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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변백현/오세훈] 괜찮아, 착각이야 15 | 인스티즈

 

 

 

 

 

 

 

 

 

 

 

 

 

괜찮아, 착각이야.

 

15.

 

 

 

 

 

 

 

 

 

 

변백현의 복숭아뼈가 두 동강 나고선 나는 그 집에 자주 갔었다.

 여름이었고, 방학이었고, 집 근처였고, 그는 내 친구였고, 친구가 다친 것이면,

그 이유가 내가 아니더라도 도와줘야 맞는 것이니

 

 나는 그의 집에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물을 달라면 물을 주고, 약국에서 받아 온 약을 챙기고, 밥을 먹이고, 변백현의 부모님은 하루 내내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간 거다.

 

방학의 계획은 마시고 남은 물을 버리듯이 그렇게 버려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당연하게.

 

 

 

 

. 그래도 좀 걸어 봐. 땅에 아예 못 닿아?”

. 아프다고.”

엄살 아니고?”

진짜야. 진짜 아파 안 보이냐. 나 반 깁스 한 거.”

그래도 입은 멀쩡해서 다행이네.”

야 물 좀 갖다 줘.”

저게.

다치니까 상전이지.”

 

 

 

변백현은 정말 하루 일과에 나를 껴 넣으려 했다.

정말 집에 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며

나에게 손을 잡아 끌어달라는 듯 가만히 서서 있었다.

 

 차라리 목발이라도 집고 다니지 왜?

 

 

 

 

 

너 병원에서 목발 같은 거 안 줬어?”

줬는데 불편해서.”

그게 뭐가? 이것 보다 훨씬 편할 거 같은데.”

 

 

 

변백현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야 이리 와.’

그 말에 내가 다가가 변백현의 앞에 등을 보이고 서면 그 아이는 나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뒀다.

 

 

 

 

 

야 화장실 좀 가자.”

원하는 장소와 함께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대로 반발자국 씩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문을 열어주고 다시 돌아 서서 변백현의 집 화장실 문턱을 넘게 도와줬다.

 

 

 

 

손 씻고 나와라.”

어디 가?”

밖에. 너 볼일 보는데 있으라고?”

나 씻으러 온 거야 니가 해줘야지.”

씻는 건 좀 이모 있을 때 하면 안 되나.

  

 

 

. 뭐 씻을 거야?”

샤워.”

죽을래? 미쳤냐? 별걸 다 시켜.”

농담인데 표정 봐라. 진짜 해 줄 기세야.”

샤워라는 말에 반사적인 대답을 토해냈다.

농담도 정도껏이지. 나는 정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인 것뿐인데,

 그게 쟤 한데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놀리는 강도를 그래프로 그렸다면 전과 비교가 안 되게 그래프가 천장을 뚫었을 거야.

 

 

 

 

 

아 그래서 뭐하려고. 도와준다고 할 때 말해.”

양치랑 세수랑 머리 감는 것만 해줘.”

 

 

정말 샤워 빼고 모든 것을 바랬다.

 변백현의 말끝과 전혀 맞지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양치에 세수에 머리감는 게 것만이 될 수 있는지.

 

 

 

 

칫솔 뭔데.”

뭘까 내 칫솔이.”

장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칫솔이 뭘까.’ ‘어느 것이 백현이 칫솔일까.’ ‘니가 맞춰봐.’ ‘그것도 몰라?’

에서부터 결국 백현이 삐짐으로 끝난 변백현의 혼잣말은 정말 들어주기 뭐했다.

 

 그냥 나갈까.

  

 

 

 

 

야 그거 아니야 너 뭐하냐?”

나는 결국 아무 칫솔을 들고선 치약을 짜 묻혀들었다.

  

 

 

내가 볼 땐 이게 니 칫솔인 것 같아. 입 벌려봐. 닦아줄게.”

 

변백현은 그게 아니라며 저기 저 초록색이 자신의 것이라며 방방 뛰었다.

그래봤자 뛰지도 못하면서 뛰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나는 변백현의 입 안에 칫솔을 마구 구겨 넣고선 이리저리 칫솔질을 시작했다.

 

 

 

 

해봐

디러.”

드럽다고?”

딜다고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를 말만 마구 해댔다. 

 막상 변백현은 칫솔질을 시작하자 욕조의 끝에 앉아 얌전히 칫솔질을 받고 있었다.

체념한 것인지 정말 얌전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이 칫솔이 얘 건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참 얌전했다고 생각 했던 것인지 해보란 말에 따라주지 않자 나는 그 두 입술내 두 손가락으로 벌렸다.

 

 

 

 

 

 

니가 애냐.”

얘가 얜가. 칫솔에 집중하며 구석구석 닦아주고 있는데, 무언가 속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변백현이 팔을 다친 게 아닌데.

  

 

 

 

 

나는 곧장 칫솔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변백현이 입에 조금 거품을 묻히고 칫솔을 문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청량감을 가득 담은 그 눈이 자긴 아무 것도 모른다며 왜 손을 떼냐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야 근데 이거 왜 내가 해주는 거야?”

“?”

너 다리 다친 거잖아. 니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변백현은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듣는사람은 들을 줄 모르는데 나만 신나게 떠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너 다리 다친 거잖아. 근데 왜 내가 씻겨줘야 해?”

“?”

아니 네가 니 손으로 하시라고요.”

  

나는 변백현의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하나에 칫솔을 쥐어주기 시작했다.

 ‘네가, , 손으로 하라고. ’

 

 말을 빼 놓지 않고 함께 쥐어 주었다.

 

 

 

 

하고 불러 올테니까.”

등을 보이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알아서 잘 하리라 생각하며 거실의 쇼파에 앉아 티비를 틀자마자 나오기 시작한 런닝맨을 시청하고 있었다.

 

 

 

 

 

! 이리 와봐!”

 

 

 

 

웅얼대는 말로 변백현이 나를 불렀다.

발음은 또 왜 저래? 다리 다치면서 같이 다친 거 아니야?’ 쓸데없는 이유 모를 걱정이 잠시 나를 지나쳐 갔다.

곧장 발을 딛고 화장실로 걸어가 문을 열어 재치니 내가 마지막에 보았던 변백현의 모습과 너무 같았다.

 입에 거품은 조금 마른 듯 보였고,

 행구지 않은 칫솔은 손에 들고 욕조에 걸터앉아 있었다.

 

 

 

 

 

너 뭐해? 안 씻어?”

니가 해 줘.”

.”

씻는 거.”

너 할 수 있잖아. 왜 고생 시켜?”

나 못해. 손도 다쳤어. 못하겠어. 해 줘.”

 

 

변백현 앞으로 걸어갔다.

 손 어디. 어디가 다쳤냐? 들어나 보자.’

 

 

여기 팔목 안에서 자꾸 욱신욱신 거려. 나 못 씻을 거 같아. 니가 해줘.”

그냥 씻기 싫다 말해. 왜 그래?”

씻고 싶은데, 니가 해줘.”

못된 놈.”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곤 돌아 나왔다.

 

 

 

 

 

 

 

아니, 나오려 했다.

변백현은 내가 뒤를 돌려 하자 곧바로 나의 손을 잡아챘다.

 야 너 가면 나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아무 것도 못 해.“

 

 

 

 

아무 것도 못 해? 이건 3살 어린 애도 아니고.

  

일어나봐.”

 

그래 얜 환자긴 하니까.

 세면대로 향해 물을 틀어 입에 뭍은 거품을 닦아주었다.

 당연히 변백현의 두 손은 세면대를 집고 있었고,

내 손만 일하는 거지.

 

 

 

 

 

.”

치약을 헹굴 물을 컵에 담아 건넸다.

 그러나 변백현은 그 컵을 말똥히 바라보고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뭘 또 어쩌라고.

  

 

 

 

이것도 쥐어 줘야 해?”

니가 해줘. 나 손목 아프다니까.”

나도 손목 아파. 안 받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자 나는 한 번 더 변백현의 손을 잡아챘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물컵을 쥐어주고 헹궈.’ 라는 말을 건넸다.

 

 잘 하는 고만.

 

 

 

 

 

 

세수해줘 세수.’ 헹굼과 동시에 변백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세수. 그래. 세수 해줄게.

 세수.

 

 

 

 

  

야 눈에 다 들어가잖아. 제대로 하라고.”

넌 눈이나 제대로 감아. 남이 제대로 해주면 너도 제대로 해줘야지.”

 

비누 거품 가득한 내 손을 변백현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볼부터 동글동글 굴려나간 거품이 어느새 이마와 눈까지 점령했다.

거품귀신이 따로 없었다. 이걸 사진으로 찍어 놔야 하는데.

  

 

 

야 언제 다 되? 아직 안 끝났어? 눈이 아파 너무 힘을 많이 줬나.”

 

저 말 많은 입에도 거품을 가득 묻혔다. 입 닫고 있으라고.

으 엉으으

야 기다려 참아봐 좀 아직 많이 남았어. 눈에 힘 풀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거품 들어갈라.”

내 작은 복수였다.

 

 

 

 

-

 

 

 

누워.”

?”

누우라고.”

머리를 감을 때가 왔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다리 다친 머리를 감는 건 정말 힘드니까 이건 정말 도와줘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천장을 보면서 누우라고 한 건데 왜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다.

 드라마도 본 적이 없나. 변백현은 정말 욕조에 들어가서 눕는 시늉을 해댔다.

 

 

 저게 바본가.

  

 

 

 

 

아니 이렇게 누우라고.”

욕조 안에서 어중간히 서서 있는 변백현에 나는 친히 시범을 보였다.

변백현을 바라보면서 욕조에 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응? 해봐.’

  

 

 

 

 

이렇게?”

그래. 야 물 뿌린다.”

드디어 제대로 된 자세에 샤워기를 들어 변백현의 머리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야 근데 너 머리에 물주면 막 머리카락 자라는 거 아니지?”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물을 묻히기 시작했다.

욕실을 울린 내 목소리 뒤에 따라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아무 목소리 없이 눈만 감고 조용히 고개를 젖히고 있는 변백현은 혹여 저건 잠을 자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일게 했다.

 

 

 

 

 

야 너 자냐?”

샴푸를 한번 쭉 눌렀다.

 머리에 대고 비비적거리니 금세 거품을 이뤄 변백현의 머리가 온통 하얀 샴푸 거품으로 가득했다.

 샴푸 향도 좋았고, 괜히 손가락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이 꼭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으로 손을 내민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욕실을 매우는 소리는 나의 것 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야 너 자? 진짜 자? 그럼 나 너 좀 욕해도 되나?”

 

솔직히 이러면 일어날 줄 알았다. 지문으로 두피를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정말 이정도면 자는 건가?

  

 

 

변백현은 사실 멍게 해삼 말미잘이다.”

 

변백현이 잠에 들었다.

 

 

 

너는 붕대를 감은 다리에 쥐가 몇 번 나도 꿀 같은 벌이라고 달게 받아. 너 때문에 세훈이도 못...”

 

 

 

말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제 거품으로 보이지 않는 검정 머리카락을 다시 밖으로 꺼내기 위해 물로 헹궈야겠다는 생각 분이었는데,

 입 밖으로 내뱉어 지는 말과 그 생각마저 모두 지우는 것은 단 0.1로도 충분했다.

 

 

 

 

 

 

왜 말을 멈춰. 안자니까 계속 해봐 너 하고 싶은 말.”

 

변백현이 눈을 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눈을 뜨고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오세훈 못 만나서 서운해?”

 

 

 

 

아니.’

 

생각은 참 쉬웠다.

나만 알 수 있고, 남에게 감출 수 있으며,

 나를 남에게 감추는 것은 아마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질 최고의 강점이 아닐까.

 

 

 

 

 

 

그래서 나 미워?”

 

마음이 두근댔다.

두근대는 마음이 손가락을 타고 변백현에게 전해지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슬픈데, 니가 나 미워하면.”

마치 십대가 된 기분이다.

 

오세훈 얘기는 하지 말지.”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할 때 이름을 무엇으로 해 놓아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한다.

그냥 이름 세자로 저장하기엔 내 마음의 그릇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내 온 마음을 모두 표현해놓기엔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

  

 

 

 

 

 

.”

“...”

 

방학을 만끽하는 것은 역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 핸드폰이 정신없이 울려댔다.

 액정이 보여주는 발신자는 세훈이였는데, 전화를 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끊임없이 벨소리가 울리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지. 초록색의 통화를 터치하니 상대방과 연결이 되었다.

아무 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너편은 세훈이가 자다가 통화버튼을 잘 못 눌렀나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기 쉽지 않다.

 

 

 

 

“...”

세훈아. 세훈아?”

. 일어났어?”

졸린 목소리가 세훈이를 불렀다.

일어나자마자 듣는 목소리는 참 애인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건데,

 

 

 

 

 

 

밥 먹고 내려와. 아래에 있을게.”

 

 

아래에 있을게.‘

 말을 듣고 나는 침대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치 침대가 날 밀어낸 것처럼 튕겨서 나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세훈이가 하는 말이 왠지 우리 집 앞에 이미 와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기에.

 

 

 

 

 

뭐야? 너 왜 거기에 있어?”

니가 안 받아서.”

그럼 올라오지. 안 더워? 얼른 와.”

가도 돼?”

. 얼른 와.”

 

 

 

나는 당당히 말했다.

밖에서 찜통더위에 온갖 쓸데 없는 고생을 하는 세훈이에게 자신 있게

우리 집으로 당장 올라오라며 거기서 뭘 하는 거냐며, 덥지 않냐며,

 

 

말을 마치고 나니 생각난 내 몰골과, 거실에 있을 엄마. 치우지 않은 방. 이미 자리에 없는 오세훈.

 

 

 나는 망했구나.

 

 

 

 

 

 

엄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 나는 세훈이에게 급한 문자를 보냈다.

 

 

[세훈아우리엄마집에잇어.]

 

 

 띄어쓰기도 제대로 못 한 급한 문자를 보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그 옆의 숫자는 지워질 생각을 않는다.

 

얘 미리보기로 다 보고 있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없겠지.

 

 

 

 

나는 머리를 대충 몇 번 아래로 쓸어내리고 거실로 향했다.

한가로이 앉아있는 엄마를 보았다.

 참 뒷모습이 여유로워 보이는 중년의 여성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엄마.”

 

. 해가 중천인데 이제 일어 난거야? 방학이라고 놀고, 먹기만 하지. 이따 백현이네 집에 사골 좀 갔다 줘.

뼈 붙는 데엔 그거만 한 게 없어. 알겠어?”

 

 

 

 

알겠어! 엄마는 가만 보면 변백현이 아들 같아.”

백현인 엄마 아들이지.”

 

와다다다 쏟아지는 말들에 잠시 할 말을 잊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 정신을 다 잡자.

 

 

 

 

엄마.”

. 이것아.”

내 친구 올라온대. 지금.”

너 지금 일어났는데?”

.”

어떤 친군데?”

?”

어떤 친구냐고.”

 

 

아 세훈인 남자친군데.

 

 

 

 

 

 

 

.........”

남자친구야?”

!!!! 남자친구야!!! .”

남자친구를 집 앞에서 기다리게 해? 니가 약속 안 지킨 거지? 이건 정말 잠만 잘 줄 알지.”

 

차마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명칭을 엄마가 대신 말해주니 옳다구나 싶었던 건지,

입이 절로 남자친구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마치 사자후와 같았는데, 그 여파가 너무 커 내 머릿속에선 온통

 만일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나 모태솔로인 줄 알고 처음 남자친구 만난 건 줄 알고 막 놀리면 어떻게 하지. 얼굴도 다 아는데,

 아 나 모태솔로 맞았구나. 세훈인 내 첫 남자친구구나. ’

 

 

하는 생각을 모두 했을 때에 엄마는 이미 나에게 꾸중 한 번 하고 말을 마쳤더랬다.

 

 

 

 

 

 

 

 

아파트 단지 아래에 있는 세훈이가 사라진 것을 보고

거실에 나가 엄마에게 말을 하고, 세안을 하고, 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세훈이는 올 생각을 안했다.

 

얘 엘레베이터에 빠진 거 아냐?’

 

 

 

 

나 나갔다 올게.”

 

 

 

현관 앞에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신발 중 아무거나 골라 신었다.

 

 

 

그려. 남자친구 잘 만나고 와. 엄마 이제 나갈 거야.”

. 어디?”

  

아줌마들 모임.”

 

 

 

신발 끈을 묶고, 일어서서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엄마는 모임에 가면 좀처럼 그 다른 이모들과의 수다에 빠져서 밤늦게야 집으로 오셨다.

 아마 그 중엔 변백현의 어머님도 계실 텐데.

 걔는 오늘도 집에서 이동도 못하고 거실에서만 갖혀 있어야 하나.

 이따 갈비 가져다주면서 봐야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알겠.!!!”

 

진짜 빠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으로 현관문을 연 순간 나는 다시 뒤로 자빠질 뻔 했다.

덕분에 엄마에게 알겠다고 말 하려는 게 다시 한 번 비명에 전혀 못 미치지만 그래도 비명과 닮은 소리로 입 밖을 나왔다.

그것도 그런 게 모르는 사람이 집 앞에 우뚝 서 있으면 누구나 다 그러지 않나.

 

 

 나는 오세훈을 못 알아 본 것이다.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차마 얼굴을 못 보았어.

 그래서 멋없는 비명 같은 비명을 지르고 널 이상하게 본거야. 라고 정말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는 듯 정말 우뚝 서서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 뭐해? 왔으면 벨을 누르지.”

? 나 왔어.”

누군데? 어머.”

 

세훈이가 현관 앞에 우뚝. 말 그대로 그냥 우뚝 서 있었다.

 올라왔으면 초인종이라도 누르고 들어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얘는 밖이 덥지 않나. 내가 벨을 누르라는 말을 건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자기 왔다며 말을 했다.

정말 저 얼굴에 저런 성격은 안 어울린다.

 

. 뭐냐면. 모지리?? 정말 사람이 이보다 더 반전적일 수는 없을 거다.

  

 

 

 

 

 

 

엄마. 남자친구.”

 

 

 

 

 

나는 엄마에게 세훈이를 소개했다.

 

 엄마는 내 말에 키가 훤칠하다며, 인물이 환하다며, 너는 이런 앨 밖에다 뒀냐며,

 이름이 뭐냐며, 왜 저런 애를 만나냐며,

 

엄마가 세훈이의 팔을 끌어 집으로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의 말을 한 번에 쏟아내니 세훈이의 표정이 참 볼만 했다.

어린아이 같았다.

 

관심이 낯선 사람 같아 보였다.

 

 

 

 

 

엄마 나간다며.”

어머, 좀 기다려봐. 이따가 가도 돼. 세훈이? 세훈이라고 했나? 밥은 먹었니?”

. 오세훈 이에요. 밥은 아직 안 먹었는데, 얘랑 같이 먹으려고 했어요.”

어머 그럼 같이 먹어야지. 아줌마가 밥 차려 줄까?”

엄마 나가야 한다며.”

 

 

 

 

나는 엄마를 얼른 보내버리려 했다.

 세훈이는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우리 엄마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어느 커플이 이 두 개를 동시에 하나 싶었다.

 

 

 

 

 

엄마. 밥은 내가 차려 줄게. 세훈아 점심 내가 해줄게. 엄마 나가야지.”

 

. 배고파요. 밥 먹어도 돼요?”

 

그럼. 아줌마가 밥 차려줄게. 조금만 기다려봐.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엄마.”

 

아니요. 그냥 밥이면 되는데, 제가 뭐 도와 드릴게요.”

 

세훈아?

 

아니야. 손님은 앉아 있는 거야. 저기 거실에 앉아 있어. 배고프지?”

 

 

 

 

나는 이방인이었다. 누가 보면 세훈이가 아들인 줄 알겠다.

 

 

 엄마는 꼭 그런다.

변백현이나 세훈이나 나보다 더 소중하게 다루는 것 같아.

 

 

 

엄마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주방 쪽을 보며 헤실 웃는 세훈이를 그냥 바라봤다.

 

정말 어색하지 않나? 원래 당황해야 맞는 거 아니야?

 

 

 

 

 

 

너희 부모님 참 좋은 것 같아.”

 

나보단 널 더 좋아해.”

 

그래서 니가 그렇게 사랑이 많은가봐.”

 

?”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봐.”

 

네가 보기엔 그래?”

 

.”

 

?”

 

내가 네 남자친구라니까 저렇게 반기시는 거야.”

 

“...”

 

넌 사랑받아.”

 

“...”

 

그게 어울려.”

 

 

 

 

-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았다.

 세훈이와 나는 나란히 앉고 엄마는 우리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참 어색하고 부끄러운데, 막상 나를 뺀 두 사람은 마치 근 5년은 보고 산 사람들 같았다.

세훈이와 엄마는 정말 친 모자처럼 굴었다.

 

 

 

 엄마가

 

 이거 먹어봐.’

 

 하면서 구운 생선을 한 조각 올려주면 세훈이는 크게 뜬 밥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그걸 보면서 엄마는 또 밥도 복스럽게 먹는다며 칭찬을 해댔다.

 

 

. 내 밥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내 딸은 왜 만나니?”

이 말이 언제 나오나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딸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외치고 싶었지만 세훈이가 나를 도덕도 모르는 철없는 여자애로 볼까 꾹꾹 눌러 담았다.

 옆에서 들려 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왜 만나?

  

 

 

 

 

 

 

예뻐서요.”

“...”

 

 

 

예뻐요. 얘가.”

 

 

 

 

 

 

볼이 붉어졌다.

남한데 예쁘단 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기회가 얼마 없기도 했지만,

막상 이렇게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남자친구에게 듣자니 참 부끄럽고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다.

 

 

 

 

 

 

 

 

막 걸어 다니면 신발이 분홍색 페인트 같은 거 묻히고 다니는 거 같아요.

걸음마다 발자국이 분홍색이에요.”

 

 

 

어머.”

예뻐요. 남 주기 싫어요. 그래서.”

 

 

 

 

 

세훈이가 말끝마다 나를 바라보았다.

볼이 붉어 터질 것 같았다.

 엄마를 힐끔 바라보니 흡족한 처음 본 표정으로 세훈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묘하게 평소와 달랐다. 엄마가 몇 마디 말을 덧 붙였다.

  

 

 

 

 

내가 많이 걱정했거든요. 연애 처음 하는 거라고 어디서 이상한 남자애 만나갖고 올까봐.

그런데 내가 괜히 걱정했네.”

 

 

쭈뼛쭈뼛 밥을 먹었다.

 들어가지 않는 밥이라도 들어가게 만드는 게 이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숟가락 젓가락을 손에서 놓고 있으면 정말 쥐구멍을 만들어서라도 숨었을 거다.

아마 식탁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

  

 

 

 

 

 

엄마 나갔다 올게. 세훈이 시간 되면 집에 보내고, 백현이한테 갔다 와.”

알았어.”

 

 

 

 

 

저녁되기 전에 갔다 와. 알겠어?’

경고와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가 현관문을 닫았다.

 ‘하는 소리가 몇 번 씩 강조되었다. 문이 닫히자 나는 몸을 틀어 안으로 들어갔다.

티비 몇 발자국을 걸어 거실에 도달하니 세훈이는 겨지지 않은 까만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하얀 티셔츠에 마른 등이 더 부각됐다.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조심스레 가서 리모컨을 들고 빨강색 전원버튼을 누르자 조용했던 거실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화면이 밝아졌고, 세훈이가 뒤를 돌아봤다.

 

 

 

무슨 생각 해?”

그냥. 신기해서.”

뭐가?”

너 만난 거.”

 

 

 

 

제일 잘 한 일이야. 학교 입학한 거. 너 만난 거.’

말이 공기를 타고 폐부 내로 들어왔다. 내뱉는 숨이 떨리는 이유는 아마 그것이겠지.

  

 

 

 

밥 먹을래?”

아까 먹었잖아.”

또 먹어. 내가 해주는 걸로. 너 너무 말랐다.”

 

 

내 손이 세훈이의 등과 어깨와 손목을 한번 씩 훑었다.

 

 

 

넌 또 먹어도 돼.’

  

 

 

 

이따 저녁으로 해줘.”

저녁?”

그럴까? 라고 나올 말이 입 안에서 되돌았다.

이따 변백현 집에 가야 하는데.

 

 

굳은 침묵이 거실을 가득 매웠다.

세훈이는 내가 뚫려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이따 나가야 돼.”

변백현 집?”

?”

 

 

 

 

나가봐야 한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세훈이가 말을 이었다.

 마치 내가 그 말을 할 것 같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금세 세훈이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변백현 집에 자주 가나봐?”

앉아 있던 세훈이가 무릎을 굽혀 앉더니 이내 일어서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변백현 집에 자주 가나봐?’

표정 없는 이 아이의 눈과 말이 몸을 굳게 만들었다.

  

 

 

 

 

아니. 다쳤으니까...”

 

 

말끝이 절로 소리를 죽였다.

 

 

 

세훈이가 허벅지께 동동 떠 있는 내 손가락을 자신의 손에 접촉했다.

간질간질하게 쓰다듬어 올라오는 손에 마음이 마구 요동쳤다.

세훈이가 내 손을 살포시 맞잡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

나 저녁 해줘.”

“...”

그냥 뭐 가져다주는 거 아니야?”

“...

나랑 같이 가자. 나 밥 해줘.”

 

 

눈을 휘어 접으며 말을 했다.

 

 

그 눈이 꼭 밤하늘의 손톱 달과 같다 생각했다.

 

 

 

 

-

 

 

 

 

우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변백현이 집에 엄마가 부탁했던 사골국을 배달하기로 했다.

어차피 숨기려 했던 세훈이한테 모두 말한 후로 세훈이는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고,

 세훈이를 집에 보내고 변백현의 집에 가려고 했던 나는 숨길게 없어지니 어느 시간 대던 상관이 없어진 거다.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큰 통에 사골국을 옮겨 담곤 세훈이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아픈 뼈 다 붙겠네. 내가 들게. 가자.”

  

 

 

뚜껑을 닫고 주방을 대충 정리했다. 옮겨 담다 흘린 국물을 휴지로 훔쳐 닦고, 함께 현관 밖으로 향했다.

 

 

 

 

 

팔짱 껴줘

?”

손 못 잡잖아. 팔짱 껴줘.”

 

 

 

 

신발을 신고 통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세훈이가 나에게 말했다.

팔짱을 껴달라는 말에 나는 곧장 세훈이의 팔에 나의 팔을 껴 넣었다.

 

 

 너 넘어지면 이거 다 쏟는 거야. 조심해.’

뒷모습이 꼭 봄의 벚꽃과 같은 커플이었다.

 

 

 

 

-

  

 

 

 

 

여기 10. 변백현네 집이야.”

나도 알아.”

 

 

 

새삼 말실수를 한 건가 싶었다.

나의 말에 짧게 대답한 세훈이가 얕게 웃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나는 변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집 문 앞을 도달할 때 까지 묵묵부답이었다.

 

 

 

안 받아?”

. 자나?”

  

 

 

 

진짜 잠을 자는 건지 변백현은 받을 생각을 안했다.

괜히 세훈이 손에 들려있는 사골국물을 한 번 바라보고 생각을 하다 변백현의 집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해갔다.

경비실에 맡기기도 그렇고 이게 그나마 제일 나은 선택인 것 같아 거침없이 눌러갔다.

  

 

 

비밀번호도 알아?”

이모가 알려줬어.”

 

 

 

 

 

세훈이 딴에선 혹여 기분 나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종이 접듯 접었다.

혼자 사는 자취방도 아니고. 가족이 사는 친구의 집인데 뭐 문제가 있으려나 싶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세훈이가 들어올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이것만 두고 가려 하는 거니까.

 

 

 

 

세훈이가 자연스레 집의 주방 쪽에 위치한 식탁 위에 사골이 담긴 통을 놓았다.

나는 거 모습을 지켜보다 변백현의 방을 열어 재꼈다.

 

 

 

 

방 안에 있는 것은 널브러진 옷과 흐트러진 이불이었다.

  

 

 

없어?”

.”

 

 

 

나는 대답을 하면서 변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골 국을 놓고 간다고 말해주려는 것이었는데, 수신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세훈이가 발걸음을 옮기자 나 또한 함께 발걸음을 옮겨 이동했다.

 

목적지는 방 안쪽의 침대였는데, 이불을 이리저리 들춰내고,

그 행동을 멈추더니 이내 아무런 표정 없이 이불 안에서 변백현의 것인 핸드폰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세훈이 곧은 무언가가 된 것 같았다.

유하지 못하고 구부려지지 않는 곧은 철 같은 것.

 

 

내가 걸고 있었던 전화를 거절하고선 음이 없는 말투로 놓고갔네.’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핸드폰을 침대 위에 툭 하고 던져 넣더니 나를 지나쳐 변백현의 방을 벗어났다.

 

 

그의 행동과 겉도는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 버린 듯 한 기분에 그 자리에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괜히 세훈이가 던져놓고 간 변백현의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손길은 자연스럽게 홀드 쪽으로 옮겨졌고, 버튼은 눌려졌다.

 

 

 

 

 

[부재중 전화 2]

-변씨가문며느리-

 

 

 

 

 

안 나오냐?”

문턱에 걸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훈이 칼바람과 같이 말했다.

얇고 날카로워 그것을 쉽게 알아챌 수도, 건들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꽃밭을 밟고 서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챘다.

 더도 말고, 10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암호닉-

캘리포니아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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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마이갓 오마이갓!!!!!!!!!!봤어 세상에 본거야 변씨가문며느리 그 단어를 본거라고!!! 아 세상에 ...아 헐 진심 멘붕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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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 진짜 마음아파 죽겠다 나만 눈물 흘리면서 봤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 진짜ㅠㅠㅠㅜㅜㅜㅜㅜㅜ감사해요 이런 글 써주셔서
10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백현이어디간거야..후니어떡해봤어봤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0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이제ㅑ 봤네요 세훈이나 여주나 ㅠㅠㅠㅠ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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