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서, 긴장돼서 잠을 못 잘 거라는 내 예상은 빗나가도 훨씬 빗나갔다. 나는 아주 꿀잠을 잤다.
아침에 나를 깨우러 온 김남준이 존나 질린다는 표정으로 내 침을 닦아준 것을 보면.
“보통 이사가고 전학가고하면 긴장돼서 잠 못 자고 그러지 않냐?”
“어휴, 그건 찌질이들이나 하는 거고.”
“너 어제 존나 쳐 울었잖,”
“끄으우와아아악!”
남준이의 발을 밟으며 입을 틀어막자 ‘지랄도 참 버라이어티하게 한다.’ 는 표정의 남준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수줍게 손을 내렸다.
“저… 남준아.”
“아오 시발아. 너 그 얼굴로 그렇게 나 부르지 마라.”
“시팔롬아 좋은 말로 할 때 어제 일은 평생 비밀이다.”
내 무시무시한 협박에 콧방귀를 뿌아앙 뀐 김남준은 짐을 나르러 저 멀리 사라졌다.
으악 시발 내가 어제 왜 울었지? 해가 뜨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별 거 아닌데 왜 울었지? 왜?
“이 년은 왜 아침부터 난리부르스야?”
푸다닥거리며 지랄을 하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쳐맞고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왔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꼴이 참 예뻤다.
남준이가 왜 이 얼굴로 나긋나긋하게 부르지 말라는 지 이제야 알겠다. 뺨 안 때려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대충 씻고 나오자마자 짐을 날랐다. 이사는 엄청나게 피곤한 거구나. 앞으론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야겠다.
속으로 일기를 적어내려가며 이삿짐을 나르니 어느새 집이 텅 비었다.
비어버린 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집에 살면서 울고 웃고…. 내 기쁨과 슬픔이 녹아있는 나의 터전….
안녕, 굿바이. 언니는 이제 새 터전에서 새 삶을 시작,
“아!”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렸다. 누구겠어. 손동작 하나만으로 나를 빡치게 할 새끼는 딱 한명이지.
“귀 먹었냐? 나가자고.”
“시발, 내가 지금 작별 인사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누구랑 작별 인사 하는데. 먼지? 니 머리카락? 바퀴벌레?”
감성적이지 못한 새끼.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김남준의 재촉에 이끌려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이제 볼 일 없겠지.
어우, 지긋지긋한 바퀴벌레. 밤에 엄마 몰래 미드보다가 발등이 계속 간지러워서 봤더니 바퀴벌레 두 마리가 내 발등을 플로어 삼아 정열의 삼바를 추고 있었더랬다.
존나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미드보는 거 걸려서 노트북도 압수당하고 시팔 갑자기 빡치네. 아무튼 안녕. 난 떠난다!
“아 성이름! 지랄말고 오라고!”
“간다, 시발아!”
* * *
내 새 삶의 터전은 삐까번쩍했다. 이번에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는 입이 떡 벌어지게 컸다.
바퀴벌레 따위는 더듬이도 못 내밀 그런 비주얼의 아파트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우와. 이거 막 티비에서 나올 것 같은 비주얼! 짱짱이다!"
"쪽팔리니까 닥쳐라."
그러는 너도 입 떡 벌어진 거 이 누나는 다 안단다.
오늘날까지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맸던 엄마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는 이삿짐 센터 사람들을 기다리는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엄마아…. 나 이제 밤에 몰래 드라마보다 바퀴벌레 때문에 걸릴 일 없겠다. 그치?"
"니 방에 바퀴벌레 알 뿌리기 전에 닥쳤으면 좋겠다."
예. 마마님.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뒷걸음질 쳤다. 남준이가 존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이 아파트가 마음에 든다는 표현을 한 건데.
"하…. 왜 아무도 내 맘을 몰라주지."'
나는 남준이에게 눈짓을 했다. 남준이는 존나 싫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뭔 일 있냐."
"안 알랴줌."
박수를 치며 꺽꺽대면서 웃자 남준이가 말 섞기도 지친다는 듯 무시해버린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고 우리는 다시 중노동을 시작했다.
집 안은 무지막지하게 넓었다. 사실 조금 오버했지만. 암튼간에. 하나씩 눈에 익은 가구들이 낯선 공간에 채워지고 썰렁했던 집 안은 모습을 갖춰갔다.
내 침대와 책상도 도착했다. 새로이 내 방이 된 공간은 꽤 맘에 들었다. 사실 무지하게 맘에 들었다.
이번엔 남준이의 부모님과 남준이의 사촌 동생인 정국이까지 짐정리를 도와서인지 예상보다 빨리 정리가 끝났다.
녹초가 돼서 소파에 늘어져 있으니 남준이가 나를 발로 툭툭친다. 아니 이 새끼는 손이 없나?
"왜."
"아줌마가 떡 돌리래."
"니가 해."
"니 이웃이지 내 이웃이냐?"
"요즘 떡 돌리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떡을 돌려?"
그리고 힘들다고. 나는 모르는 일이오. 하며 눈을 감자 김남준이 계속 건든다.
처음에는 다리를 툭툭 치더니 허벅지를 치고 이제는 엉덩…
"야! 미쳤냐?!"
나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고
"야…? 미쳤…냐…?"
잔뜩 골이 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고 있는 김남준도.
"아니… 난 김남준인 줄 알고…."
"후딱 일어나서 떡이나 돌려!"
"아야! 아, 알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시루떡을 억지로 받아 든 나는 현관문 앞에서 미적댔다.
"옆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집이 제일 마지막으로 온 거야. 있어. 빨리 가."
"요즘 떡 돌리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빨리 안 가?!"
"우리 엄마는 참 착하다. 이웃 간의 정을 참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엄마같은 사람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따듯한 것이다…."
나는 중얼거리며 슬리퍼를 신었다. 화장실 슬리퍼를 왜 여기에 놓은 거지? 뭐, 상관 없겠지.
옆집에 까리한 미남이 살지 않는 한, 나는 내 추레한 몰골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무릎이 튀어나온 수면바지도, 잔뜩 흐트러진 똥머리도, 시장에서 주워온 것 같은 Lady라고 크게 적힌 목이 늘어난 티셔츠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일주일 전에 내가 자는 사이에 탄소가 몰래 발라놓은 핫핑크색 엄지발톱은 조금 부끄러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옆집… 아니, 아니다. 마주보고 있으니까 앞집인가? 아무튼 1502호의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왠지모르게 초인종 소리도 고급스러운 것 같다.
"허헣. 초인종 소리가 고급스럽대, 크흑…."
촌년 같다. 나는 혼자 실실 쪼개며 1502호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십초 쯤 기다렸을까.
문이 열리지 않아서 다시 한번 누르려는 찰나.
"악!"
문이 열리면서 모서리에 코와 이마를 찧고 말았다. 어우, 이마 패인 거 아냐? 찌르르한 통증에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씨이…."
찰나의 순간. 나는 이 1502호 주민에게 화를 내야할까 아니면 그냥 웃으며 인사를 해야할까 고민을 했다.
그래… 내가 얼굴 들이민 거니까 화내지 말고 그냥 떡이나 주자. 에이씨, 그런데 괜찮냐고도 안하고 미안하다고도 안하네.
나는 자꾸 쪼그라드려는 미간을 펴고 웃는 얼굴로 내 이웃을 바라보았다.
"저기, 1501호로 이사왔는…데…."
"……."
시…바알.
"떡… 드시라고…."
"아, 네."
존나….
"맛있게… 꼭꼭 씹어서… 드세요…."
"…네."
까리하잖아….
***
“왜… 왜 말 안 했어…?”
“뭐가, 왜, 뭐.”
“왜… 나 안 말렸어…?”
“아, 도대체 뭐가!!!!!! 내가 뭘 말 안 하고 안 말렸는데!!!!”
몰라서 묻냐? 아, 모르겠구나.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답답해 뒤지겠다는
표정의 남준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흠칫하면서 놀란다.
“왜 놀라? 내가 그렇게 거지꼴이야? 손대면 흠칫! 하고 피할 정도로 거지같아? 손 닿으면 존나 병균 옮을 것 같아? 막 기름 묻을 것 같아?”
아까 접시 넘겨주면서 까리남이랑 손 살짝 스친 것 같은데. 그래서 표정이 그렇게 썩었던 걸까? 남준이가 내 손을 쳐내며 짜증을 냈다.
“아오, 왜 지랄인데! 존나 못생겼네 진짜.”
“거지새끼이….”
침대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손을 뻗어서 핸드폰을 집었다. 탄소한테 카톡이나 해야겠다. 지금 내 심정을 알아줄 사람은 탄소밖에 없어….
- 야
- 야
“야, 성이름. 뭔 일이냐고.”
내 침대에 기대서 만화책을 읽던 김남준이 책을 덮어 내 허벅지를 툭 때린다.
어우 시발, 조금만 더 위로 때렸으면 저거 확 신고해버리는 건데.
- 나 방금 옆집에 떡 갖다 줬는데
“나 방금 옆집에 떡 갖다 줬잖아.”
[ㅇ]
“어.”
- 옆집 남자 존나 잘생겼어
“옆집 남자 존나 잘생겼어.”
[원빈임?]
“옆집 남자가 잘생겼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사귀냐?”
- 븅신아 옆집에 원빈 살면
- 내가 경찰서에서 너한테 전화했지
“개소리야….”
“그럼 무슨 상관이야. 신경 꺼. 그 남자는 옆집에 거지가 살든 뭘 하든 신경 안 쓸 거다.”
“존나 퍽이나 위로가 되네요.”
남준이는 별거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다시 만화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변태시끼]
- 변태는 김남준이고
- 시발 자꾸 내 엉덩이 때림
[너 엉덩이로 남준이 손 때리지 마라]
- 시팔년
아오, 짜증 나. 뻐킹 커플이다. 멀리 있는 탄소를 때릴 순 없으니 가까이 있는 김남준을 응징하기로 했다.
김남준의 등짝을 발로 까며 침대에서 내려오니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본다.
“뭐. 누가 거기에 있으랬냐?”
“옆집 남자가 널 뭐라고 생각할까.”
“죽는다, 진짜.”
“니네 집 앞에 소금 뿌려져 있는 거 아니냐? 아니면 팥이라던가.”
“소금에 절여버린다.”
눈을 번뜩 뜨고 노려보지만 김남준은 킥킥댈 뿐이었다.
“하여튼 얼굴은 존나게 밝혀요.”
남준이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이요 진리니까. 누가 미인을 싫어하겠나.
단지 나는 보통보다 조금 더 좋아할 뿐이다. 낯을 가리지 않는 대신 낯짝을 조금 가린다고나 할까.
“내가 너 같은 얼굴만 보고 자라서 그래. 이젠 눈이 조금 싱그러워지고 싶어.”
“나 정도면 미남이지.”
“오징어가 말도 다 하네.”
“내가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너는 눈이 너무 높아 새끼야. 결혼은 어떻게 할래?”
“내 눈이 성층권에 있든 열권에 있든 니가 무슨 상관이세요.”
엿을 날리고 방에서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오렌지 주스가 딱 한 모금 남았다.
어떤 개매너가 입 적실 정도만 남겨놨냐. 뻔하다. 내 주스에 손댈 사람은 김남준 개새끼말곤 없다.
“엄마! 김남준 언제 간대?!”
“그건 남준이한테 물어봐야지. 자고 간대?”
“오빠 자고 갈까?”
“지랄이세요. 내일 월요일이거든요.”
식탁 위에 있는 김남준의 지갑 포착. 나는 자연스럽게 만원 지하철에서 변태 아저씨가 여자 사람 엉덩이를 어루어만지듯… 표현이 너무 저질이다.
아무튼 물 흐르듯 조심스럽게 내 방에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오는 김남준이 눈치채지 못하게 지갑을 내 수면바지 주머니에 쏘옥 넣었다.
“나 슈퍼 갔다 올게.”
“왜?”
“김남준이 내 주스 다 마셨어. 혼내죠잉.”
“가라.”
예. 현관으로 나오니 옆집에 갔을 때 신고 갔던 화장실 슬리퍼가 날 반겨주었다. 시… 팔 잊으려고 했는데…. 옆집 훈남이 다시 떠오른다.
뚜렷한 이목구비, 조금 곱상하게 생긴 얼굴. 목소리도 좋았다. 네, 밖에 못 들었지만. 화장실 슬리퍼 말고 다른 슬리퍼는 아직 안 내놓은 건지 보이지 않았다.
운동화 신기 귀찮은데…. 그렇다고 화장실 슬리퍼를 다시 신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남준이 신발을 신기로 했다.
남준이의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자 쑥 들어간다. 흠… 너무 큰가?
“김남준! 니 운동화 좀 빌린다!”
“똥 묻혀오기만 해봐. 뒤진다.”
그리고 니 지갑도 빌릴게. 작게 중얼거렸다.
“알았지이?”
“알았다고.”
히히. 난 허락 맡은 거다? 너는 못 들었겠지만. 나는 혼자 쪼개며 집을 나섰다.
-
옆집 남자가 ㄱ미태형인데 제가 이렇게 말 안하면 아무도 김태형인지 모를듯요 그래서 말함 김태형이 옆집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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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솔직히 인티 미리 공지했어야하는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