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이름이 뭐라고?”
“세훈이요.”
“성은?”
“몰라요. 세훈이에요.”
꿈을 꾸었다.
낮선 공간 안에서 나는 울었다.
내 앞의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물었고,
엄마와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그 이후로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커가면서 사람들은 어렸을 적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가지만,
나는 그 일이 몇 살인지 날씨가 어땠는지 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
“엄마는 언제 와요? 열 밤만 자면 온다고 그랬는데...”
아마 엄마가 말했던 열 밤은 다른 세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열 밤이 이리 길 수는 없었다.
-
보육원의 시설은 좋지 못했었다.
낡아진 나무가 된 벽은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이 타고 흘러 내려왔다.
스산한 기운에 나는 항상 울음을 터뜨렸었다. 겁이 났다.
이곳은 집이 아니었으며, 나는 혼자였고,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모두 입양을 갔다.
“...엄마... 엄마.... ”
어린 나에게 열 밤이란 너무 기나긴 시간이었다.
싫은 일을 하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더뎠고, 지루했다.
-
“저 아이는 몇 살이에요?”
방문하는 어른인 사람들은 나를 쉽게 오해했다.
‘쟨 표정이 왜 그러니?’
라면서 나를 피했고 싫어했다.
젊은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원장님에게 물었다.
나는 몇 살인지 모르는데, 원장님은 내 나이를 아실까.
“올 해에 7살이 됐어요. 아이가 참 예쁜데...”
생일도 나이도 모두 잊었다.
원장선생님은 나를 예쁘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나는 공감하지 못했었다.
젊은 여자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나를 참 어여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친구들의 생일파티엔 까만 방 안에 케이크의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이 꼭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았다.
밤하늘엔 내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영영 나는 이런 어둠 속에서 지내고 싶었다.
-
“여기는 이제 너의 집이야. 나는 너의 엄마고, 엄마라고 불러줄래?”
공간이 바뀌었다.
몇 번을 보는 장면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바뀌어 있지 않았다.
여자는 나의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굽혀 앉았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며 나에게 부탁했고,
원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으로 보아 2년 동안 엄마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어 나의 입은 굳어있었다.
여자는 굳이 그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세훈이니? 네가?”
“성을 모른다고 했어요.”
옆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섰다.
‘너의 아빠야.’ 여자가 말했다.
너의 아빠라고 나의 아빠라고, 사람이 태어난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영 모르겠다.
7살 때에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려 해도 그려지지 않고,
까만 화면만 지속될 때에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는 게 맞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오’세훈이 되었다.
-
거실에는 나와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과일을 깎고 있었고, 남자는 나에게 선물을 주었고, 나는 그 선물을 받으며 줄곧 잘 웃었다.
눈이 휘어지는 것이 꼭 밤하늘의 손톱 달과 같았다. 부부는 나에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나는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면 그 부부의 모습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가족이 되고, 나는 정말 그 집의 아들이 되는 줄 알았다.
-
그런데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세훈아 동생한테 양보해야지.”
“그러면 못 써!”
“어. 왔니?”
나는 아들이었지만, 아들이 아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동생은 나보다 앞에 있었다.
-
“형. 축구하자. 나가서 놀자. 응?”
동생은 나를 줄곧 잘 따랐다.
조금 더 자라고 내가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 동생은 마당에서의 축구놀이를 바랬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고, 나는 동생을 미워하지 않았으니,
항상 함께 놀고, 먹고, 자고 모든 일을 함께했다.
“형 이리로 줘! 여기로 차! 패쓰해! 패스! 내가 골 넣어볼래! 형이 막아 봐. 응? 운동장에 가자. 형.”
이 곳이었다.
동생은 마치 어린 천사가 내려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처럼 웃었고,
저런 웃음을 어떻게 하면 지을 수 있는지 나는 밤마다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했었을 때도 있었다.
결국엔 또 다시 너는 가졌고,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었다.
-
꿈속에서 몇 번을 본 장면일지라도 나는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 공 줘봐!”
하는 소리에 나는 구르는 공을 발로 톡 차 동생에게 주려 한다.
나는 두 어린 사람을 보고는 차도로 뛰어 들었다.
인도 옆쪽의 두 번째 차선은,
“형! 너무 멀리 찼어!”
“야! 위험하잖아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야!!”
내가 동생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린 날의 내가 도로로 마구 뛰었다.
몇 번씩 본 상황이 너무 익숙하지만, 나는 매번 얼굴에 물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내가 가는 길마다 바닥의 색이 진해지길 바랐지만,
이건 꿈이었다.
공은 나에게로 왔고,
동생도 함께 내 품으로 들어왔다.
잡히지 않는 품이 참 서글프다. 등을 감싸 안아 동생이 공을 줍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를 부실 것 같은 자동차가 빠르게 내 등 뒤로 오고 있었다.
그 엔진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온 몸이 굳고, 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며,
눈은 동생에게 고정시켰다.
차마 못 볼 광경이 버러질 것에 나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에서 깼으면 좋겠다.
이건 꿈이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잠에서 깰 수 있었는데,
이번엔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는 동생을 품에 꼭 안았다.
그건 빈 공간과 같았다.
형!
가슴팍에서 미약한 두드림이 느껴졌다.
꿈에서 깬 것일까 눈을 떴지만, 여전히 이차선 도로 위에 나는 공을 잡고 있는 동생을 안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에 나는 온 몸이 굳었다.
동생이 나를 바라봤다.
“형. 고마워! 사랑!”
해!
다듬어지지 않은 말끝은 마치 하려던 말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빠른 차가 나를 통과해 갔다.
품에 있던 동생이 사라졌다. 꿈은 여전히 꿈이다.
이룰 수 없으며, 깨는 일만 남은, 도로 위로 뛰던 어린 내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나의 굳은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갔다.
너는 꿈속에서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나의 머리를 한 번 매만지며 지나쳤다.
너는 이곳에서 정말 내 꿈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
그 아이의 집에 갔다.
꿈을 꾸고, 곧장 나와 너의 집으로 가려니 보이는 도로에 쉬이 차를 탈 수 없었다.
길을 걸었다.
아주 빠르게
걸었다.
새벽은 맑았다.
소리 없는 고요함은 내 마음과 같아 정말 편했다.
동이 트고, 네가 일어날 때쯤에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 수신자가 불안했다.
변백현이 생각나고, 네 얼굴이 나타났다.
너 또한 나를 떠나려나.
나의 두 번째 가족들처럼.
-
/그럼 올라오지. 안 더워? 얼른 와.
“가도 돼?”
/응. 얼른 와.
너의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내가 사는 집은 저런데, 너의 집은 어떨까.
마음이 두근두근 하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했다.
너무 떨렸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있었다. 손잡이를 쉬이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 들어가도 될까.
-
“너 뭐해? 왔으면 벨을 누르지.”
“어? 나 왔어.”
“누군데? 어머.”
현관을 열고 갑자기 나온 너는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집의 문을 열어 나를 반기는 너와 너의 어머니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군가 열어주는 문을 들어서는 게 낯설었다.
“엄마. 남자친구.”
너는 나를 남자친구라 소개했다.
‘아 내가 네 남자친구구나’ 사소한 것에 심장이 이리 퉁 저리 퉁 튀는 것 같았다.
온 몸의 혈관이 심장으로 변한 듯 보였다.
“아줌마가 밥 차려 줄까?”
밥그릇에 살포시 올려 진 생선 조각이 보여 지자 나는 밥을 뜨고 입에 넣으며 울음을 참느라 애썼다.
너는 이런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구나.
그래서 네가 그렇게 예쁜 건가.
나는...
고개를 숙이며 밥을 꼭꼭 씹었다.
가시 하나 느껴지지 않는 생선을 다음에, 그 다음에 다시 찾아와도 이렇게 밥 위에 올려서 나를 주실까 생각했다.
밥알이 목구멍 뒤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
우리는 변백현의 집에 사골 국을 배달하기로 했다.
집으로 올라가 변백현이 전화를 받지 않자 너는 참 익숙하게도 그 집의 비밀번호를 눌러 넣었다.
대체 너와 변백현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내가 그 거리를 따라잡으려 한다면 몇 년을, 몇 날을 더 기다려야 하고,
너를 알아야 할까.
-
통에 담긴 사골 국물을 식탁 위에 놓았다.
너는 다시 한 번 변백현에게 전화를 거는 듯 보였고, 너의 쪽으로 다가가니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변백현의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진동이 느껴지는 곳을 찾았고, 이불을 걷어냈고,
나는 변백현 혼자서 너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상상하고, 매일 몰래 무어라 불러댔는지 알았다.
-변씨가문며느리-
세상이 하얘졌다.
뻔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변백현은 항상 이런 식으로 속을 달달 긁어댔다.
아무리 만나지 말라 하더라도 기어이 만났고, 나에게서 언젠가는 뺏어갈 듯이 굴어댔다.
‘변씨가문며느리’
나는 너를 어느 가문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데,
변백현은 너의 이름을 ‘변씨가문’이라고 저장해두었다.
온 몸에 질투가 들끓었다.
그게 혹시 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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