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곳에 안살지만 가끔씩 고등학생 시절이 어렴풋히 떠오르기도 한다.
나를 만나러 서울까지 오는 친구들도 있고. 이렇게나 내 청소년때의 친구들은 너무나 많은데 너는 꼭 나타나질 않았다.
얼마전 알게된 사람은 너랑 너무나 똑같이 닮아있었지만 너라는 확신도 안들고 내가 아는체 해봤자 너는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100퍼센트 나를 무시할것이 뻔하기에 애초에 그런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시도조차 안해본다.
너는 뭐 잘살고있겠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너의 안부를 물어 볼 생각도 한다. 그만큼 너는, 나의 17살에 매우 파격적인 존재였다.
대구에서 태어나, 수원으로 이사를오고, 유치원을다니고.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 졸업을 했다. 예고를 다니고 싶었지만 예고에다 학원에다 재료 값까지는 충분히 대줄 집 상황이 안됐기 때문에 예술과가 있는 일반계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할짓이 없던 중학교 3학년, 11월의 나는 우연히 다른 구역의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다행히도 그 학교에 붙었다.
물론 처음가는 곳이고 처음엔 적응도 못했지만 착한 아이들 때문에 적응하는것도 편해지고 친구들 무리도 생겼다. 학교의 질이 좋지만은 않은편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내 소원대로 예술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 화장도하고, 친구랑 맛있는것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가 신나게 놀고선 집으로 왔다. 신난 얼굴로 엄마아빠께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러니까,음. 막 대놓고 '우리분위기 이상하다' 가 아닌 그냥 느끼는게 그랬다. 평소랑은 달랐다.
그리고 엄마아빠가 말했다. 그 순간, 진짜 말로만 듣던 망치로 머리를 맞는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진짜 아무생각도 안들고 멍했다.. 아빠는 말했다. 집안 사정이랑, 아빠 회사랑 친척일 때문에 고향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오빠는 대학때문에 수원에 있는다고, 미안하다고 , 괜찮지? 라고 하는 아빠의 말을 듣고선 난 참을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적응도 못해 힘들었던일이랑 예체능반 부터 모든게 다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듯 했다. 그자리에서 큰소리로 오늘 예술과 합격했다고 말했다. 아빠와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시는것 같았다. 나는 참지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베란다 밖으로 여름밤의 차가운 바람이 실실 들어왔다. 오늘따라 추워서 잡은 이불을 더 꽉 쥐었다.
차 밖으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고향집에 들렀다 부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멍하니 팔을 괴고 바깥 풍경만 쳐다봤다. 지금쯤 오빠는 늘어지게 자다가 강의시간에 맞춰 학교에 갈 것이다. 괜히 짜증이 났다. 다행히 학교는 전과 같이 예술과가 있는곳으로 전학가게되었지만, 낯설은것은 변할수 없다. 바다위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1시간 쯔음 차를 타고 내렸다. 부산의 날씨는 수원보다 훨씬 더웠다. 도시지만, 처음보는 동네에, 같은 한국인이지만 낯설은 사람들, 낯설은 주위환경. 모르는 사람들틈속에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렸다.
우리집은 3층이였고 집구조는 다를것이 없었다. 내방도 똑같았고, 우리집 식탁이 있던자리, 컴퓨터가 있던자리마저 무서울정도로 똑같았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다른거라면 바깥이 보이는 창문이 있다는 점만 달랐다. 내방의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바로 앞의 아파트 근처의 아이들의 웃는소리와 아줌마들의 수닷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이 나왔다.아마 친구들은 잘지내겠지? 놓고온것이 없는지 괜히 방을 뒤졌다. 그러나 놓고온건 없었고, 하나도 달라진것이 없었다. 부산에서의 첫날 밤도 똑같았다. 단지 내가 바라는건 주말이 최대한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였다.
내 마음을 모르는듯이 주말은 빠르게 지나갔고 드디어 최악의 월요일이 왔다. 교복모양은 다르지 않았지만 새교복이라그런지 불편했다. 거울속에 비친 내모습이 낯설었다. 몇개월전만 해도 다른교복이 저 옷걸이에 걸려있었는데. 다시 한숨이 나왔다. 날 부르는 엄마목소리에 거실로 나갔다. 아빠 차를 타고 내려서 교무실로 갔다. 날 쳐다보는 선생님들의 눈빛에 죄를 지은것 마냥 고개를 절로 숙였다. 왠지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배정받은 1학년 6반 담임선생님앞으로 엄마와 섰다.
"이름이 익시? 이름특이하네. 선생님도 수원사람인데."
운이 좋은건지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수원사람이였다. 예전엔 몰랐는데 같은 지역사람을 만나는게 이리도 행복한건지. 마음한구석에 꽁꽁이 쌓여있던 돌무더기하나가 사르르 없어지는듯 했다. 하지만 교실로 향하는 조용한 복도에대한 긴장감은 없어질수가 없었다. 사람하나없는 복도가 이리도 무서웠는가! 고개를 꿋꿋히 올린채 눈을 돌릴수도 없었다. 멈추질 않길 바랬던 선생님의 발걸음이 멈추고 숨을 흡, 들이마셨다. 그리고 문이 드르륵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라 할때까지 들어가질 못했다. 고개를 들지도 않았는데 나한테 박히는 시선들이 이미 읽혀졌다. 내 그런 모습을 선생님이 알아차린건지 나대신 소개를 해주셨다. 고개를 들었을때 나를 향한 38개의 눈들이 마치 동물안의 원숭이를 보는듯 쳐다봤다. 내가왜? 수도권에 살아서? 아니면 못난내가 신기해서? 나스스로 내 머리를 때리고 싶었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난 뒷자리의 모르는 남자애 옆에 앉아있었다. 어차피 자고있었고, 깨있어도 깨울 생각도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교실을 나가셨고, 나가심과 동시에 복도 부터 시작해서 모든것이 시끄러워졌고 그속에 나혼자만 병신같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저 위에서 왔나?"
"니 어디사나?"
가만히 앉아있는데 여자애 몇 무리가 와서 사람좋은 인상으로 나한테 물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진짜 병신된다는걸 1학년 초반에 겪은 나로썬 절실했다. 나또한 딱봐도 '아,얘는 착한 애구나.' 하는 얼굴로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답해주었다. 그렇게 난 짧은시간에 몇애들의 번호애들를 교환했고 모르는 곳에서 날 챙겨줄 애들이 있다는것에 안도했다. 뭔가 일이 잘 풀려가는듯 했다.
수업시간에도 태클 거는일도 없었고, 착하게 대해주는애들에 너무나 고마웠다. 나혼자 다르다고 무시하는 애들도 없었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애들과 친해졌다. 내 번호를 따가는 남자애들도 많았다.(많진않고 좀 있었다.) 새 학교에 있으면서, 제일 다행이였던 점이 학교급식이 맛있었다는 점이였다. 급식도 먹고, 새로 친해진친구들과 매점에서 하드를 하나씩 빨면서 교실로 올라갔다. 우리반 여자애들은 생각보다 편했다. 눈치보는것도 없었고 애들도 다 예쁘고 잘챙겨줬다. 우리반이 무리가 안 나눠져있다는것에 정말정말로 다행중 정말 큰다행이였다. 그렇게 여자애들이 모두 둥그렇게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남자애들이 북적북적 떠들며 들어왔다.
"야, 냄새난다.꺼져라."
"뭐라카노,엿이나 무라."
남자애들과 친한건지 애들이 장난을 치며 까르르 떠들었다. 밖에서 축구나 한판 뛰고 온건지 땀냄새가 살짝 풍겨왔다. 뜨거운 몸을 식히기 위해 남자애들이 책상을 밟고 올라가 에어컨앞에 얼굴을 대니 친구들이 장난으로 비명을 지르며 종아리를 찰싹찰싹 때려댔다. 은혜와 남자애가 그러는 모습에 애들모두 깔깔대기 시작했다.
"점마들 진짜 드릅다. 익시야 안그러나?"
"익시 너도 즈 땀냄새 싫제?"
"아니..별로.."
"우와,야.익시가 땀흘리는 남자도 좋댄다!"
"익시야, 니이름 참말로 특이한데 뜻이뭐고?"
"맞다맞다, 이름이 외국 아 같다아이가."
"나??별뜻없는데.. 그, 웃을익, 베풀시야."
"이야~ 웃으며 베푼다! 야, 오늘부터 익시내여자다. 땀내나는 아도 좋아한다안카나!"
서울말쓰지마라!이상타! 정기가 어색하게 우리말을 따라하자 다시 여자애들이 꺄르르 웃었다. 첫날인데도 걱정을 한 내가 이상할만큼 편했다. 이렇게 착한애들이면 학교 다니는것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익시야, 니 축구 좋아하나?"
"야야, 점마 또 작업건다. 이정기빙시새끼."
"마, 내가 바로 싸카!의 부산 메시 아이가!맞제?"
"나 축구좋아해!"
집이랑 축구경기장이랑 가까운것을 좋아했던 나에겐 축구를 좋아하는일은 당연한것이였다. 나의 말에 애들이 오~ 하다가 이정기가 먼저 내 번호를 따자 나머지 남자애들도 내 번호를 따기시작했다. 전학교엔 축구좋아하는 여자애는 나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남자애들도 축구애들도 다 좋아해서 신기했다. 한참 앞서서 애들중 한명이 방학때 경기보러 가자하니까 모두다 신나서 한술더떠 놀러가자고 했다. 축구이야길 하면서 흥분한 날보고 애들이 신기하도 웃자 다시 민망해져 목소리를 줄였다. 아마 내얼굴은 이미 발갛게 되있을 것이다.
"익시야, 니 아나? 내 축구한다."
아진짜??? 순간 큰 목소리를 내자 애들이 눈이 땡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나도 놀라서 입을 막자 아예애들이 전부다 박장대소를 한다. 내도 유슨데 여 유스 많다! 임마도,점마도! 정기가 장난스럽게 개를 낚아채듯 티를 댕기면서 남자애들을 끌고오자 애들이 무슨 개장수냐고 떠들어댔다. 진짜 예체능우대 학교가 많구나.. 잠깐 숨도 돌릴 틈 없이 다시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또한 반애들 사이에서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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