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기가 한 번 지나갈 동안 |
"야 변백현, 도대체 왜 그러는데" 참다 못한 찬열이 연습실을 나가는 백현을 붙잡았다. 컴백 준비 내내 백현이 우울해 있었다. 길어진 공백에 막상 진짜 컴백 날짜가 잡히니까 더 그런가 싶었다. 공백기 내내 몇 번이고 뒤바뀐 곡도 있었고, 가사가, 멜로디가 바뀐 곡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힘든 건 백현이었다. 백현이 이번 공백기 동안 알게 모르게 창법을 바꾸기 위해 노력 했다는 것도 알았다. 반강제적으로 창법을 바꾸기 시작한 날부터였나...
"뭐가 또"
"너 왜 나 피하냐고"
잡힌 손목을 짜증스럽게 빼낸 백현이 젖은 머리를 정리했다. 내가 널? 눈 마주치지 않고 되묻는 짜증스러운 음성에 찬열은 적잖이 당황했다.
"야, 너 손목…!" 머리를 정리하는 백현의 손목에 손톱자국 투성이었다. 왜 화났는지도 잊은 찬열이 백현의 손목을 다시 획 잡았다. 손목 왜 이래 너. 낮은 찬열의 목소리가 연습실을 울리고도 남을 때까지 백현은 대답이 없었다.
"백현아, 네가 그랬어? 일부러 그런거야?"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찬열이 물었음에도 백현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젠지 말을 해줘야 내가 도와주던가 말ㄷ..."
"네가 뭔데 도와줘?"
바닥만 보던 백현이 찬열을 똑바로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울음을 참은건지 새빨간 두눈이 촉촉했다.
"뭐?"
"네가 뭔데, 너 뭔데 매번 날 도와준다는 거야. 언제까지 도와줄건데.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데. 왜 자꾸 사람 바보 멍청이 되게 만들어."
변백현 너 왜 그래, 진짜 무슨 일 있… 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백현이 찬열의 손을 뿌리치고 나갔다. 당황한 저의 앞에 남은건 백현이 챙기지 못한 야구잠바 뿐이었다. 처음 백현이 처음 연습생으로 회사에 나왔을 때 입고 왔던 옷. 찬열은 그것을 집어들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백현아, 너도 잘 알잖아. 엑소 애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여기까지 온건지, 어? 잘 생각해봐라. 준면이 형 생각해봐. 칠년 연습생 생활하다가 이제서야 데뷔하고 첫 정규앨범 내는데…. 말 끝을 흐리는 마케팅부서 담당자분에 말에 백현이 고개를 숙였다. 왜 하필 저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왜 하필 저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했다. 왜 하필 스폰 상대가 전데요…. 어느순간부터 왜라고 물을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라니, 너 뜨고 싶지 않아? 이거 곡 받는데 얼만 줄 알아? 되묻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벌써 세번째 부탁하는 홍보부 마케팅 팀장님을 세번째로 등지고 걸어나왔다.
"백현아,"
붙잡는 팀장님에 백현이 침착하게 네,하고 뒤돌아섰다.
"혹시해서 다시 하는 말인데…, 이거 윗선은 아예 몰라. 알지? 우리 쪽으로 그냥 조용하게 들어온거라고. 내 말, 이해하지? 내 아는 지인분이야."
진절머리가 났다. 지인이라니, 인터넷에 널린게 지인이었다. 인터넷만 켜면 다 자신들의 지인이랬다. 없던 일들을 지어내며 평가하고 이미지가 형성됐다. 형성된 이미지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백현은 속상했다. 오늘은 내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던 팬들에게 대놓고 불쾌한 티를 냈고, 어제는 방송 대기 시간 내내 표정을 굳히고 있어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이 그렇게 무섭도록 많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연습생 기간이 짧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데뷔하고 신인상을 받고, 소위 인터넷에서 말하는 '신분상승의 꿈'을 이룬게 사실이었다. 한순간에 동경의 대상이던 사람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 노래했으니까…. 그치만 조금의 슬럼프가 오는 것 같았다. 이제서야….
연습실을 박차고 나온 저의 눈 앞에 용민이형이 서 있었다. 너네 왜 이렇게 늦냐? 금방 다가온 찬열을 피해 용민이형이 저에게 덧붙였다. 너네 둘 많이 붙어있지 말라니까. 지금도 사진 다 찍히니까 조심하고. 들어야 할 말을 다 듣고 차에 올라탄 마음이 무거웠다. 차에 타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계속 선연했다.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 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에 앉아 눈을 붙이는 찬열은 그대로였다. 맨 앞자리를 항상 지키고 앉은 준면이 형도. 공백기를 통해 같이 보컬 연습을 오래한 경수도, 춤을 많이 가르쳐준 종인이도, 레이형도. 멤버들이 내려감은 눈꺼풀 위마다 피곤이 눌러붙어 있었다. 자신만 늦게서야 걸음마를 배워가는 아기 같았다. 배우다가 넘어져 일어나지 않는 아기 같았다.
*
"어, 백현아 왔어? 별 건 아니라서 그냥 너만 불렀어."
처음으로 완벽하게 맞춰본 후라 기분이 좋은 백현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네,괜찮아요. 왜요?"
"회사에서 너네 팬들끼리 너네 가지고 장난치고 그런는거, 정해주는 거 알지? 데뷔할 때도 말 들었잖아. 그래서 너 경수랑 같이 자켓사진도 찍은거고"
매니저형은 별 거 아닌 말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멤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장난이거니 그만큼 친한게 잘 보이는 거라니 하면서 웃어 넘기고 있었다.
"근데, 찬열이랑…너랑 너무 붙어 있는다고, 그, 저기…"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빤했던 백현은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너네 이제 조금 떨어져 다녀라 이 말이었다. 덧붙여 엑소 애들을 생각하자, 응? 회사에서도 너네들이 말 안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뒷전으로 돌려버리는거야. 지금 기다리는 연습생들이 얼마고, 우리 회사면 걔네들 뽑아서 금방 띄울 수 있다. 너야 연습생 생활 짧아서 모르겠지만, 다른 엑소 애들은 그게 아니잖아. 그치? 라는 말과 함께.
항상 저는 그랬다. 엑소와 저. 엑소와 백현이. 매니저형도 마케팅부 팀장님도 분리해서 이야기 했다. 마치 나는 금방이라도 뭐에 쓰고 없애버릴 사람처럼. 그리고 위협했다. 너보다 잘하는 연습생들 많아, 알지? 잘하자.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고 있었다.
"백현아, 너 이번에 파트 늘겠다."
뿌듯하게 말하는 보컬선생님의 말에 백현이 미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창법 바꿀 수 있을 지 몰랐는데, 진짜 대단하다. 별 기대 안 했는데…, 더 말하려는 선생님을 잡고 경수가 말했다. 선생님 저희 연습이요. 답지않게 애교 있게 구는 모습에 둘을 놓아준 선생님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백현아. 너 창법 고칠 수 있겠어? 목은 더 다치는데, 이게 우리 회사 창법이거든. 몇 주전 시청각 자료와 함께 들려준 창법을 백현은 몇 번이고 연습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퍼포먼스 연습 후에도 늘 다시 와서 연습했다. 몰래 숨어서 연습하는 연습생을 발견한 백현의 눈이 씁쓸했다. 저도 무엇인가를 위해 그렇게 달린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습을 위해 달려왔는지 아닌지. 편도선염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무리하게 연습하던 백현은 결국 해냈다. 그리고 칭찬과 함께 늘어난 파트를 배분받았다. 시키는대로, 원하는대로 그렇게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특유의 창법도, 회사가 원하는대로 바꾸고 있었다. 자신은 그냥 상품이다. 새벽까지 회사 앞에서 기다리며 숙소까지 쫓아와 편히 잠 못들게 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도 팬이라고 부르며 웃어줘야 하는 상품이었다.
"그런 애들 한 명 한 명 무시할 수가 없는게, 걔네들이 너네들 밥줄이다. 빽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니네 팬들이 우리 회사 문짝 하나는 지네들이 해줬다고 하지? 진짜야 그거. 얼마나 무서운 애들인 줄 아냐. 그걸 이용하는거지."
자신들의 그런 팬들의 이용가치를 운운하는 것도,
"너희들이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을거라는 건 이미 알고 시작한거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치부해 버리는 많은 일들도,
"웃어,바꿔,입어,벗어,나가,들어와."
조종당하는 모든 일들도 다 정말 신물이 났다.
한 번은 종인이가 공항에서 크게 넘어진 날이 있었다. 주변에 있던 제가 일으켜 세웠고, 종인은 못 걷겠다고 했다. 가슴에서 쿵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좀처럼 표정이 나아지질 않았는데. 부축을 하고 가는 저를 향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 변백현. 비키라고. 너 때문에 김종인 안 보인다고, 이 새끼야. 너 데뷔전으로 돌아가고 싶냐?"
그리고 굳은 백현의 표정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변백현, 극성팬들은 우리가 알아서 하니까 이런 표정말고 웃으라고.어? 이러면 또 곤란해지는 거 몰라? 너 지금 안 그래도 인터넷에서 팬들한테 차갑다고 그러는데, 우리가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누군가가 소리쳤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김종인 너는 거기서 왜 넘어져. 하고 덧붙이는 말에 눈을 질끈 감았던 것만 생생했다.
백현이 조용히 차 안에서 이어폰을 꽂았다.
It's not so easy loving me
일이 터졌다. 이렇게 이름난 소속사에서 아이돌로 데뷔하기를 준비하지 않은 저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선천적인 성격덕에 무리지어 다니는 걸 좋아했고, 그만큼 사람이 많이 따랐다.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놀며 찍은 동영상이, 아니 그 시절이 후회됐다. 유명한 사이트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영상은 '변백현 합기도 영상'이었다. 사실 별 건 없었다. 그냥 제목 그게 다였다. 혼자 영상을 재생하던 백현은 화면 속의 저를 쓸었다. 잘 있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곧 다가올 호출에도 백현은 그저 어린제가 참 반가웠다. "너 몇번째야? 생각이 있어 없어. 엑소 애들 생각은 안 해? 네 그 잘난 친구들은 의리도 없냐? 친구가 이만한 소속사에서 데뷔를 했으면 도와주진 못 할 망정…" 백현은 연기했다. 여긴 무대고 팬들이 보고 있다. 난 지금 사진 찍히고, 동영상이 찍히고 있다. 자연스럽게 적절한 표정이 된 백현은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죄송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소속사에서 만들어준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다. 회사는 적절하게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고, 저는 또다른 무엇인가를 건네 받을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호출 끝에 나오는 백현 앞엔 찬열이 있었다. "많이 혼났어? 영상 봤는데 문제될 건 없던데…. 팬들 반응도 별 거 아니던데. 원래 우리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뭘해도 싫어해. 기죽지마 변백현" 다다다 쏘아대는 말에 백현이 찬열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라는 말에 울컥했다. 백현이 무엇인가를 침과 함께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안 혼났어, 괜찮아.
돌아오는 보컬 개인 연습 시간은 백현 혼자만 개인이었다. 늘어난 파트에 익혀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찬열의 랩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경수는 이미 찬열과 짝을 이뤄 연습실로 들어간 후였다. 달갑지 않았다, 늘어난 파트가. 달갑지 않았다, 열심히 연습한 종인이 받을뻔한 파트를 제가 받았다는 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자신이 거의 마지막, 짧은 시간에 엑소가 합류한 건 기적인가. 처음엔 기적이라 믿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회를 찾았다는 생각에 들떴다. 이젠 의문이었다. 제가 이 팀에 소속된 것이 기적인가. 신의 한수인가. 부속품처럼 이곳, 저곳 잡혀가서 이용 당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사실이었다. 이용당하는 게 목적이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단지, 큰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하나의 장기적이고 큰 프로젝트일 뿐이었다. 손에 쥔 가사가 쓰인 종이를 빤히 바라봤다.
네 눈 속에 가득 차 오르는 달빛 woo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귓가에 승환이 형 목소리가 가까웠다. 근데 그보다 더 가까운건 팬들의 손이었다. 아니 팬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인가. 다른 때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몰린 공항 상황에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다. 승환이형을 따라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엉덩이 부근으로 손이 붙었다. 이미 몇 백명의 소리에 묻혀 누가 뭘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끈질기게 엉덩이로 붙는 손에 백현은 걸음을 빨리 했다.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영. 입국 심사를 마치고 비교적 한산한 곳으로 와 쉬는데, 수근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옮겨 붙어왔다. 변백현 오늘도 기분 별론가봐, 표정봐. 아냐, 쟨 원래 잘 안웃어 이런 곳에서.연습생 기간 차이가 이런 곳에서 드러나는 거지 뭘. 정확히 들린 말들에 백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
독방에서 조각 쓰다가 글잡으로 옮겼어요.
아직은 연재할 생각 없고 독방에서 쓰기엔 짧지만은 않아져 버려서 들고 왔습니다.
연재를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댓글에 욕심이 생기고 그에 따라서 자꾸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해서 나빠져요.
제가 나빠요ㅠㅠ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사진주의)현재 스레드에서 난리난 역대급 의료사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