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
주말이라 조금 늦잠을 잔 준면이 하품을 하며 1층으로 내려왔다. 역시나 주말에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 종합병원에서 과장직을 맡고 있는 준면의 아버지는 항상 병원 에 살다시피했고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가족이 집에 같이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티비를 틀었지만 딱히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다시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위에 있는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보냈다.
[집으로와]
핸드폰을 침대위로 던져놓고는 방 안의 욕실에 들어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오니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내려 가 문을 열어주었다.
"빨리 왔네"
"이 근처에 있었거든. 좀 기다렸어"
여자애가 익숙한 듯 준면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항상 앉는 소파에 앉았다.
"내가 너 잡아 먹냐? 어깨 좀 펴. 세 달이나 됬으면 적응할때도 됬잖아."
벌써 세 달이나 되었다. 어떤 계기로 이런 관계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젠가 부터 이런 관계가 되어있었다. 준면이 여자애를 부르면 그 애는 와서 준면이 하라는데로 해주는.
"오늘은 뭐 하면 되는데"
"오늘은 뭐, 딱히 할건 없고 나 주물러줘. 어제 체육시간에 너무 열심히해서 좀 아프네"
침대헤드에 등을 기대고 있는 준면에게 다가갔다. 침대위에 올라가서 준면의 다리를 안마하고 팔을 안마하려고 팔 쪽으로 앉으려는데 갑자기 손목을 잡아당겨 입술이 닿 기 직전의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보게됬다.
"야..쫄았냐?"
준면이 말 할 때마다 입술이 닿았다. 여자애는 민망해서 준면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계속 아래를 보거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봐. 내 얼굴 보라니까?"
여자애를 잡아 당긴 그 손으로 여자애의 손목을 세게잡으며 강요하듯 말했다. 여자애는 천천히 시선을 준면의 눈으로 돌렸다.
"너...안해봤지?"
"..뭘"
"섹스."
여자애가 일어나려는데 준면이 손목을 잡은 반대쪽 팔을 여자애 허리에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눌러서 여자애가 준면에게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준면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허리에 있던 손을 슬금슬금 내려 여자애 엉덩이 위에 놓았다.
"그럼..나랑 할까?"
"그만해. 좀."
여자애는 벌떡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준면은 그런 여자애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는지 욕짓거리를 했다.
"미친년. 진짜 할 것도 아닌데 가만히 좀 있지. 재미없게"
여자애는 귀에 박히는 준면의 말을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재미없게 라는 말이 여자애를 더 화나게 했다.
준면이 머리맡에 있는 담배곽을 열었다. 담배를 싫어하는 여자애 때문인지 자신의 방 안에 냄새가 베일까봐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담배를 필 때면 항상 창문 을 여는 준면이었다.
"요새 여자애들도 담배 많이 피던데. 넌 왜 안 피워?"
준면이 말할 때 마다 입에서 하얀 담배연기가 나왔다. 스마트한 이미지와 아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담배 싫어"
"허.그거, 내가 싫다는 걸 돌려서 말한거? 와. 너 장난아니다. 쓸데없이 패기있어"
준면은 어이없는 듯이 웃더니 담배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담배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쏴아아- 물이 담배를 삼켰다.
"안아줘"
준면이 침대에 이불을 덮은채로 누워서말했다. 여자애는 말 없이 준면의 옆에 누웠다. 준면은 자연스럽게 여자애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자주 이러는 건 아니지만, 종종 이 럴 때가 있다. 이유는 당연히 잘 모르고..아니 물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럴 때면 그냥 평범한 학생을 넘어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여자애는 눈을 감고 있는 준면이 피부도 하얘서 꽤 귀엽고 아이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잠시, 잠에서 깨면 곧 저가 싫어하는 김준면이 돼서 이런 생각 을 할 때마다 자신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여자애도 깜빡 잠이 들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밖은 깜깜해진 뒤였다. 여자애는 곤히 잠든 준면을 놓고 집을 나왔다.
새벽녘, 뭔가 허전한 느낌에 준면이 잠에서 깼다. 옆에 있어야 할 여자애가 없었다. 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이불 속 준면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주가 바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6시부터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하고 학교에 나갔다. 누구나 좋아하는 전교1등 모범생으로 돌아와 등교시간이 1시간이나 남은 그 때부 터 열심히 공부를 했다. 등교시간에 점점 가까워 오자 반 친구들이 하나, 둘 들어왔고 먼저 온 준면과 인사를 했다. 여자애가 교실로 들어오는 걸 한 번 흘겨보고는 다시 책 을 보았다. 역시, 학교와 학교 밖에서 철저히 다른 모습의 준면이었다.
수학시간, 선생님께서 교과서를 들고 문제를 칠판에 따라 썼다. 반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숙인 다른아이들과는 다르게 자신있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선생님과 아이 컨택을 하는 준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준면이가 풀어볼까?"
저 문제 쯤이야 별거 아니라는 듯이 준면이 당당하게 나와 공허한 칠판을 하얗게 채워나갔다. 그런 준면을 보고 아이들이 대단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선생님께서도 만족스 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시, 전교 1등은 다르네"
예의바르게, 겸손하게 선생님께 목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앞자리에 앉은 애가 뒤로 돌아 준면에게 대단하다는 듯이 말하자 준면은 겸손한 웃음으로 답했다.
쉬는시간마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오는 아이들 때문에 화날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고 웃음으로 답하며 친절하게 문제를 가르쳐주는 준면을 보며 여자애는 어이가 없었다.
수업이 다 마치고 여자애도 다른 애들처럼 교실을 나섰다. 준면은 그 때까지 공부에 빠져있었다. 여자애는 교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준면의 공부 지만 어짜피 기다려야 하니까. 그리고 부르면 바로 가야하니까 학교안에서 기다리는게 제일 현명했다.
공부를 끝낸 준면과 여자애가 학교를 나섰다. 해가 져서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준면은 주위를 살폈다. 담배를 꺼내들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필터에 입을 대고 힘껏 빨아들였다.
"내 공부하기도 바쁜데 왜 자꾸 물으러 와 짜증나게. 자기네들 과외선생한테 묻던가 해야지 피곤하게."
준면은 짜증이 섞인 혼잣말을 하며 줄담배를 피웠다. 5개째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자 그걸 지켜보던 여자애가 말했다.
"폐암 걸려 죽고 싶어?"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안그래도 스트레슨데 너까지 이러지마"
준면은 방금 불붙힌 새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티비를 켜고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여자애에게 말했다.
"밥 먹을래."
여자애는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평범하게 된장국을 하기로 하고 냉장고에 있던 애호박을 도마위에 얹어 서걱서걱 썰었다. 잠시 다른생각을 하다 칼에 손가락을 베여 깜짝 놀라 소리를 냈다. 준면이 짜증을 내며 주방으로 왔다.
"무슨 사고 쳤어 또"
여자애가 피나는 손가락을 잡고 있느 걸 보고 준면이 자신이 아픈듯 미간을 찌푸렸다.
"칼질 하나 제대로 못해?"
피나는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피를 빨아먹다 밴드를 발라주었다.
"대충해"
우여곡절 끝에 상을 차리고 준면을 불렀다. 준면이 식탁의자에 앉고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
"먹을만 하네"
배가 꽤 고팠던지 준면은 아무 말도 없이 밥먹기에 바빴다. 그런 준면을 보며 여자애는 입을 열었다.
"너는 나한테 뭘 원하는거야? 니 셔틀짓 하는거?아니면 괴롭히니까 재밌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나한테 몸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준면이 그 말에 숟가락을 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아냐?"
뒤에 작게 욕을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갔다. 여자애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게 황당했다.
방에 들어간 준면은 방문을 닫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자신도 답답한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창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으로 여자 애가 집을 나가는 것을 보았다. 준면은 또 웅크려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사실 준면은 많이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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