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achoo] 들 개 J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50618/f7b915d784c08ba8f73965d249b45d8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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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을 한 채 변백현을 잡아 이끌었다.
도망쳤다. 도망친 곳이 고작 내 방이었다. 자존심 상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한 여건이 안됐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허옇게 질린 네 손바닥 뿐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바닥을 쳤다. 아버지께 저열함의 끝을 내보였고, 어머니를 욕했다. 단지 너를 위해서.-사실상 나는 몸을 섞은 너에게 값어치를 한 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름의 의리도 한 몫했다.-
22
정적이 이루어진 방은 먼지라도 한 웅큼 뿌린 냥 갑갑했으며 규칙적인 숨소리는 약간의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도경수."
"…어?"
나는 갑작스러운 불림에 뒤늦은 대답을 했다.
"동정하지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변백현을 궁지로 몰기에 충분했다. 방 안이 그득한 동정으로 차오른다.
"너는 동정하지마."
"… …."
"그러면 안되는 거야 너는."
도경수 너는 그러면 안 돼.
나는 핏대 선 눈을 보며 생각했다. 가여워라. 나는 동정을 버리지 못했다.
"좋아."
내 대답에 변백현이 웃었다. 나도 불편하게 웃었다. 안심하기엔 이른데.
"네 말대로 할게."
내가 아버지께 배운 것은 추잡한 거짓말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종종 애용하곤 했다.
23
경수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는 종종 경수가 없을 때, 박찬열을 자주 부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소로운 것에 불구했고, 박찬열은 인상 쓰면서도 그것을 다 들어주었다. 오늘도 역시였다. 꽤 높은 곳에 위치한 컵을 꺼내려 바둥거리자 박찬열은 자연스레 내 눈치를 본다. 이제 저를 부른다는 것을 알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기어코 잘 길들인 개 하나를 더 쥐고 말았다. 좀 포악하긴 해도.
"박찬열,"
"뭐."
"이것 좀 꺼내 줘."
나는 부러 까치발 까지 들어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안달난 표정을 졌다. 그것을 보고 달려들지 않는 개는 없겠지. 내 표정에 박찬열은 짙은 한숨과 함께 자리서 일어났다. 꽤 큰 키는 자랑이라도 하는 듯 성큼 컵을 꺼냈다. 자. 짧고 투박한 말과 함께 건내지는 차가운 유리컵에 기분이 좋다.
"고마워."
"됐어. 키나 빨리 커."
괜히 부리는 심술이라는 것을 알기에 웃었다. 응, 그럴게.
24
오늘은 무기력했고, 열이 올라 학원에서 일찍 빠져나올 수 있었다. 평소엔 꾀병이라 엄포를 놓았을 선생이 이마를 짚더니 손수 가방까지 싸 줬다. 나는 계속해서 짓눌러오던 고통이 틀에 박힌 것에 빠져나감으로서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기분 탓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썩은 내가 나는 이산화탄소에서 탈출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인기척을 줄여 집 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작은 습관 중에 하나다. 습관이 내게 불편을 주는 일은 없었으므로 고칠 생각은 없었다. 되려 많은 도움을 줬다. 아버지가 내 문제로 새어머니와 다툼을 나눌 때나, 아니면 박찬열의 칭찬을 하고 있거나. 등등.
"박찬열."
나는 몸을 바짝 세웠다. 나를 다정하게 부르던 목소리였다. 이상했다, 그런데 저건 내 이름이 아니잖아. 나는 박찬열이 물컵을 꺼내주는 것 부터 변백현이 웃는 것까지 모든 것을 관음했다. 나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화가 치밀었다. 나는 변백현을 노려봤다. 웃던 변백현이 힐긋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변함 없이 웃었다.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변백현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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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가 스스로에게 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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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 같은 배우도 저런거보면 연애나 결혼은 무조건 마이너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