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주의
반리얼리티주의
능글능글주의
약음담패설주의
- 저녁 먹자. 나와
잠깐 쉬는 시간 동안 확인한 톡에 가슴이 떨렸다. 현우는 인기가요가 끝나고 대충 정리가 되자 매니저한테 말하고 먼저 빠져나왔다. 메이크업도 제대로 지우지 못하고 옷도 퇴근길 직찍이네 뭐네하며 코디 누나가 챙겨준 옷이었다. 주차장으로 나가자 수현의 차가 떡하니 서 있다. 자신을 기다리는지, 아니면 다른 가수들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직도 집에 안 가고 있는 소녀들 쪽을 한번 보자 대포가 눈에 띄었다. 예의상 미소 한번 날려주고 수현의 차 쪽으로 경보하다시피 걸어갔다. 수현의 차 문을 열자 수현이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현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현우가 활짝 웃으며 입 모양으로 형아~했다. 현우가 자리에 앉고 차 문을 닫자 수현이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현우가 안전밸트를 매며 물었다.
"우리 어디 가요?"
"너 살 찌우러 간다."
동문서답에 현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냥 한번 웃고 만다. 어제 일 때문이구나―
「나 살 빠졌어요!」
「뭐?」
수현이 오랜만에 보는 현우가 대뜸 살 빠졌다고 자랑하자 현우의 턱을 잡고 이리저리 살핀다.
「별로…? 뻥이지?」
「아니예요! 2kg나 빠졌는데!」
「2kg? 헐 네가 뺄 살이 어딨다고…」
수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우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창 밖을 응시한 지 얼마 안 되어 차가 섰다. 현우가 먼저 내리고 수현이 거의 동시에 내렸다. 발렛 파킹을 맡기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현우가 수현의 옆에 딱 붙어서 걸었다. 갑자기 웬 호텔이야,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들릴 듯 말 듯 꿍얼대는 현우에게 수현이 괜찮다며 우쭈쭈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고, 주문할 때까지도 현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현우는 사실 여러모로 부끄러웠다. 호텔이라는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급하게 온다고 옷이 너무 대학생다운데, 수현은 수트를 빼입고 연예인 포스를 풍기고 있으니, 자기가 부끄러웠다. 수현이 고개 좀 들어보라고 조르는 바람에 결국 고개를 들었다.
"어?"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너 메이크업 안 지웠어?'
"아… 네 급하게 온다구"
"아이라인 그리니까-"
말꼬리를 끌다가 현우가 몸을 앞으로 숙여 수현과 가까워지자 수현이 속삭였다.
…섹시해
현우의 얼굴이 붉어지고 괜히 더운 것 같다며 허둥지둥하자 수현이 웃었다. 현우가 말을 돌리면서 왜 이때까지 자기가 메이크업 안 지운 거 몰랐느냐며 투정부리듯 물었다.
"운전한다고 너 못 봤지."
"로비에서는? 로비에서 나 잠깐 봤잖아요."
"너무 잠깐 봤어."
"차에서 내려서 봤잖아요."
"그때부터 쭉 고개 숙이고 있었잖아."
듣고보니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아 말문이 막혔다. 현우가 틱틱대도 수현은 그래그래, 하고 받아주니 틱틱댈 맛도 안 나는 것이다. 수현이 현우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머리도 그대로네."
"응, 시간 없으니까요."
"난 현우가 앞머리 내린 게 제일 이쁜데."
현우가 그 말에 또 고개를 숙이자 수현이 웃으며 물었다.
"근데 왜 시간이 없어? 왜?"
뻔한 물음에 현우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형 보고싶어서어- 빨리 나온다구요."
수현이 만족스러운 대답에 방긋 웃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빨리 나왔으면 지금 나 봐야지. 왜 안 보고 그러고 있어?"
"그게~ 형이 자꾸~ 놀리잖아!"
현우가 앙탈 부리며 고개를 들자 수현이 그래그래,하며 웃었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다. 딱 봐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스테이크 두 접시가 각각 현우과 수현의 앞에 놓이고 테이블 중앙에 와인이 놓였다. 소믈리에가 와서 와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 코르크를 따서 잔에 따라주었다. 소믈리에가 테이블을 떠나고, 현우과 수현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 음식에 집중했다. 정갈한 솜씨로 칼질하고 입을 꾹 다물고 우물우물 씹는 두 사람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현우가 먼저 접시를 다 비우고, 테이블 밑으로 수현의 발을 툭툭 건드렸다.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수현이 고개를 들자 둘이 눈이 마주쳤다. 현우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피식 웃었다.
"안 어울린다."
"응?"
"너 그렇게 순진한 얼굴로 와인 마시니까 안 어울린다. 고딩이 술 마시는 것 같아."
"아 애 취급하지 마요, 지난 번에도 그러고 왜 자꾸 애기 취급해요"
"아니, 근데 그런 모순적인 모습도 되게 섹시해. 아, 빨리 살 찌워야지. 현우야 빨리 살쪄라."
"왜요? 살 찌워서 뭐 하려고."
"잡아먹어야지."
수현이 여기 위에서, 하고 덧붙이자 현우가 힉-! 숨을 삼키며 놀랐다. 수현이 씩 웃으며 와인을 마셨다.
"아 근데, 난 네가 아이라인 그린 것도 섹시하지만."
"응응."
"네 눈가가 붉을 때가 제일 좋아…특히 침대 위에서"
현우가 잠시 얼이 빠져 굳어있었다. 수현이 이런 음담패설을 할 때 현우는 늘 어찌할 줄 몰랐다. 수현은 또 그런 현우를 귀여워하고, 참 잘 어울리는 바퀴벌레 한 쌍이었다. 현우가 말을 잃고 자꾸 와인을 마시자 수현이 저지했다.
"야 너 또 취하면 안 돼."
"왜요? 왜? 왜~"
"또 발 씻겨줘야 되잖아."
"응~"
"그리고 또…"
현우가 그 뒷말을 듣기도 전에 사레가 들렸다. 콜록콜록- 괴로워하며 물을 마시는 연인의 모습을 수현은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아 진짜 변태- 눈을 흘기며 수현을 쳐다보는 현우의 눈빛도 사랑스럽다는 듯. 현우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만 먹을래요."
"왜? 더 먹어. 이 와인 맘에 안 들어? 다른 거 시킬까?"
"많이 먹지 말라면서요."
"괜찮아. 내가 운전하지 네가 하냐."
현우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응시하자 수현이 비밀이라는 듯, 낮게 속삭였다.
"사실은… 너 취하면 와인 숙성으로 잡아먹을 거야."
그에 현우가 질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현이 농담이라며 달랬지만 현우는 그냥 빨리 가자며 수현을 끌었다. 수현이 현우 뒤를 쫓아 나오며 화났냐, 잘못했어, 했지만 현우는 입을 꾹 다물고 제 길을 갈 뿐이었다. 차에 타서 현우의 집으로 거의 다 와 갈 때쯤 현우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음담패설 공공장소에서 좀 하지 마요."
"응응. 안 할게."
"누가 들으면 큰일 나요!"
"응응. 맞아. 이제 안 할게."
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현우의 집에 도착하자 현우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수현과 키스하고 난 뒤 속삭였다.
나랑 있을 때만 해요, 그럴때는 좀 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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