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해가 쨍쨍하여 더운 여름 날, 여댓명으로 보이는 꼬마 여러 명이 놀이터 흙 마당 위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귀엽고 예뻤지만, 그중에도 긴 파마머리를 어깨 위로 길게 늘어트린 한 여자아이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라보기만 해도 생기가 넘쳤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길게 휘어지는 눈과, 싱글벙글한 입가가 시원한 인상을 주었고 하얀 피부와 빨간 입술이 다섯 살 꼬마아이라고 보기는 힘든 예쁨을 강조시키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소꿉놀이에서 엄마 역할을 맡았고, 딸과 아들 역할을 맡은 아이들의 모래 밥을 만들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래를 작은 접시위에 올려놓곤 나뭇잎으로 데코를 함으로써 모래 밥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뿌듯한 눈으로 모래 밥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길게 휘어진 눈을 찌푸리고, 싱글벙글한 입가를 주욱 늘어트리더니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야! 나는 왜 맨날 엄마만 하는 거야?”
“그건……. ○○가 여기서 제일 예쁘니까!”
“그럼 나도 남편 만들어줘! 남편!”
그 때 오렌지 빛 바가지 머리를 찰랑거리며 개구진 눈과 동그란 입을 가진, 모두의 이목을 끌만큼 큰 목소리로 “내가 할래!”를 외치는 남자아이가 달려왔다. 위풍당당하게 달려온 그 남자아이는, 놀이터 흙 마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놀이터에 오는 모든 아이들에게 항상 아는 체를 했던 여자아이도 처음 보는 아이였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 앞에 서서 입 꼬리를 둥글게 말아 올리며 미리 꺾어 온 강아지풀 꽃을 동그랗게 말아 아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 묶어주었다. 봉숭아물까지 예쁘게 물들인 여자아이의 손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이름이 뭐야?”
“…… ○○○.”
“예쁘다.”
이름이 예쁘다는 건지, 얼굴이 예쁘다는 건지, 혹은 다른 것이 예쁘다는 건지 통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말에 볼을 붉혔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드디어 아빠가 생겼다며 다들 박수를 쳐주었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나름 아빠, 엄마 역할이 나름 잘 어울리게 놀았다.
“여부~ 이거 드셔보세요!”
“음, 별루에여!”
발음이 완벽하진 못하지만, 꽤 귀여운 발음으로 부부 흉내를 잘 내던 둘은 놀이터에 있는 어떤 아이들보다 순수해 보였다. 처음 소꿉놀이를 같이하던 날, 그 이후로도 여자아이는 항상 소꿉놀이에서 매일 엄마 역할을 맡았다. 단지 아이들이 하는 소꿉놀이에 불과했지만 남편 없이 하는 소꿉놀이를 할 때마다 외로웠는지 시무룩한 표정이었던 여자아이는 이제 표정이 밝아졌다.
잘생긴 남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의 다음날 그 다음날도 오렌지 빛 바가지 머리가 빛나던 남자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들던 여자아이는 한동안 둘이서 엄마 아빠 역할을 맡으며 재밌게 놀았다. 하지만 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소꿉놀이를 같이 시작한지 여섯째가 되던 날부터 더 이상 재미있게 소꿉놀이를 하지 못했다.
그 여자아이가 놀이터에 오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사는 집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갈 수도 없고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 중 아무나 한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였다.
“○○는 내가 못 오는 날도 항상 왔었어!”
“어, 이럴 리가 없는데……. ○○는 매일 놀이터에 왔단 말이야.”
“○○는 전화기도 없고 집이 어딘지도 안 알려줬었어…….”
어쩔 방법이 없던 남자아이는 빨갛게 노을이 져도,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움직이지 않고 여자아이를 기다렸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도 기다렸다. 그리고 여자아이를 기다리기 시작한지 사흘이 되던 날, 여자아이가 나타났다.남자아이는 왜 이렇게 오지 않았냐고 있는 힘껏 화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자아이가 아주 슬프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02-2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잘 기억도 안 나던 다섯 살이 되던 해, 사정이 좋지 않던 우리 집의 가장으로서 택배 일을 하셨고 트럭을 모시던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엄마는 어릴 적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슬픔으로 인해 펑펑 우셨고, 아버지는 생전 어쩜 그렇게 많은 인연을 만드셨는지 장례식장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어렸을 땐 사람이 많아 무서운 분위기에 울었던 걸로 기억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마음 편히 가셨던 거 같아 다행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몸이 항상 아프셔서 나를 놀아주실 수 없었고 아버지는 일이 바빠 놀 사람이 없었던 나는 ‘놀이터 죽순이’ 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을 정도로 놀이터에서 매일 놀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어째선지 나는 소꿉놀이를 할 때마다 엄마 역할을 맡았고 그 때마다 항상 남편 없이 많은 자녀를 둔 엄마 역할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잘생긴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소원을 들어주듯 저가 남편을 하겠다고 나타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창섭이었다.
창섭인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항상 예쁘다고 해주었고, 쿵짝이 잘 맞아 항상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점점 친해지던 찰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한동안 놀이터에 가질 못했다. 기다려주지도, 놀아주지도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달리 ‘혹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버지의 식 마지막 날, 집 가던 길에 엄마에게 잠깐 들릴 곳이 있다고 하고선 들린 놀이터엔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함께 놀던 흙 마당에 신발 코로 장난치며 땅만 쳐다보고 있는 창섭이 빼고는. 나는 왜인지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창섭이는 알고있는 건지, 그저 내가 울고 있어서인지 놀이터에서 한참을 날 다독여주었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 이후로 창섭이는 내 손을 잡고 다니는 일이 많았고 저의 집을 매일 데려가서 항상 맛있는 간식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아직 슬픔을 채 달래지도 못한 엄마를 뒤로하고 창섭이 집에 가는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넓은 집과 다정한 어머님, 자상한 아버지, 그리고 멋진 민혁오빠까지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고 이 집의 딸이 되고 싶었던 어렸을 적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땐 전교 3등 밑으로 떨어져 본적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특목고를 생각했지만, 안 좋은 가정형편 때문에 꿈도 꿀 수 없었다. 등록금을 비롯한 필요한 모든 돈을 다 대주신다는 민혁오빠, 창섭이의 어머님에게 백번 거절했다. 그저 창섭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말에 어머님은 괜히 얼굴이 빨개지시면서 그러라고 하셨다. 일은커녕 지금 병원에 누워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대신해 낮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과 주말 내내 알바를 하고, 새벽에 다시 공부를 하면서 등수를 전교 10등 안으로 가까스로 지키면서, 생활비와 병원비를 벌고 있었다. 창섭이는 너는 너무 독한 것 같다며 잠깐쯤은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잠시 딴 생각이라도 나면 괴로워 죽을 것 같았다. 무엇을 위해 그리 공부 하냐고 묻는 다면 대학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대학을 갈 형편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내가 민혁오빠, 창섭이 집의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02-3
민혁오빠는 참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오빠는 나에게 항상 아빠 노릇을 해주려고 했고 아무래도 나이차도 꽤 있다 보니까 정말 아빠처럼 느껴졌다. 너무 공부만 하는 나를 위해 몰래 영화나 뮤지컬 표를 끊어와선 무작정 데려가 본 적도 많았고, 독서실에서 밤늦게 까지 공부할 때면 볶음밥부터 반찬, 과일까지 도시락을 싸와선 먹여주었다. 생일 때가 되면 친한 친구들을 부르라며 크진 않더라도 분식집에서 떡볶이 세트를 시켜주며 “○○랑 앞으로도 재밌게 놀아~” 라고 당부까지 하며 노래방 비를 내 손에 꼬옥 쥐어준 뒤 돌아갔고 오빠가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더라도 내가 아프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와서 밤새 병간호를 봐주었다. 이렇게 10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되는 오빠의 행동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 가 없었다. 가끔 오빠가 내게 하는 행동은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라고 생각이 들만큼 내 자존감을 높여줬다. 몸이 아픈 엄마와, 어린 나를 대신해 아버지의 제사까지 팔 걷고 도와주었고 실상 나는 아직 제사상 차리는 방법도 잘 몰랐다. 대기업에 취직해 바쁠 텐데도 나를 챙겨주는 건 여전했지만 또 여전히 완벽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시간이 빌 때마다 영화나 뮤지컬 표를 끊어와 같이 보았고, 도시락을 싸주진 못하더라도 틈나는 시간 마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오빠는 내 롤 모델이면서 고마운 존재고, 항상 존경했다. 10년이 넘는 그 시간동안 난 오빠를 당연시하지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창섭이는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고 슬플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옆자리를 지켜준 친구이다.
내 속마음을 내가 털어놓지 않아도 제일 먼저 알고, 붙어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가끔 훅 들어오는 창섭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오래 된 만큼 나도 익숙해져서 받아치는 방법을 알았다. 가끔씩 등굣길에 “○○○, 오늘따라 예쁘네.” 라고 하면 나도 “창섭이도 멋져. 누나 보려고 꾸미고 왔구나?” 라고 받아치는 여유가 생겼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둘을 알았던 친구들은 익숙한 듯 넘어가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 와서 우리 둘을 처음 안 친구들은 경악 그 자체이다. 한 친구는 내게 ○○야, 넌 심장 떨려서 어떻게 창섭이 옆에 있니?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가끔 내가 뒤에서 나도 모르게 재수 없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었다하면 어디서 알아오는지 꼭 내 앞까지 데려와 내게 사과하게 하였다. 내가 벌 청소를 했다하면 선생님께 꼭 대들어 꿀밤을 몇 대 얻어맞고 오고, 감지 레이더라도 달렸는지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다싶으면 밑층에서 올라와서 보건실까지 데려가서 저도 같이 꾀병을 부리곤 했다. 다른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하교시간만 되면 내 손목을 끌곤 같이 하교했다. 장난 끼가 넘치다가도 진지할 때만큼은 한없이 진지해질 줄 아는 사람이여서 절대로 귀찮거나 불편한 존재가 아닌 가장 편한 존재였다.
두 남자는 누가 더 랄 것도 없이 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내게 주신 선물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02-4
“창섭아, 오늘 데려 온 여자애 누구니?”
순간 거실에서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던 창섭이의 눈도, 책상에서 신문을 읽던 민혁의 눈도 같이 요리를 하고 있던 엄마에게 향하였다. 창섭이가 자랑하고 싶어 입을 달싹이며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라고 말하자 엄마는 참한 색시 데리고 왔네~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지? ○○가 참 차암해. 민혁이가 창섭이를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책으로 향했다.
“소꿉놀이 할 때 창섭이 아내에요오. 예쁘지?”
창섭은 ○○가 진짜 아내라도 되는 냥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자랑하는 모습이 저 나이에 맞게 순수해 보였다. 맑은 목소리에 민혁은 입꼬리 한쪽이 올라갔다. 딱 봐도 초등학교 6학년이 읽기엔 어려운 영어로 된 신문을 몇 번 훑다가 다른 생각이 났는지 이내 크게 웃었다. 창섭아. 라고 낮게 깔며 민혁은 말하며 고개를 들었고 순간 창섭과 눈이 마주쳤다. 민혁은 얼핏보면 선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눈을 치켜뜨면 꽤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 예쁘더라. 자주 데리고 와.”
“○○는 창섭이 친구야!”
귀여워. 민혁은 읽던 신문을 턱- 소리나게 덮으며 의자에서 일어났고 쇼파에 있던 창섭이에게 다가가 볼을 한번 꼬집으며 옆에 앉았다. 창섭이는 형아 동생이니까 창섭이 친구는 형아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민혁이 창섭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고,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눈이 똥그래진 창섭이는 민혁의 팔에 바싹 달라붙었다. 알았어요. 형아, ○○ 매일 데리고 올게요. 민혁은 동그란 입 꼬리를 더 둥글게 말아 올리며 웃었다. 착하다 창섭이.
“그대신, 창섭이가 ○○한테 하는 것 보다 ○○한테 더 잘해주면 안 돼!”
“왜?”
“○○가 형아한테 반하면 어떡해요. 나는 ○○가 좋아하는데에…….”
민혁은 그 어느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창섭이에게 말했다.
“알았어.”
+) 저 진짜 미쳤나봐여..ㅋ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주일 1연재라니... 저를 진짜 매우 세게 내려 치세요..
1주일이나 걸렸으면서 글 퀄은 진짜 똥망이다..ㅋ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세여.. 저 이렇게 긴 글 처음 연재해봐서 분량도 어디서 끊어야 되는지를 모르게꼬ㅠㅠ 다시 읽어보니까 진짜 짧다..ㅋㅋㅋㅋㅋ
그래도 1화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거 같아서 행보캐써여ㅠㅠ 근데 계속 읽다가 어색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수정 많이 했다능..... 이번 것도 그럴거라능..
여러분들 넘 불쌍하게 캐릭터 잡아서 죄송해여..ㅠㅅ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다가 많이 지루하셨져.. 뎨동...
담편부턴 빠른 전개 나가도록 해보겟슴다 사랑해요 여럽분들 뀽
※ 암호닉 계속 받아욥! 짱친 때 처럼 암호닉 분들만 따로 이벤트 할 수도 있응까 마니 신청해주소오..♥
암호닉 뀨 ㅍㅅㅍ..♡ |
차푸소푸 미적분 곰돌이 당요니 창섭선배 레드라잇 육별 만원 요거트 늪지대 김치찌개 꿀벌 마키 포카칩 선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