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
“여기서 뭐 해.”
가자. 우악스럽게 잡아 끄는 악력에 백현의 몸이 앞으로 쑥 쓸렸다. 백현의 반대편 팔을 세훈이 잡아 챘다. 옅은 빛이 들어오는 화실 창문에 매달려있는 커텐이 바람에 나부꼈다. 종인이 입을 다부지게 악물었다. 치아가 엇갈려 빠드득거리는 소리가 백현에게 들렸다. 백현은 또 저도 모르게 긴장해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놔.”
“…….”
“이 년 내 꺼니까 놓으라고.”
“미친 새끼.”
종인이 먼저 백현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세훈은 여전히 백현의 팔을 단단히 잡고 있었고 종인이 세훈의 앞에 성큼성큼 가서 섰다. 종인이 하관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흥분을 이기지 못 할 때면 보이는 증상이었다. 백현이 애원하듯 말했다. 세훈아, 놔 줘. 세훈은 그런 백현을 흘깃 보더니 들은 척 만 척 오히려 백현을 제 쪽으로 끌어 당겼다.
백현이 또 저항 없이 세훈에게로 당겨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충동적으로, 종인이 이젤을 잡아 들어 세훈에게로 내리쳤다. 얼굴과 머리를 가격한 둔탁한 나무의 느낌에 세훈이 비틀거렸다. 의자에 앉아있던 세훈이 물체와 함께 동시에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머리를 감싸쥐며 주저 앉은 세훈에게 종인이 무차별적으로 발길질을 해댔다.
입에선 거칠은 욕설도 뱉어졌다. 세훈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백현에게 하는 분풀이였다. 변백현 씨발년아, 기둥서방 버리고. 씨발. 이딴 꼴 같지도 않은 새끼랑 붙어 먹으니 재미 좋냐? 씨발년아. 뒷구멍 얼마나 뚫려줬으면. 이 개새끼꺼 얼마나 빨아 줬으면 이 새끼가 널 싸고 돌아. 씨발. 좆같은 년아.
또다시 날뛰는 종인의 행동에 백현이 한 쪽 구석에서 귀를 틀어막았다. 세훈이 눈에 들어왔다. 얇은 실선이었던 혈흔이 이제는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배를 걷어 차는 것에 세훈이 몸을 잔뜩 구부리며 움찔 하는, 괴로운 표정이 눈동자에 똑똑히 비춰졌다. 백현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주저하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몇 발자국 내딛지 않은 백현이 종인의 옆에 섰다. 씩씩대는 숨을 내쉬는 종인의 상체가 격하게 오르내렸다. 할 말 있으면 해. 썅년아. 조소를 가득 담은 종인의 얼굴을, 백현이 악다구니를 쓰며 가격했다. 종인의 얼굴이 백현이 손을 휘두른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얼굴에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얼굴에서 비웃음이 거둬졌다.
“김종인.”
“…….”
“제발, 이젠 제발 그만 좀 해.”
“…….”
“자다가도 네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려.”
“…….”
“끝, 났잖아, 우리.”
* * * * *
변백현. 백현아. 야. 이 뭣 같은 년아.
종인이 협박과 애원을 섞어가며 낸 이름이 종인에게 등을 돌렸다. 세훈을 끌어안고 괜찮냐고 걱정하는 뒷모습을 보고 종인은 화실에 있는 그림을 모두 바닥에 내박쳐 놓고는 도망치듯 거리로 뛰어나왔다. 네온 사인의 불빛들이 어지러웠다. 도수가 센 술을 마신 것 같이 온 세상이 휘청거렸다.
꼭 취객처럼, 부랑자처럼 정처없이 걷는 종인의 모습이 위태로웠다. 길을 오가는 사람이 종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쳐도 시비를 걸 여력이 없을 만큼 멍했다. 평소와 같았으면 쫓아가 어깨를 잡고서 턱이라도 나갈 정도로 주먹을 날렸을 텐데 그럴 정신이 없었다. 백현의 입에서 끝, 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왔다. 간신히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가 손가락 틈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꼭 썩은 동앗줄을 생명줄이라도 되듯 움켜지고 있는 심정이었다.
웬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화가 났다.
근처에 보이는 것은 가로등 뿐이었다. 시비를 걸 사람도, 욕을 할 상대도, 무차별적인 폭행을 받아낼 대상이 없었다. 종인이 가로등을 발로 찼다. 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시멘트 기둥이 종인을 가로막고 섰다. 옆으로 길게 늘어진 가로등의 그림자가 그 앞에 선 종인의 그림자를 잠식했다.
백현에게, 세훈에게, 혹은 저 자신에게 모진 말과 욕설을 뱉어내던 종인이 가로등을 끌어안고 무너졌다. 가로등에는 껌딱지가 붙어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군가가 성의 없게 청테이프로 붙여 놓은 전단지가 짓이겨져 있었다. 가로등의 하단에는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들이 영역 표시를 해 놓은 흔적도 남아있었다.
종인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문 잇새로 신음과 같은 울음이 새어나왔다. 살다가 누군가 때문에 눈물 짓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종인의 입이 같은 이름을 하염없이 반복했다. 백현아. 변백현. 백현아.
우리가 왜 끝인데. 나는, 아직, 아닌데.
| 간 때문이야 |
찬백 소재 받아놓은거 쓰러 가야지 이거 쓰고 크레 쓰고 자야겠당 쿨쿨 zz 앞에 조각은 무플일 줄 알았는데 제목이 음란해서 그런가 덧글이 달렸넹ㅎㅎ 기분은 조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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