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년이 지났어.
우리는 4학년이 되었고, 지난 날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었어.
싸우기도 덜 싸웠고,
김태형은 열심히 경영수업 듣는 중이었고, 나는 로스쿨에 가려고 했지만, 로스쿨 학비까지 내기에 부모님이 남기신 재산이 많진 않아서 그냥 임용고시 준비 중이야.
사실 2학년 때 부모님 그렇게 되고 나서 법학과가 아니고 윤리교육과에 갔거든.
열심히 해야지.
진짜 오랜만에 김태형씨를 만났어.
"오랜만."
"진짜 남보다 못한 사이네. 왜 이리 오랜만이야?"
"오래 사귈수록 가끔 봐야 더 매력을 느끼지"
"웃기네 진짜. 핑계대지마요, 김태형 팀장님."
"팀장 아니야."
"그럼?"
"그냥 견습생이지 견습생."
"어이구 어이구 견습생은 무슨"
"근데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뭔데?"
"내가...이번 주 토요일에..선을 한번 봐야 될 것 같은데..."
"뭐?"
"내가 진짜 지금까지 다 피해왔는데, 이번엔 아버지가 직접 보라고 하셔서...."
"...."
"미안해 진짜. 응?"
"미안할게 뭐 있어...당연한건데.."
"연애도, 결혼도 너랑 할거니까 절대 오해도 하지 말고 의심도 하지 마."
"..."
섭섭하다.
서운하다.
김태형씨는 남친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나한테 다 해줬는데.
나 너무 편협하고 속 좁은 것 같아.
"많이 화났어?"
"아니..내가 왜 화가 나.."
"빨리 대학 졸업하고나서 너 데리고 다시 부모님 만나러 갈거야."
"정말?"
"정말이야."
"알겠어! 잘 갔다와! 예쁜 여자라고 혹하지 말고!"
"내가 또 누구처럼 얼굴보고 반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후...또 전정국얘기.
사실 내가 완전 처음부터 다 얘기했거든. 도서관 훈남 새내기 훔쳐보던 때부터ㅋㅋㅋ
그걸로 정말 계속 우려먹어. 이 나쁜놈.
어쨌든 기분 좋아졌어 다시~♬
토요일이 됐어.
나는 일부러 늦게 일어나고 일부러 집에서 안나가려고 했는데,
[여보세요?]
[야!]
[누구세요..?]
[넌 친구 목소리도 못알아듣냐? 나 호석이]
[...야!!!!]
[나 서울 온지 꽤 됐는데 바빠가지고 이제야 연락하네..오늘 시간 있으면 만날래?]
[그럴까?]
[1시에 서울역에서 보자]
[오키오키 알겠다~]
정호석한테 진짜 백만년만에 전화가 와서 만나러 급히 나갔지.
"여기! 야...너 왜이렇게 못생겨졌냐?"
"니도 마찬가지야. 그 전까지 봐줄만 했는데 이제 보질 못하겠네 너무 못생겨서"
"ㅋㅋㅋㅋㅋㅋ안변했네 이친구"
"ㅋㅋㅋㅋ너도"
"아직도 그 분이랑은 잘 사귀고?"
"그럼~"
"오래 사귀네"
"결혼할거야"
"그건 너 혼자만의 생각이고"
"흥"
"ㅋㅋㅋㅋㅋㅋㅋㅋ 밥 사줄게 가자"
"어디로?"
"나 일하는 식당"
"식당?"
"왜 이래 새삼스럽게. 나 중학교때부터 꿈 요리사였잖아"
"아~맞다맞다~"
"가자! 나 진짜 좋은 데 취업했다고~"
진짜 좋은 데 취업한 게 맞았어. 끝도 안보이게 높은 호텔의 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나 진짜 2년만에 처음으로 휴가받았는데 기껏 온 데가 여기라니..."
"지가 데리고 왔으면서."
"ㅋㅋㅋ우리 레스토랑만큼 맛있는데가 없거든."
코스요리 시키고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직원들이 헐레벌떡 문 앞에 줄지어 서서 누군가에게 인사를 했어.
식당 손님들 모두 문 쪽에 시선이 쏠렸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지.
누군가 하고 빼꼼 쳐다보니까...어머님 아버님 김태형씨랑 여자분 측 가족이었어.
기품이 흐르는게 딱 봐도 아 부잣집이구나 하는 태가 나더라니까.
다행히도 정호석은 못알아보는 눈치였어.
나는 우연히도 이 곳에서 만난 게 반가우면서도 스릴있었지 뭐야.
"하하하 그래서 결국 무릎꿇었냐?"
"어쩔 수 없잖아..내가 백번 잘못했는데..근데 여친도 결국 나 따라 서울 올라와서 바리스타 자격증 따서 카페에서 알바하고 있어."
"잘 됐네~ 나중에 너는 식당하고 여자친구는 카페하면 되겠네"
"꼭 찾아와"
"음식 공짜야?"
"이 친구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기세네"
"무슨 양ㅈ..."
정호석이랑 같이 신나게 수다떨면서도 흘깃흘깃 룸있는 곳을 쳐다봤는데 갑자기 벌컥 문이 열리더니 김태형씨만 나왔어.
나는 재빨리 김태형씨한테 전화를 했지. 내가 몰래 보고 있었다는 건 말 안하고.
[여보세요]
[난데~선은 잘 봤어?]
[몰라. 나 너네 집으로 간다.]
[ㅇ..ㅇ? 우리집..?]
[어. 너 밖인 것 같은데 집에서 알아서 있을테니까 빨리 볼일마치고 와.]
[으..응 알겠어.]
전화가 끊기고 나는 나머지 음식을 정말 게걸스럽게 해치웠어.
정호석은 오랜만에 돼지같은 모습 나왔다면서 고상스러운 척 언제 그만하나 두고보고 있었다고 막 비웃더라구.
"야 나 가야 돼."
"왜! 너가 커피 사야지!"
"너 휴가 언제까진데?"
"내일 오후 4시. 저녁조로 복귀해."
"내가 내일 찾아와서 꼭 사줄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못믿겠는데.."
"야 무조건 지킨다. 진짜! 너 여기서 일하는지도 알았으니까 남자친구랑 올게"
"ㅋㅋㅋ알았어. 빨리 가봐."
"미안해 진짜!!!"
후다닥 뛰어나와서 택시타고 집에 도착했어.
김태형씨는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미안해...잠깐 친구 좀 만나러 가느라고..헤헤..선은 잘 봤어?"
"아니. 상대 여자가 집에 들어와서 살겠대. 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가 됐다고 거절한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우기는거야. 그쪽 부모님도 애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다는데 진짜 짜증나. 나 여기서 살까?"
"만약에 꼭 그 여자분이 들어와서 산다고 하면 이리로 와"
"알겠어. 얼굴이 예쁘면 모르겠는데 진~짜 못생겼어."
"얼굴 안보신다면서요~?"
"내가 말한 건. 얼굴보고 한눈에 반하지 않는다는 얘기지. 누구처럼."
"씨..."
"그러니까 이런걸로 덤비지마ㅋㅋㅋㅋㅋ맨날 지면서ㅋㅋㅋ"
"흥. 언제 한번 걸리기만 해봐. 진짜 죽었어."
"ㅋㅋㅋㅋ죽여봐!죽여봐~"
"완전 초딩같아!!!! 아 호석이 알지? 정호석"
갑자기 정호석 얘기 나오자마자 김태형이 갑자기 정색했어.
"그 사람은 왜."
"걔가 식당에 취직을 했는데, 한번 가봐야되는데~ 같이가자"
"싫어."
"아 왜~ 그 식당 스테이크가 진~짜 맛있다는데~"
"그래도 싫어"
나는 되게 토라진 척을 했어.
그랬더니 김태형이 내 옆으로 와서
"그럼 내가 가면 너는 뭐 해줄건데?"
"몰라. 나 혼자 갈거야. 흥. 호석이랑 차도 마시고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가야겠다~"
"뭐?"
"그러니까 같이가자~"
"그래. 내가 같이 가준다."
"고마워~~~~"
내가 김태형씨한테 와락 안겼어.
김태형씨는 어쿠쿠하면서 뒤로 발랑 넘어갔고,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키스했어.
아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