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r Cinema◁
퀴어영화를 찍다 .02
| 01 편 |
" 어쩌다 보니 현우와 묘한 감정이 드러나네요.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원작에서도 있는 부분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죠. 퀴어 영화요? 글쎄요…. 작품만 좋다면 가릴 이유는 없겠죠. 특별히 따지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퀴어 물도 해보면 좋겠네요. 하하 "
***
" 수현아, 그 전에 그 영화 찍어보고 싶댔지? " " 네? 무슨 영화요? "
드라마 촬영이 있어 코디네이션을 받고 있을 때에 매니저형이 나에게 ‘그 영화’라고 말하며 말을 걸어온다. 그 영화가 뭐지? 내가 언제 무슨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 한 적이 있나 싶어 무슨 영화냐고 되물었다. 매니저 형은 기억이 안 나냐며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 그…. 너 저번에 인터뷰에서 그거 있잖아…? 퀴어영화도 찍어보고 싶다고 " " 네…, 퀴어영화……. 네?! 정말요? 절 캐스팅하고 싶대요? "
그 전에 한 번 은밀하게 위대하게 영화를 찍고 인터뷰를 하면서 쿼어물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 한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물론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 것은 진심이였지만, 막상 이렇게 일이 다가오니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날 캐스팅하고 싶다는 질문에 ‘응’이라는 간단한 대답과 ‘주인공으로’라는 말도 덧붙인다. 헉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놀랐다. 정말요…?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형? 이렇게 갑작스럽게 캐스팅 될 줄은 몰랐기에 계속 재확인했다.
" 하고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되긴 하는데…. 상대역은 너가 정해도 된다고 그랬어 " " 아뇨, 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조금 놀라서. 해보고 싶기는 해요. " " 천천히 생각해 봐. 괜히 한다고 했다가 하기 싫어져서 그만두면 안 되니까 "
아 형, 저 그런 짓은 안 해요! 대답하며 웃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벌써 정해졌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고, 찍기 싫은 건 아니라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였기 때문에, 찍고 싶다. 단지, 갑작스러워서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아무튼 잘 생각해봐. 매니져 형을 보며 웃어주었다. 아, 잠깐만.
" 형! 상대역은 제가 정해도 되는 거에요? "
벤으로 돌아가려는 매니져형을 불러 물어보았다. 나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준다. 그리곤 다시 뒤를 돌아 벤으로 다가가는 매니져 형을 바라보다가 코디누나의 끝났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카메라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 수현이, 퀴어영화 찍을꺼야? " " 네…, 아마도… 찍게 될 것 같아요 "
상대역은? 이라는 질문에 그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상대역’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사람이 있었지만 말 할 수는 없었다. 웃고만 있자, 퍽소리가 날 정도로 나의 등을 때려오는 코디누나의 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 상대역 걱정하지 말고! 지금 드라마 촬영이나 잘 하고와 " " 네…. 근데 누나, 손이 너무 매운 것 같아요 " " 왜? 한 번 더 때려달라고? "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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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휴게실 쇼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머리속에서는 퀴어영화, 주인공, 상대역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머리속을 메우고 있었지만, 섣불리 그 사람한테 가서 퀴어영화 찍을 생각 있느냐고 물어봤다가 싫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에 쉽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나 자신도 퀴어영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기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에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리를 헝클었다. 아예 생판 모르는 남과 찍는 것이 좋을까?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찍기 좀 두렵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튼 사람이랑 찍었으면 좋겠다.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 형 여기서 뭐해요? "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깜짝 놀라는 모습에 놀랐는지 주춤하다가 ‘뭘 그렇게 놀래요 뭐 저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하며 내 옆에와서 앉는 현우를 쳐다보다가 정면을 쳐다보았다. 숨기는거는 무슨….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숨기는 거 없어. 숨기는 거 없다고 두 번 입에 담자 현우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형 정말로 저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 라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길래 고개를 딴 곳으로 돌리며 없다고 대답해 줬더니 옆구리를 공격해 오는 현우 때문에 고개를 현우에게로 돌렸다. 해맑은 표정으로 옆구리를 간지러오는 현우의 얼굴에 귀여워서 계속 당해주고 싶지만 괴롭다. 내 옆구리를 공격해 오던 현우의 손목을 붙잡아 뒤로 눕혔다. 그래도 좋다고 하하웃으며 잘 못 했다고 하는 현우의 옆구리를 살살 간지럽혀 주었다.
" 아! 형! 흐으흐…. 그만…. "
몇 분동안 쉬지도 않고 간지럽혔더니 괴롭다는 듯이 살짝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만두라는 말에 현우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쇼파에 누워있는 상태로 숨을 고르는 현우를 쳐다보고 있다가 어색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몇 분간 말 없이 숨을 고르고 있던 현우가 상체를 일으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 같이 시선을 맞춰주었다. ‘형, 형! 저한테 뭐 숨기면 안 되요. 아셨죠?’ 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어보이는 현우에게 알았다고 대충 대답해주었더니 대답이 시원찮다면서 귀찮게 해 온다.
그렇게 휴게실에서 몇 십분을 놀았는지 모르겠다. 현우의 매니저 형이 찾아와 스케쥴이 있는 현우를 데리고 가버렸다. 퀴어영화가 다시 한 번 머리속을 뒤짚어 놓는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뱉었고, 차라리 상대역을 알아서 정해달라고 했었으면 이런 고민따위 하지않았을텐데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괜히 상대역 해달라고 했다가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
" 어떻게, 생각은 좀 해봤어? "
매니저 형이 나에게로 다가와 다짜고짜 질문이다. 좀이 아니라 머리에서 열이 날 정도로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머리속에서 그렇게 대답을 하곤 입에선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런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물어오는 매니저 형에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 찍을꺼에요. "
단호한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텅이를 나에게로 내밀어 보이길래 그 종이를 받아 들었다. A4용지에 큼지막하게 제목 미정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매니저형을 쳐다보았더니, 대본이라는 짧고 굵은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제목 미정이라니?
" 제목 미정이란 게 무슨 뜻이에요? "
" 제목은 너희들이랑 같이 정하고 싶다는데 "
" 너희, 라면 저랑 제 상대역이요? "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매니저형에게서 시선을 돌려 대본을 쭉 훑어보았다. 대충 내용을 보니,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믿지 못 하고 동성애자들을 욕하며 다니던 때에 또 다른 주인공을 만났고, 그 주인공은 동성애자에 대해 우호적이였다. 그렇게 서로 부딪히다가 상대방에 의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자신의 감정을 깨달으며 성장해나가는 내용이였다. 꽤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주르륵 읽어나갔다.
" 아, 참. 그리고 상대역은 정해졌다. "
" 아…. 그래요…? ……네?! 그런게 어딨어요. 형! "
" 왜, 왜 그래. 누구 생각 해 둔 사람 있었어? "
" 그건… 아니지만 "
생각 해 둔 사람 있었어? 하며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어떨결에 그건 아니라고 대답해버렸다. 큰일났다. 오늘 그 사람에게 퀴어영화 주인공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볼 생각이였는데, 상대역이 정해졌다니. 분명히 내가 정해도 된다고 했었으면서, 너무해. 으으…. 앓는 소리를 내자, 싫으면 싫다고 해라는 매니저 형의 말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버렸다. 도데체 왜 저 말소리가 나에게는 싫다라고 말해라고 들리는 것일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혹시, 형은 동성애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익숙한 얼굴이 내 앞에서 해맑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아이를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영화관리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로 결정한 날.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약간 늦은 시간이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도착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오니 영화관리자분들의 얼굴이 보여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이 곳 저 곳에서 괜찮다며, 이해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안심했다. 휴우…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더니, 현우가 그 곳에 서 있었다.
뭔가 싶어 그의 앞으로 가 멍청하게 현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뭘 그렇게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냐며 앉으라고 하길래 어? 응하며 대답을 해 주곤 현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더니 누군가가 나의 옆구리를 찔러온다. 움찔하며 그 곳을 쳐다보니 장난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근데, 저번부터 옆구리 장난을 걸어온단 말이지? 괘씸해서 옆구리를 찔러오던 손과 반대쪽 손을 잡아 한 손에 움켜쥐곤 현우의 옆구리를 마구 찔러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님이 사이가 좋아 보기 좋다는 말씀을 해오셨고 나는 현우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하하하며 어색한 웃음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 그렇게 사이가 좋아야지 찍기 좋아요, 막 그런 씬도 있다는 거 아시죠? "
" 네? 그런 씬이라뇨? "
" 아… 아직 안 보셨어요? 대본에 적혀있는데, 베드신도 있어요. 베드신이라고 해서 수위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베드신보다는 키스신이 문제일까요…? 남성분들이 남자끼리하는 키스 같은 건 못 하는 것 같던데, 하실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말씀하시면 배역은 바꿀 수 있으니까요. "
헉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듯 한 기분이었다. 퀴어영화라고 하면 그런 장면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생각을 하지 못 한 것일까. 맞추고 있던 시선을 떨어뜨려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덜 되었나보다. 하지만, 이 곳에서 그만두겠다고 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쳐다보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할 수 있습니다 "
" 좋아요. "
" 현우씨는 물론 하실 수 있으시겠죠? 먼… "
" 네! 할 수 있어요! 물론 할 수 있죠! "
감독님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떳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알겠습니다라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무언가 현우가 감독님의 말을 자른 것 같았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아 머리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십분 영화관리자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어 다들 정리를 하며 일어났다.
" 오늘은 두 주인공의 결심을 듣고 싶어서 모인 자리이니, 이만 가도록 하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서 일으켜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현우의 손을 잡았다가 일어나려 하는 순간에 힘을 풀었다. 쓰러지는 현우의 모습을 쳐다보며 킥킥대며 웃었더니 씩씩대길래 더욱 더 웃어주었다. 이렇게 사이 좋게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데 영화를 찍으며 사이가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 작가의 말..? |
02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2편은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네요.. 제가 글 쓰는 재주도 없어서 휴-휴 많이 부족해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03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완결까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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