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집 앞 슈퍼, 보다는 마트에 가까운 그곳에 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한걸음 떼면 뒤꿈치가 쑥 하고 신발에서 빠져나오는 바람에 맨발로 땅을 디디길 몇 번.
발을 질질 끌며 도착한 나는 온 김에 내 돈도 아닌 돈 펑펑 쓰자는 마음으로 과자를 쓸어담았다.
빵빵한 봉투를 들고 다시 발을 질질 끌며 아파트에 도착했다.
“어휴, 발목 뽀사지겠네 진짜.”
차라리 벗고 걷는 게 편할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파트 로비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그냥 미친 척하고 뻔뻔하게 맨발로 걸어도 될 것 같았다.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되니까.
나는 후딱 신발을 벗고 빈손에 남준이의 운동화를 쥐었다. 맨발바닥에 차가운 대리석이 닿았다.
“저기요.”
“우와악아악!”
“아, 미안해요. 많이 놀랐어요?”
펄쩍 뛰며 뒤를 돌아보자 검은 정장을 빼입은 훈남이 서 있었다. 이 아파트는 무슨 금광이야?
웃으며 말하는 남자를 빠르게 훑어보니 명찰을 달고 있었다. 김…석진…. 아파트 경비원인 모양이었다. 여기 진짜 고급아파트구나.
“아, 아뇨…. 왜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헉, 나 거지꼴이라서 잡힌 거야? 막 노숙자가 여기로 기어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건가?
“입주민이세요?”
“네! 저 여기 사는데요? 1501호! 이, 입구 비밀번호도 아, 아, 아, 아는데?”
말은 왜 더듬었지? 더 의심 사겠다.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왜 웃냐. 내가 웃기냐?
“어디 불편하신 것 같은데 모셔다드릴게요.”
“아뇨, 저 전~혀 안 불편해요. 완전 편해요. 제집처럼. 아, 우리 집이지. 촤하하하. 비싼 아파트라서 그런가 봐요.”
김석진 씨는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이런… 내가 촌년인 걸 알아챈 모양이다. 처리해야 하나.
김석진 씨는 내 손에 들린 봉투를 기분나쁘지 않게 빼앗아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탄 김석진 씨는 나보다 빨리 15층 버튼을 눌렀다.
“1501호라고 하셨죠? 짐만 들어다 드릴게요. 그리고 발….”
“발?”
김석진 씨의 시선을 따라서 내려가 보니 핫핑크색 엄지발가락이 수줍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발가락을 오므렸다. 시팔.
“아, 제가 신발을 잘못 신고 와서 너무 커서 걷기가 힘들더라구요. 하하….”
“신발 들어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당신이 아무리 아파트 경비원이라도 사흘 굶은 육식동물 입 냄새가 나는 김남준의 운동화를 넘길 수 없어요.
내 손이 썩어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손은 지켜줄게요. 왜냐하면 당신은,
“잘생겼으니까….”
“네?”
“헐, 아녜요. 뭐가요?”
“뭐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김석진 씨가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악, 가까이 오지 말아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으니까.
“제가 틱 장애가 있어서요, 아, 아, 아름다운 밤이네요. 아뇨 제가 말이 막 나와요. 전 사, 스, 사이다가 좋아요.”
최선을 다해서 미친 척을 했다. 김석진은 낮게 웃었다. 시방 나를 비웃는 것이여?
다행히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내 입방정은 거기서 끝이 났다. 후, 다행이다.
나는 1501호를 가리키며 김석진 씨에게 하하 웃었다.
“하하,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짐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내게 봉투를 넘겨주며 웃는 김석진 씨를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남준이 뛰어 나와 나를 반겨준다.
“거지년아. 내 지갑 들고 갔냐?”
갈구려고.
“응, 시발아. 나 자살하러 갈 테니까 우리 엄마한테 갚으라고 해.”
“자살은 지랄. 근데 너 왜 신발을 손에 들고 있냐?”
아 맞다. 나는 김남준의 신발을 바닥에 던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으… 빨리 손 씻어야겠다. 손에 김남준 발냄새 옮았을 듯.”
“으… 빨리 신발 빨아야겠다. 신발에서 이제 족발냄새 날 듯.”
죽여버릴라. 손과 발을 비누로 뻑뻑 씻고 주스와 과자를 시식해보려는데 벌써 반이나 사라져버렸다.
“뒤질래, 남준아?”
“내 돈으로 산 거 내가 먹는데 불만 있는 사람?”
“하아아-잇!”
손을 번쩍 들며 대답하자 김남준이 어이 털린다는 듯이 웃는다. 김남준의 손에 들린 주스 병을 빼앗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으, 시다. 셔. 콘칩을 먹으려고 손을 뻗으니 김남준이 확 낚아채가 버린다.
“뭘 봐?”
“김남준 빨리 집에 가면 좋겠는 사람? 하아잇!”
남준이가 허허 웃으며 내 지랄을 감상한다.
“김남준 빨리 꺼졌으면 좋겠는 사람? 하잇!”
번쩍 든 손을 더 더 높이 들었다. 김남준도 미쳤는지 나를 따라서 오른손을 번쩍 든다.
“성이름 닥쳤으면 좋겠는 사람? 하잇!”
“김남준 돼지 새끼라고 생각하는 사람? 하잇!”
“성이름 암내 쩐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잇!”
“김남준 여친이랑 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잇!”
“옆집 남자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궁금한 사람? 하잇!”
시팔놈아. 생각나잖아.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 올라간 눈썹과 떫은 감을 씹은 듯 썩어가던 그 잘생긴 얼굴이.
“내 앞에서 옆집 남자 발언 금지.”
“그렇게 잘생겼냐?”
“질문이 잘못됐네. 그렇게 니 꼴이 거지 같았냐? 라고 물어봐 줄래?”
“니 거지꼴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 딱 보면 알겠는데 입 아프게 물어봐야 함?”
시팔놈아. 고맙다. 너무 위로가 된다. 김남준의 지갑과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서 품에 떠안겨준 뒤 현관문으로 밀어냈다.
“야, 꺼져 꺼져.”
“꺼지긴 뭘 꺼져. 자고 갈 거야.”
“지랄 마. 자긴 뭘 자. 내일 월요일이거든?”
“나 내일 개교기념일. 너 내일 학교 쉬지?”
“어케 앎?”
남준이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니 년이 이사 끝낸 다음 날 학교에 갈 리가 없지.’
그래 나 년이 그럴 리가 없지. 그리고 교복도 없는걸.
“안방에 이불 있음. 가지고 컴온.”
“이불 깔면 침대 내 거.”
“강냉이 털어버린다.”
후다닥 달려가 내 침대에 뛰어들었다. 아 일기 써야 하는데. 메모장 어플을 켰다. 언제부턴가 나는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분량은 자유. 한 글자라도 괜찮다. 그냥 나와의 약속이다. 오늘은 쓸 게 참 많을 것 같지만.
“뭐하냐?”
“일기.”
“또 그런 거 쓸 거지?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국을 먹고 똥을 쌌다. 쾌변이다.”
바닥에 이불을 까는 김남준이 킥킥대면서 말했다. 이 새끼 언제 한번 훔쳐봤구만? 비번 걸어놔야 하나. 그건 내가 귀찮은데.
“좆이나 까잡숴.”
“어디 봐봐. 옆집 남자 이야기… 썼고. 어, 경비원은 누구냐?”
“아까 슈퍼 갔다가 올 때 만났엉. 잘생겼엉.”
엎드려서 핸드폰을 두드리는 내 옆에 따라 엎드린 남준이가 혀를 쯧하고 차더니 흥미가 가신 듯 바닥으로 내려간다.
“나 여기 이사와서 너무 좋앙. 잘생긴 남자들 짱 많앙.”
“말투 존나 때리고 싶당. 이사 간다고 질질 짠 새끼가 누구더랑.”
“맨날맨날 눈호강 할 테니까 이제 안 슬프당. 좋당.”
“너 때문에 맨날맨날 눈테러 당할 옆집 남자랑 경비원이 불쌍하당.”
이씨. 이제 매일 씻고 다닐 거거든? 옷도 깔끔하게 입고 다닐 거거든? 머리도 빗고 나갈 거거든?
남준이에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점점 눈이 무거워지고 입술도 무거워져서 그냥 베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자게?”
아, 오늘 너무 피곤했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무런 대답 않고 눈을 감자 남준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불을 껐다
이불이 몸 위로 덮어졌다. 침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 * *
꿈에는 옆집 남자가 나왔다. 내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꿈이었다.
‘제가 그렇게 구질구질해요?’ 라며 옆집 남자를 쫓아다니는 내용의 꿈이었다. 하… 구질구질하다 진짜….
* * *
"잠 잘 못 잤냐?"
"아, 개 꿈꿔서. 으으, 찌뿌둥해."
남준인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주 지네 집인듯 자연스러웠다.
남준이의 맞은편에 앉아서 기지개를 켰다. 엄마랑 아빠는 먼저 출근을 한 모양이다.
"아줌마가 카드 주고 가셨어. 너 교복 맞추라고."
"설마 그 카드로 교복만 맞추라고 하셨겠니."
"나 치킨 사 먹으래."
"니 주둥이만 입이겠니."
밥을 대충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교복 맞추고, 영화 한 편 보고 점심은 치킨을 먹을 거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루토 극장판이 어제 개봉했기 때문에 덕후로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물론 나 혼자 짠 계획이다. 김남준은 뭐, 별수 있나.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아! 나 양말도 사야 되는데…."
"웬 양말? 너 양말 많잖아."
"화양고는 흰 양말만 허용이래."
왜 양말까지 관리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니, 캐릭터 양말을 신으면 일진이래? 하지만 나는 학생이었다. 까라면 까야지.
"어차피 노란색 될 텐데."
어우 씹새끼. 닥쳤으면 좋겠다.
* * *
무릎을 덮는 교복 치마 길이에 이것은 아니 된다 눈물로 호소하며 수선 맡기기에 성공한 나는 기쁜 발걸음으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남준이는 옆에서 성이름 까졌네 어쩌네 하면서 구시렁거렸다.
“쌉쳐라.”
“아줌마한테 다 이를 거다.”
“엄마는 이해해준다.”
“아저씨한테 다 이를 거다.”
“그건 안된다.”
아빠는 그런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짧은 옷, 남자관계.
김남준은 남자로 치지도 않는지 아빠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외 남자들은 죄다 늑대라며 세 마디 이상 나누는 꼴을 못본다.
“아저씨는 좀 과보호야.”
“맞아. 아빤 좀 심각해.”
“얼굴 보면 답이 딱 나오는데.”
개년.
“아빠한테 이를 거야.”
“그건 안된다.”
“팝콘 사와라.”
“예, 누님.”
아직도 딸내미가 세계 최고 미녀인 줄 아는 울 아빠가 무서웠는지 내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듯 헐레벌떡 팝콘을 사러 뛰어가는 남준이의 뒷모습을 보고 의자에 앉아서 발을 까딱이며 남준이를 기다렸다.
기둥에 달린 커다란 티비에서 영화 예고편이 줄줄이 나왔다. 곧 볼 나루토 극장판 예고편만 보고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봐도 누가 누군지 모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즐겨봐온 나는 만화 캐릭터 이름 외우기에도 바빠서 연예인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외국 연예인이고 한국 연예인이고 내가 아는 연예인이라곤 만화 OST 부른 사람들 뿐이다. 그것도 이름만 알 뿐 얼굴은 몰랐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영화 티저에서 나오는 소리가 엉겨서 웅웅거렸다.
“───.”
“어?”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TV는 이미 다른 티저로 넘어간 후였다. 뭐지? 누구 목소리였지? 뭔가 익숙한데.
어디선가 들은…. 티저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닌가? 내가 연예인 목소리를 알 리가 없는데.
나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보았다.
“누구 찾아?”
남준이가 팝콘을 끌어안고 양손에 음료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오며 내게 물었다.
“어, 아니. 아는 목소리가 들려서.”
“영화 예고편에서 나온 거? 뭐, 티비보다가 들었나 보지. 연예인 목소리.”
“그런가?”
그런가 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남준이가 내민 아이스티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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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이 계시네여 (감동) 카누님 감사합니다^▽^~~~~~~~!!!!!!!!
새 인물이 나왔스야 아파트 가드 김석진씨인데여 그냥 방젤웃 보고 싶어서 넣었음 러브라인 업슬걸요ㅎ...
여주는 연예인은 1도 모르는 애니덕후예여 여기서 쬐끔 감을 잡으셨을지도 모르겠네여 옆집 남자 김태형의 직업!!!!!!!
그래서 여주가 치는 드립들 다 한물 갔응ㅁ... 한 두박자 정도 늦게 유행을 따라잡거든...
남준이는 착해서 그냥 한물 간 드립들도 받아쥼... 얘가 덕후인거 아니께...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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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솔직히 인티 미리 공지했어야하는거 아니야?!?