맛이 이 맛일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건 형제들도 마찬가지인지 다들 말 한마디 없이 고기를 뚝딱뚝딱 맛있게 해치웠다. 우리가 거의 다먹고 나서야 도착한 준멘이 머니폭탄이 가득한 계산서를 들고 좌절했다.
“ 야, 이것들아…. 나는 고기 한 점도 못 먹어봤는데 왜 내가 계산해야 되는건데…. ”
“ 그거야 당연히 형님이 늦었으니까. ”
“ 우리 지갑 안 챙겨왔어. ”
“ 수고해, 오빠. ”
결국 준멘은 고기는 보지 못 한채 8만원 값하는 박하사탕만 우물우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Ⅳ
→ [뭐해?] 변백현
← [외식하고 이제 막 집에 도착했어ㅠㅠ..]
→ [ㅋㅋㅋ아 진짜?ㅋㅋ뭐 먹었는데?] 변백현
← [꼬기꼬기]
→ [나도 먹고싶다.. 꼬기꼬기..] 변백현
← [나중에 같이 먹으러가자! 우리 외식할때마다 자주 가는 고깃집있는데 진짜 와따봉이야]
→ [와, 데이트 신청이얔ㅋㅋㅋ?] 변백현
소파에 뻗자마자 징징 울려대는 진동때문에 휴대폰을 봤더니 2개월 내내 썸만 주구장창타고 있는 변백현의 문자였다.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데 내 다리를 툭툭치던 김민석이 얼굴에 불만을 가득 단 채로 나를 쳐다봤다. 누구랑 문자하는데 그렇게 즐거워? 이시간에? 관심없는 척 리모컨을 돌리고 있던 김종대도 내심 그게 궁금한건지 힐끔힐끔 나를 쳐다봤다.
“ 남자야? 남자냐? ”
“ 에이, 무슨 남자야. ”
“ 하긴. ”
뭔데, 그 반응. 역시 김종새(오타아님ㅋ..)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구나. 어색하게 웃으며 내 앞에 앉아있는 김종대의 머리를 실수인 척 퍽하니 찼다. 악! 짜증을 내며 돌아보는 김종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욕이라도 해주려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거실로 나오는 준멘의 모습에 나중에 보자며 다시 앞을 쳐다봤다. 그런 김종대의 뒷통수에 혓바닥을 쭉 내밀고 있자 내 턱을 툭하니 약하게 치던 준멘이 내 다리를 소파밑으로 내리고 남은 공간에 앉았다.
“ 종인오빠는? ”
“ 아이스크림 심부름 시켰어. ”
“ 오, 웬일로 군소리없이 갔대? ”
“ 용돈준다고 했더니 옷 챙겨입고 나가던데. ”
그럼 그렇지…. 한참 TV채널을 돌리며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김종인이 모자를 벗으며 들어왔다. 설마 이 야밤에 그 모자 쓰고 편의점 갔다온건가. 모자를 벗고나서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털던 김종인이 져지를 벗으며 아이스크림을 테이블위에 올려뒀다. 그냥 아무거나 막 골라왔어. 아, 네꺼는 이거. 너 녹차마루밖에 안 먹잖아. 역시 여동생바보.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 취향까지 꼭 맞춰서 사온 김종인이 친절히 내용물까지 까주며 내게 넘겨줬다. 형아, 나도 까줘. 네가 까먹어 새끼야. 더럽게 왜 달라붙어. 김종대가 달라붙자마자 툭하니 떨궈내던 김종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쓰레기통에 녹차마루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 표정봐라, 김종대. ”
“ 쯧, 또 상처받았네. ”
“ 김종인 매번 저러는거 알면서 왜 그러냐. ”
“ 너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게 더 빠를 것 같아. ”
차가운 김종인의 반응에 익숙하게 저의 아이스크림들을 까먹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꽤나 충격받은 듯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던 김종대가 결국 스스로 껍질을 까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에 정신 팔려서 변백현과 문자를 하고 있던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버리고 나서야 생각난 기억에 손바닥을 짝 치며 소파위에 있는 휴대폰 홀더를 켰다.
→ [ㅋㅋㅋㅋ다음에 내 친구도 소개시켜줄게] 변백현
→ [답이 없네.. 벌써 자?] 변백현
→ [나 심심한데ㅠㅠㅠㅠㅠㅠㅠㅠ] 변백현
→ [자는가보네] 변백현
→ [내일 학교에서 봐] 변백현
누구마음대로 학교에서 보자는거야. 내 뒤에서 들리는 시큰둥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편한 민소매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던 김종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손짓했다. 뭐, 뭘! 휴대폰 줘 봐. 손가락을 까딱하는 김종인의 모습에 TV를 보고 있던 형제들도 뭔 일 인가 싶어 갸우뚱거리며 쳐다봤다. 얘 남자 생긴 거 같아. 담담한 김종인의 말에 펄쩍 날뛴건 김민석이다. 후다닥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효과음을 달고 내 앞까지 오던 김민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배신이라고 소리쳤다.
“ 너 어릴때는 오빠랑 결혼할거라며. ”
“ 내가 언제? ”
“ 와, 배신이다. 배신이야. ”
“ 그땐 어렸을 적 이야기지, 나는 아직 청…. 아나, 오빠! ”
내가 방심하는 사이에 내 손에 꼭 붙들고 있던 휴대폰을 손쉽게 빼내가던 김종인이 휴대폰 홀더를 켜자마자 바로 메세지함에 들어갔다. 와 쉼표 데이트 신청이야 키읔 키읔 키읔 물음표. 아, 그런 내용가지고 그렇게 담담한 목소리로 읽지말라고. 김종인 옆에 꼭 들러붙은 김민석을 보니 진짜 형제긴 형제인가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이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나보다 두배는 더 큰 것 같은 김종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으려 펄쩍펄쩍 뛰자 그 모습을 보고 할배웃음을 짓던 준멘이 껄껄 웃었다.
“ 아이고, 귀여워라. 내새끼. ”
“ 아, 시끄러워. TV소리 안 들리잖아. ”
“ 야 이 새끼야. 볼륨 안 줄여? ”
“ 키읔 키읔 키읔 키읔 다음에 내 친구도 소개시켜줄게 ”
“ 내일 학교에서 봐. …학교에서 봐? 학교에서? 학교? 신성한 학교? ”
“ 장난치냐, 이 새끼 누구야. ”
…내가 이 집안에 태어난 건, 그것도 남자 넷 여자 하나로 태어난 건, 분명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음에 틀림없다.
약간의 ㅅㅣ스콤..ㅎ..
노린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