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았다. 바쁘게 오가는 발소리라던가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는 소리라던가.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어디선가 전화 벨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가 받는 소리도 들려왔다. 에, 여보세요. 모시모시. 나는 모든 소음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길게 하품을 했다. 언제쯤 제게 말을 걸어주려나.
"변백현 씨."
딴 생각을 하고있던 도중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를 부른 상담원은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상담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백현은 짧게 생각했다. 지극히 베타이군. 그는 책상 맞은편 의자를 끌어 앉았다. 상담원이 꽤나 두꺼운 종이묶음을 꺼냈다.
"이거랑 이거 받아가시구요, 빈칸 다 채우시고. 또 여기 보시면 모이는 날짜나 지참해야할 것두 있으니까 참고하시고.. 아, 이 종이는 당일 날 들고오셔야해요."
젊은 여상담원은 빨간펜을 들고 중요한 부분에 슥슥 원을 그리고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묶음를 받고도 계속 앉아있자 더 할 말 있냐는 듯한 시선에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기다린 시간은 한 시간이 넘는데 일 분도 안 되어서 끝나버렸다. 그래도 말을 걸어준 게 어딘가. 학교를 먼저 졸업한 가이드 친구는 이 종이를 받기 위해 일주일을 여기서 기다렸다고 했다. 백현은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받은 종이를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집아들고 가방에 넣었다. 이제는 자신도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태어난 이유, 국가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가족과 떨어저 지내야했던 이유. 국민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지키지않아도 되는 이유를 말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빠르게 눈 앞에 닥쳐왔다.
백현은 제 방 책상에 걸터앉아 종이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빈칸에 정확하게 기재하여 주십시오. 이름, 주민등록번호, 가이드 특수번호.
" WDNA 테스트 결과 용지를 가져올 것. 전날 깨끗이 씻고 용모를 단정히 할 것. 눈에 띄는 모습을 하지 말고 교복을 입고 올 것. 교복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말 것. 뭐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써놨냐."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미간을 찡그리며 열심히 종이를 읽고있는 누나의 옆모습이 보였다. 이마부터 턱까지 정갈하게 떨어지는 옆선을 눈으로 훑다 시선을 종이로 옮겼다. 얼굴부터 공부에 체육까지 완벽한 유전자를 자랑하는 누나는 저와 달리 베타였다. 누나 뿐이 아니고 아빠도 엄마도 먼 친척까지도 모두 베타인데 특이체질인지 백현만 가이드로 태어났다. 베타 사이에서는 유전학적으로 베타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백현을 당연히 베타라고 생각했고 그 덕에 태어나자마자 받게 되는 유형 검사도 받지 않고서 베타 유치원에 보내졌다. 백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도 아무런 이상점을 느끼지 못하고 베타들이 다니는 곳을 다녔다. 하지만 몸에 2차성징이 올 무렵 친구들과의 다른 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제 나이 또래 애들처럼 감정조절을 못하는 일 없이 언제나 차분했던 것도 있지만 '가이드' 만 나타나는 몸의 이상변화가 나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제가 베타인줄로만 알았던 백현은 베타 소아과에 갔다. 그 날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날이기도 했다. 백현의 가족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가이드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수의 1퍼센트도 안 되었는데 가이드로 판명난 아이는 가족과 떨어져 따로 교육을 받으며 지내야했다. 아이의 부모는 자식의 양육권을 국가에 넘겨주어야 하는데 사실상 아이의 권리를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통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정부기관에 보내져 엄마가 아이에게 정을 붙일 시간도 없이 보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백현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백현은 저 자신이 돌연변이인줄 알았다. 뭐, 사실은 지금 생각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가이드 원칙이 매일 씻어야하고 머리카락을 길게 기를 수도 없어서 이런 건 상관 없어, 누나."
누나가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국립 가이드 특수교육원에서 (우리는 가이드 수용소라고 불렀다) 기본 원칙 중 하나는 매일 깨끗이 씻을 것, 두발과 품행을 단정히 할 것이었다. 우리가 따라다녀야 할 에스퍼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그것을 우리가 제어해줄 수 없을 경우엔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며 그 기복을 줄이기 위해서는 눈에 띄거나 에스퍼가 거슬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정할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저학년들은 매일 씻는지를 담당자가 매일 확인했지만 고학년이 되자 누가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매일 씻었다.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씻지 않는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가 되었으며 겉모습이 단정하지 않은 아이는 가만히 있어도 문제아가 되었다. 분위기 탓이 아니더라도 씻지 않는 아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에스퍼는 우리가 교육받은대로 짐승처럼 난폭하지도 않았고 감정조절을 전혀 못하는 정신 문제아도 아니였다. 개중엔 그런 놈도 있겠지만, 여하튼.
"언제 가는데?"
"다음주 금요일."
"내 동생, 이제 진짜 가네."
그렇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한 마디가 입속을 왱왱 거리며 날아다녔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것이였다. 멀쩡하던 아들이 가이드라는 것을 알아도 우리 가족은 나를 국가에 넘겨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십몇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를 가족으로써 사랑했으며 나를 존중해주었다. 제 아무리 국가라지만 멋대로 나를 뺏어갈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허락받았다. 대신 부모님은 가이드 자식을 낳아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다 포기해야만 했다. 인자하며 훌륭하신 베타 부모님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나는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돌연변이인 것이다.
가이드 판정을 받은 후 국립 가이드 특수교육원으로 전학을 가면서 처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전학을 함부로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금방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였으므로 아이들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다만 성적이 조금 좋은 편이였는데, 가이드학교는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산만하지 않고 성실했기 때문에 필기시험은 대부분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더 튀었다. 특히나 실기 시험은 우리 학년 중 가장 나은 실력이였다.
"네 에스퍼는 누군지 알아?"
"아니, 당일 날."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애겠네."
눈썹을 치켜올리고 누나를 보자 누나가 쌩긋 웃었다.
"계속 전교일등 했던 거, 숨긴다고 모를 줄 알았냐?"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일반 베타 학교에서는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매일 축구만 하고,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는데 가이드 학교는 필기보다 실기시험에 중점을 두는 편이라 높은 성적을 거두긴 했다. 선생님들은 실기시험도 노력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있다. 각자의 능력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입 밖에 꺼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아는 것이다. 혹은 아주 가끔 어린 시절의 주위 환경 덕에 그 능력이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 경우엔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사실상 갇혀지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가이드 학교의 아이들보다는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경험했으며 따뜻한 가정 안에서 자랐다.
"그거야 실기 아니였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들은 바로는 실기 성적이 좋으면 우성 에스퍼로 보내진다던데?"
"가이드가 물건이야? 보내지게."
옆자리에 앉아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는 누나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좀 자두고 생각은 내일할까. 시간은 많아.
"근데 말이야."
누나의 목소리가 방으로 가는 제 발걸음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저와 달리 쌍꺼풀진 큰 눈을 끔뻑거리는 누나가 보였다.
"넌 전교 일등이고, 우성 가이드라면 네 에스퍼는..."
누나가 잠깐 텀을 두고 나를 빤히 주시했다. 내 반응을 보려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은 방을 향한채로 그저 고개만 돌려 누나쪽을 보고만 있자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에스퍼, 디오 아니야?"
디오, 디오. 이유 없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누나는 화난 줄로만 알았는지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다.
"그러니까 그냥 내 생각이고. 디오라면 너도 좋지, 안 그래? 아니, 물론 디오보다는 다른 에스퍼가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말이지, 나는 .. "
"내 에스퍼는 당일날 알겠지. 이제 자러간다. 깨우지 마."
바로 고개를 돌려 방에 들어왔지만 누나의 표정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큰 눈을 감았다 뜨며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겠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누나에게 질투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베타인 것도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자유로운 생활이나 연애도, 내가 가이드인 걸 안 순간부터 너무 부러워졌다. 그리고 백현은 누나를 사랑했다. 또 고마웠다. 괜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은 백현은 방에 들어가 마른세수를 했다. 흰 티셔츠에 편한 반바지를 느릿한 손길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올라가 이불과 베개를 바르게 두었다. 이것도 가이드 학교를 다니면서 생긴 결벽증같은 버릇이었다. 나는 그나마 덜 한 편이였는데 손소독제를 한 달에 두 통씩 쓰던 친구도 있었고, 더러운 것에 제 옷도 대기 싫어해 손수건을 들고 다니던 친구도 있었다. 백현은 잘 정리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정자세로 누웠다. 벽 천장에 어렸을 때 붙였던 야광별들이 여기저기에 붙여져 있는게 보였다. 눈을 감고 양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이게 꿈이고 저기 저 편 세계가 현실이길 바랐다.
"아들, 잘 다녀와."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누나는 이미 울음을 터뜨린 후였다. 아버지는 제 아들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백현은 제 가슴이 묵직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다녀올게요."
문 밖은 지독하게 추웠다. 외투는 입지 말라는 주의사항에 딱 교복만 갖춰입은 터였다. 제가 맡을 에스퍼가 디오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백현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 날은 가이드 학교의 졸업식이었다. 하지만 졸업식이라고 해서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부모님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썰렁한 운동장에 오직 학생들만이 배열을 맞추어 섰다. 지나치게 정확한 배열이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졸업식을 참여한 사람들 중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훌쩍이긴 커녕 슬프다던가 홀가분하다던가 하는 표정조차 드러나있지 않은 학생들은 오직 정갈하게 줄을 맞출 뿐이었다. 교장의 인사가 끝나고 반 아이들은 교실로 향했다. 평범한 베타 학교였다면 졸업식을 마친 후 각자 뿔뿔히 흩어지는 게 보통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곳 학생들은 졸업을 한다고 해서 달리 갈 곳도 없었으며 졸업식은 이름만 졸업일 뿐 졸업식이 끝나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 교육용 테이프를 돌려보았다. 다만 특별한 점은 졸업식이 끝난 며칠 후 학교를 나가 바깥으로 적응훈련을 나가게 되는 점에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 제 자리를 찾아 앉은 백현이 고개를 들자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역시나 지나치게 정갈한 모습이었다. 교탁에 바르게 선 담임이 박수를 짝, 짝, 짝. 하고 쳤다. 아이들이 따라서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짝. 끊임없이 들리던 박수소리는 담임이 회초리를 교탁에 몇 번 두드리고 나서야 가라앉았다.
"졸업을 축하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축하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물론 학생들의 얼굴에도 기쁜 표정이라곤 없었다.
"이제부터는 실습을 나가도록 한다. 바깥에서 적응 훈련을 마친 후 서류가 통과되면 에스퍼가 배정될 것이다. 훈련 시간은 적게는 두 달, 많게는 3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은 각자의 능력에 달려있겠지. 궁금한 점은 지금 질문해라"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도 질문을 원하지 않았다. 곧 학교 전체에 방송이 울렸다.
"각 반의 멀티 담당은 스크린을 내려 채널 15번을 틀어주십시오."
아놀드가 급하게 나가 스크린을 내렸다. 아놀드라는 이름은 랜덤으로 지어졌다. 독수리처럼 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놀드는 소극적이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블루스크린에서 넘어간 영상은 이미 지겹게도 돌려본 것이었다. 백현에게는 익숙한 바깥의 당연한 모습들을 담은 비디오는 아이들에게 볼 때마다 신선한 것이었다. 영상에서 재래시장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작게 탄성이 들렸다. 백현의 옆자리에 앉은 카밀라가 속삭였다.
"정말 더럽지 않니?"
백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앞에 앉은 호인이 조금은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갔기 때문이다.
"저건 더러운 게 아니고 개성이 있는 거야. 에녹이 그랬어."
호인의 말에 카밀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카밀라는 에녹을 싫어했다.
"그렇다면 나는 개성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 절대로."
백현은 계속 침묵했다. 카밀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얘, 너는 알지? 실제로 바깥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니?"
그제야 백현은 눈길을 돌려 카밀라를 쳐다보았다. 카밀라는 분홍빛의 눈망울을 깜빡였다. 염색을 해서가 아니었다. 베타가 비슷한 머리색과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반면, 가이드와 에스퍼는 저마다의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저처럼 평범하게 갈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기도 했다.
"재래시장은,"
몇몇 학생들이 백현을 흘끔거렸다. 카밀라와 호인이 주절거릴 때부터 학생들 몇몇은 이 쪽의 대화를 의식하고 있었다.
"재래시장은 주로 입실론 계급이 사용해."
"입실론이라면 하층계급이잖아!"
호인이 소리쳤다. 카밀라는 더럽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백현이는 베타 계급에 속해있었고."
카밀라가 백현을 쳐다보며 맞지? 하고 확인하듯 물었다. 백현은 입을 다물었다. 앞에서 호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넌 재래시장에 가보지 않았겠구나?"
"그래, 멍청한 호인. 백현이가 저런 더러운 곳에 갔을리가 없잖아?"
사실 백현은 재래시장을 가보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귀찮아진 백현이 다시 비디오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카밀라와 호인은 계속 투닥거리고 있었다.
"지금 떠드는 두 명 나와."
언제 들어왔는지 에녹이 그들을 불렀다. 에녹은 열성적인 학생부장으로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자처해서 일했다. 예를 들면 학생 복장 지도를 맡는다던가. 지각이나 늦게 자는 학생들을 끌어내 벌을 준다던가 하는. 덕분에 에녹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의 잘생긴 외양을 보고 따르는 아이들도 많았다.
"에, 에녹."
호인은 말을 더듬었다. 불쌍하게도 호인은 그의 추종자였다. 호인은 자신에겐 없는 에녹의 남자다움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녹은 그런 것에 마음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런 것에 신경도 안 썼다. 그런 무신경함과 단호함을 좋아하던 호인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에녹을 따라간 카밀라와 호인은 비디오가 다 끝날 때 쯤 교실에 돌아왔다. 그들의 오른쪽 팔목에는 형광색 팔찌가 차여있었다. 카밀라가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형광색 팔찌를 찬 아이는 벌점을 받았다. 그것이 쌓이면 퇴학이었다. 퇴학이라고 해도 바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학생들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백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 습관이었다. 카밀라와 호인을 제외한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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